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주

 

김귀주 / 김구주
金龜柱
1740년 ~ 1786년
1. 개요
2. 생애와 주요 활동


1. 개요


조선 후기의 정치인. 본관은 경주(慶州).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오빠이다
김구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흔히 김귀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한자를 음독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龜이라는 한자가 거북 귀, 땅 이름 구, 터질 균이라는 3가지 음으로 읽히기 때문이며 오늘날에는 김귀주이라는 명칭이 유명하지만, 본인이 생존할 당시의 조선시대 사료에서는 공식 문서에서 주로 이름을 한문으로 표기해서 언문(한글) 표기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명칭이라는 것이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기에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으며 당대 기준을 중시한다면 김구주, 현대 기준을 중시한다면 김귀주로 읽으면 된다.

2. 생애와 주요 활동


민회빈 강씨의 신원을 주청하다 장살당한 김홍욱의 5대손이며,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耉)의 아들이다. 정순왕후 김씨는 그의 누이이다. 음서로 관직에 진출해 좌승지에 올랐으며 문과에 급제한 뒤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영조 37년, 사도세자가 평양에 몰래 여행 갔을 때 당시 정승이던 정휘량과 홍봉한이 이를 말리지 않고 영조에게 알리지도 않는다는 밀봉 상소를 영조에게 직접 올리려 했다. 이후 강원도 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외척당인 남당을 만들어서 당시 실권을 장악하던 북당의 홍봉한과 대립하였다. 이들은 세손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을 탄핵하는데 주력해 공홍(攻洪)파라고 불렸다. 이후 홍봉한을 정계에서 실각시키려 하였는데, 1770년 한유를 사주해 홍봉한을 탄핵했으며 세손이 영조를 수가하지 않는 틈을 타 정후겸과 함께 숙부이던 김한기가 영조에게 홍봉한이 세손을 제거하고 대신 은언군 인을 추대하려 한다는 고변을 한다. 홍봉한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청주에 부처되었으나 영조가 이내 혜빈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철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