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축구)

 


'''경남 FC 전력강화실장'''
''' 김영근
(Kim Young Geun)
'''
<colcolor=#fff><colbgcolor=#e83827> '''생년월일'''
1978년 10월 12일 (46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이천시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학력'''
이천실업고-경희대
'''종교'''
개신교[1]
'''소속팀'''
'''대전 시티즌 (2001~2007)'''
광주 상무 (군복무) (2006~2007)
경남 FC (2008)
BCC FC (2011)
방콕 FC (2012)
지도자
대전 시티즌 스카우트 (2014~2018)
대전 시티즌 2군 코치 (2015)
대전 시티즌 유소년 총감독 (2018)
대전 시티즌 스카우트 (2019)
경남 FC 전력강화실장 (2020~)
A매치
1경기 / 0골

1. 소개
2. 선수 시절
3. 국가대표
4. 지도자
5. 여담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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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현역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2. 선수 시절


[image]
2001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을 떠난 서동원의 공백을 잘 메웠고, 입단 첫해부터 32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는 등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하였으며, 이후에도 대전에서 뛰어난 헤딩과 대인방어 능력을 바탕으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감초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었다.
특히 상대보다 머리가 밑에 있던 적이 거의 드물었다는 말이 있을만큼 공중볼 지배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위의 사진은 현재 남아있는 김영근이 상대보다 머리가 밑에 있는 유일한 사진이다.[2]
이런 것 외에도 김영근이 수비의 최일선에서 상대 공격수들을 압박하면서 대전의 에이스 이관우의 수비부담을 줄여주었으며, 이를 통해 대전은 이관우를 중심으로 한 더욱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2006시즌을 앞두고 광주 상무에 입단해 군복무를 해결했다. 전역 후 당시 대전의 감독이었던 김호가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나서면서 재계약 협상에 난항을 겪었으며, 2008년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경남에서는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단 1경기만을 출전하고 1시즌만에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


2000년 LG컵 4개국 친선대회에 참가하는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며 처음 국가대표로 승선하였고, 마케도니아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날 경기가 국가대표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지도자


[image]
이후 태국으로 건너가 배성재 감독과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병행하였고, 잠시 현역으로 복귀해 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강정훈의 축구교실서 유소년지도를 맡기도 하였다.
2014년 대전 시티즌의 스카우트직에 취임하며 친정팀 대전에 복귀하였으며, 대전 시티즌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팀의 두번째 우승을 공헌, 김은중과 함께 대전의 두번의 우승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 되었다.[3]
2015년 한해동안 잠시 대전의 2군 선수들 코치를 맡기도 하였다.[4]
이후 2016년부터는 다시 스카우트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하지만 2018시즌 중반 스카우트에서 유소년 총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하였는데, 이는 2018년 과거 감독으로서 자신을 방출시켰던 김호가 구단의 대표 이사로 새로 부임하면서 둘의 불편한 관계에 놓임에 따라 사실상 김영근 본인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보직 변경이었다.
2018시즌을 끝으로 대전 구단을 떠났지만 이후 김호 대표 이사와 고종수 감독이 구단을 떠난 후 새로 부임한 최용규 신임 대표 이사가 부임하면서 신설한 선수단운영위원회에 합류해 스카우트로 재부임하였다.
2019시즌을 끝으로 대전이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어 재창단되면서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에 나섬에 따라 대전을 떠나 경남 FC의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하였다.

5. 여담


[image]
  • 2003년 당시에는 흰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도 하였다.
  • 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을 만큼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6. 관련 문서




[1] 장로교[2] 사진 속 주인공은 도화성이다.[3] 다만 김은중은 두번의 우승을 모두 선수로 경험하였다.[4] 이 당시 R리그는 폐지되있는 상태여서 여기서 말하는 2군 선수는 사실상 전력외 비주전 선수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