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군
安岳郡 / Anak County / 아사달 (고유어/지명)
1. 개요
안악군(安岳郡)은 북한 황해남도 북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재령군, 황해북도 봉산군, 황주군, 서쪽으로 은률군과 삼천군, 남쪽으로 신천군, 북쪽으로 은천군과 접해 있는 군이다.
2. 역사
대방군(帶方郡) 함자현(含資縣)이었고 고구려 시대에는 아사달이라고 불렸다.
안악 1,2,3호 고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들 고분은 완전히 도굴당하여 유골과 부장품이 없는 관계로 주인을 알 수 없다. 주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미천왕과 고국원왕 항목 참조.[1]
고려 초부터 존재했던 고을이며 조선시대에 황해도 안악군이 되었다. 구한말에는 신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진취적인 고장으로, 도산 안창호는 "우리 강토 13도마다 안악 같은 고을이 하나씩만 생겨도 이 나라의 문명은 10년 안에 일본을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1년 안악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광복 후 국토가 분단되면서 북한 땅이 되었다. 광복 당시 면적은 851㎢였으나, 1952년에 북한이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안악군의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은홍면, 대행면, 서하면, 안곡면, 용문면을 떼어 은천군을 신설하면서 328㎢로 면적이 축소되었다.
치하포 사건의 무대라고 한다.
3. 교통
도로는 51번 국도(대한민국 기준)가 지나간다. 광복 당시의 황해도 17군 가운데 철도가 지나지 않는 3군 가운데 하나이다. 나머지 두 곳은 산중삼읍으로 불리는 산간지역인 수안군과 곡산군.
그나마 도로망은 태탄군이나 룡연군보다는 훨씬 낫다.
4. 지리
평야가 많은 편이다. 유명한 산으로는 은율군과의 경계에 있는 구월산이 있다. 안악읍 북쪽에는 양산(陽山, 379m), 남쪽에는 남산(176m)이 있다. 광복 당시 군의 북쪽은 대동강을 끼고 평안남도와 접했으나, 지금은 은천군에 내어주었다.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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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악읍(安岳邑)
- 관할 리 : 비석(碑石), 남암(南巖), 남정(南井), 사현(沙峴), 서산(瑞山), 소천(小川), 수삼(壽三), 신장(新長), 어은(漁隱), 연곡(燃谷), 용석(龍石), 유성(柳城), 차신(車新), 판오(板五), 판육(板六), 판칠(板七), 판팔(板八), 평정(坪井), 해창(海倉), 훈련(訓鍊)
- 비석리에 읍사무소, 소천리에 군청이 있었다.
- 대원면(大遠面)
- 관할 리 : 덕산(德山), 가양(可陽), 굴륭(屈隆), 당오(堂梧), 당전(堂田), 망암(望巖), 복사(伏獅), 봉성(鳳城), 상산(上山), 송산(松山), 엄곶(嚴串), 원룡(元龍), 월암(月巖), 하금(下金)
- 안악읍에서 재령 가는 길에 있다. 안악 1,2호분이 있다.
- 대행면(大杏面)
- 관할 리 : 한봉(鷳峰), 광풍(光楓), 굴산(屈山), 생근(生芹), 석운(石雲), 송당(松堂), 월촌(月村), 저도(猪島), 적둔(滴屯), 창운(倉雲), 추산(楸山), 풍곡(楓谷)
- 북쪽은 대동강이다.
- 문산면(文山面)
- 관할 리 : 금강(金岡), 감문(甘門), 상당(上堂), 송간(松間), 신당(新唐), 신촌(新村), 안랑(安浪), 원성(遠城), 유성(楡城)
- 서하면(西河面)
- 관할 리 : 초정(椒井), 덕일(德日), 매천(梅泉), 복두(卜頭), 상보(上保), 상요(上要), 상촌(上村), 신장(新長), 중기(中基), 중도(中島)
- 북쪽은 대동강이다.
- 안곡면(安谷面)
- 관할 리 : 학포(鶴浦), 금정(金亭), 낙암(洛巖), 당석(堂石), 동양(東陽), 동파(東波), 만월(萬月), 봉곡(鳳谷), 북삼(北三), 상룡(上龍), 상사(上寺), 신덕(新德), 용천(龍泉), 장월(長月), 제중(濟中), 중하(中下), 학산(鶴山)
- 북쪽은 대동강이다.
- 용문면(龍門面)
- 관할 리 : 동창(東倉), 덕학(德鶴), 민화(玟花)[2] , 상덕(上德), 상무(上茂), 석양(石陽), 송곡(松谷), 신오(新梧), 용운(龍雲)
- 용순면(龍順面)
- 관할 리 : 유설(柳雪), 가정(柯亭), 노암(路巖), 신곡(新谷), 신율(新栗), 옥정(玉井), 유순(兪順), 장산(長山)
- 안악3호분이 있다.
- 은홍면(銀紅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