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
1. 개관
북한 남서부에 위치한 도로, 원래 황해도였지만 북한이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갈라놓은 것[1] . 도청 소재지는 해주시.
동쪽으로 황해북도와, 북쪽으로 평안남도와, 그리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황해와 맞닿아 있다.
'''황해남도라는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는 황해도의 남부가 아니라 '서부' 지역에 위치해있다.''' 충청북도, 충청남도와 유사하다.[2] 황해남도가 황해북도보다 면적과 인구가 조금 더 많다.
북한에서 황해북도와 함께 유이하게 1만km²가 안되는 도다.
2. 역사
고구려 남부 지역이었고 신라가 차지한 후 한주, 패강진을 두어 다스렸다. 고려 때는 서해도를 두었고, 조선시대에 지금의 황해북도 지역과 함께 황해도를 이루었다. 이 때부터 남북도 분리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황해도 문서 참조.
북한은 1954년 10월 황해도를 남/북도로 분할하여 해주시 등 황해도 서부 해안 지역으로 황해남도를 신설하고, 그와 동시에 나머지 지역은 개성시 등 경기도 일부 지역과 합쳐져 황해북도가 되었다.
북한은 행정구역이 이리저리 바뀌기로 유명하다. 1991년 초판 발행된 <최신북한지도 부 중국주요지도부>에 따르면 해방 당시 11시 89군이던 것을 시 및 군 통합 170여 개로 대폭 늘렸고 시와 군의 경계선도 심하게 바뀌었다. 오죽했으면 이 지도에서는 '''아예 해방 전과 당시의 군 경계선을 같이 나타내고 있다'''(...) 현재는 절판.
3. 교통
도로망은 심각하게 안습인 수준이라 일단 기대하지 말자(...) 그래도 철도망은 은근히 잘 짜여져 있는 편. 남쪽으로는 옹진선 - 배천선, 해주에서 사리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황해청년선, 도 중서부를 가로로 관통하는 은률선과 장연선 등이 있으면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 황해북도의 동북부(이쪽은 아예 5개 군이 철도가 없다)를 생각해 보면 철도 환경은 일단 꽤 좋은 셈. 단 해주에서 거리가 꽤 되는 편이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도 은근히 많다.
4. 하위 행정구역
5.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좌측이 광복 직후, 우측이 현 북한에서 사용하는 행정구역.
표에서 기록하는 행정단위의 이동은 면 단위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면적의 단위는 ㎢이며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하였다.
6. 정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에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는 전부 폐지되고 이북 5도청에서 쓰고 있는 분단 직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가거나, 제3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하에서 설명하는 면의 배분 개념은 모두 광복 직후의 면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일단 황해남도의 모든 행정구역은 구 황해도에서 출발하였다.
- 해주시(海州市)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해주목으로 존재했던 유서깊은 고을. 벽성군에서 일부 면을 얻어서 면적을 넓혔다.
- 강령군(康翎郡)
조선시대 강령현이라는 독립된 고을로 존재하였으나 1909년 옹진군에 합병되었다. 1952년 구 벽성군의 남쪽 바닷가의 두 개의 면과 구 옹진군의 남동쪽 면 3개를 합쳐서 부활시켰다. 2지선 철도인 부포선이 이 군에서 시종착한다. 도청 소재지는 강령역에 인접해 있으며 부포선은 도 북서쪽의 신강령역에서 분기한다. 강령탈춤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풍천군이었던 곳이었으나 1909년 송화군에 합병되었다. 구 송화군의 북서쪽 임해 지역 근방의 섬을 제외한 면 6개를 분리해서 신설했다. 여담으로 저 과일군, 순 한글로 된 지역명이다. 즉 진짜로 과일이 많이 난다고 해서 과일군이다! 북한의 과일 생산량의 25%가 여기서 난다(…).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지나간다(구 철광선 부분).
- 룡연군(龍淵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장연군의 남서쪽 임해 4개의 면(이 중 2개는 일부분만)이 분리되었다. 지리적으로 해주에서 꽤 멀고 북한 교통의 핵심인 철도가 지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황해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과 몽금포가 여기 있다.
- 배천군(白川郡)
조선총독부가 멋대로 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탄생했던 연백군을 다시 북한이 원래대로 연안과 배천으로 쪼개는 과정에서 동쪽 10개 면이 배천군이란 이름으로 다시 복귀했다. 한자 음으로는 '백'천인데, 원래 관용적으로 '배'천이라 불려서 예외적으로 '배'천이라 읽는다. 옛날 사람들도 헷갈렸는지 민담에도 이곳 현감에 제수받은 사람이 "제가 이번에 백천 현감으로 제수받았습니다"라고 자랑했다가 집안 어른에게 자기가 갈 고을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고 욕 먹은 이야기도 있고, 흥선 대원군의 일화 중 이걸 '백천'이라고 읽었다가 대원군에게 망신당한 신정왕후 조씨의 친척 이야기가 야사에 남아 있다. 배천선의 종착지. 군청 소재지 역시 배천선과 매우 가깝다.
- 벽성군(碧城郡)
1938년 해주군 해주읍이 부(府)로 승격되자 나머지 읍면지역을 벽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벽성군은 현 황해남도의 면적의 약 1/5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군이었으나, 서쪽 끝부분의 2개의 면은 태탄군에, 남쪽 2개의 면은 강령군에, 북쪽 1개의 면은 신천군에, 동쪽 6개의 면은 청단군에, 가운데 1개의 면은 신원군, 해주시, 청단군에 떼어주었다. 그런데 그러고도 면이 5개가 남았다. 군 남쪽으로 옹진선이 지나가며 군청은 벽성역 근처에 있다.
- 봉천군(峯泉郡)
- 삼천군(三泉郡)
조선시대 문화현(文化縣)이라는 독립된 고을로 존재혔으나 1909년 신천군에 합병되었다. 문화 유씨(文化 柳氏)의 문화가 바로 이 동네다. 1952년 구 신천군의 서쪽 4개 면(2개는 일부분)과 구 송화군의 동남쪽 면 3개(1개는 일부분)을 잘라서 신설하였다. 군의 중심부는 은률선이 관통한다.
- 송화군(松禾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송화군의 서쪽 6개 면을 과일군에, 동쪽 3개 면을 삼천군에 나눠주고 남은 가운데 3개 면이 현 송화군이다. 삼천군과 마찬가지로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관통한다.
- 신원군(新院郡)
- 신천군(信川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신천군의 북쪽 3개 면은 안악군에, 서쪽 3개 면은 삼천군에 떼어주고 남은 8개의 면에 벽성군의 면 1개를 얻어서 개편된 행정구역. 역시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관통한다. 신천군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 안악군(安岳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안악군의 북쪽 절반을 은천군으로 할양해 주고 신천군에서 3개의 면을 받아서 현재의 안악군이 되었다. 그나마 도로망은 태탄군이나 룡연군보다는 훨씬 낫다.
- 연안군(延安郡)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해서 만들어 놓았던 연백군을 다시 연안과 배천으로 복구시키면서 구 연백군 서부 8개 면을 원래대로 연안군으로 다시 분리했다. 군 중심부를 배천선이 통과한다.
- 옹진군(甕津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옹진군의 서쪽 5개 면. 도청 소재지가 동쪽에 치우쳐 있고 해주시에서 은근히 먼 관계로 접근성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한국 전쟁 휴전 당시 여러 개의 섬이 남북을 왔다갔다한 관계로 당시에 가장 변동이 심했던 행정구역.
- 은률군(殷栗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1895년부터 1909년까지는 군의 일부가 장련군(장연군이 아니다)으로 분리되었던 적이 있다. 남부의 1개 면의 일부를 송화군에 떼어준 것을 빼면 거의 변한 게 없다. 은률선의 종착지. 유명한 서해갑문이 여기에 있다.
- 은천군(銀泉郡)
- 장연군(長淵郡)
고구려 때부터 장연군으로 불렸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원을 갖는다. 태탄군에 2개, 룡연군에 4개를 떼어 주고 남은 4개의 면을 장연군이라 칭한다. 장연선의 종점이며 장연역에서 군청 소재지까지는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다.
- 재령군(載寧郡)
- 청단군(靑丹郡)
1952년에 신설된 군. 벽성군의 동쪽 6개 면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배천선이 군의 남부를 통과하며 규모가 큰 저수지가 있는 것이 특징. 여담으로 한자만 놓고 보면 고스톱의 그 청단 맞다(…).
- 태탄군(苔灘郡)
7. 통일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부정하니, 통일 이후에는 전부 폐지하고 이북 5도청에서 쓰는 분단 직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가거나, 제3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을 듯하다.
북한의 황해도 분할이 상당히 괴악한데 분명 해주보다는 사리원 방면 접근성이 훨씬 좋은 재령, 신천, 은율 같은 지역들이 이상하게 황해남도로 묶여서 도청 소재지 한 번 가려면 멸악산맥을 넘어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황남-황북간 경계 조정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노령산맥이 전통적으로 호남을 남북으로 갈랐던 것처럼, 멸악산맥이 도계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1] 북한의 행정구역은 상당히 자주 바뀌는 편이고, 기존의 도를 분할한 것 외에 자강도, 량강도 등 아예 신설한 도 지명도 존재한다. 그 밖에 분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분할된 사례는 휴전선을 끼고 있는 강원도가 유일하다. [2] 근현대 이후 다른 도들을 남북으로 나누어 부르니 이쪽만 동서도로 이름 붙이면 일관성이 없어 보여서 이렇게 작명한 것일 수도 있다.[3] 남부 2개의 면만 이동[4] 동부 2개의 면만 이동[5] 일부 면적이 송화군 소속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면적이 줄어든 것.[6] 동남부 4개의 면만 이동[7] 북부 3개의 면이 이동[8] 서부 3개의 면이 이동[9] 북부 1개의 면만 이동[10] 서부 2개의 면만 이동[11] 동부 5개의 면이 이동[12] 중부 1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 구 면적은 불과 '''14.52㎢'''였다. 좌측 지도의 F 안의 조그만 동그라미가 해주시.[13] 동부 5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14] 남부 3개의 면이 이동[15] 동부 4개의 면이 이동[16] 동부 1개의 면만 이동[17] 동부 3개의 면이 이동[18] 겸이포읍이 승격됨. 지도에서 R로 표시된 부분 안쪽의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 송림시.[19] 양쪽 지도의 봉산군 구역 내에 있는 조그만 도시가 사리원시이다. 현재 면적 188㎢.[20] 남부 5개의 면이 이동[21] 북부 3개의 면이 이동[22] 서남부 1개의 면만 이동[23] 북서부 4개의 면이 이동[24] 남부 5개의 면이 이동[25] 북서부 2개의 면과 1개 면 일부가 이동[26] 중부 8개의 면이 이동[27] 동부 9개의 면이 이동[28] 서부 1개의 면만 이동[29] 북부 5개의 면이 이동[30] 북부 5개의 면이 이동[31] 동북부 1개의 면만 이동[32] 서부 2개의 면이 이동[33] 동부 6개의 면이 이동[34] 북부 1개의 면만 이동[35] 중부 1개, 남부 1개의 면이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