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부 와인

 


1. 개요
2. 상세
3. 역사
4. 특징
4.1. 높은 당도
4.2. 귀부화의 드묾
4.3. 수확의 어려움
4.4. 적은 생산량
5. 생산지 및 종류
5.2. 독일의 트로켄베어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5.3. 헝가리토카이(Tokaji)
6. 기타


1. 개요


귀부(貴腐)는 글자 그대로 '고귀한 썩음'으로, 영어의 noble rot를 한자어로 쓴 것이다. 유명한 디저트 와인 생산법의 하나이며, 사실상 제일 오래된 디저트 와인 생산법이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최고가 와인중 하나인 샤또 디켐(Château d'Yquem)이 이 귀부 방식으로 생산된다. 독일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와 헝가리의 토카이 그리고 프랑스의 소테른이 3대 귀부와인으로 손꼽힌다.

2. 상세


와인을 만드는데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 귀부균이라고도 함)라고 하는 회색 곰팡이가 중심 역할을 한다. 이 곰팡이가 포도에 피게 되면 포도알 껍질의 왁스질을 파괴하고 미세한 구멍을 낸다. 더운 낮동안 이 구멍으로 수분이 증발하여 포도알 내부의 과즙이 농축된다. 귀부균은 당분과 유기산을 일부 소모하지만, 그 이상으로 수분이 증발하므로 결과적으로 과즙의 성분은 평소의 몇 배로 농축되는 것이다.
이렇게 반건포도가 된 포도알을 수확하여 압착, 농축 과즙을 뽑아내 와인으로 양조하면 꿀처럼 달콤한 단 맛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한 귀부균에 의해 과즙 구성물질 조성에 변화가 생겨 일반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복합적인 풍미를 가지고 있다. 귀부 와인의 향은 망고, 파인애플, 리치 등의 열대 과일향, , 버터스카치향으로 흔히 묘사된다.
수분이 증발해 쭈글쭈글하게 말라버린, 곰팡이가 핀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신다는걸 알면 꺼림직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귀부와인을 마셔본다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3. 역사


최초로 귀부 와인이 만들어진 곳은 헝가리지만 본격적으로 귀부 와인이 생산된 곳은 독일이다. 중세 독일에서는 주교의 허락이 있어야만 와인용 포도의 수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독일 라인가우(Rheingau)지역에 있는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Schloss Johannisberg)라는 와이너리에서 포도 수확을 허락받기 위해 주교에게 전령을 보냈는데 중간에 사정이 생겨 무려 3주 후에야 돌아왔다고 한다. 수확시기가 한참이나 지난 포도 알맹이들은 이미 말라비틀어지고 곰팡이로 잔뜩 뒤덮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말라비틀어진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의외로 그 와인이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와인을 독일어로 슈팻레제(Spätlese)라 불렀는데, 이는 '늦수확'(Late harvest)이라는 뜻이다.

4. 특징



4.1. 높은 당도


디저트 와인 카테고리기 때문에 당도가 높아 마시기 쉽다고는 하지만 귀부 와인에도 당도의 레벨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그랑 크뤼급의 소테르느는 잔류 당분(residual sugar) 함량이 120~160g/L 정도지만, TBA로 가면 240g/L를 넘는 것이 즐비하고 토카이 에센시아는 450g/L를 넘는다.
이런 종류의 스위트 와인은 식후 디저트로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샤또 디켐의 경우 자신들의 와인이 후식정도로만 소비된다는 얘기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저명한 와인평론가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메인 디쉬에 샤토 디켐을 내놓고 식후에 샤토 라피트 로쉴드를 내놓았다는 일화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귀부 와인이라고 하면 보통 아래의 3가지를 말한다.
물론 이 세 가지만이 귀부 와인인것은 아니고, 프랑스의 다른 지방이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여기서도 TBA라 부른다.), 체코, 미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지지만 오랜 역사와 명성을 쌓은 곳은 아직 아래의 세가지 정도이다.

4.2. 귀부화의 드묾


귀부화에 필요한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가 특정한 기후 조건이 아니면 대규모로 포도밭을 습격하는 일이 없어서다. 대규모로 발생하더라도 적합한 기후가 아니면 포도가 그대로 썩어버리고, 또 특정한 포도 품종이 아니면 제대로 번지지도 않는다.
귀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후 조건은 밤과 새벽에는 안개가 끼며 습기가 높아 곰팡이의 성장이 촉진되는 장소다. 하지만 계속 습기가 차 있으면 포도는 그대로 썩기만 할 뿐이기 때문에 오후에는 산산한 바람도 불고, 태양을 받아 포도가 마르면서 수분이 증발하고, 또 곰팡이의 성장도 억제해줘야 한다.
곰팡이에 습격받은 포도송이도 곰팡이가 포도 전체에 번지려면 포도송이들이 가깝게 밀집되어있고, 껍질이 얇은 품종이 좋기 때문에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세미용(Semillon)같은 품종들이 사용된다. 이런 제한 때문에 귀부 와인 생산에 맞는 지역을 찾는건 무지 힘들어서 새로운 생산지를 개척하는 건 많이 힘들다. 그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실험관 귀부 와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1]

4.3. 수확의 어려움


농축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강한 포도는 피하고, 대신 곰팡이가 피고, 쭈글쭈글하게 말라버린 포도알만을 골라내서 수확해야만 한다. 기계로 수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일히 확인해가면 완전 수동으로 수확해야 하는데, 이것도 한 번에 끝내는것이 아니라 귀부균의 진행 상황에 맞춰 몇 번에 걸쳐서 제대로 곰팡이가 낀 포도만을 수확해야 한다. 그러니 인건비가 많이 들어간다.
웬만한 고급 와인이라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인력으로 수동 수확하는게 당연시되고 있지만 귀부 와인의 경우는 그것보다 몇 배나 더 수고가 든다. 일반 와인은 상당한 고급 와인이라도 수확은 1~2회 정도로 끝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귀부 와인의 최고봉인 샤토 디켐같은 곳은 보통 6~7번 정도에 걸쳐 수확을 진행한다. 여기에 투입되는 노동력은 당연히 와인의 원가에도 반영된다.
물론 최근에는 이미지 인식 머신 러닝과 로봇 기술을 이용하면 과실의 상태를 개별적으로 분류한 후 작은 알갱이를 정밀하게 수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건비로 인해 낮아질 수 없었던 생산 비용을 향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4. 적은 생산량


까다로운 기후적 조건으로 인해 넓은 재배지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단위 면적당 소출(yield)도 적다. 귀부화가 잘 진행된 포도알만 골라 만드므로 양이 줄어들고, 거기에 수분이 증발되어 건조된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또다시 양이 줄어든다. 단위 면적당 소출은 그랑 크뤼급 와인들이 1 헥타아르당 35~45헥토리터 정도지만 귀부 와인은 얼추 8~16헥토리터 정도 밖에 안된다. 샤토 디켐은 '포도 나무 한 그루에서 한 잔의 와인이 나온다'라고 말할 정도다.

5. 생산지 및 종류



5.1. 프랑스소테른/바르삭(Sauternes/Barsac)


[image]
대표적인 소테른의 귀부와인인 샤토 디켐(Château d'Yquem)[2]
세미용(Sémillon)품종으로 생산하며 포도를 반건조시키는 것 뿐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한알한알 선별하기 때문에 품질이 매우 좋을 수 밖에 없다. 작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되는 해에는 출하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3]
프랑스 내에서의 귀부와인 생산지를 보면, 우선 소테른(Sauternes), 바르삭(Barsac) 지역이 가장 유명하다. 이 두 지역의 바로 강 건너편에 위치한 생트-크르와-뒤-몽(Sainte-Croix-du-Mont), 루피악(Loupiac), 카디약(Cadillac) 지구에서도 유사한 기후적 특징으로 인해 귀부 와인을 생산한다. 동북부의 독일 국경지역인 알자스(Alsace)지방에서는 리슬링(Riesling),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등 독일계통 품종과 피노 그리(Pinot Gris) 품종으로 귀부와인을 만들며, 르와르(Loire)지방의 본조(Bonnezeaux), 코토 뒤 레용(Coteaux du Layon), 코토 드 로방스(Coteaux de l'Aubance) 지구에서는 슈냉 블랑(Chenin Blanc)품종으로 귀부와인을 생산한다. 알자스와 르와르 지방의 귀부 와인은 셀렉시옹 드 그랑 노블(Selection de Grain Noble)[4]이라 하여 귀부 와인을 만든다. 남쪽에 있는 몽바지악(Montbazillac) 지구 등에서도 귀부와인을 만들고 있다.

5.2. 독일의 트로켄베어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약어로 TBA라고 한다. trocken은 dry, beeren은 berry, auslese는 pick의 뜻이다. 즉 영어로는 selected harvest of dried berry, 귀부화에 의해 마른 포도알을 솎아내어 수확했다는 뜻이다. 다른 두 지역은 귀부 발생 지역이 강을 끼어서 귀부 발생에 이상적인 특정 지역으로 집중되어 있는반면, 독일의 귀부 발생지역은 독일 포도밭의 특성때문에 해마다 기후에 따라 생길수도, 안 생길수도 있다. 따라서 독일의 귀부 와인은 타 지역에 비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크며, 대부분의 양조자들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 보단 거의 취미생활의 일환, 본인과 양조장의 명성을 위해 만드는것에 가깝다.

5.3. 헝가리토카이(Tokaji)


세계에서 당도가 제일 높은 와인인 토카이 에센시아(Essencia)[5]는 이미 와인이 아니라 고농축 포도과즙 알코올시럽에 가깝다. 에센시아는 토카이의 여러 등급중에서도 최고등급의 것인데, 보통 450g/L이상, 특별히 좋았던 빈티지의 특수한 제품은 800g/L 이상의 당도를 내는 것도 있다. 심지어 900g/L에 육박하는 것도 존재한다. 마냥 농담이 아닌 것이 이렇게 당도가 높으면 진짜 스푼으로 떠먹기도 한다.
에센시아는 너무나도 당도가 높아 효모가 활동하기 어려워서 발효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지더라도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에센시아는 유리 발효조에서 발효시키는데, 일반 와인의 알콜 발효는 몇 주면 끝는 것에 반해 5~6년을 발효시켜도 알콜 도수는 불과 2~3%밖에 되지 않는다. 에센시아는 당도뿐 아니라 산도 또한 어마어마해서, 타르타르산(tartaric acid) 함량도 신 맛 드라이 화이트 와인 3~4배를 넘는15~20g/L에 이른다.

6. 기타


메인 디쉬로 어울릴 요리로는 거위 지방간 요리인 푸와그라가 귀부 와인과 찰떡 궁합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귀부 와인에도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다. 소테른은 알콜이 일반 와인과 마찬가지 수준(12~14%)으로 높고, 그럭저럭 많은 당분(120~150g/L)에 산도는 일반 와인에 비해 약간 높다 (4~6g/L) 이런 조건이 푸와그라와의 매칭에 최적 조건이다. TBA는 알콜이 낮고 (6~7%), 당도는 매우 높으며(200g/L 이상), 산도가 높다(8~9g/L). 이런 조건은 푸와그라와 그리 잘 맞지 않는다.
푸와그라와 마실 것이라면 프랑스산 소테른이나 그 인근 지방의 귀부 와인을 고르거나, 토카이 5~6푸토뇨쉬 정도의 일반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토카이 6푸토뇨쉬 중 1류 양조장의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 단일 포도원)제품은 상위 등급(아쑤 에센시아)의 기준을 넘는 당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많아 푸와그라와의 매칭에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으며 이런 고급 토카이는 요리와 무리하게 매칭하기 보다는 디저트로서 단독으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스위트 와인의 서빙은 5~6도 정도로 차게하는 것이 일반론이지만, 이것도 귀부 와인 종류에 따라 다르다. 산도가 낮고 알콜이 높은 스타일은 높은 온도에서, 산도가 높고 알콜이 낮은 스타일은 낮은 온도에서 서빙한다. 소테른은 너무 차게 하면 향이 잘 살지 않고 특유의 매끄러운 질감이 무뎌진다. 고급 소테른은 10~12도 정도로 서빙하는 것이 좋다. 반면 산도와 당도가 모두 높지만 알콜은 낮은 고급 TBA는 높은 온도에서 서빙하면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에 7~8도 정도로 서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어지간한 것들은 대부분 연한 꿀을 마시는 듯한 단 맛을 자랑하는데, 토카이 정도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단 맛이 인공적이지 않은 단 맛이라서 와인을 전혀 마셔보지 않은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특히나 처음 마셔보는 여성들 10명 중에 9명은 좋아할만한 맛이다.

[1] 베린져(Beringer)에서 이미 수확된 포도송이들에 Botrytis Cinerea를 뿌려서 만든 나이팅게일이란 귀부 와인을 선보인적이 있다.[2] 편의상 줄여부를때 '디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샤토 디켐은 "이켐의 샤토"라는 뜻이므로 샤토를 떼고 부른다면 '이켐'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3] 이켐이 오프 빈티지에 드라이 와인인 이그렉(Y)을 생산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그렉은 원래 수확기 끝무렵 아직 귀부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포도를 모아서 만들었던 것으로 1959년부터 부정기적으로 생산되었으나, 2004년부터는 매년 1만병 정도가 꾸준히 생산되며 그 중에는 그레이트 빈티지인 2005, 2009년 등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오프 빈티지인 2012도 있으므로 딱히 굿빈티지 오프빈티지를 가려서 생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4] 이 프랑스를 영어로 옮기면 selection of noble grain. 즉 귀부화(noble)된 포도알(grain)만을 골라내어(select) 만들었다는 뜻이다. 말이 길어서 SGN이라는 약어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5] 에센시아는 옛 유럽 왕들이 죽기 전에 마셔서 심신의 회복을 기대했다는 얘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에센시아의 높은 보존성(매우 느린 발효에 의해 변동이 없어 보이는 현상) 때문에 불로장수의 이미지가 생겨서 에센시아만 마시면서 살면 불로불사가 된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가격 때문에 지금까지 실행해본 사람은 없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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