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렉산드라

 

1. 소개
2. 생애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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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활동 당시 찍은 사진
김 알렉산드라(본명은 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1885~1918).

1. 소개


제정 러시아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한국 독립운동가이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관련기사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로 꼽힌다. 그녀는 한국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굉장히 이른 시간대에 활동하였다.
2019년에는 다음에서 김알렉산드라의 일생을 다룬 웹툰링크이 연재되었고, 2020년에 완결되어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1]

2. 생애


1885년 고려인 거주지 중 하나였던 시넬니코보에서 태어난 이후 아버지 김두수와 함께 러시아로 이민을 갔는데,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돌아가자 10살의 나이로 따라갔다가 아버지가 사망한다.[2]
이후 아버지의 러시아인 친구였던 표트르 스탄케비치라는 사람에게 입양되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결혼한 후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슬하에 아들 3명이 있다.
여기까지라면 평범한 한인의 삶이었겠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게 된 그녀는 결국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이혼하게 된다.
1914년 집을 나와 우랄 산맥 일대로 이주했는데, 철도노동자(중국인 조선인)들의 밀린 임금을 받아내는 등 통역사이자 노동 협상가 역할, 노동권 재판을 승소로 이끌었다. 그러다 1916년에 한 정당에 가입하게 된다. 이 정당이 다름아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이 이후의 행보도 비범하기 짝이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블라디미르 레닌'''과 협력 관계가 된 그녀는 극동 지역의 사회주의 확산을 위해 떠나게 된다. 먼저 독일의 밀정으로 오해받아 체포되어 있던 이동휘를 구명운동으로 석방시킨 그녀는 김립,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1918년의 일이다. 이때의 직위는 무려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인민위원". 비록 짧은 시간 존속했던 임시 조직이었지만,[3] 그녀는 '''한국계 최초의 외국 장관'''이다. 볼셰비키 측에서 "인터내셔널리스트"로 분류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볼셰비키당 하바롭스크 시위원회 사무국원(일부 국내 기록에서는 책임비서라고도 한다.)이었는데, 소비에트 러시아의 특성을 볼 때 김알렉산드라가 정말로 시위원회 사무국장, 책임비서(서기장)였다면 하바롭스크 시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으로 위협을 느낀 김알렉산드라는 6월부터 100여명의 조선인 적위대를 구성해 반일항쟁에 돌입했으며, 한인사회당 창당 단 5개월 만에 백군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1918년 9월 16일에 처형당하게 된다. 이때의 유언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그녀가 사형당할 때 마지막 소원이 '''"8보(步)만 걷게 해다오"''' 였다고 한다. "왜 하필 8보냐?"라고 물으니,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8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에 조선에 살고 있는 인민들,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라고 하면서 죽었다.

- 출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번역 일부 수정)

그녀의 삶을 조명한 방송

3. 평가


비록 30대의 나이로 일찍 사망해서 오래 활약할 기회가 없었지만, 김알렉산드라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 세력 내 공산주의 계열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공산주의자로 유명한 이동휘가 공산주의를 배우기도 전에 김알렉산드라는 극동인민위원회의 얼굴인 외교관이자 러시아 볼셰비키의 극동방면 지도자 중 한명이었다! 이동휘가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바로 김알렉산드라에 의해 석방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 최초의 공산주의자이기도 하고... 김알렉산드라가 사망한 뒤에 한인 공산당 세력은 둘로 분열되고, 심지어 자유시 참변,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등으로 나락에 이른다. 만약 김알렉산드라가 몇년만 더 생존했다면 독립운동사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역할과 행보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한국민족대백과에 쓰인 그녀에 관한 서술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공산주의를 추구한 이동휘와는 달리, 김알렉산드라는 처음부터 볼셰비키였다(...)'라고 쓰여 있다. 물론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볼셰비키 소속 공산주의 혁명가이긴 하였으나 독립운동에도 큰 족적을 남겨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인데, 한국에서 그녀가 여전히 공산주의 활동가로서 더 알려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마르크스가24번지에는 김알렉산드라의 기념비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1917∼1918년 이 건물에서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이 일하였다. 그는 볼셰비키당 시위원회 사무국원이며 하바롭스크소비에트 외무위원이기도 하였다. 1918년 그는 영웅적으로 죽었다.

[1] 저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 제주4·3사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만화를 그려온 김금숙 작가이다.[2] 그녀의 아버지 김두수는 러시아관리들을 위해 철도노동자에게 여러 언어를 통역해주는 통역사일을 했었다보니 한국어와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에도 능통했는데, 이 영향으로 김알렉산드라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러 외국어 사용에 능통했다고 알려져있다.[3] 정확히는 1920년 설립되는 극동공화국의 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