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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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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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의 모습
대한민국의 원로 코미디언. 본명은 배창순.
2. 생애
2.1. 어린 시절
1926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군량리 출신이며, 춘천국민학교[2] 를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니시보츠중학교를 졸업했고 1945년 광복이 되자 고국으로 귀국하여 악극단 민협에 들어가 희극배우로 활동하게 된다.
2.2.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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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20대의 모습.
1969년 본격적으로 방송 무대에 데뷔하여 '''바보 연기의 원조'''로서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첫 데뷔작은 웃으면 복이와요 이며 동갑내기인 구봉서도 이 프로에 같이 출연했다. 이후 배삼룡은 1970년대 중반 TBC와 MBC 예능 담당자들 간의 주먹이 오고가는 스카웃 전쟁까지 일으킬 정도로 구봉서, 서영춘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으로 발돋움 했고 '''형사 배삼룡''' 으로 정극 영화배우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등 연예계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다. 이 당시 안방극장의 코미디계는 그야말로 구봉서, 서영춘 그리고 배삼룡의 코미디 트로이카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했을 무렵 "삼용사와" 라는 삼강사와 류의 유산균 요구르트 사업을 벌였다가[3] 거액의 사기를 당하고 악덕 기업인이란 누명을 쓴 데다가[4] 그해 8월 '연예인 사회정화운동'에 따라 9월 1일부로 이기동, 이주일, 심수봉, 나훈아 등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출연금지' 처분을 받아 9월 5일부터 한국연예인협회 연기분과위원장직까지 사퇴하고 은퇴했다.[5] 이후 미국에 있다 귀국했다. KBS 유머 1번지, 코미디 하이웨이, MBC 新 웃으면 복이와요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예전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긴 공백기 등으로 인해 코미디계에서도 인지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2.3. 말년
2000년대에 들어서 또 다시 사기를 당해서 농촌지역 돕기 자원봉사라고 하여 나서서 열심히 홍보도 하고 그랬지만 알고보니 피라미드 조직에게 속았던 적도 있다. 언론에서 마치 배삼룡이 범인처럼 보도되어 이 사건으로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고 지병인 폐렴이 발병하여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제대로 치료비도 내지 못해 사망당시 밀린 병원비가 1억이 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지내다가 2010년 2월 23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와 동갑내기 코미디언이자 동료였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는 아쉽게도 병고(病苦)로 인해서 결국 영결식에 불참하였으나 나중에 휠체어를 이끌면서 먼저 가게 된 동갑내기이자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빌어주었다. 당시 구봉서도 뇌졸중으로 인한 병세악화로 인해서 매우 좋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생전 배삼룡이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온 구봉서는 "이놈이 죽으면 이젠 나에게 누구 친구도 동기도 남아있지 않아요..."라면서 서글프게 눈물을 흘렸다. 별세 직후 개그콘서트의 엔딩 코너인 봉숭아 학당에서도 맨 마지막 왕비호 윤형빈이 나왔을 때, 선생님인 이수근이 부고 소식을 알리고 배삼룡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마음속에 영원하다는 의미에서 이날만큼은 "배삼룡 선생님 포에버!"를 외쳤다.
1996년 문화체육부 장관상, 2003년 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