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롭스크
러시아의 도시 또는 그 도시를 포함하는 러시아의 지방.
1. 도시 하바롭스크
2014년에 공모를 거쳐 제정된 시가(市歌)이다.
1.1. 개요
러시아 하바롭스크 지방의 주도이며 2018년 12월 13일까지 극동 연방관구의 수도였다.기사
인구는 2016년 기준 611,160명이며, 극동 러시아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이다.[2] 위도는 북위 48.3도이다.
극동의 양대 도시 블라디보스토크가 항공자유화 이후 운수권이 필요없어지면서 관광산업이 급성장하자, 하바롭스크도 2017년 뒤따라 항공자유화가 시행되었다. 다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비해 거리가 약간 멀고 인지도가 낮다는 점 때문에 아직 블라디보스토크만큼 한국 항공사들이 대거 취항하지는 않고 있다.##[3]
1.2. 기후
상당히 추운 냉대기후를 보이는데, 1월 평균은 -19.8℃이고, 7월 평균 기온은 21.3℃다. 물론 비교적 저위도라 그래봤자 진짜 북극 근처인 사하 공화국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리고 겨울이 길고 춥다는 거지 짧고 더운 여름은 비교적 활동하기 쾌적한 편이다.
강수량은 700mm 정도이다. 아주 건조한 곳이다.
역대 최저 기온은 -40.0℃[4] 이며 역대 최고 기온은 36.4℃이다. 연평균기온은 2.3℃로 대충 한반도로 치면 개마고원과 비슷한 날씨이다.
연평균 습도 72%이며 여름은 80%로 다습하며 겨울은 70% 정도이다.그리고 연간 일조 시간은 2500시간 정도이다. 이 정도면 햇빛이 그래도 많이 들어오는 편에 속한다. 심지어 우리나라보다도 많다
만주의 일부인 외만주에 위치해 동위도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이며 전체적으로 중국 북동부 끝인 헤이룽장성 일대인 하얼빈, 치치하얼 등과 기후가 비슷하다. 애초 이 지역은 원래 연해주, 함경도 등과 함께 퉁구스인들의 고향에 해당하는 곳으로 여진족들이 이 지역에 주로 살아왔으며 이 지역의 여진족은 반농반목 생활을 하던 건주여진과 달리 진짜로 유목생활을 해 오던 야인여진이었다. 몽골어로는 야만인이라는 뜻의 우랑카이[5] 라 부르던 곳으로 문명화된 건주부와 달리 야인 부족들은 문명의 혜택을 못 봤다. 그러다가 건주부가 주축이 된 청나라 건국 후 여진족의 이름을 일괄적으로 만주라고 개칭했고 이후 청에 흡수되었다. 현재처럼 러시아가 영유하게 된 건 아편전쟁이 끝난 뒤 아이훈 조약에 의해서였다.
1.3. 역사
만주로 일컬어지는 중국 동북부 지역의 가장 귀퉁이인 우수리 강과 아무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아 오래 전부터 퉁구스족 등 동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며, 명대부터는 중국 사서에 교류 기록이 나온다. 특히 이 지역에서 살던 여진족은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과는 달리 진짜 유목생활을 하던 야인여진이다.
우수리 강 연안과 헤이룽장성 등은 춥고 건조한 황무지로 비도 잘 안 오고 날씨는 더럽게 추우며 이런저런 더러운 환경 덕에 야인여진은 유목생활을 고수해 왔다. 애초 야인(野人) 자체가 '''야만인'''을 뜻하는 멸칭으로 그만큼 못 쓰는 땅이라 문명 혜택을 못 본 셈이었다. 원래 퉁구스는 순록을 방목해 왔으며 야인여진은 돼지를 방목하기도 했다.
17세기 육로를 통해 동진하던 러시아 제국의 카자크 탐험가들이 아무르 강가에 세운 캠프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캠프는 당시 카자크의 지도자인 예로페이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이 이름이 쭉 내려오게 된다.
러시아와 청이 영토싸움을 많이 벌였던 곳으로,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네르친스크 조약에 따라 150여 년 동안 청나라에 복속되었으나, 1859년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열강의 침략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러시아는 아이훈 조약으로 이 지역을 되찾았다. 하바롭스크뿐만 아니라 연해주까지 청과 공동관리하기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이 조약 덕분에 건설된 것이다. 현재의 도시는 이때부터 유배 온 러시아인 죄수들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다.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의 극동지역 개발이 시작되자, 하바롭스크에 학자, 군인 등이 들어오게 되며 본격적인 도시 발전이 이루어졌다. 물론 개발 인력은 대게 시베리아로 유배 온 죄수들이었다. 시베리아는 중앙아시아 일대와 함께 제정 러시아의 죄수 유배지로 애용된 곳 중 하나로 굴라크는 원래 이때 유배지에서 유래했다. 당장 이르쿠츠크 등 다른 시베리아 도시들의 경우도 이 굴라크의 산물이었다.
20세기 초반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되어 극동의 부동항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하바롭스크를 가 보면 아무르 강가를 따라 아름다운 옛 러시아 도시의 느낌이 물씬 나는데 그것들이 다 이 시기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동유럽풍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더 가까운 곳에 블라디보스토크도 있지만, 거긴 군항 이미지가 강하고 도시도 좀 더 현대적이라 하바롭스크의 풍경이 더 아름다운 편이다.
적백내전 때는 한동안 일본군이 점령하기도 했다. 왜 일본이 점령했냐면 러시아 백군 반공세력들이 일본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답하여 시베리아 출병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선 한인들을 일본군이 대량학살한 신한촌 학살이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소련 적군 세력이 반격하여 일본군은 전원 패퇴했고 백군 세력도 소멸되었다. 이 때 밀려난 백군들은 미국, 영국, 일본 등에 망명하여 망명 러시아인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는데 특히 뉴욕에 많이 정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일본 제국 전범들을 상대로 연 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이 열렸던 장소이며 이 때문에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만주국의 붕괴 이후 1950년까지 5년간 머무르기도 한 곳이다. 만주국 황제 아이신기오로 푸이는 엄연히 전범이 맞았으며 일본으로 탈출한 후 미국에 항복하려 했으나 소련군 공수군이 푸순 비행장을 접수하는 바람에 실패, 그대로 포로로 잡혀 이 곳까지 끌려온 것이었다. 이후 그는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어 중국의 새 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으로 조용히 살다 1967년 노환으로 자연사했다.
소련 시절만 하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큰 도시였으나, 소련의 해체 이후 인구가 줄어서 현재 극동 연방관구에서는 인구수 기준으로 2위를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의 위치는 프리모리예 지방 남쪽 동해안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행정적,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 연방관구 행정청인 대통령 전권 대표부는 하바롭스크에 있었는데, 결국 2018년 12월 13일 대통령 서명으로 전권 대표부 소재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기게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 특히 20세기 초반 독립운동에서 많이 언급되는 도시이다. 고려공산당의 전신인 한인사회당이 하바롭스크를 기반으로 활동하였고,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의 많은 역사적 장면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이며 독립운동가였던 김알렉산드라가 이 도시에서 활동하였으며, 마르크스가 24번지에 그녀의 영웅적 생애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북한은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으로 선전하지만 실제 태어난 곳은 하바롭스크이다. 정확히는 하바롭스크 인근 소비에트 연방 극동군 88여단 붉은 깃발 부대에서 태어났다.
1.4. 관광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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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작지 않지만 관광객이 구경할 만한 곳은 중심가에서 걸어서 다니기 좋은 정도다. 관광지로 이름높은 도시는 아니지만 오래된 동유럽식 건축물로 가득하고 아무르 강과 어우러져 있어서,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 이런 도시가 있었다면 비교적 흔한 서양 도시였겠지만 한국 근처에서 이 정도 거리에 이런 도시는 몇 없다.
지리 특성상 블라디보스토크와 가깝고,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보니 블라디보스토크 가는 김에 하바롭스크까지 찍고 가거나, 횡단철도 여행 시 꼭 한 번쯤 경유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타고 반나절 가까이 걸리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소비에트 특유의 칙칙한 콘크리트 건물과 동유럽풍 건물이 반반인 곳이면, 여기는 제대로 동유럽풍 건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도시가 작아서 장기간 여행하기엔 볼거리는 적은 편이다.
관광지로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가로수길, 레닌 광장, 로토스(Лотос) 백화점, 굼(ЦУМ) 백화점, 중앙시장, 황금빛 양파지붕의 예수 변모 성당이 있는 명예 광장 외에도
- 성모승천 사원이 있는 콤소몰 광장: 위 사진 왼쪽 맨 끝에 살짝 보이는 곳이다. 파란색 지붕의 높은 건물이 성모승천사원.
- 아무르스키 강변공원: 콤소몰 광장에서 바로 직진해서 계단을 내려가면 산책로로 들어간다. 기나긴 아무르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길이가 꽤 되는 편이니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자. 계단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FC SKA 하바롭스크의 홈 구장인 레닌 스타다움으로 연결되고 왼쪽으로 가면 예수변모성당 쪽으로 연결된다.
- 극동군관구 군사역사박물관: 하바롭스크에 사령부가 위치한 러시아 육군 동부군관구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2010년에 극동군관구가 해체되고 동부군관구로 재개편되었다. 다만 전통 존중 차원에서 박물관 이름에는 극동군관구를 그대로 남겨 놨다. 한 때 예산 감축으로 폐쇄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으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취임하며 버프를 엄청 받고 있다. 그 덕인지 전시물들의 양과 퀄리티는 상당히 우수한 편. 17세기 하바롭스크의 태동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콜렉션을 자랑한다. 13개의 전시실 중 마지막 전시실에는 극동군구사령부가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우리의 제1야전군사령부와 조선인민군 육군에서 선물한 기념품도 있는데 둘이 같이 놓여 있어 뭔가 상당히 묘하다. 사진의 콤소몰 광장 끝에서 우회전해서 내려가다 보이는 밝은색 벽돌 건물이다. 참고로 이 건물 자체도 100년이 훨씬 넘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하바롭스크 향토 박물관: 하바롭스크 시가 속한 하바롭스크 지방(Хабаровский Kрай) 의 역사, 생물, 산업 등을 소개한다. 유명한 전시물로는 야외 전시관의 아무르강에서 출토된 고래 골격이 있다.
- 하바롭스크 시 역사박물관: 초콜릿처럼 생긴 에네르기야 플라자 빌딩 뒷편에 있다. 이 박물관이 하바롭스크 시의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이다. 여담으로 정문에 푸틴 대통령이 극동 지역을 방문했을 때 지시하여 건설되었다는 현판이 붙어 있다.
- 극동예술박물관: 위에서 언급한 군사박물관의 바로 맞은편에 있다. 규모는 작으나 그 유명한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소장품을 순환전시하고 있다.
- 고고학 박물관
- 아무르강 어류 박물관
- 아무르강 유람선
- 프리아무르스키 동물원(원어명은 Приамурский Зоосад): 약간 교외 지역에 위치한다. 동물을 전시하는 동물원 본연의 기능도 수행하지만 부상 등으로 야생에서 살기 부적합한 야생동물들을 포획 및 치료해서 다시 방사하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명예 광장에 위치한 구세주 성당은 모스크바의 구세주 성당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 이사악 대성당 다음으로 러시아에서 3번째로 큰 정교회 성당에 속한다.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 이어 4번째로 크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 정도 사실이다.
성당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성당 뒤로 보이는 아무르강 남단과 하바롭스크를 창건한 카자크 탐험가 예로페이 하바로프의 이름을 딴 도시 최고의 아이스하키장 예로페이 아레나가 보이는 하바롭스크 남부 지역의 전경도 일품. 날씨가 좋은 봄/가을에는 여기서 결혼사진을 찍는 신혼부부들도 자주 보인다. 여느 종교시설처럼 입장 시 복장에 제한이 있으니 여기를 방문한다면 경박한 옷차림은 지양하자. 그렇다고 정장을 차려입으라는 건 아니지만 셔츠에 긴 바지 정도면 무난하다. 여성들의 경우 민소매 옷이면 가디건을 걸쳐 어깨를 가려야 하고 남성의 경우도 반바지나 샌들 등은 입지 말아야 한다.
토요일 낮이나 주일 낮에는 미사에도 참여해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특히 주일미사. 수염을 길게 기르고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인 검은 사제복을 입으신 사제님들이 미사를 진행한다. 물론 미사 전례언어는 자비없는 러시아어 폭탄이기는 하지만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한국의 기독교와는 또 다른 정교회식 미사를 참예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시내에 천주교 성당은 없지만, 정교회의 성찬례는 가톨릭의 미사와 대등하다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부터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는 여기로 가도 된다! 천주교 신자라면 엄근진한 분위기에 어느 정도는 익숙하겠지만 비신자 또는 천주교 신자라도 정교회 특유의 매우 아주 엄근진한 분위기와 못 알아들을 교회 러시아어+다스베이더 같은 검은 사제복의 사제님들의 포스에 괜시레 주눅이 들 정도. 그런데 그냥 맹하게 구경만 하고 있어도 딱히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적당히 옆 사람 봐가면서 성호 그으면 나도 긋고 하는 식으로 따라하면 OK이다.
각종 이콘과 성화, 그리고 금박으로 장식된 성당 실내는 화려함과 장엄함을 지향하는 러시아 정교회 실내양식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냥 봐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햇볕이 좋은 날에는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실내의 그 휘황찬란한 모습에 처음 보는 이들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만한 장관. 아쉽게도 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지만... 그러나 기념품점에 계신 수녀님 또는 수사님께 예의 바르게 말만 잘 하면 웬만해선 허락해 주시는 듯 하다. 또한 러시아 정교회 느낌이 물씬 나는 기념품 또한 살 수 있는데 엽서나 이콘, 여권 커버, 수호성인의 미니 이콘 목걸이, 책자, 성가 CD 등을 살 수 있다. 특히 이콘을 살 계획이라면 여기서 사는 게 제일 좋다. 어지간한 기념품점에서 파는 이콘들보다 퀄리티는 훨씬 좋으면서 가격은 저렴하다. 시간을 잘 맞춰서 가면 성당 옆의 신학교와 성당에서 여러 사이즈의 종이 만드는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종소리가 아주 아름답다.
여기를 방문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성당 정면 기준 광장 좌측편에 예배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거지들이 있다. 실제로 성당 근처에 가 보면 무표정한 얼굴의 거지들이 구걸하고 있는데 무시하고 지나가도 가끔 부담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이게 요구하는 거지들도 있다. 대부분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되지만 간혹 외국인이나 젊은 여성, 노인 등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구걸하고 만약 돈을 안 주면 화를 내면서 시비를 걸거나 심지어 돈을 줬는데도 대놓고 윽박지르며 더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실제 사례로 러시아 부활절인 파스하 기간에 여기를 방문했을 때 성당에서 나오던 여성 방문객에게 돈을 요구했다 무시당하자 예수님이 부활하신 오늘 같은 날에 남에게 이렇게 인색하게 굴 수가 있냐!(...)란 아주 훌륭한 개논리를 펼치며 역으로 갑질하는 거지를 본 적이 있다. 성당 측에서도 쫓아내자니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라 골칫거리인듯.
명예 광장에는 성당 뿐만 아니라 대조국전쟁에서 전사한 하바롭스크 출신의 전사자들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추모하는 영원의 불꽃과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이 있다. 이름 그대로 1년 365일 내내 타오르는 불이다. 아무리 비바람이 세게 불어도 절대 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약 3만 3천명의 이름이 새겨졌다고 한다. 잘 찾아 보면 김, 최, 박 등 한국인의 성 또한 볼 수 있다. 추모의 벽 뒷편에는 또 다른 추모비가 있는데 이 추모비에는 2차대전 이후 발생한 전사자들의 이름과 전사한 장소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성당과 추모의 벽 사이에는 하바롭스크 시의 수훈내역이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문서 상단의 세 번째 사진 참고. 왼쪽 상단에 예수변모성당이 있고 우측 하단의 반원형 건물이 추모의 벽이며 그 오른쪽에 2차대전 이후 전사자 추모비가 있다. 성당과 추모의 벽 사이에 있는 네모난 건물은 극동 TV 방송국. 마지막으로 방송국 왼쪽에 보이는 길쭉한 탑 같은 것이 하바롭스크 시 수훈 기념비이다.
1.5. 교통
한국에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오로라 항공의 직항을 이용할 수 있다.
원래 아시아나항공이 하바로프스크에 취항하여 한국 국적기로도 다닐 수 있었으나 한국 국적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의 인천 노선이 2019년 8월 28일 비행을 마지막으로 운휴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취항하지 않는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는 대한항공, 이 도시와 사할린은 아시아나로 나뉘어 있었다.
항공편 외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오는 방법이 보편적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행 열차를 타면 11~12시간이나 걸리지만 매일 3번 이상 침대열차가 다니기 때문에 밤귀가 밝은 사람이 아니면 편하게 침대에서 자면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타는 경우도 있는데 이 쪽 구간 차창 밖 풍경은 서시베리아 구간에 비해 광활한 느낌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은 한국 숲과 비슷한 온대림 지역이고 좀 더 서쪽으로 가야 시베리아스러운 자작나무 타이가 지대가 시작된다. 애초 원래 만주 자체가 남시베리아의 일부였으며 당연히 남시베리아는 한국 북부 지역이나 산간지역과 비슷하다. 타이가 지대는 좀 더 북쪽에 가까운 노보시비르스크 쪽으로는 가야지 나온다.
요금은 침대 등급에 따라 900~1만 루블 정도인데, 2017년 기준 한화로 17,000원~20만 원 정도다.
시내교통으로는 버스와 트롤리버스(무궤도전차)가 있다. 버스는 주로 에어로시티, 카운티 등 한국제 중고차량이 많이 쓰이며 트롤리버스는 그보다도 더 낡은 차량이 다닌다. 현지인들은 극동 지역답게 일제 중고차들을 자가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1.6. 이야기거리
극동 러시아 교통의 중심 답게 교통부장관, 철도청장을 배출한 극동교통대학교[6] 가 위치해 있으며, 매년 북한 평양교통대학교에서 수십명의 학생들이 유학을 온다. 여담으로 현지인들에 따르면 여기가 하바롭스크에 위치한 대학 중 입결이 제일 높다고 한다.
태평양국립대학교[7] , 극동국립인문대학(ДВГГУ)이 있어서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극동국립인문대학은 2015년에 통합되었다고는 하는데 현지인들은 그냥 옛날 이름 그대로 '데베게게우' 라고 부른다. 건물 외벽에 아직 간판도 그대로 붙어 있다. 다만 학교 내부 구성원들끼리는 ПИ-ТОГУ(삐또구)라고 부르기는 한다. 한 때 극동 지방에서 가장 큰 국립대학교였으나 블라디보스토크에 극동연방대학교가 생기며 이것도 옛말이 됐다.
옛날에는 북한에서 유학을 생각하는 수재들이 모스크바까지 가기가 부담스러울 때 차선책으로 많이 선택해서 유학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도 그런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유럽 러시아인 모스크바보다 더 가깝고 육로로 왕래도 가능한 만큼 부담이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측에서 설립한 교육기관도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설립한 한국교육원이다. 1997년 8월에 개원했으니 의외로 꽤 오래 된 편. 이 곳은 2018년까지는 레닌 거리 19번지에 있었으나 2019년 1월에 라보치 가라독 거리[8] 13번지로 이전했다.
최근 한-러 교류가 늘어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대상인 한국계 러시아인 즉 고려인 수강생뿐만 아니라 현지 슬라브계 러시아인 수강생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하바롭스크 유일의 대한민국 정부 기관이란 특성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주 하바롭스크 대한민국 영사관으로서의 기능도 겸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서 오는 순회영사가 여기서 업무를 수행한다. 교육원 홈페이지에서 순회영사 일정 또한 안내한다. 하바롭스크 한국교육원
현행 러시아 최고액권이 하바롭스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 루블 참조.
러시아의 전설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출생지이다. 그는 출생만 여기서 했지 아주 어릴 적에 몸이 자주 아파서 지구 반대편 러시아 남부의 스탈린그라드[9] 로 이사했기에 사실상 유럽 러시아에서 자라서 이 곳에 대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
현 러시아 최고의 랩퍼 중 한 명인 슬라바 KPSS[10] 가 이곳 출신이다.
러시아 프로축구 구단으로 하바롭스크를 연고로 하는 FC SKA 하바롭스크는 2017년 1부 리그로 승격했다. 2017-2018 시즌부터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다양한 팀들과 원정 경기를 가진다. 만약 하바롭스크가 모스크바를 연고로 하는 CSKA 모스크바와 원정 경기를 치르거나 그 반대로 CSKA 모스크바가 하바롭스크로 원정을 오려면 양쪽 모두 대략 편도 6,100km 이상을 이동해야 한다. 이미 거리부터가 어지간한 해외원정급인데 양 도시의 시차는 무려 7시간이나 된다. 그리고 FC SKA 하바롭스크는 2017~2018 시즌에서 그야말로 먼지나게 탈탈 털린 후 16개 팀 중 16위, 총 2승이라는 안습한 최종 스코어와 함께 한 시즌만에 2부 리그로 광탈당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제일 빠른 우리로 치면 서대동부 급에 해당하는 001М 또는 002М편 열차를 이용해도 4~5일이 걸린다. 두 열차는 노선이나 정차역에 차이가 없고 시발역만이 다르다. 001M편은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역 행, 002M편은 블라디보스토크 행이다. 그리고 하바롭스크 역은 필수정차역이다.
아에로플로트에서 운항하는 모스크바-하바롭스크 직항편 비행기를 이용해도 7시간 45분이나 걸린다. 이게 얼마나 긴지 분명히 국내선이지만 기종을 주로 국제선에서 뛰는 보잉 777, 그것도 '''300-ER''' 모델을 메인으로 투입한다. 아에로플로트에서 항공편을 검색해보면 777 아닌 걸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 재미있는 점은 인천-하바롭스크 구간의 아시아나항공 OZ571/OZ572편은 에어버스 A321을 투입하기에 만약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모스크바로 간다면 국내선에서 국제선보다 더 큰 기체를 타는, 그야말로 러시아식 유머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김정일이 태어난 도시이니만큼 도시 여기저기에서 북한과 관련된 것들을 볼 수 있다.[11]
북한 영사관이 있다. 정식 명칭은 '로씨야련방 하바롭스크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령사관 지부'이다. 디코폴체프 거리 28번지(ул. Дикопольцева, 28)에 있는데 명색이 영사관인데도 주변의 일반 가정집과 차이가 거의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거기다 이 거리에만 주변에 비해 유난히 높은 나무들이 많아서 마당에 세워둔 인공기도 잘 보이지 않는다.사진 영사관 앞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북미정상회담, 평양 시내 전경, 열병식, 미사일 발사(!) 등을 담은 온갖 북한 국정홍보용 사진이 러시아어 설명과 함께 걸려 있다.
한국 정부도 하바롭스크에 영사관을 지으려 했으나 북한이 '''불구대천지의 원쑤 남조선 역적패당 놈들의 령사관이 감히 우리 민족의 태양이자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지께서 탄생하신 성지 하바롭스크에 들어오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며 게거품 물고 반대해서 물거품이 되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물론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김정일의 출신지를 백두산 밀영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므로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재외선거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서 해야 하는 하바로프스크나 우수리스크 교민들의 불편 때문에 하바로프스크에도 총영사관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아무르스키 강변공원에는 옛날에는 사형장이었던 자리에 세워진 전망대가 있는데 이 전망대 바로 옆에 김정일의 방문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있다. 검은색 대리석에 북한 특유의 글씨체로 적힌 내용이 금색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누가 매일 닦기라도 하는지 주변의 다른 표지판들은 먼지를 뒤집어써서 후줄근해도 혼자 일 년 내내 반짝반짝하다. 한글로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위원장이신 김정일동지께서 2001년 8월 17일 하바롭스크시를 방문하시였다."'''라고 쓰여져 있으며 친절하게 러시아어로도 쓰여져 있다. 이 표지판은 김정일이 사망한 지 3년이나 지난 후이자 2001년 방러 13년 후인 2014년에 세워졌다.
별로 큰 도시도 아닌데 북한 외화벌이용인 북한식당도 2군데나 있었다. 한때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을 때는 한국인 손님을 안 받았지만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까지 하며 다소 완화되고는 또 받았었다. 물론 가격 대비 퀄리티는 해외의 북한 외화벌이용 식당이 다 그렇듯 영 좋지 않았다. 애초에 현지인들도 그냥 호기심에 몇 번 가 보는게 다거나 아니면 북한 비즈니스 파트너와 같이 가거나 했으면 되었다. 2018년 12월을 기점으로 모두 없어졌다.
아무튼 북한과 거리가 가까운 거점도시다보니 여기저기서 북한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꾀죄죄하다 못해 그야말로 거지꼴과도 같은 북한 노동자들은 꽤 자주 보이는 편이고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빨간 김일성 뱃지를 단 북한 사람도 간혹 보인다. 이 사람들은 영사관 직원들이다.
참고로 자주 겪을 수 있는 상황으로, 북한 노동자들과 버스나 노면전차를 같이 타고 가다 당신이 대한민국 국민인걸 눈치채면 대놓고 빤히 쳐다보기도 하는데 다소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말로만 듣던 '''남조선 사람'''을 봐서 신기해서 그런 것 뿐이다. 일은 일대로 뼈빠지게 하고 번 돈은 거의 다 뺏기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이니 그냥 '소 닭 보듯' 하고 지나가는게 답이다.
여기도 러시아 극동 지방 도시들이 거의 그렇듯 개인 차량은 일제 중고차량이 많은 편이나 요즘은 현대 솔라리스 등의 한국 브랜드의 수출형 신차나 국산 중고차도 많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기아 스포티지가 중고차로나 신차로나 자주 보이는 편이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다 보니 대부분 4WD 사양이다. 그 외로는 아반떼 HD나 MD, 그랜저 HG 등도 보인다. 이 추운 동네에서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S를 타고 다니는 용자도 있었다.
버스는 한국제 중고차 버스에 더러 중국제/유럽제 신형 버스, 그리고 80년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구형 러시아제 버스가 가끔 섞여 있다. 물론 절대 다수는 한국산 버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한국 여기저기서 온 버스 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청담어학원 데칼이나 서울 마을버스 도색을 한 카운티, 삼성전자 통근버스, 대구 버스 309, 부산 시내버스, 심지어 진주시민버스나 G버스 데칼을 그대로 붙인 채 돌아다니는 한국화이바 프리머스도 보인다. 왜 재도색을 안 하냐면 새로 도색하는게 비용도 만만찮고 귀찮기도 하거니와 '한국산' 버스라는 걸 승객들에게 어필하려고 일부러 한글 데칼과 한국 도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면이 있다. 물론 자기 취향대로 완전히 재도색 해서 다니는 기사도 있긴 하다. 요금은 무조건 현금이었으나 현재 카드결제도 가능하다. 근데 그 카드결제라는게 한국의 티머니, 캐시비 같은 교통카드가 아니고 스베르방크, 가즈프롬방크 등 로컬 은행의 카드를 통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러시아 카드들은 NFC가 되기 때문에 터치 결제가 가능해서 차장들이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결제한다. 허나 여행객이 카드나 통장 만들기엔 상당히 까다로운 지라 그냥 현금 결제를 하자. 금액 차이도 없다. 물론 갈아탈 때마다 새로 내야 하며 환승제도는 도입되지 읺았다. 그나마 요금이 싸니까 몇 번 갈아타도 타격이 그리 세지는 않은 편이다.
국내에서나 중국에서는 진작에 사라진 안내양이 여기는 아직도 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기운 센 러시아 아주머니들이지만 가끔씩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할 미모의 젊은 여성이나 한 덩치 하시는 아디다스 츄리닝 입은 아저씨일때도 있다. 이들 버스 승무원들은 승객에게서 돈을 받고 잔돈과 버스표를 주는데 만약 1000 루블 같은 고액권을 꺼내면 차장님의 잔뜩 찌그러진 표정과 함께 제정신이냐, 또는 소액권 좀 갖고 다니란 폭풍 갈굼을 세트로 먹으면 다행이고 정말 재수 없으면 거스름돈 없다고 강제 하차당할 수 있으니 동전이나 소액권을 미리 준비해두자. 그럴만도 한 게 안내양 입장에서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거스름돈으로 줘야 할 소액권이 뭉텅이로 빠지는 건데 좋은 소리 할 리가 없다. 대부분 사람들의 경험 상으로는 500 루블이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버스나 노면전차 표에 관한 재미있는 미신이 있는데, 표를 받으면 6자리 티켓 번호가 찍혀 있다. 이 번호를 반으로 나눠 앞의 3자리, 뒤의 3자리를 모두 더해서 두 개가 같은 숫자가 나오면 그 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들 말한다[12]
그리고 버스 말고 노면전차도 다니는데 아직까지 지하철이 없어서 이 노면전차가 도시철도이다.
2020년 9월 17일에 하바롭스크에서 김정일 방문 기념비 제작식이 열렸다.#
중국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병사들이 이곳 기지에서 탈륨을 오남용하기도 했는데, 자세한 건 '탈륨' 문서의 '사례' 문단 참고.
2018년 4월 11일, KFC가 개점하였다. 러시아 성탄절인 2021년 1월 7일 기준으로 현재 4개의 KFC 지점이 운영 중에 있다. KFC가 생기지 전까지 이곳만의 햄버거 체인점만 있었다.
2020년 12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 다음으로 극동연방관구에 속해 있는 도시 중에서는 맥도날드 지점 2개가 개점하였다.#(러시아어)
2. 하바롭스크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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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 크라이의 위치(붉은색)
하바롭스크 크라이는 러시아의 극동연방관구에 위치한 크라이[13] 이다.
주도는 위에 서술된 하바롭스크다. 주의 이름과 주도 이름이 겹치는 곳이다.
원래 이 주 일대는 외만주라 불리는 곳으로 만주의 일부이다. 그래서 말갈, 여진족 등 퉁구스 종족들이 원주민이다. 땅이 그냥 헤이룽장성과 이어져 있으며 당연히 식생 등도 똑같다. 식생만 보면 한국인들은 오히려 북한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하다. 하바롭스크 크라이 북부는 러시아 극동 지방에 해당된다.
주의 남동쪽은 동해, 주의 북동부는 오호츠크 해에 접해 있고, 그 사이의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사할린 주와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해저터널이나 연륙교도 구상되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주요 도시로 주도인 하바롭스크(58만), 콤소몰스크나아무레(26만)가 2대 도시이고, 그 외에 아무르스크,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 소베츠카야가반 등은 인구 2~5만 정도의 한국으로 치면 읍급 도시들이다.
인구가 100만명이 훨씬 넘지만, 워낙 땅덩이가 커서 인구밀도는 채 2가 되지 않는다. 원래부터 이쪽은 빈땅으로 유명했으며 워낙 척박해서 개척이 쉽지 않다.
주민은 대부분 러시아인이지만,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고려인도 거주하고 있으며, 나나이족, 우데게족 등 퉁구스계통의 주민들도 소수 거주하고 있다. 나나이족들은 하바롭스크 크라이의 나나이스키 군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이 나나이족은 중국에서는 혁철족이라 부르는데 야인여진의 후손들로 농경을 겸한 건주여진과 달리 순수 유목민(정확히는 어렵, 어로 생활도 겸하는 수렵채집인)으로 오래 남아 있었다.
2020년 러시아 자유민주당 소속 세르게이 푸르갈 하바롭스크 지방지사가 무려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다 #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7월 18일에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큰 시위가 다시 벌어졌다.#, ## 이후, 푸르갈을 해임하고 같은 자유민주당의 의원을 권한대행으로 임명했다.# 항의시위는 5주째 이어졌다.#
2020년 하바롭스크 시위 참조.
러시아가 2035년 완공을 목표로 사할린과 하바롭스크를 잇는 철도 교량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3. 스트라이커즈 1945의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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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비행선이며 무려 6개의 형태를 가졌다. 그리고 4번째 형태를 파괴하면 비행선의 앞 부분이 펼쳐진 뒤, 본체로부터 떨어져나와 거대한 독수리 모양의 비행로봇으로 변형하며, 이후 작품인 2, 플러스에서도 중간 보스로 재등장 한다.
4. 월드 오브 워쉽의 10티어 소련 해군 구축함 하바롭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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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건조되지 못한 1936년의 계획함이나, 선도구축함 설계 주제에 50 mm 측면장갑과 140 m의 길이를 자랑하는 당대 경순양함에 가까운 덩치이다. 항목 참조.
[1] 보리(bó lì). 청조 때 부르던 이름.[2]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면 12시간이면 갈 수 있다.[3] 맞물려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국제 관광이 침체되면서, 이전의 블라디보스토크처럼 유행을 타려면 더 시간이 걸릴 듯 하다.[4] 2011년 1월 14일에 기록되었는데, 이 한파가 다음 날인 15일에는 북한 지방, 16일에는 우리나라 중남부 지방 곳곳으로 옮겨 갔다.[5] 오랑캐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올랑합이라 불렀다. 병자호란 직후 청은 자신들 건주여진에 적대적으로 일관하던 이 야인여진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해 올랑합에서 받던 조공은 사라졌다. 그 전까진 올랑합 즉 야인여진은 류큐와 함께 조선에 조공을 해 왔다. 이후 강희제 처세 때에 팔기군의 원정으로 올랑합 부족은 완전히 청에 흡수되어 자취를 감추었다.[6] 러시아어로 ДВГУПС, '데베게웁스' 라 읽는다.[7] 구 하바롭스크 기술 종합대학. 지금은 ТОГУ, 또구 라고 부른다.[8] Улица Pабочий Городок / Ulitsa Rabochiy Gorodok[9] 지금의 볼고그라드이다.[10] Слава КПСС (Slava KPSS)[11] 북한은 공식적으로 김정일의 출신지를 이곳이 아닌 백두산 밀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당장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의 날씨 예보를 보면 평양 다음으로 백두산 밀영의 날씨를 소개한다.[12] 예를 들어158/833 또는 416/065 등[러시아어] '''Habarovskii krai'''[13] 러시아어로 지방을 의미한다. 주(область)와 동등한 행정구역이나 주로 변방지역에 설치된다. 흔히 '변경주'로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