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계흥

 


'''시호'''
무신왕(武信王)
''''''
고(高)
''''''
계흥(季興)
''''''
이손(貽孫)
'''생몰년도'''
858년 ~ 928년
'''재위기간'''
907년 ~ 928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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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형남(荊南)의 초대 국왕. 시호는 무신왕(武信王). 자는 이손(貽孫).

2. 생애


907년, 주전충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後梁)을 건국하자, 고계흥은 주전충에 의해서 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가 되었다. 절도사에 부임한 고계흥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형주 땅에서 부흥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 후에 주전충이 사망하자 형주(荊州)[1], 귀주(歸州), 협주(峽州)의 3개의 주를 차지하고 독립하여 남평을 건국하였다.
그 후에 후량이 후당에게 멸망당하자, 고계흥은 후당에 사신을 보내어 신하를 자청하였고, 925년에 후당으로부터 남평왕(南平王)에 봉해졌다. 그러나 후당이 전촉을 공격하려 할 당시 고계흥은 자신이 촉 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후당의 남진은 그의 구상을 막아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후당과 모든 외교 관계를 끊고서는 동쪽의 대국인 오나라의 신하를 자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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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남의 역대 국왕'''
형남 건국

'''초대 무신왕 고계흥'''

2대 문헌왕 고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