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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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운암지부터 함지고등학교 뒷쪽에 이르는 함지산 동편 가지능선 전체가 구암동 고분군이다.
1. 개요
대구 서부의 함지산에 자리한 고총 고분군. 2018년에 사적 제544호로 지정됐다. 현 행정구역 상 대구광역시 북구 (구 칠곡군) 구암동에 해당한다.
함지산에는 '''팔거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구암동 고분군이 넓게 펼쳐져 있고, 함지산을 비롯해 인근 산들이 분지를 형성하여 하나의 집단의 단위 생활공간이 되고있다. 특히 '''팔거'''라는 명칭은 8세기 경덕왕의 행정구역 개편시에도 나타나는 지명으로, 이 일대가 과거에 팔거현의 치소 또는 중심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 조사 내용
그러한 중심의 구암동 고분군은 80년대에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구암동 56호분'''이 조사된 바 있으며 독특한 형태의 '''적석석곽묘'''[1] 를 채용한 고총 고분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에 구암동 고분군 자체의 조사는 없었으나 칠곡 분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많은 삼국시대~남북국시대 신라의 생활유적이 발굴되어 고분군과 함께 일종의 도시와 같은 경관을 형성했음을 확인하였다. 또 주변의 대구 북구 지역과 현재 칠곡군 일대의 고분 축조양상이 비슷하며 구암동 고분군이 가장 대형의 고분군이므로 칠곡과 대구 북구를 포함하는 지역의 중심 고분군임을 확인하였다.
이후 체계적인 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수백여기의 고분들이 함지산 척릉 마다마다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구암동 1호'''가 조사되었으며 5세기 후반 경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3기의 고분이 연접된 형태의 적석석곽묘로 확인되었다. 도굴을 당하긴 했지만 금제 귀걸이와 신라식의 은제대금구, 은제관모장식이 출토되어 주목된 바 있다. 유물이 많이 확인되었더라면 대구 남부 비산동, 대명동 및 달성 인근의 달성 고분군과의 관계도 적극적으로 조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2]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5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구암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신라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한 지방이 상정되며 동일한 문화적 양상이 나타나는 칠곡군과 대구 북서부 권역이 그 범위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세장방형[3] 의 석곽에 11자의 형태로 나란히 배치되는 양상은 구암동 및 인근의 고분군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따라서 5세기 이후의 신라의 성장과정, 특히 대가야를 견제하고자했던 신라의 정책 상, 지금의 대구 일대의 지역정치체들에 간접지배라는 방식으로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다고 보는 자료가 된다. 구암동 1호에서 나타나는 신라계 금공품이 그 증거인 셈.
3. 여담
2015년부터 심각한 훼손 상태로 인해서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 되어왔다. 이 이후 지자체에서 구암동 고분군을 비롯한 팔거산성이 위치한 함지산 일대의 조사 및 정비 사업을 진행하였고 나아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이후 발굴조사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사적 지정 및 관련 정비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2017년에는 역사문화 특구로 설정되었다.
특히 구암동 고분군의 사적 정비와 관련해서는 지자체의 관심이 어마어마하다.. 아무래도 주거구역이 아닌 산지에 있다보니 서울의 모 성곽이랑은 대접이 다르다. 정비 계획 입안 당시에는 구암동 동네방네 사업 추진을 지지한다는 플랜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정치권에서도 구암동 사적관련 대목은 주된 공약이 되곤 한다.. 행정지원, 주민동의, 역사·고고학적 내용 등 사적 정비사업의 삼위일체#s-3인 셈.
결국 위의 삼위일체 덕분에 착수 시점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일 내인 2018년 8월 7일 사적 제 544호로 등록되었다.
2019년 9월 부로 간단한 공사를 거쳐 칠곡운암역-운암지 구간의 인도 등에 구암동 고분군을 홍보하는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다.
4. 바깥고리
5. 사적 제544호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팔거평야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대구 북구의 함지산 서쪽 능선에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고분군이 분포하는 능선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경사가 심한 편으로 360기의 봉분이 있다. 구릉의 능선 위에는 대형분이 있는데 총 3개 능선에 지름 15m~25m의 무덤 34기, 25m 이상의 대형 무덤 7기를 포함하고 있다. 경사면에는 나머지 소형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75년(56호분)과 2015년(1호분) 두 차례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이때 2기의 고분에서 구덩식 돌덧널(수혈식 석곽) 위에 봉분을 돌로 쌓은 독특한 축조양식을 확인하였다. 2015년 발굴한 1호분은 여러 매장주체부가 축조되는 연접분 방식을 보여주는데 1-1호분의 북동쪽에 1-2호분이, 1-1호분의 남서쪽에 1-3호분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이어서 쌓여있으며 그 사이는 돌을 쌓아 연결하였다. 매장주체부는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을 11자 형태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대구 구암동 고분은 5~6세기 팔거평야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신라 지역 세력의 수장층 무덤으로, 봉분을 돌 등으로 채운 방식‧연접분‧주부곽식 구조 등 신라 고분의 특징을 보이면서도 다른 신라‧가야 고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돌무지돌덧널무덤(적석석곽)의 축조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한반도 고대사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