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은

 


1. 경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은
2. 안악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은


1. 경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은


성명
김광은(金光恩)
생몰
1891년 ~ 1918년 7월 9일
출생지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하송현리
사망지
서대문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김광은은 1891년생이며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하송현리 출신으로, 1916년당시 지린성 둥닝현에 살고 있었다. 1916년 4월 21일, 일본 육군 참모본부 소속 육지측량 기사 야마나카(山中唯一)와 조선인 통역 박예용(朴禮鏞) 및 중국인 인부 유문강(劉文江) 등이 훈춘을 출발하여 지린성 둥닝현 일대를 비밀리에 정탐했다. 그들은 중국인으로 변장하고 해당 지역을 비밀리에 측량하여 지도를 제작하는 한편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김광은은 이들이 변장한 첩자임을 간파하고 염재군·염재영과 함께 이들을 유인한 뒤 비밀리에 측도(測圖)한 행위를 문제 삼아 구속한 뒤 뤄지거우(羅子溝) 강변에서 처단하였다. 일제는 1917년 9월 하순 야마나카 일행의 사망 사건 수색을 위해 조선총독부 소속 헌병과 경찰 그리고 간도총영사관 경찰 등으로 구성된 수색대를 조직하였다. 일본 수색대는 1917년 10월 바이초우거우(百草溝) 일대에서 김광은, 염재군, 염재영을 체포하고 증거물로 거사에 사용했던 무기를 압수하였다.
그 후 김광은은 1918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살인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7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김광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안악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은


성명
김광은(金光銀)
생몰
1896년 3월 25일 ~ 1942년 3월 16일
출생지
황해남도 안악군 은홍면 두양리
사망지
황해남도 안악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김광은은 1896년 3월 25일 황해도 안악군 은홍면 두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초 서울에서 전개된 3.1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박치간·정계로·유용원(柳龍源)과 함께 온정리 장날인 3월 11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매일밤 학산리에 소재한 유용원의 집에 모여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등사하며, 은홍·대행·서하면내의 각 교회에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연락하였다.
3월 11일 오전 11시 온정리 교회내의 이정엽(李正燁)의 집에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모여, 선명학교(善明學校) 교장 박치간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모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이라고 쓴 선두의 큰 기를 따라 시가행진을 하였다. 이때 그도 1천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했는데, 이를 제지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시위군중은 해산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악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2년 3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광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