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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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慶泰
1935년~1995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 TV 코메디 프로그램의 개척자. MBC, TBC 등에서 PD 생활을 했고, SBS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진행을 하기도 했다.

2. 생애


1935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어머니께서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시고, 술로 소일하시는 아버지 슬하에서 굶기를 밥 먹듯 하는 등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1954년 휘문고등학교, 1958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1] 공군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한 뒤에[2] 1964년 TBC에 입사하는 것으로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 MBC가 개국하자 MBC로 옮겼으며, 그때 지방 유랑극단 생활을 하던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송해, 서영춘 등의 코미디언들을 모아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웃으면 복이와요'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설이 되었으며, 1985년까지 무려 16년간 방송되었다.
'웃으면 복이 와요' 다음에는 '유쾌한 청백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씨추에이션 코메디 "부부만세"를 만들었다. 두 프로그램이 번갈아 시청률 1위와 2위에 오르면서, 한국 코미디 연출의 귀재로 평가 받았다.
1973년에는 TBC로 되돌아갔는데, 이 때 서영춘, 배일집, 배연정 등이 그를 따라 TBC로 적을 옮겼다. TBC에서는 '좋았군 좋았어', '고전 유머극장' 등을 연출했다. 1980년에는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을 연출했는데, 이 때 변두리 3류 극장을 떠돌던 이주일을 발굴해 출연시켜 단 2주만에 스타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두환 독재정권에 회의를 느꼈고, 결국 1983년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8년간 기독교방송, 교포방송 등을 운영하다가, 1990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SBS에서 PD가 아닌 진행자로 '코미디 전망대'의 사회를 맡았다.[3]
그러나 인기 절정이던 1993년에 간암 판정을 받아 2년간 투병했으며, 결국 1995년 8월 20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나운서 출신의 부인 오신근과의 사이에서 딸 셋 (수미, 수진, 수경)을 두었다. [4]

[1] 법조인이자 정치인인 홍준표의 대학교 선배다. 홍준표 문서에 보면 그가 MBC 공채 개그맨이 될 뻔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홍준표에게 개그맨 시험 응시를 제안했던 사람이 바로 김경태였다고 한다. 고려대 법학과 신입생 환영회 때 선후배들과 재미있게 노는 홍준표의 모습을 보고 개그맨 시험을 치도록 제안했다고 한다.[2] 공군장교 시절 '빨간 마후라'라는 드라마의 검열을 담당하면서 방송국을 계속 출입했다고 한다. 이때 한운사 작가와 친해졌다고...[3] '코미디 전망대' 앵커 시절에 그의 대머리때문에 계속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4] 큰딸 수미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철학박사 공부를 하였고, 둘째 수진은 풀러신대원에서 상담학을 전공한 교수이며, 막내 수경은 매릴랜드대에서 석사공부를 하였다. 가족 중 유일하게 할아버지를 따라 PD인 이한길군은 패사디나에 소재한 명문 Art Center College of Deisgn에서 석사공부를 마치고 현재 Los Angeles County Fire Department에서 Video Specialist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