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
1. 개요
'''Semiotics'''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호의 기능, 본성, 법칙, 관계, 표현을 규명하고, 이를 활용한 의미의 생산과 해석, 공유, 소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으로 철학과 그 뿌리를 같이하나, 현대에 들어 논리 실증주의가 나타남과 함께 체계화되어 점차 다양한 분야로 발전해 가고 있다.
20세기 기호학은 유럽의 언어학자 소쉬르와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로부터 시작된다.두 사람은 서로 교류한 적이 없었으나 비슷한 시기에 기호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쉬르 기호학과 퍼스 기호학은 매우 다르다. 이후의 기호학자들은 두 이론을 토대로 접점을 찾으며 기호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기호학자로는 롤랑 바르트, 움베르토 에코 등이 있다.
2. 기호학의 역사와 발전
소쉬르 이전에 언어학은 역사적으로 발음과 문법이 언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기술한 역사주의 언어학이 주류언어학이었다. 소쉬르는 이런 역사주의 언어학에 반기를 들어 구조주의 언어학을 주창하였다. 그는 이런 구조주의 언어학의 원리를 이용하면 이 세상의 모든 기호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2.1. 소쉬르 언어 기호학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의 중심사상은 언어기호의 자의성과 선형성, 그리고 4가지 이항대립쌍 기표/기의,랑그/파롤, 공시성/통시성, 계열체/통합체이다. 소쉬르는 기호는 기의, 기표를 구성요소로 두고있다고 보았다.
기표는 기호의 물리적인 존재상태로써 감각기관[1] 을 자극하는 요소이다. 예를 들면 책에 쓰인 글씨는 종이에 묻은 특정한 배열상태를 보이는 잉크(물리적인 존재상태)로써 감각기관(눈)을 자극하는 요소를 갖고있다. 기의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정신적,추상적 개념이다. 책에 쓰인 글은 감각기관을 자극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어떤 개념, 심상, 생각 등을 불러일으킨다. 소쉬르에 의하면 '작곡'이라고 책에 쓰인 글씨를 보면 '하나의 음악에서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마음속의 개념이 떠오른다고 한다. 또 '피아노'라고 누군가가 말을 하면 '88개의 건반을 갖는 강약조절이 가능한 건반악기'라는 마음속의 개념이 떠오른다고 한다.[2]
랑그는 동일언어권 사람들이 공유하는 의식속에 존재하는 어법체계이다. 빠롤은 랑그를 기반으로 응용해 실제 발화하는 말들이다. 소쉬르는 빠롤은 발화되는 즉시 소멸하고,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언어학적 연구대상으로 빠롤이 아닌[3] 랑그를 취한다. 이론화가 가능한것은 랑그이기 때문이다. 자세한건 랑그와 파롤항목 참조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 기호'가 아닌 것을 파롤로 본다.[4] 그는 언어학의 연구대상(랑그)이 되려면 '기표', '기의'라는 추상적인 요소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언어학적 구조주의적 사유는 이런 식의 기표와 기의로의 전환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기호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사유이다.
통시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호)연구의 방법론이고[5] , 공시론은 현재를 기준으로 본 기호의 구조상태를 본 것이라 할 수있다. 소쉬르는 일반 언어학 강의를 통해 공시론적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통합체(syntagme)는 선택된 여러 다른 기호들의 조합이다. 문장, 악곡, 이야기는 통합체이다. 사실 '통합체'라는 개념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 화합물은 원자라는 기호들의 조합, 패션은 의복이라는 기호들의 조합, 문장은 단어라는 기호들의 조합, 단어는 음소라는 기호들의 조합,악곡은 음표와 쉼표들의 조합 등...[7] ]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통합체에는 '조합'의 문법이 있다. 물이 산소원자1개와 수소원자2개가 조합된 통합체인데는 화학적원리는 문법이 있다. 패션은 전통,유행등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문법이 있다. 문장은 문법이라는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문법이 있다.
계열체(paradigme) 특정 기호들이 어떤 공통성을 기준으로 범주별로 분류된 창고이다. 원자 계열체에는 H,He,Li,Be,O...등이 있다. 의복 계열체에는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붉은 악마 티셔츠,청바지 등이 있다. H2O를 원자의 계열체에서 선택하여 조합된 화합물 통합체로 본다면 O라는 원자대신에 같은 계열체 내 S를 바꿔 끼울 수 있다고 볼 수 있다[8]
흰티-청바지는 상의계열체와 하의계열체에서 각각 선택하여 조합한 패션통합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흰티를 청티라는 같은 상의계열체내에서 바꿔 끼워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청청패션이라는 금기시된 조합으로 관습적 문법에 맞지않다.
텍스트 밑에 있는 이항대립쌍은 공시적으로,계열체의 상태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이어령이 백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라는 문장을 보자.
이어령(발신자)/백남준(수신자)[9] 라는 이항대립쌍이 발견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에서는 바다/산, 건조/마모의 이항대립쌍이 발견된다. 물론 매 문장마다 이항대립쌍이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담론, 텍스트 단위로 가면 이항대립쌍이 발견될 수 밖에 없다. 또 대놓고 드러낸 이항대립쌍도 있지만 숨은 이항대립쌍도 있다. 사실 논리있는 글쓰기의 도구로 이용하는 분석, 분류, 비교, 대조,인과론적 서술은 공시적, 계열체적 상태의 이항대립쌍을 만드는 도구이다. 글쓰기는 물론이거니와 음악, 시에서도 이런식의 계열체적 공시적 이항대립쌍이 발견된다.
소나타형식의 음악에서 제시부의 음형,재현부의 음형등[10] 화성학에서는 tonic/dominant, subdominant/tonic 등의 이항대립쌍이 발견된다.
시에서의 이항대립쌍의 예는 이어령의 언어로 세운 집 참고. 언어로 세운 집
2.2. 퍼스 삼항성 기호학
소쉬르에게 있어서 기표와 기의외에것은 전부 파롤의 영역으로 취급해버린다. '해'라는 단어(기표)와 개념화된 해(기의)외에 것은 전부 파롤로 취급해버린다. 소쉬르에게 있어서 진짜 해는 중요하지않다. 해가 없어져 버려도 그의 기호학에 아무 문제가 없다. 개념화 된 해와 기표로써 해만 있다면... 그에게는 중요한것은 '해'라는 단어와 개념화된 해일뿐이다. 그러나 퍼스는 다르다. 그는 실제 해(대상)가 단어 '해'(표상체), 개념화된 해(해석작용)이 전부 밀접하게 관련있다고 본다. 그는 대상과 해석작용을 각각 3개씩 기호를 9개의 측면으로 나누고,그것들을 조합하여 10개의 기호로 분류한다.[11]
2.2.1. 대상의 3가지 측면
- 직접적 대상 (immedate object)
- 역동적 대상 (dynamical object)
- 최종적 대상 (final object)
2.2.2. 해석작용의 3가지 측면
- 직접적 해석작용 (immediate interpretant)
- 역동적 해석작용 (dynamical interpretant)
- 최종적 해석작용 (final interpretant)
2.2.3. 기호의 9가지 측면
- 속성기호(qualisign)
- 감각기호(sinsign)
- 규칙기호(legisign)
- 도상 (icon)
- 지표 (index)
- 상징 (symbol)
- 추정기호 (rheme)
- 지시기호 (dicisign)
- 논증기호 (arguement)
2.2.4. 기호의 10가지 분류
- 추정기호적 형상기호적 속성기호(rhematic iconic quaalisign)
- 추정기호적 형상기호적 감각기호(rhematic iconic sinsign)
- 추정기호적 지표적 감각기호(rhematic indexical sinsign)
- 지시기호적 지표적 감각기호(dicentic indexical sinsign)
- 추정기호적 형상기호적 규칙기호(rhematic iconic legisign)
- 추정기호적 지표적 규칙기호(rhematic indexical legisign)
- 지시기호적 지표적 규칙기호(dicrntic indexical legisign)
- 추정기호적 상징(rhemantic symbol)
- 지시기호적 상징(dicentic symbol)
- 논증기호(argument)
2.3. 야콥슨 커뮤니케이션 기호학
2.4. 옐름슬래우 형식 기호학
2.5. 그레마스 의미작용 기호학
2.6. 롤랑 바르트 비언어적 기호학
2.7. 움베르토 에코 현대 기호학
3. 한국의 기호학
1968년 사상계는 구조주의를 주제로 쓴 글을 싣는다. 이를 보고 자극을 받은 많은 학자들은 이후 단편적으로나마 구조주의(기호학)[12] 연구를 하였다.
1987년 이어령이 이화여대 내 기호학연구소라는 한국최초의 기호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94년 한국기호학회http://semiotic.cafe24.com/rb/?r=home[13] 가 설립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는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도흠 교수, 제주대학교 독문과 박여성 교수,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전 서울대학교 작곡과 서우석 교수,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백승국 교수, 건국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송치만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송효섭 교수,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김기국 교수 등이 있다.
1990년대 노엄 촘스키의 창조적이고 생성적인 앵글로색슨 언어학의 유행이 지나자, 소쉬르와 구조주의 언어학이 한국 기호학계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화용론적이고 해석적인 기호 접근법이 횡행했으나 구조주의 언어학 덕택에 기호학의 비교적 과학적인 요소들이 한국에 소개 되었다. 현재, 엄밀한 의미에서의 한국의 기호학은 프랑스의 그레마스 기호학을 거의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를 제외한 서구의 경우도 실은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김성도(고려대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그레마스 기호학이 알려졌으며 이론적 개발보다는 실제 활용에 치중하고 있다. 주로 광고, 영화, 드라마 등이 기호학의 활용영역에 속한다. 기호학의 이론적 기초와 보다 범용적인 접근을 하는 학자로는 박여성(제주대학교), 최용호(한국외국어대학교), 김영순(인하대학교)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언어로 된 텍스트에 치중하거나, 코딩과 해석이 비교적 어렵지 않은 이미지물(드라마, 제스처, 도시계획, 예술사진 등)에 기호학을 적용하고 있다.화쟁기호학은 한마디로 원효가 제창한 화쟁의 원리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처럼 팽팽히 맞서 있었던 형식주의 비평과 마르크시즘 비평을 종합한 이론이다. 이는 텍스트의 내적 구조를 분석하면서도 이를 사회와 문화, 이데올로기와 연관시켜 해석한다. 텍스트 속의 현실, 구체적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수용자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다른 텍스트와 서로 주고받는 영향관계를 살핀다. 주체와 구조를 끊임없는 진동의 과정에 놓고 의미를 찾고 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비평이론이다.
나는 이 이론으로 《삼국유사》를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이를 '반영상'과 '굴절상'으로 나눈다. 반영상은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한 부분이므로 역사서와 자료, 유물 등을 바탕으로 당시의 현실을 재구한다. 재구한 현실과 《삼국유사》 텍스트를 대비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푼다.
굴절상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한 후 무지개를 펼쳐 보이는 것처럼 신라의 현실이 신라인의 꿈과 무의식에 따라 굴절된 부분이다. 굴절상은 겉으로 의미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텍스트의 내적 구조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한 후 굴절되기 전의 빛, 역사적 현실의 씨앗을 찾는다.[14]
2000년대 초 한국 최초로 이미지 기호학을 소개하고 복잡한 자동차 로고, 일러스트레이션, 인터넷 상징, 이모티콘, 공간 같은 디자인 및 회화를 분석하고 연구한 신항식(전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영상기호학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광고분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15] 그러나 그는 강단을 일찍 떠나 언어와 이미지의 기호학적 구조가 어떤 경로를 통해 기독교의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전체주의적 독재에 도움을 주었는가 하는 역사학으로 건너갔다. 그는 원래부터 서양사 전공자였기 때문에 제 길을 걸어간 것으로 보인다.
3.1. 이도흠의 화쟁기호학
한국 자체적으로 철학, 방법, 비전을 가진 한국 기호학의 선구자라면 이도흠(한양대학교)의 화쟁기호학을 꼽을 수 있다.
'화쟁(아우라지)'이란 조화의 틀 속에서 정을 두었던 대상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한을 승화시켜 그 대상을 계속 자기의 범주 속에 간직하려는, 정이 한으로 변한 세계의 부조리에 대응하여 맺힌 것을 풀고 삶의 평형을 이루려는 집단적 양식이자 일(一)이 삼(三)으로, 하늘(神이나 一, 聖의 공간, 이상, 절대 진리)과 땅(음과 양으로 이원화한 세계, 俗의 공간, 현실, 상대 진리)을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로 아우르는 경지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정과 한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불일불이(不一不二) 관계였기 때문이다.[16]
이어령 교수의 삼항적 개념이란 실은 이도흠의 화쟁기호학과 다름 없다. 그러나 삼항적 기호학이라 해도 결국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삼항 혹은 사항의 구조(날 것 vs 익은 것vs 썩은 것 vs 훈제한 것)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요소이다. 물론 이도흠의 삼항은 한국 본연의 기호인식 체계인 반면 레비-스트로스는 작위적으로 여러 항을 뽑아 가능성(virtuality)을 제어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삼항의 기호체계는 한국 고유의 현실성(reality)을 가진 것이라 볼 수 있다.향가 <제망매가>를 실례로 들어보자. 누이가 살아 나라는 존재와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정의 상태이다. 그러나 누이가 갑자기 죽어 가장 강력한 타자인 죽음의 세계에 귀속되자 이는 정의 단절, 세계의 분열로 다가온다. 누이의 죽음으로도 누이에 대한 정을 끊을 수 없는 월명사에게 누이의 죽음과 이별은 한이 된다. 그러나 월명사는 이 한을 비극적이고 체념적이고 패배적인 한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이 한을 미타찰에서의 만남, 영원한 삶으로 승화시킨다. 미타찰을 통하여 누이의 이별로 인한 세계의 분열이 만남에 대한 기대로 승화하고 현실 속에서의 고통스럽고 유한한 무상(無常)의 삶이 영원한 삶으로 지향한다. 이별과 만남, 삶과 죽음이 화쟁을 이루는 것이다.[17]
우리는 중국과 달리 세계를 셋으로 나누어 보고 셋을 낳은 하나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증은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를 참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략하게 몇 가지만 제시하기로 한다.[18]
《삼국유사》 또한 마찬가지다. 설화의 주체가 지향하려는 세계를 방해하는 독룡이 인간과 나라와 불법을 지켜주는 호국룡이나 호법룡으로 변하듯 적대자와 조력자의 구분이 거의 없다. 서구의 설화처럼 적대자가 끝까지 주체의 대립자로 기능을 하지 않으며, 적대자와 조력자가 상생의 관계를 이룬다. 처음에 주체의 대상 지향을 방해하던 적대자들은 곧 주체의 여러 신이함에 설복되어 주체의 조력자로 변하여 주체의 행위에 동참한다. 삼재의 구조에서 인간이 하늘과 땅을 하나로 아우르듯, 주체는 적대자와 조력자를 하나로 아우르고 대업을 성취한다. 주체와 대상 또한 주체가 있어 대상은 의미를 지니고 대상이 의미를 지니기에 그 앞에 선 인물은 주체로 선다.[19]
3.2. 이어령의 기호해체학
이어령은 서양의 기호학을 들여와 그 만의 방식으로 응용을 한다. 그는 그 특유의 '사이'정신을 기호학에 녹여내 이항대립의 두 쌍과 다르면서도 미묘하게 비슷한 요소를 제3의 항으로 가져와서 삼항순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가위바위보 인문학), 주역을 가지고왔다. 그러나 이어령의 논의는 직관적이고 창의적이기는 하나 기호학으로 볼 수는 없다. 기호학은 연구 자체의 철학, 방법,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이어령의 논의는 기호학의 철학, 방법, 비전이 없는 단순한 에세이에 불과하다. 이어령 스스로 기호학자라 자칭한 적도 없고 한국의 기호학자 누구도 이어령을 기호학자라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