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급진파
1. 개요
Radical Republicans
미국에서 1854년부터 1877년까지 존재했던 공화당의 계파. 율리시스 그랜트 18대 미국 대통령의 임기 동안 남부에서 군정을 주도하고 수정헌법 제13조, 제14조, 제15조, 1875년 시민권법을 통과시키는 등 현재의 미국 공화당과는 성향이 매우 다른 인도주의, 급진주의, 좌파 세력이었다.
2. 성향
19세기 당시 미국 남부에서 합법화된 노예제를 반대했으며, 투표권을 흑인 남성에게 주는 것을 주도하는 등 리버럴한 성향의 계파였다. 남북전쟁 종전 후 온건파를 대변하던 링컨이 사망한 후, 율리시스 그랜트 등을 내세워 재건 시대 동안 공화당을 휘어잡고 정책을 주도했다.
링컨 사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의 극한 대립으로도 유명하다. 존슨은 급진파가 장악한 의회의 인권법 등 여러 법안에 거부권 행사를 아끼지 않았고, 이에 급진파는 압도적인 의석수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찍어누르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을 반복하였다. 재건과 대남부 강경책을 주도한 에드윈 스탠튼 전쟁장관을 지원하고 존슨이 스탠튼을 해임하려 하자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 일어날뻔한 사건이었으나, 상원의 탄핵 심판 과정 중 일부 온건 공화당 의원이 반대로 돌아서면서 무산되었다.
3. 평가
이른바 재건 시대(Reconstruction Era) 동안 미국을 재건하며 좋은 정책을 시도했고 다수는 통과도 시켰으나, 그랜트 대통령 시기 재건 관련 정책을 위해 중용된 측근들 상당수의 부패 스캔들 때문에 인기가 낮아졌고[2] 지속되는 남부 군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피로감도 있어 1870년대 후반 가면 세력이 쇠퇴하게 된다.
결국 1877년 공화당 온건파로 대선에서 진땀승한 러더퍼드 B. 헤이스 제19대 대통령이 남부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남부 군정을 해제하면서 공화당 급진파도 같이 해체되었다. 다만 이때 연방군이 빠져나가면서 당시 남부 흑인들은 다시 암흑기를 맞게 된다.
이후 1980년대 즈음이 되어 본격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급진적이면서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세력이라고 폄하되곤 하였으나, 이후 에릭 포너(Eric Foner) 등 미국 역사학자들이 1960년대의 흑인 인권 운동이 재건 시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재건 시대와 공화당 급진파의 행보를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