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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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조선일보 - 아시아 최초의 중장기병 갑옷 세트 출토, 신라 비늘갑옷 재현 모형 공개
2009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쪽샘유적 동편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5세기 경 신라시대의 찰갑.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마갑과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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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6세기 경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들 800여기가 밀집되어 있는 경주 쪽샘지구에서 출토된 찰갑이다. 당시 신라의 기마병들이 착용하던 철제(鐵製) 갑옷과 투구류(이를 甲胄類·갑주류라 한다)로, 발굴 이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 5세기 쯤 신라 중장기병이 사용하던 것임을 확인하였다.
삼국시대 갑옷의 경우, 지금까지 판갑(板甲·삼각형이나 장방형의 큰 철판으로 만든 갑옷)은 종종 출토돼 그 원형을 파악하는데 어렵지 않았지만 찰갑의 경우, 일부 부속구만이 출토되었을 뿐, 그 전체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3호분, 쌍영총, 개마총) 등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은 함께 발견된 마갑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완전 복원이 가능하도록 온전하게 갑주 풀세트 전체가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다.
때문에 기존에는 고대 찰갑을 복원한 것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몇개의 파편만을 가지고 상상만으로 복원하는 형태였다. 그나마 고구려 찰갑의 경우 고분벽화가 남아있어 이를 토대로 복원을 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백제-신라-가야계 비늘갑옷 재현 모형은 완벽한 실물 유물을 토대로 1대1로 재현했다기보다는 파편 몇개를 가지고 외국 유사 유물의 모습을 참고한 후 확인되지 않는 부분은 그저 추정을 하면서 만든 것들이라 한계가 많았다.#
하지만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에서 발견된 찰갑은 거의 모든 부분이 온전한 모습으로 출토된 관계로, 2009년 출토된 비늘(미늘,갑찰) 1249매를 토대로 단 21매의 신갑 비늘만을 추가하여 비늘을 가죽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1,600여년 전 고대 갑옷의 모습을 완전 복원의 개념으로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과거 학계의 복원 시도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비늘갑옷은 실물 유물을 토대로 '복원'이란 단어의 의미에 맞게 완전 복원한 최초의 한국 비늘갑옷(찰갑)이자, 사실상 최초로 복원한 삼국시대 비늘갑옷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아주 크다.#
풀세트라고는 하지만 사진에서는 투구와 갑옷, 가리개만이 보이는데 아직 복원이 미완성인 상태에서 대중들의 요구에 급히 공개했기 때문이다. 원래 유물은 상박갑과 대퇴갑, 경갑까지 모두 갖춘 완전체 상태로 발굴됐지만, 재현품이 공개된 2013년 기준으로는 사진처럼 흉갑과 목가리개, 갑상 부분만 복원된 상태였다. 이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2013년 처음 공개 당시 먼저 말 갑옷 복원을 완료한 후 찰갑의 나머지 부분들을 마저 복원해 공개하겠다고 밝혔고, 2020년 4월에 마갑 복원이 완료됨에 따라 앞으로는 찰갑 나머지 부분의 복원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찰갑과 마갑을 발굴할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도굴되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이 갑주들을 보존하기 위해 따로 가건물을 세우고, 바깥과 온도 차를 줄이기 위한 냉방시설과 습기를 제거하는 제습시설을 설치했다. 이후 2차례에 걸친 크레인 작업을 통해 28톤에 이르는 유물들을 통째로 들어올려 가져왔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신라 중장기병들이 사용하던 찰갑으로, 훗날 발견된 또 하나의 찰갑 풀세트인 김유신 찰갑과 함께 실물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구려, 백제, 가야 개마무사들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 아시아 최초의 중장기병 갑옷 세트 출토, 신라 비늘갑옷 재현 모형 공개
1. 개요
2009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쪽샘유적 동편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5세기 경 신라시대의 찰갑.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마갑과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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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6세기 경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들 800여기가 밀집되어 있는 경주 쪽샘지구에서 출토된 찰갑이다. 당시 신라의 기마병들이 착용하던 철제(鐵製) 갑옷과 투구류(이를 甲胄類·갑주류라 한다)로, 발굴 이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 5세기 쯤 신라 중장기병이 사용하던 것임을 확인하였다.
삼국시대 갑옷의 경우, 지금까지 판갑(板甲·삼각형이나 장방형의 큰 철판으로 만든 갑옷)은 종종 출토돼 그 원형을 파악하는데 어렵지 않았지만 찰갑의 경우, 일부 부속구만이 출토되었을 뿐, 그 전체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3호분, 쌍영총, 개마총) 등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찰갑은 함께 발견된 마갑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완전 복원이 가능하도록 온전하게 갑주 풀세트 전체가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다.
때문에 기존에는 고대 찰갑을 복원한 것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몇개의 파편만을 가지고 상상만으로 복원하는 형태였다. 그나마 고구려 찰갑의 경우 고분벽화가 남아있어 이를 토대로 복원을 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백제-신라-가야계 비늘갑옷 재현 모형은 완벽한 실물 유물을 토대로 1대1로 재현했다기보다는 파편 몇개를 가지고 외국 유사 유물의 모습을 참고한 후 확인되지 않는 부분은 그저 추정을 하면서 만든 것들이라 한계가 많았다.#
하지만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에서 발견된 찰갑은 거의 모든 부분이 온전한 모습으로 출토된 관계로, 2009년 출토된 비늘(미늘,갑찰) 1249매를 토대로 단 21매의 신갑 비늘만을 추가하여 비늘을 가죽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1,600여년 전 고대 갑옷의 모습을 완전 복원의 개념으로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과거 학계의 복원 시도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비늘갑옷은 실물 유물을 토대로 '복원'이란 단어의 의미에 맞게 완전 복원한 최초의 한국 비늘갑옷(찰갑)이자, 사실상 최초로 복원한 삼국시대 비늘갑옷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아주 크다.#
풀세트라고는 하지만 사진에서는 투구와 갑옷, 가리개만이 보이는데 아직 복원이 미완성인 상태에서 대중들의 요구에 급히 공개했기 때문이다. 원래 유물은 상박갑과 대퇴갑, 경갑까지 모두 갖춘 완전체 상태로 발굴됐지만, 재현품이 공개된 2013년 기준으로는 사진처럼 흉갑과 목가리개, 갑상 부분만 복원된 상태였다. 이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2013년 처음 공개 당시 먼저 말 갑옷 복원을 완료한 후 찰갑의 나머지 부분들을 마저 복원해 공개하겠다고 밝혔고, 2020년 4월에 마갑 복원이 완료됨에 따라 앞으로는 찰갑 나머지 부분의 복원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찰갑과 마갑을 발굴할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도굴되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이 갑주들을 보존하기 위해 따로 가건물을 세우고, 바깥과 온도 차를 줄이기 위한 냉방시설과 습기를 제거하는 제습시설을 설치했다. 이후 2차례에 걸친 크레인 작업을 통해 28톤에 이르는 유물들을 통째로 들어올려 가져왔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신라 중장기병들이 사용하던 찰갑으로, 훗날 발견된 또 하나의 찰갑 풀세트인 김유신 찰갑과 함께 실물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구려, 백제, 가야 개마무사들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