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1. 개요
봄나들이를 작곡한 음악가다.[1] 본래 전공은 성악과 테너 분야지만 현재로는 작곡가로 알려져있다. 이는 성악이 녹음이 되어있지 않거나 녹음된 음반이 현존하지 않아 작곡가로 알려진 것.'''"한 편의 노래가 한 민족을 흥하게 할 수도 있고, 한 민족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일제시절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2. 삶
3. 입에서 불이나오는 성악가
일본 명치청년회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독창회를 열게된다. 이 당시 일본인 비평가 기무라 쇼지는 "동경 음악계에 혼란을 줄 무명의 성악가가 독창회를 열려고 하고있다."라며 비평을 가한다. 명치청년회관에서 1부를 마치고 쉬고 있는 권태호 선생님에게 한 사람이 접근하는데 이 사람은 기무라 쇼지. "자네 욕을 쓴게 나야, 내가 기무라 쇼지일세. 2부 공연까지 힘내게. 2부까지 내가 보고 가겠네"라고 한다. 이후 돈다발이 든 화환을 받는 등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 권태호 선생님은 "입에서 불이나오는 성악가"로 알려지는데, 정확히 왜 이렇게 불려지는지는 미스테리.
하지만, 만주에서 독창회 할 때 입을 크게 노래부르다 모기를 삼켜가며 노래를 한 것을 보아, 입을 크게 벌리고 큰 목소리가 우렁차게 나오자 입에서 불이 나오는 성악가로 알려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4. 대구광역시 향촌동 이야기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백조다방에서 늦게 까지 술을 먹다가 통금시간에 걸린 권태호 선생님이 경찰과 맞딱뜨린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경찰이 "누구냐!"하고 물어보자 갑자기 네 발로 기어가는 시늉을 하고선 "나는 개다!"라고 하거나, 술을 먹고 이불에 누워있는 줄 알았는데 미나리 밭이었다거나 만취한 상태에서 하수구에 빠졌다가 나왔는데 경찰과 또 맞딱뜨려 줄에 널리는 시늉하고서는 "나는 빨래다."라고 했다.
능금노래가 대구시에서 공식적으로 채택 된 이후 마땅한 보상이 없자 대구시 내무국장을 찾아가 "내가 능금노래를 만들었고 나는 지금 추위에 떨고 있다. 너네가 나에게 능금이라도 주었느냐? 대체 나한테 무얼 해주었느냐?"하고 따졌고 이에 놀란 대구시 내무극장은 연탄 한 소쿠리를 챙겨주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은다방에서 메기의 추억을 자주불렀고 술에 좀 취하면 항구의 노래를 음란하게 바꾸어 불렀다. 그래서 사람들을 웃기게 만들었다는 일례도 있고, 유치환선생과 사돈 관계가 되었을 때 "둘 중 하나는 속았다"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그의 호, 소천은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보면 웃음이 샘처럼 나온다하여 붙여주었다고 한다.
5. 작곡한 노래
6. 함께보기
소천 권태호 음악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