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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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이전.
수술 이후[1]
1. 인물 소개
2. 성장 과정
2.1.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다
2.2. 남성에서 여성으로
3. 말년
4. 기타


1. 인물 소개


글로리아 헤밍웨이(Gloria Hemingway, 1931. 11. 12 ~ 2001. 10. 1)는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셋째 아들이'''었'''다. 본래 이름은 그레고리 헤밍웨이(Gregory Hemingway). 이 이름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 63세 때인 1995년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트랜스여성이 되어 이름을 글로리아로 고치고 딸이 되었다. 이후 2001년에 외설 혐의로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그 해 10월 1일에 고혈압심장병으로 사망했다.

2. 성장 과정


그레고리는 1931년 11월 12일에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와 그의 둘째 부인인 플린 파이퍼[2] 사이에서 헤밍웨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성장과정은 매우 불우했다. 그가 불과 8살이었던 1940년에 아버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플린 파이퍼와 이혼했다. 그런데 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매우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가장이었다. 이혼을 한 후 헤어진 자녀와 전처에 대한 어떠한 보호 장치도 마련해 주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처자 유기죄로 인해 양육권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이와 같은 과정은 어린 그레고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또 그의 어머니 플린 파이퍼는 그레고리가 20세였던 1951년에 56세의 나이로 일찍 숨을 거두게 되는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플린 파이퍼의 죽음이 그레고리 탓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레고리는 아버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진단서까지 떼어와야 했을 정도였다.
결코 행복한 부자 관계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레고리는 아버지 어니스트를 매우 존경했고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마초적인 스포츠를 즐기는 아버지를 따라 사격 연습도 해보고 또 아버지처럼 위대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열심히 습작도 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이런 그레고리의 노력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특히 그 습작 부분을 예로 들면 하루는 그레고리가 열심히 며칠 간 써낸 습작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평가를 기대했는데 돌아온 평가는 "음, 잘 썼긴 했는데 이 문장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구나!"하면서 후한 평을 주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그레고리는 "아버지는 늘 제가 무슨 작품을 써오기만 하면 다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하시네요!"하면서 반발했다. 그레고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는 그레고리에게 심리적 부담과 상처만 남겨주었다. 그리고 그레고리가 30세가 될 무렵인 1961년에 그레고리의 영웅이었던 아버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엽총으로 자살하면서 62세의 나이에 사망해버린다.

2.1.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다


이후 그레고리의 인생은 놀라울 정도로 아버지 어니스트와 흡사했다. 그레고리는 의사로 성장하여 한때는 개업의로 크게 성공을 거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 왔듯이 그 역시도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 왔다. 거기다 그레고리는 정신분열증도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 정신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레고리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끝내 이 마약중독으로 인해 의사 면허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4번 결혼하여 3번 이혼했듯이 그레고리 또한 4번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4명의 아내와 모두 이혼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준 적 없는 아버지와 거의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2.2. 남성에서 여성으로


아버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매우 마초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사실 그가 마초적인 성격이 된 이유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어니스트의 어머니 즉, 그레고리의 할머니는 종종 자신의 아들인 어니스트에게 여장을 시켰는데[3] 그에 더불어 여장한 채로 지인들에게 인사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나 어니스트는 자신의 어머니와 평생 사이가 나빴고, 그에 대한 반발로 마초적인 세계에 뛰어들어 "터프한 남성성"을 부각시키고자 했으며 남자다우며 똑똑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평생의 롤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말년에 어니스트는 늙고 약해진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작품 활동까지 지지부진하자 결국 엽총으로 자살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레고리 또한 4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에도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또 성적 모호함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위장된 남성성을 걷어버리기로 결정했다. 60이 넘은 나이에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95년 그는 트랜스여성이 되었고 이름도 그레고리라는 남자 이름에서 글로리아라는 여자 이름으로 바꿨다.

3. 말년


그러나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도 글로리아의 우울증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병 때문에 글로리아는 갈수록 폐인이 되어갔고 2001년 9월 마이애미의 어느 거리에서 옷을 홀딱 다 벗은 나체 상태로 길거리를 배회하다 외설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글로리아 헤밍웨이'''라고 밝히며 자신이 그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어니스트에게 '''글로리아'''라는 이름의 자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처음에는 이 할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남의 신분을 사칭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후에 본래 이 할머니가 어니스트의 셋째 아들인 그레고리 헤밍웨이였음이 밝혀졌다. 그렇게 글로리아 헤밍웨이는 여자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2001년 10월 1일에 고혈압심장병으로 69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4. 기타


KBS 스펀지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의 이야기에 대해 방영하였다.

[1] 성전환 수술의 일환으로 주입받은 여성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머리숱도 더 자라났다.[2]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총 4번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레고리의 어머니인 플린 파이퍼와는 1927년에 결혼해 1940년에 이혼했다. 참고로 그 4명의 아내 중에서 첫째, 둘째 아내는 헤밍웨이보다 각각 8살, 4살 연상이었고 셋째, 넷째 아내는 모두 헤밍웨이보다 9살 연하였다. [3] 물론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fy)은 양육이나 여타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어니스트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경험이었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