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4세
1. 개요
룩셈부르크의 대공.
2. 생애
아버지 아돌프가 독일 나사우 공국의 공작이던 시절에 태어났다. 하지만 나사우 공국이 1866년에 일어난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원했다가 프로이센 왕국의 눈 밖에 나 오스트리아가 패전한 이후 프로이센 왕국에게 흡수, 멸망 당하면서 12살 나이에 세자 자리에서 폐위당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에서 복무했다.
1884년, 네덜란드의 왕세자 겸 룩셈부르크의 대공세자였던 알렉산데르 왕세자가 사망하자 룩셈부르크 대공이자 네덜란드 국왕이던 빌럼 3세에겐 적자인 아들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고, 살리카법이 적용되는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딸인 빌헬미나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되자[1] 빌럼 3세의 37촌 조카[2] 인 자신의 아버지 아돌프 공이 어부지리로 추정상속인이 되자 1888년에 전역한다.
이후 1890년, 예상대로 자신의 아버지인 아돌프 대공이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승계하면서 38살에 대공세자가 된다. 이후 1893년 포르투갈 미겔 1세[3] 의 딸 마리아 아나와 결혼했는데 본래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은 개신교 신자로 기욤 본인도 개신교인이었으나, 새로 대공위를 승계한 룩셈부르크 국민들은 거의가 가톨릭 신자였기에 가톨릭 왕가에서 신부를 들이고 후계자도 가톨릭으로 키우기로 하였던 것인데... 문제는 이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 6명이 모두 딸이었다.
1905년 아돌프 대공이 서거하자, 그를 이어 대공이 되었다. 다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 구성원들은 사망하거나 귀천상혼한 인원들밖에 안 남게 되고, 아들을 새로 낳을 희망도 없자, 귀천상혼으로 파생한 가문인 메렌부르크 백작가(Count of Merenberg)[4] 대신에 1907년에 자신의 망국의 군주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룩셈부르크 대공으로 만들어 준 살리카법을 무시하고 맏딸 마리아델라이드를 후계자로 정했다.
1908년부터 병이 악화되었으며, 1912년 서거하여 맏딸 마리아델라이드가 대공위를 이었다.
3. 여담
기욤 4세는 현재까지의 룩셈부르크 대공들 중, 재위중에 사망한 마지막 대공이며, 유일한 안경 착용자다.
그리고 역대 룩셈부르크 대공들 중 나무위키에 마지막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