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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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휘문고등학교[1] '''는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이다. 수능 날 아침 언론사들이 시험장 풍경을 촬영하는 학교로 유명하다.
1904년 민영휘가 광성의숙이란 이름으로 학교를 개교하였고, 1906년 고종으로부터 새 교명 '휘문의숙'을 하사받았다. 휘문고등학교는 1904년이 아닌 1906년을 개교원년으로 삼는다. 2011년 3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인가되었다. 학교 교훈은 "큰사람이 되자". 이름의 한자는 아름다울 휘(徽) 글월 문(文)으로, 글을 빛나게 하라는 의미이다. 교목은 느티나무, 교화는 목련이다.
2020년 8월 10일에 자사고 지정이 취소되으나, 법원의 가처분 결정 인용으로 인해 당분간은 자사고 지위가 유지될 예정이다.
N수생이 재학생보다 많은 고등학교로 조사되었다.
2020학년도 3학년 기준 전체 학생 약 475명 중 문과가 운동부(16명) 포함해서 약 105명, 나머지는 이과이다.
2020년 기준 학급 편성 현황
2020년 신입생이 115기이다.
2020년 기준 명찰색은 1학년 초록색, 2학년 파란색, 3학년 노란색이다.
한번 입학해서 졸업까지 같은 명찰을 사용하며, 때문에 신입생은 그 해에 졸업한 세대의 명찰색을 물려받는다. (휘문중학교도 같은 해에 같은 명찰색을 사용한다.)
2. 학교 연혁
사실 고종으로부터 '휘문의숙'이라는 교명을 하사받기 전에 1904년 넓을 광(廣) 이룰 성(成) 자를 쓴 광성의숙이라는 이름으로 9월 1일 민영휘가 학교를 설립하였으나, 1906년 5월에 새 이름으로 다시 개교한 것이다. 1910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1년 휘문학교장 임경재 외 교사들과 동문들의 도움으로 한글학회의 모체가 된 조선어연구회를 설립하였다. 그 외에도 창덕궁서 72점의 악기를 기증받아 1923년 한국 최초의 취주악단을 창설하고, 1933년 한국 최초의 도서관을 만드는 등 한국 문화의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독립 후 1951년 개편된 중등교육법에 의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고, 이에 따라 휘문고등학교(3년제)로 개칭되었다.
원래 휘문고등학교는 지금의 현대그룹 계동 사옥 위치에 있었으나, 강남 개발 당시에 강북에 거주중이었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방침 중 하나인 강북에 위치한 명문고들의 강남으로의 강제이전에 따라 지금의 대치동으로 1978년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2] 지금의 휘문고등학교 부지는 전 이사장인 민병유의 사유지였다.[3] 2006년 창립 100주년[4] 을 맞이한 기념식을 열었다.
- 1904. 9: 하정 민영휘 공이 광성의숙 개숙
- 1906. 5: 고종 황제 교명 휘문 하사
- 1906. 8: 관상감 터에 교사 삼일재 낙성. / 휘문의숙 첫 입학시험 실시 / 교재 인쇄,편찬 기관인 <휘문관>설립
- 1906. 9: 첫 수업 실시
- 1906. 10: 휘문의숙 개숙식
- 1907: 전국 최초 고교 야구부 창단.
- 1908. 4: 교복 착용
- 1910. 3: 제 1회 졸업식, 졸업생 32명 배출
- 1910. 5: 오성 , 보성 , 배재 , 중앙 , 휘문 5개교 연합하여 삼선평 에서 5개교 운동회 개최
- 1910. 10: 개성으로 수학여행[5]
- 1911. 4: 졸업생과 재학생 및 교직원 조직인 <문우회> 창립
- 1912. 3: 교가 시창
- 1912. 6: 일제의 교과용 도서 검정규정에 의해 <휘문관> 교재 대부분 폐기
- 1914: 축구부 창단
- 1918: 정구부 창단
- 1918. 1: <사립 휘문의숙> 에서 <사립 휘문고등보통학교> 로 개칭
- 1919. 3: 3.1 운동 참여[6]
- 1920. 6: 동맹휴학 돌입
- 1921. 3: <휘문교우회> 창립
- 1921. 3: 본교에서 <조선어연구회>(현재의 <한글학회>) 발족 ->위대한 휘문의 역사 훗.
- 1922: 희중당 건립. 유도부 창설
- 1922. 4: <휘문고등보통학교> 로 개명되면서 4년에서 5년으로 수업연한이 연장됨
- 1922. 6: <재단법인 휘문의숙> 설립
- 1922. 8: 경우궁 터 매입, 운동장 확장
- 1923. 1: 교지 <휘문> 창간
- 1923. 6: 창덕궁으로부터 양악기 72점을 하사받아 기존악대 확대 개편[7]
- 1923. 7: 전 일본중등학교 야구우승권대회(갑자원 대회) 에 조선대표로 출전
- 1923. 10: 동맹휴학 돌입
- 1925: 농구부 창단
- 1928: 역도부 창단
- 1929. 5: 광주학생항일운동 참여
- 1929. 9: 제 1회 <전 조선 중등학교 씨름대회> 본교 운동장 개최
- 1929. 10: 제 1회 <경 평 축구전> 본교 운동장 개최 (서울vs평양 축구전임)
- 1933. 10: 한국 최초 학교 도서관 개관
- 1934. 11: 조선 초유의 박물전람회 <조선박물대전람회> 본교 개최
- 1935. 10: 제 12대 이병규 교장,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공부하는 공학제 반대 글 조선일보 게제
- 1935. 12: 하정 민영휘 공 사망
- 1936. 7: 전 일본 역기대회에서 5학년 김성집 군 우승[8]
- 1938. 4: 5년제 <휘문중학교> 로 개명
- 1939: 아이스하키부 창단
- 1943. 7: 강제노역 중 본교학생 두명 압사
- 1946. 1: 서울운동장 에서 열린<반탁 학생궐기대회> 참가
- 1946. 7: 5년제에서 6년제 학제로 변경
- 1947. 4: <애교동지회> 발족
- 1949. 9: <학도호국단> 편성
- 1950 . 6: 6.25 동란
- 1950. 9: 영국군의 본교 주둔으로 안국동 동덕국민학교에 임시 개교
- 1951. 8: 학제 개편에 따라 <휘문중학교> 와 <휘문고등학교> 로 분리
- 1951. 11: 김성집 교우 전국체전에서 역도 세계신기록 수립
- 1952: 레슬링부 창단
- 1952. 4: 서울 종로 내수동에 임시 분교 개교
- 1955. 4: 본 교사 로 복귀
- 1955. 4: 영자신문
창간 - 1956. 10: 제 1회 <7개교 문학의밤> 개최
- 1957: 농구부 36전 전승
- 1958. 6: 교내신문 <휘문> 창간
- 1959. 3: 두발 자유화 허용[9]
- 1960. 4: 4.19 의거 참여
- 1961. 5: <희중문학상> 제정[10]
- 1962. 6: 당시 법인 민병유 이사장, 강남구 삼성동 소재 임야 2만4천여 평 학교림으로 기증
- 1964. 11: 제 1회 <문학의 밤> 개최
- 1970. 3: 새 교훈 <큰 사람이 되자> 제정
- 1975. 10: <학도호국단> 발족
- 1976. 5: <휘문 70년사> 간행
- 1976. 6: 미국 Palm Springs HighSchool 과 자매결연
- 1976: 제 8회 희중문학상 부터 대상 인 월탄상 신설
- 1977. 9: 휘문중학교 교사 강남 이전
- 1978 . 2: 휘문고등학교 교사 강남 이전
- 1979. 5: 제 1회 <교내 백일장 및 사생대회> 개최
- 1983. 3: 교복 및 두발 자율화 시행[11][12]
- 1983. 5: 휘문 기악반 교우 모임인 <휘악회> 결성
- 1987. 10: <휘문의 밤> 행사 일환으로 제 1회 <한티가요제> 개최
- 1991. 5: 원서동 현대그룹 계동 사옥에 휘문중고등학교 옛 터 임을 알리는 표석 건립
- 1994. 9: 제 49회 <청룡기 쟁탈 중.고 야구선수권대회> 에서 중.고 동반우승
- 1995. 5: 정지용 시비 건립
- 1995. 10: <휘문의 밤> 이 <한티축제> 로 명칭 바뀜
- 2003. 3: 교복 착용
- 2005. 10: 휘문-보성 제 1회 친선 축구대회 개최
- 2006. 5: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 휘문인 큰잔치> 개최 & 100주년 기념탑 제막
- 2006. 9: 제 9대 민인기 이사장 취임
- 2006. 11: <휘문 100년사> 출판기념회
- 2009. 10: 고등학교 처음으로 봅슬레이부 창단
- 2010. 4: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지정
- 2010. 10: 제 1회 <아트콘테스트> 개최
- 2011. 3: 자율형 첫 신입생 517명 입학
- 2013. 12: 제 1회 휘문연극제 개최
- 2014. 9: <제 42회 봉황대기> 야구 우승
- 2016. 2: 108회 졸업식 거행. 현재까지 졸업생 36,712명 배출
- 2016. 5: 창학 110주년 기념식
- 2016. 8: <제 44회 봉황대기> 야구 우승
- 2019. 8: <제 47회 봉황대기> 야구 우승
- 2020. 8: 자사고 지정이 취소 됨
- 2020. 9: 지정 취소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어 자사고 지위 유지
3. 교훈 및 상징
큰사람이 되자[13]
3.1. 교가
- 교가
[image]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에는 주로 교가가 주로 불리고 있다.
교가의 내용을 보면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 강북에 위치하였던 모교의 전망[14] 을 묘사하는 내용이 나오니 착각하지 말자. 교가의 역사는 애국가의 역사보다 더 길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등학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15] 참고로 교가 작사가가 시인 최남선이다. 특이한 점은 교가 가사 어디에도 휘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16]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4분의 5박자로 작곡되어, 처음 노래를 들을 때 매우 어색하다고 한다.[17][18]
이 외에도 응원가가 있으나, 잘 불리진 않는다.
4. 학교 시설
- 북관[19]
- 1층: 2학년 1 ~ 4반
- 2층: 2학년 5 ~ 9반
- 3층: 1학년 1 ~ 2반, 교과교실, 인재기획부&1학년부
- 4층: 1학년 3~ 7반
- 5층: 1학년 8 ~ 12반
- 본관
- 남관
- 1층: 2학년 10 ~ 13반, 보건실, 여교사휴게실
- 2층: 방송실, 전산실, 제1교무실, 체육교과실, 인성교육부, NEIS실
- 3층: 3학년 1 ~ 6반, 교과교실
- 4층: 3학년 7 ~ 13반
- 서관[29] : 휘문고 학생은 서관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중학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 다만 중학생은 2층만 쓰고, 나머지는 고등학교가 사용.
- 체육관: 강당으로 쓰이고 밑에는 식당과 골프실(모하관)[30] 이 있다. 이외에도 우리들교회라는 교회가 예배때마다 렌트해서 사용한다.[31][32]
- 매점: 체육관 입구 옆에 있으며 2019년에 리모델링을 했다. 2020년에 북관 옆으로 이전했다.
- 글로벌홀: 체육관 옆에 있는 컨테이너 건물로 일정규모 이상의 인원이 모일때 사용한다.[33]
- 대운동장
- 소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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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부지: 38,061m²(11,513평)
- 교사연건평: 13,858.48m²(5,505평)
- 운동장: 15,587m²(4,724평)
- 체육관 3,815m²(1,154평)
- 글로벌홀: 270m²(81.67평)
- 교문: 2019년에 증축 공사하여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큰 철장문과 양쪽에 사람이 다니는 작은 문 2개가 생겼다.
5. 학교 생활
5.1. 주요 행사
- 한티축제
배양전, 양배전처럼 보성고와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갖는 친선 축구경기로 휘보전, 보휘전으로 불린다.[34] 나름 정식적인 심판진을 갖추고 하는 아마추어 경기치고 수준 높은 경기로 전반전 30분은 1학년끼리, 후반전 30분은 2학년끼리 맞붙으며 전후반 동안 나온 골의 총 합계로 승패가 결정된다. 상대 전적은 휘문고 기준으로 2015년까지 4승 3무 3패로, 약간 우세다. 번외경기로 교사들 간의 경기가 있다. 경기장은 매년 번갈아가면서 서로의 운동장을 쓴다. 2015년에는 휘문고에서 열렸다.
- 아트콘테스트(Art Contest)
2015년 아트콘테스트 영상부문 우승작이다.
2014년 아트콘테스트 음악부분 우승작이다.
2016년 제1회 단편영화제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단편 영화제에서 구현하기 쉽지 않은 공포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으며
적절한 음악 활용과 여러 카메라 구도,신들린 표정 연기, 세심한 편집효과등 많은 부분에서 호평을 받았다.
당시에 체육관에서 불을 끄고 상영해서 공포감이 몇배로 형성되었던 작품이다.
2016년 단편영화제 출전예정작이었으나 저작권의 이유로 영화제에 참가하지 못한 작품이다.
2017년 단편영화제 출전예정작. 하지만 여러 문제가 생겨 예고편만 만들어져 있다.
휘문고 학생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휘부심의 결정체가 있다. 휘문고등학교 밴드 TABASCO 에서 작곡한 노래 "내 노래는 푸르다" 이다. 2012년 휘문고 Art Contest 에서 발표되었던 곡인데 노래가 어지간히 좋아서 웬만한 대치동에 사는 고등학생이나 휘문고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면 이 노래를 접해보지 못한사람이 없을것이다. 다른학교에서 좀 불러달라고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었고, 어떤 인디밴드[35][36][37] 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정말 한번 들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노래이다.
이 동영상은 중간에 랩 부분이 빠졌다.
5.2. 일과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수업시간은 40분, 쉬는시간은 5분, 점심시간은 50분으로 단축되었다.
6. 운동부
7. 출신 인물
'''나무위키에 등재된 인물'''을 가나다순으로, 인물 이름 - 기수의 형태로 정리했다.
야구선수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문서 참조.
- 강경대 - 학생운동가
- 강의석(법조인)
- 구기찬
- 구본승 - 84회
- 권진봉 - 전 한국감정원장
- 권현상
- 금용백 - 육군 장군
- 길형보
- 김기선
- 김동률 - 85회
- 김동완 - 90회
- 김법린
- 김성동
- 김성집 - 29회, 대한체육회 고문, 1951년 역도 세계신기록 수립자
- 김세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 중 여러 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
- 김약수
- 김영랑 - 시인
- 김영태 - 조직폭력배[43]
- 김유정 - 21회, 소설가
- 김응현
- 김일주
- 김정배
- 김종학 - 61회, PD
- 김준일 - 103회, 농구선수
- 김창석 - 대법관
- 김학철 - 70회, 영화배우
- 김한용 - 現모카대표
- 김한정 - 국회의원
- 김효재
- 김훈 - 58회
- 김흥권 - 전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
- 돈 스파이크 - 87회[44]
- 류택현 - 1990년 졸업
- 류희인
- 민병기(1927)
- 민병돈
- 박근형 - 50회
- 박상혁 - 하이라이트 레코즈 소속의 래퍼
- 박수광
- 박숙현
- 박일(1927)
- 박종화 - 11회
- 박제환
- 박찬민 - SBS 아나운서
- 방성윤 - 93회
- 백낙환
- 백두진 - 18회, 제4·10대 국무총리
- 백종문 - 前 MBC 방송프로듀서, 부사장
- 서동욱(기업인) - 85회[45]
- 서동진
- 서장훈 - 85회
- 석주일 - 84회
- 손석희 - 67회
- 송승환 - 67회
- 신(크로스진) - 102회
- 신동파 - 55회,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 신제윤
- 안대륜
- 안창남
- 안총기 - 전 외교부 제2차관
- 양원혁
- 오지호
- 오장환
- 유지태 - 87회
- 윤서인 - 85회[46]
- 윤석민(1964)
- 이돈해
- 이동건 - 91회
- 이무영
- 이상돈(1912)
- 이상용
- 이선근
- 이성득
- 이성재 - 36회 , 전 서울음대 학장
- 이승환 - 76회
- 이용(가수) - 67회.
- 이정재 - 조직폭력배 및 정치깡패. 대한씨름협회 회장, 자유당 도시행정특보위원.[47]
- 이주형
- 이진강 - 54회, 법조인
- 이진수(배우)
- 이진용(1920)
- 이태준
- 이형걸 - KBS 아나운서
- 이호재
- 이호철
- 이훈 - 82회
- 임수진
- 임택근
- 장경근 - 22회, 내무부장관
- 장세준 - KBS 성우
- 장충식
- 장항준 - 81회
- 전병헌
- 전형필 - 18회, 간송박물관 설립자
- 정태원 - 75회
- 정헌주 - 29회, 교통부장관
- 정의선 - 81회
- 정인교
- 정종흔
- 정지용 - 13회, 시인
- 조준호 - LG전자 사장
- 조중훈 - 중퇴, 한진그룹 창업주
- 조현재 - 한국국학진흥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 주시경 - 배재학당 출신 한글학자. 본교에 재학하지는 않았으나 교사로 재직[48]
- 최성원 - 들국화 베이시스트
- 최종문 - 외교부 제2차관, 주 프랑스 대사
- 최케빈 - 본명 최광수
- 차성수
- 차은택
- 차인태 - 55회
- 차준환 - 112회
- 최두선 - 3회, 국무총리, 독립운동가이자 최남선의 동생
- 최영희 - 32회, 국방부 장관
- 최희암 - 66회, 농구감독
- 한필수
- 현신규
- 현주엽 - 86회
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8.1. 버스
- 학교 앞: 143, 350, 2413, 3422, 3425
- 영동대로 쪽: 401, 4318, 4319, 4419, 강남01, 강남06, 11-3, 917, 500-2, 6900, 9407, 9507, 9607
- 하나은행/대치사거리 정류장: 2415, 3011
- 포스코사거리 정류장: 강남07, 강남08
- 한국무역센터/삼성역 정류장: 146, 333, 341, 360, 740, 1100(신사역-마석), 1700, 2000(강남역-광릉내), 3411, 7007, 8001, 9303
8.2. 지하철
9. 사건사고
9.1. 민인기 전 이사장 50억대 횡령 사건
학교법인 휘문의숙의 민인기 이사장이 50억 원대 횡령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사건이 터졌다. 재판부는 민 전 이사장의 어머니인 김옥배 명예이사장의 업무 관여를 방치하고 이사장 의무를 게을리 했고, 모친에게 법인카드를 교부해 2억 3000만 원을 사적으로 사용하게 하였으며, 이를 '''유흥업소 비용 지출'''에도 사용해 죄질이 불량하다며 민 전 이사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또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약 10년 간 우리들 교회에게 학교 체육관을 대여하였는데, 민 전 이사장이 학교 시설물을 교회에 대여해주고 받은 학교발전기금 53억 원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 또한 사실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사무국장 박 모 씨에 대해서는 "김옥배 전 명예이사장이 52억여 원을 횡령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로부터 받은 격려비 등도 횡령 일부로 착복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든다"라고 설명하였다.
민인기 전 이사장의 모친인 김옥배 명예이사장은 재판 도중 사망하여 공소기각결정이 내려졌으며 휘문의숙 사무국장 박 모 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세습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학교법인의 돈을 펑펑 쓴 것에 대한 인과응보인 셈. 민인기 이사장은 혐의가 밝혀진 이후 사퇴하였고 고려대학교 총장 출신의 김정배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20년 7월 9일 서울시교육청은 휘문고 자사고를 취소했다.
2020년 9월 3일, 서울행정법원은 휘문의숙의 회복 어려운 손해를 우려 한다며 휘문의숙의 서울시교육청 행정 처분 취소 요청을 받아들이며 처분 취소 본안 소송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정지한다고 밝혔다. 즉, 지정 취소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휘문고등학교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10. 기타
- 휘문중학교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운동장은 2개인데 대운동장은 고등학교, 소운동장은 중학교가 쓰고있다.[49] 매점은 중학생과 함께 쓴다. 원래 식당도 같이 써서 중학교가 3교시 끝나고 쓰고 고등학교가 4교시 끝나고 썼는데 중학교 지하를 식당으로 리뉴얼하고 지하 교과교실들을 신축건물에 옮겨서 식당은 이제 따로 쓴다.
- 2009~2016년 대한민국 초·중·고·대학교 중 1번째로 봅슬레이부를 창단, 운영하였었다.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다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16년 폐부되었다.
- 2015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재지정 평가 대상이었다.
- 학교 정문 앞에 종로학원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휘문고등학교가 4년제[50] 라는 농담이 자주 돈다.
- 휘문중학교와 교복이 같다. 구분하는 방법은 왼쪽 가슴 부분의 휘장의 글자를 확인하는 것으로 휘문고는 한자 '徽'를, 휘문중은 한글 '휘'를 사용한다. 아니면 동복의 경우 착용한 넥타이를 보면 된다. 군청색 계열의 줄무늬가 있는 것은 같으나 휘문고는 노란색과 군청색 줄무늬고, 휘문중은 와인색과 군청색 줄무늬다.
- 한때는 휘문중학교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중고등학교들 중에서 드물게 교복이 없는 학교였다. 2003년에 입학한 학생들부터 교복을 착용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 당시 강당에서 패션쇼를 해서 교복 디자인 후보군 중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투표하게 되었는데 학생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선택한 것을 채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면 나쁘지 않다 오히려 교복이 이쁘다고 휘부심 부리는애들 많다. 실제로 다른 학교애들도 휘문교복이 이쁘다고 한다. 단, 동복만 그렇다.
- 2020년 11월 부터 다시 교복 검사가 시작된다.
- 2015학년도의 휘문고등학교 일반전형 경쟁률은 2.13:1, 2016학년도의 휘문고등학교 일반전형 경쟁률은 1.93:1로 예년 대비 소폭 하락하였다. 조희연 교육감이 내걸었던 방침인 자사고 일반전형 중학교 내신성적 50%이상 제한 폐지가 시행 된 이후에도 중위권 이상 학생들의 성적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2017학년도에는 경쟁률이 1.4:1가 되어 지원자 전원이 면접을 보았다. 심지어 2019학년도 지원률은 1.06:1로 추첨으로만 진행되었다. 이는 서울시 중학생 1만4000명의 감소, 학종 확대로 인한 자사고 기피가 주된 이유로 다른 대다수 자사고와 마찬가지로 경쟁률이 낮아졌다. 허나 자사고중에서 가장 인원을 많이 선별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학생을 면접을 통해 선별하게 되어 추첨으로 아쉽게 떨어지는 학생이 줄어든다 하여 좋아하는 선생님이 많다.
- 학교 정문을 통해 들어와서 왼쪽을 보면 잔디밭이 있다. 이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들어올 수 없는 게 원칙으로 되어있다.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졸업사진 찍을 때. 2016년 3월부터 잔디밭에서 축구, 캐치볼을 하면 경비아저씨가 막으신다.[51] 그러나 잔디밭의 남쪽에 조그만 길이 있어 벤치가 있는 쪽으로는 갈 수 있고 현재는 파라솔이 추가 설치되어 선생님, 학생을 불문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 설립자 민영휘는 풍문여자고등학교의 설립자의 남편이다.[52]
- 유명한 인강 선생님인 기상호가 8년간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53]
- 2015년부터 모든 이과 2학년들에게 물리Ⅱ를 강제로 듣게 해서 학생들이 뒤집어졌다. 잠깐 대신 화학Ⅱ를 배우는 대안도 논의되어 신청까지 했지만 엎어지고 고2 2학기부터 진도를 나갔다. 결국 2017년까지만 2학년이 물리 Ⅱ를 배우게 되었다. [54]
- 옛날에는 현재 대명중학교 부지랑 학교건너편에 있는 노란색 공기업 건물[55] 까지 학교 부지였는데 지금은 아니다.지금 노란색 공기업건물 자리는 옛날에 휘문고 테니스장이었다고 한다
-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본관건물의 벽 절반 이상이 담쟁이넝쿨로 덮여있다. 겨울엔 잎이 없어서 모르지만 봄, 여름, 가을에 보면 매우 예쁘다.[56]
- 학교 안에 자판기가 있다. 최근(2016년 기준) 남관 1층에 하나은행 ATM 기기도 설치되었다.
- 에어컨과 히터가 엄청나게 잘 나와서 여름엔 춥고 겨울엔 덥다. 여름에 잠바나 가디건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중앙관리시스템이라서 행정실에서 틀어주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 설립자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학교도 친일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절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연구회의 본진 이었고, 독립운동이나 학생운동 참가도 많이 했다. 주시경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11년간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 학교부지로 W타워포함해서 건물이 7개다. 글로벌홀[57] 이라고 1년에 4번씩 명사초청강의 같은거[58] 하는 컨테이너홀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을 제외하고 센 것이다. 원래 Gloval Hall로 오타났다가 바꾼거라 한다.
- 2016년 개교 110주년을 맞아 본관 전면에 커다란 110주년 기념 현수막을 붙여놨다. 낮에는 저게 뭐다냐 싶지만 밤에 조명을 잘 받으면 웅장하다.[59]
- 야자가 없다.[60] 밤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본관 5층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자습실에서 한다. 최근에는 성적과 무관하게 학급별로 희망자들 간 가위바위보를 통해 자리를 배정한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이용자가 줄어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여초실만 개방하고 있다. 또한 관리가 잘 안되고 있어[61] 몇년째 내려오는 유서깊은 쓰레기들[62] 이 많고 의자도 몇개 부족하며 매우 이른시기[63] 부터 모기가 나온다.
- 2015년 4월 식당 앞 게시판에 세월호 1주기 관련 포스터가 붙었다. 여기까진 별 일이 아니나 다음날 그 포스터 아래에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들의 대리기사 폭행사건 관련 프린트가 나붙었다. 다음날 둘 다 뜯겨나갔다.[64]
- 건국대 사태 당시 최루가스가 당시 허허벌판이던 강남구를 넘어 휘문고까지 흘러들어왔다.
- 2014년 마리아노 리베라가 방문했다. 음향기기회사 JBL홍보모델 차 방문했지만, 한국JBL사장과 휘문고 이사장이 연세대 야구부를 통해 알던 사이었고[65] 그래서 휘문고 이사장이 JBL사장에게 리베라 방한시 여유시간이 있다면 휘문고에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질문시간때 첫 번째로 나온 질문이 '두유 노 김치'였다.
- 영화 '검사외전'에서 강동원이 박성웅에게 "선배님, 저 휘문고 95기입니다.'"라고 한 대사가 나왔다.
- 2017년 2월 19일 111주년 휘문문화예술제가 열렸다.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렸는데 휘문 사십몇기 출신의 백발의 어르신들부터 현재 111기인 재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볼 수 있었다.
- 영화 '사바하'에서 박 목사(이정재 분)가 해안스님(진선규 분)에게 "이야, 이 휘문고 83기 이정범이 절밥 허투루 먹은 거 아니네"라는 대사를 치기도 했다.
- 학교에서 정기고사등 교실안내가 필요할때 사용하는 휘문중을 포함한 학교 전경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옛날에 재학생이 만든 것이다.[66]
- 옛날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인 여학생이 온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반응이 너무 격렬한 탓인지 다시는 오지 않았다고...
- 동문회에서 휘문고만 졸업한 사람은 3년근, 휘문중과 휘문고를 둘다 졸업한 사람은 6년근이라고 인삼에 비유하여 말한다고 한다.
- 간송[67] , 월탄, 여초와 같은 시설에 붙어있는 이름들은 과거에 휘문출신 인물들의 호다.
[1] 옳은 로마자 영문표기로는 Hwimun High School이 맞지만 옛날 영문표기가 정확히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영문표기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영문대로 읽으면 위문고등학교라고 읽을 수 있지만 이 학교가 1906년에 개교했음을 감안하면 당시의 Wh발음을 실제로도 휘였기에 당시에는 맞는 표기이다. 때문에 휘문 고등학교의 모든 운동팀이나 단체 이니셜이 W이다.[2] 1978년 이후 입학한 휘문인들은 안타깝게도 이때까지 여고 셋을 끼고있던 휘문고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3] 민병유가 기증한 토지는 약 24,000평 규모였는데, 현재 휘문고 부지는 16,000평 규모이다. 이 차이는 친일재산 환수 등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카더라. 없어진 8,000평에는 현 대명중학교 부지부터 포르쉐 코리아 사옥까지도 포함된다고 한다.[4] 휘문의숙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던 시점부터 100년이다.[5] 이때 사진이 학교복도에 있다.[6] 설립자는 친일이나 학교는 절대 친일이 아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독립운동과 학생운동을 참여 또는 주도했다.[7] 현재 90년 전통을 자랑하는 휘문고등학교 오케스트라의 전신.[8] 이것도 학교복도에 사진이 있다.[9] 옛날부터 지금까지 휘문 학풍은 자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학교에서 규제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에 별거 아니지만, 그 당시 1950년대에 두발자유화라 생각한다면 거의 혁명급. 학풍으로 내세울만 하다.[10] 현재까지도 이어지고있고, 많은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회[11] 이 교복 자율화는 무려 2003년까지 20년간 시행.[12] 2019년 다시 시행 결정[13] '큰 사람'과 '큰사람'은 다르다. 전자는 관형어로써 쓰인 '큰' 이 쓰여 크기가 큰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후자는 됨됨이가 큰 사람이라는 뜻이다. 헷갈리지 않게 조심하자.[14] 볼재는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했던 휘문고등학교 부지의 옛 명칭이다.[15] 현재 재학생 중에서는(2018년 기준) 학교 교가가 4절까지가 아니라 2절까지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애초에 2절까지만 부르고 각종 행사에도 1절만 부른다.[16] 단, '볼재'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볼재는 옛날 경복궁 주변에 있던 휘문고 부지의 이름. 현재는 현대그룹 사옥 자리.[17]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4분의 4박자로 바꿔 부른다.[18] 음악시간에 배울 때 사용하는 노래는 4분의 5박자 시절의 노래를 4분의 4박자로 잘라서 바꿔 만든 것이라 들을 때 다음 소절로 넘어가는 부분이 어색하다.[19] 4층 건물이었는데 나중에 한 층 올렸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5층만 벽돌색이 다르다.[20] 계단참과 남관 2층 높이가 같다.[21] 다른학교에 흔히 있는 시청각실이다.[22] 옛날에는 자습실이 있는 5층을 통째로 사용했었다.[23] 원래는 어학실이었으나 2019년 교체되었다.[24] 이사장 취미가 고서수집이라 생긴 방이다. [25] 비가 와서 물이 세서 보수 공사한 이후로 앞에 자재들이 남아있어 접근이 힘들다.[26] 정보수업이 없어지면서 각종 온라인 설문조사와 학생회장 선거때를 제외하면 일반 학생들은 쓸 일이 없다. 일부 동아리에서 쓰긴 한다. 2016년 5월 컴퓨터실이 리뉴얼되며 모두 Windows 8.1이 탑재된 새 컴퓨터로 바뀌었다.[27] 과거 서관에 교실이 있었을 때 교무실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잔해들만 남아있다.[28] 트로피의 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트로피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29] 관리가 거의 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복도 청소는 하는듯 하나 별로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다. 근데 사용을 안해서 그런지 관리도 잘 안하고 청소만 조금 하는 정도인데도 깨끗하다. 또한 학교에서 가장 큰 화장실이 여기에 있다(연결이 안된 CCTV도 있다.). 그나마 교과교실 1 ~ 9가 제2외국어 이동수업, 축제, 동아리활동, 정기고사와 평가원 모의고사 때 시험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양호한 편이다. 5층에 진로진학 상담실이 있고, 나중에 졸업앨범과 수능사진 찍을 때 여기를 이용하긴 한다. 급훈이 걸려있는 교실들은 과거 인원이 많았을 때 학급으로 쓰였던 교실들이다.[30] 1학년 골프수업때 쓴다. 이외에는 안 쓸 것 같지만 골프 좋아하시는 선생님들이 의외로 자주 사용한다.[31] 자판기에서 사이다를 팔아 학생들은 사이다를 사먹기 위해 간다.[32] 그러나 2019년 5월경 학생출입금지 라는 경고문과 함께 사이다가 사라졌다.[33] 근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다.[34] 개최 학교명의 앞 글자를 뒤에 넣는다. 홀수 해에는 휘문고에서, 짝수 해에는 보성고에서 개최를 하기 때문에 홀수 해는 보휘전, 짝수 해는 휘보전이라고 불린다.(그렇다곤 하는데 현실은 휘문에선 휘보전, 보성에선 보휘전이라 부른다.)[35] 체감온도 17도
[36] 저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에 TABASCO에 있던 사람이 멤버에 있다.[37] 2017년에 아트 콘테스트에서 짧은 공연을 했다.[38] 1학년은 12시 40분부터, 2학년은 12시 30분부터, 3학년은 12시 20분부터 먹는게 원칙이다. 다만..[39] 맥심(잡지)에서 스포츠 명문고 농구부분 1위로 2008년에 선정된 적 있다.[40] 1914년 창단하여 1921년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 참가 그리고 1922년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며 초창기 고등학교 축구의 선두 주자였다. 해방 후까지 존속하였지만高校蹴球(고교축구)어제와오늘 힘껏차고달린 半世紀(반세기) 한국전쟁 이후 고등학교 축구부는 해체되고 중학교 축구부만 운영하다 이 역시 1950년대에 해체된것으로 추정된다.[41] 2016년 해체되었다.[42] 2002년 해체되었으며, 해체 이유는 성적부진이라고 한다.[43] 야인시대의 그 김영태 맞다.[44] 참고로 김동률과는 대학까지 같은 동문이다.[45] 전람회 멤버이다/고등학교때부터 듀엣으로 학교에서 유명했다고 한다[46] 서장훈과 같은 학년이다.[47]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휘문고보로 전학.[48] 요즘말로 말하면 스타강사 같은 위치라 당시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학교에서 강의했었다.[49] 체육 수업을 대운동장에서 하는 중학교 학급이 많긴 하다.[50] 실제로 휘문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재수 비율은 매우 높다.[51] 때에따라 다르지만 그냥 들어가도 막으신다.[52] 정확히는 민영휘의 증손인 민덕기가 1944년 민영휘의 처인의 이름을 따서 설립.[53] 교사시절에 EBSi에서 먼저 인강을 시작했으며 이후 교사를 그만두고 메가스터디로 이적했다가 2017년 EBSi에 다시 복귀했다. 다만 메가스터디와 병행한다.[54] 라고 했으나 2018년까지 배웠다.[55] 리모델링하여 이제는 회색이다.[56] 가을에 보면 거의 옥상까지 덮여있다[57] 글로벌 컨테이너라고도 한다.[58] 정확한 이름은 테마특강Q[59] 2년 후인 2018년까지 붙어있었다.[60] 2019년 현재 3학년은 월요일 7교시 자습을 한다.[61] 19년엔 비도 샛다.[62] 예를 들어 2015년 희중문학상 수상작모음집[63] 6월 초[64] 참고로 대리기사 폭행사건은 해당 당사자는 무죄를 받았으며, 박근혜 정부 당시 비서실장이던 김기춘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65] 평소 휘문고 야구부가 연세대 야구부로 많이 진학 시켰고, 연세대 출신인 JBL사장도 연세대 야구부에 관심이 많아 이사장과 서로 알게 됐다고[66] 자세한 내용은 진로선생님이 풀어주시는 썰에서 나온다.[67] 간송 전형필 선생 맞다.
[36] 저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에 TABASCO에 있던 사람이 멤버에 있다.[37] 2017년에 아트 콘테스트에서 짧은 공연을 했다.[38] 1학년은 12시 40분부터, 2학년은 12시 30분부터, 3학년은 12시 20분부터 먹는게 원칙이다. 다만..[39] 맥심(잡지)에서 스포츠 명문고 농구부분 1위로 2008년에 선정된 적 있다.[40] 1914년 창단하여 1921년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 참가 그리고 1922년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며 초창기 고등학교 축구의 선두 주자였다. 해방 후까지 존속하였지만高校蹴球(고교축구)어제와오늘 힘껏차고달린 半世紀(반세기) 한국전쟁 이후 고등학교 축구부는 해체되고 중학교 축구부만 운영하다 이 역시 1950년대에 해체된것으로 추정된다.[41] 2016년 해체되었다.[42] 2002년 해체되었으며, 해체 이유는 성적부진이라고 한다.[43] 야인시대의 그 김영태 맞다.[44] 참고로 김동률과는 대학까지 같은 동문이다.[45] 전람회 멤버이다/고등학교때부터 듀엣으로 학교에서 유명했다고 한다[46] 서장훈과 같은 학년이다.[47]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휘문고보로 전학.[48] 요즘말로 말하면 스타강사 같은 위치라 당시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학교에서 강의했었다.[49] 체육 수업을 대운동장에서 하는 중학교 학급이 많긴 하다.[50] 실제로 휘문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재수 비율은 매우 높다.[51] 때에따라 다르지만 그냥 들어가도 막으신다.[52] 정확히는 민영휘의 증손인 민덕기가 1944년 민영휘의 처인의 이름을 따서 설립.[53] 교사시절에 EBSi에서 먼저 인강을 시작했으며 이후 교사를 그만두고 메가스터디로 이적했다가 2017년 EBSi에 다시 복귀했다. 다만 메가스터디와 병행한다.[54] 라고 했으나 2018년까지 배웠다.[55] 리모델링하여 이제는 회색이다.[56] 가을에 보면 거의 옥상까지 덮여있다[57] 글로벌 컨테이너라고도 한다.[58] 정확한 이름은 테마특강Q[59] 2년 후인 2018년까지 붙어있었다.[60] 2019년 현재 3학년은 월요일 7교시 자습을 한다.[61] 19년엔 비도 샛다.[62] 예를 들어 2015년 희중문학상 수상작모음집[63] 6월 초[64] 참고로 대리기사 폭행사건은 해당 당사자는 무죄를 받았으며, 박근혜 정부 당시 비서실장이던 김기춘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65] 평소 휘문고 야구부가 연세대 야구부로 많이 진학 시켰고, 연세대 출신인 JBL사장도 연세대 야구부에 관심이 많아 이사장과 서로 알게 됐다고[66] 자세한 내용은 진로선생님이 풀어주시는 썰에서 나온다.[67] 간송 전형필 선생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