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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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의 여대공.
'''Charlotte Adelgonde Élise/Elisabeth Marie Wilhelmine vu Lëtzebuerg'''
1896.1.23.~1985.7.9. (재위 1919.1.14.~1964.11.12.)
기욤 4세 대공과 포르투갈 출신 마리 안 대공비의 차녀로 태어났다.
본래 룩셈부르크는 살리카법을 취하고 있었으나, 기욤 4세 대공이 여섯 자매를 두었을 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1907년, 장녀 마리 아델라이드를 후계자로 정한다.
1912년 언니인 마리아델라이드 공주가 18살 나이로 대공위를 계승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 점령군에 친화적인 행보로 민심을 잃은 마리아델라이드가 퇴위를 강요받자, 1919년 1월에 자녀가 없는 언니를 대신해 대공이 되었다. 샤를로트는 언니와는 달리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으며, 1919년 9월 28일 공화국/군주국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77.8%의 지지를 받아 군주제의 기반을 다시 튼튼하게 만들었다.[1]
1919년 11월 결혼한 부르봉-파르마 공가(부르봉 왕조의 방계) 출신 펠릭스와의 사이에서 2남 4녀를 두었다. 1940년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포르투갈을 거쳐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였다가 1945년 귀국하였다.
1964년 11월 장남인 장 대공에게 양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