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계흥
1. 개요
형남(荊南)의 초대 국왕. 시호는 무신왕(武信王). 자는 이손(貽孫).
2. 생애
907년, 주전충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後梁)을 건국하자, 고계흥은 주전충에 의해서 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가 되었다. 절도사에 부임한 고계흥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형주 땅에서 부흥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 후에 주전충이 사망하자 형주(荊州)[1] , 귀주(歸州), 협주(峽州)의 3개의 주를 차지하고 독립하여 남평을 건국하였다.
그 후에 후량이 후당에게 멸망당하자, 고계흥은 후당에 사신을 보내어 신하를 자청하였고, 925년에 후당으로부터 남평왕(南平王)에 봉해졌다. 그러나 후당이 전촉을 공격하려 할 당시 고계흥은 자신이 촉 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후당의 남진은 그의 구상을 막아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후당과 모든 외교 관계를 끊고서는 동쪽의 대국인 오나라의 신하를 자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