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라이베리아 관계
1. 개요
기니와 라이베리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기니의 독립 이후, 수교했고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기니 지역과 라이베리아 지역은 토착민들을 중심으로 문화교류가 이뤄졌다. 기니 지역의 소왕국들은 라이베리아 지역의 토착민들과 교류가 활발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부터 서아프리카 연안을 포르투갈인들이 항해 및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라이베리아 지역과 기니 지역이 잠시 포르투갈의 지배와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니 지역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라이베리아 지역은 19세기에 미국에서 이주한 흑인들이 정착하면서 지금의 라이베리아가 되었다. 라이베리아는 미국에서 건너온 흑인들이 건국했지만, 라이베리아 지역에 정착했던 현지 주민들과는 갈등이 생겼다.
2.2. 20세기
기니 지역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베리아와는 수교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프랑스령 지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니는 1960년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프랑스를 견제하는 정책을 펼치자 프랑스측이 인프라 철수를 하면서 양국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기니와 라이베리아는 독립 이후에 수교했고 기니는 주변국과 협력을 했다.
2.3. 21세기
양국은 현재 아프리카 연합의 회원국들이다. 양국간에는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기니는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라이베리아는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기니와 경제적인 교류가 있기 때문에 라이베리아는 국경에서 프랑스어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기니와 라이베리아는 2013년에 에볼라가 발생하면서 큰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1월말에 기니에서 에볼라가 발생하자 라이베리아측은 에볼라 유행 가능성에 대비해 기니 국경 지역에서 검사와 추적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