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오도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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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lermo O'Donnell (1936년 2월 24일 ~ 2011년 11월 29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학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정치학자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22세의 나이에 변호사가 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재단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아르헨티나의 내무부 정치국 부장관을 역임한다(1963년도).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교와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황 대학에서는 법학 교수로 활동했으며, 1968년도부터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예일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한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의 교수 임용 제안을 사양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저술 활동에 전념한다.이후에도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브라질이나 미국, 프랑스 등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교육과 저술 활동을 펼친다.이후 2009년에 다시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저술 활동을 하다 2년 뒤인 2011년 암으로 타계했다.
기예르모 오도넬은 교수 활동을 하면서 많은 교수 모임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국제정치학회(IPSA) 의장, 미국정치학회(APSA)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학문으로서의 정치와 실제 정치 사이에서의 다리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엔 개발프로그램(UNDP)에서 활동한 것이다.
Guillermo O'Donnell (1936년 2월 24일 ~ 2011년 11월 29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학자.
1. 소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정치학자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22세의 나이에 변호사가 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재단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아르헨티나의 내무부 정치국 부장관을 역임한다(1963년도).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교와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황 대학에서는 법학 교수로 활동했으며, 1968년도부터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예일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한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의 교수 임용 제안을 사양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저술 활동에 전념한다.이후에도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브라질이나 미국, 프랑스 등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교육과 저술 활동을 펼친다.이후 2009년에 다시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저술 활동을 하다 2년 뒤인 2011년 암으로 타계했다.
2. 저서
- 근대화와 관료제적 권위주의(Modernization and Bureaucratic-Authoritarianism ,1973) -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자본주의 강대국에의 경제적 종속성이 강해지며,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관료주의적 권위주의가 증가하는 것을 밝힌 논문이다. 이후에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치적 권위주의 연구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 권위주의의 지배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s from Authoritarian Rule: Tentative Conclusions about Uncertain Democracies, 1986) - 필립 슈미터(Philippe C. Schmitter)와 공동저술한 저서로, 비교정치학 연구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영향을 끼친 논문 중 하나다. 이 저서에서 오도넬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있어 여러 전략적인 선택지를 제안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학문적 업적 참고
3. 업적
3.1. 학문적 업적
- 관료주의적 권위주의 연구 - 기예르모 오도넬은 (정치학적인 의미에서의)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연구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라틴아메리카 정치학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테크노크라트(큰 권력을 행사하는 과학기술 or 경제 전문가)와 전문화된 군 조직에 의해 권위주의가 시작된 것[1] 을 설명하기 위하여 '관료주의적 권위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리고,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의 시작은 라틴아메리카에 도입된 산업화 모델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갈등의 결과라고 주장한다[2] . 이 연구는 이후 비교정치학과 라틴 아메리카 정치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 권위주의의 종말과 민주주의로의 이행 - 권위주의와 민주주의간의 투쟁에 있어 핵심적인 갈등 요소가 되는 몇몇 딜레마와, 이 딜레마에 반응하는 행위자(권력자, 민중 등..)들간의 전략적인 선택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이행되는지에 대해 비교정치학적으로 연구한 내용이다. 조금 더 상술하자면, 먼저 정치적 행위자를 4분면으로 나는다. 이 기준으로 나누면 강경한(hard-liner) 기득권(regime)층, 온건한(soft-liner)기득권층, 강경한 반기득권(opposition)층, 온건한 반기득권층 총 4가지 유형의 정치적 행위자가 분류된다. 그리고, 이 4가지 유형의 정치적 행위자가 '다중 체스게임(여러 사람이 동시에 수를 놓으면서, 게임 진행 도중에 규칙 자체가 바뀌기도 하는 체스 게임)'과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하는 일련의 의사결정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이행 형태가 결정된다. 민주주의로의 이행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경 기득권층과 강경 반기득권층의 무력 투쟁으로 촉발되어 독재자의 피로써 마무리 되는 민주주의 유혈 혁명[3] 부터, 온건 기득권층과 온건 반기득권층의 타협을 통해 직접선거를 통한 민주제로의 이양이 이루어지는 위임민주주의[4][5] 등등...
- 총평 - 오도넬의 연구는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의 발생 원인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의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오도넬의 연구는 한두세기 전에 이미 민주주의가 정립된 유럽보다는 아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하지 못한 제 3세계나, 불완전한 민주주의 형태를 가진 일부 국가(한국, 일본 등)의 정치적 변화 예측의 이론적 바탕이 되고 있다. 또한, 오도넬의 연구 방법론은 이후 비교정치학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2. 교수로서의 업적
기예르모 오도넬은 교수 활동을 하면서 많은 교수 모임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국제정치학회(IPSA) 의장, 미국정치학회(APSA)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학문으로서의 정치와 실제 정치 사이에서의 다리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엔 개발프로그램(UNDP)에서 활동한 것이다.
[1] 가까운 예로, 전두환의 신군부가 경제 정책의 의사결정을 경제학자인 김재익에게 일임한 예를 볼 수 있다.[2] 이는 급속도로 산업화를 진행한 한국에도 해당된다[3]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의 종말이 여기에 속한다[4] 대한민국의 6월 항쟁 이후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정으로의 이행이 여기에 속한다[5] 다만 오도넬은 이렇게 형성된 위임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보다는 질적 수준이 낮은 하위 형태의 민주주의로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