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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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권태규(權泰圭)
본관
안동 권씨[2]
생몰
1910년 4월 22일 ~ 1957년 4월 7일[3]
출생지
경상북도 봉화군 와단면 한수리
(현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4][5]
사망지
경상북도 봉화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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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권재호는 권태규의 증조부 권재원(權載瑗)의 사촌 동생으로, 권태규에게는 재종증조부가 된다.

2. 생애


권태규는 1910년 4월 22일 경상북도 봉화군 와단면 한수리(현 춘양면 의양리)의 양반가에서 아버지 권중구(權重九)와 어머니 청주 정씨 정약흠(鄭若欽)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정미업에 종사하였다.[6]
그는 1935년 경기도 경성부에서 안승락의 공산주의자 그룹 활동에 관여하고, 동년 9월 이재유의 공산주의 운동과 연관되어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1936년 2월 경부터 김희성(金熙星)의 공산주의자 그룹에 참여하여 연락 및 동지 획득을 위한 활동을 하다 같은 해 12월 경기도경찰부에 검거되었으며, 1937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미결수로 구류를 언도받았다.
그러다가 1938년 5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의 예심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소 처분을 받았고#, 이틀 후인 5월 23일 출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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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3월 16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촬영된 사진.
이후 봉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4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권태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37년 5월 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복야공파 침(斟)계 33세 '''태(泰)''' 춘(春) 용(龍) 정(正) 항렬.[3] 안동 권씨 대동세보에는 4월 22일이 기일로 기재되어 있다.[4]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이라고도 한다.1937년 5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5]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상경·권재호도 이 마을 출신이다.[6] 당시 정미소 사장이라면 동네 최고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유한 축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