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회

 


'''시호'''
문헌왕(文獻王)
''''''
고(高)
''''''
종회(從誨)
''''''
준성(遵聖)
'''생몰년도'''
891년 ~ 948년
'''재위기간'''
929년 ~ 948년
1. 개요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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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대십국시대 남평의 제2대 군주. 자는 준성(遵聖).

2. 상세


남평의 초대 군주였던 고계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계흥이 죽자, 고종회는 아버지의 형남 절도사 지위를 이었으며 후당을 섬겨 남평왕으로 책봉되었다. 그 후 주변의 오나라, 민나라, 남한, 후촉에 신하를 자처하며 남평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부심하였다.
고종회의 칭신은 남평의 근거지인 형주와 관련이 있었는데, 형주는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그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강조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평은 형주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전략적 완충지가 되었고, 조공을 바치는 국가들이 형남의 길을 빌렸다.
고종회는 형주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남평의 평화를 이루어내고, 교역의 중계지로 남평을 번영시키다가 948년에 사망하였으며 문헌왕(文獻王)으로 추시되고 상서령으로 추증되었다. 남평 절도사의 지위는 3남인 고보융이 이어나갔다.
고종회는 고보융의 아우이자 자신의 아들인 고보욱을 과보호해서 고보욱이 결국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자라나게 했는데 형남의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탄식했고, 이것이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