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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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경기도 남동부에 위치한 시. 경기도 동남부에 치우쳐 있으며 경기도 동으로는 여주시, 서로는 용인시와 안성시, 북으로는 광주시, 남으로는 충청북도 음성군과 인접해 있다. 수도권이지만 인구는 약 21만 명으로 중소도시이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여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로 많은 제조업 공장과 물류창고들이 위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의 거리가 '''경기도 외곽치고는 가까운 편'''이다. 잠실까지 45km 정도 나오고 강남역으로 진입하는 데도 최단거리 기준으로 50km이면 충분한데 경기도 맨 변두리치고는 서울과 꽤 가까운 편에 속한다.[3] 시외버스로 동서울터미널이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가는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동서울터미널까지는 빠르면 40분 가량 걸린다. 그래서인지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나 통학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 광역버스도 2020년 3월에 이천역~잠실역간 2100번이 신설되어 운행중이다.
특징 중 하나로는, 현재의 행정구역 모양이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거다. 즉, 현재의 행정구역 형태는 '''100년'''이 넘은 셈이라는 것. 또한 행정구역 모양이 파라과이와 매우 닮았다.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을 시의 명칭은 리천이다.
2. 역사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였으나 475년(장수왕 61) 고구려로 귀속되어, 지금의 마장면을 중심으로 남천현이 설치되었다. 551년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 남천주로 군주를 두었다. 660년(무열왕 7) 삼국통일을 위해 출정한 신라군이 남천까지 북진하여 고구려를 치러가는듯 하다가 진로를 남쪽으로 돌려 당나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다. 삼국통일 뒤인 757년(경덕왕 16) 황무현(黃武縣)으로 개칭하고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하게 하였다.
현재의 지명인 이천은 고려시대의 일화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이천의 복하천을 건너려 했으나 물이 불어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건넌 뒤, 큰 내를 건너 이로웠다는 뜻의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고사성어 앞뒤 글자를 따와 한때 이천군이라 이름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4] 1257년(고종 44) 영창현으로 개칭하였다가 1390년(공양왕 2) 남천군[5] 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이천현으로 재차 격하되었다가 1444년(세종 26) 도호부로 승격되어 부사가 상주하였고 관아도 현재의 이천시내로 이전하였다.[6] 1895년 충주부 이천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 도제가 부활되면서 경기도 이천군이 되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음죽군[7] 을 병합하였다. 또한 예하 면들을 통폐합하였다. 구 이천군 지역은 부면·발면을 부발면으로, 대면·월면·초면을 대월면으로, 마면·장면을 마장면으로, 모면·가면을 모가면으로, 백면·사면을 백사면으로, 신면·둔면을 신둔면으로, 호면을 호법면으로 통합하였다. 그리고 구 음죽군 지역은 현내면·동면·남면을 청미면으로, 근북면·원북면을 설성면으로, 상율면·하율면을 율면으로 통합하였다. 보면 알겠지만 구 이천군의 면들은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전부 이름이 한 글자였다는 것이 특이하다.
1938년 읍내면이 이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41년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부발면이 부발읍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3월 이천군 전역이 시로 승격되면서 이천읍이 창전동, 관고동, 중리동 3개 동으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동년 5월 대월면 단월리, 장록리, 대포리, 고담리를 중리동으로 편입하고 대월면 소재지를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결과 대포동(...)이 탄생했다... 2003년 안흥동, 갈산동, 증포동, 송정동 지역을 증포동으로 분할하였다. 2012년 여주시와 선거구가 분할 되었다.
반도체하면 삼성반도체와 쌍두마차를 달리는 SK하이닉스와 국내엘리베이터업계1위인 현대엘리베이터가 부발읍 아미리(부발역 인근)에 있다.[8]
3. 지리
북쪽 광주시와의 경계에 해발 634m의 원적산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 가면 비교적 평평한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시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논과 밭, 목장, 양돈농가[9]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천시내 서쪽에는 해발 394m의 설봉산이 시가지를 병풍처럼 막아주고 있으며, 시내 동쪽에는 남한강의 지류인 복하천이 흐르고 있다.
강수량이 많고 눈도 많이 오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장마철에 하천이 넘치기도 하지만 주변이 대부분 논밭이고 근처에 사는 사람도 적기도 하고... 다만 안개가 잘끼며, 한번 안개가 끼면 앞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뿌애져서 차가 다니기 매우 위험해진다. 눈도 겨울에 생각보다는 많이 오는편이라 어느정도 주의를 요한다.
북서지역이 산악지형인데 이 영향으로 지상파DMB의 감도가 무척 낮은 DMB음영지대. 초기 DMB장비[10] 로 시내에서 수신하기는 일반적으로는 꽤 어려우며 스마트폰에 딸린 안테나로도 건물 안이나 뒤로 돌아가기만 해도 곧 잘 끊긴다. 내비게이션에 달린 수신기로도 간혹 시내에서 끊기는것 보면 답이 없을 정도였으나, 2014년 11월 현재는 많이 나아졌다. 한적한 시골만 아니라면 불편없이 DMB 시청이 가능하고, 많이 끊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DMB보다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터넷 스트리밍이 발달하여 점점 옛 얘기가 되어가는 중이다.
3.1. 인구 추이
4. 교통
수도권 전철 경강선이 이천을 거쳐간다. 2016년 9월 24일에 판교역부터 여주역까지 개통하였다. 다만 서울특별시로 한번에 가지는 못하고 판교역에서 신분당선이나 이매역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야 된다. 신둔도예촌역, 이천역, 부발역이 신설되었으며, 이와 함께 버스 노선의 대격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외버스터미널도 함께 옮기려 했지만 이전할 경우 주변 상권이 그대로 박살나기 때문에 근처 상인들의 반대가 어마어마해서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개통된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주변에 건물 하나 짓는게 없다. 옆 마을 광주에서는 경강선 개통 전부터 건물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한편 부발역에서 출발해서 문경역까지 가는 중부내륙선 철도가 추진되어, 이 중 1단계 구간인 부발역-충주역 구간이 일찌감치 2014년 하반기부터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사실 철도는 노선이 2개나 있었는데 모두 폐선된 전력이 있다. 이천시 중심부로는 협궤철도인 수려선이 지나갔으나 이용객을 영동고속도로에 흡수당하면서 1973년에 폐선이 되었다.[11] 장호원읍에는 안성선이 들어왔으나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이유로 1944년에 안성역-장호원역간 선로를 몽땅 뜯어가서 역시 폐선 크리.
고속도로는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있다. 영동고속도로에는 덕평IC와 이천IC, 중부고속도로는 서이천IC가 이천 관내에 있으며 남이천IC가 모가면에 위치해 있다. 덕평IC 부근에 있는 덕평자연휴게소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중에서도 최상의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휴게소 내에 자연 휴양림과 카페, 미니아울렛이 있어서 현지주민들은 휴식차 방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서이천IC 근처에 프리미엄 휴게소를 지향하는 마장휴게소까지 문을 열며 이천시에만 2곳의 국내 최정상급 휴게소가 생기게 되었다. 마장휴게소에는 이천 시내에도 없는 롯데마트까지 입점해 있다.[12] 이로 인해 두 휴게소 사이에 끼인 이천휴게소만 처지가 난처할 뻔 했으나.. 다행히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국도는 3번 국도, 37번 국도, 38번 국도, 42번 국도가 있다. 현재 3번 국도는 성남시 - 장호원 간 국도 대체 우회도로(성남이천로)가 건설 중이다. 국도 이용이 꽤 되는 편인데, 영동고속도로에서 이천 근처에 상습적으로 정체되는 구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도에 갈 경우 그 정체구간을 피하기 위해 문막IC까지는 국도로 우회하는 사람이 꽤나 있는 편이다. 그나마 광주원주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나아졌다.
시내버스 등의 공영버스는 KD 운송그룹(경기고속 시내사업부, 대원고속 시내사업부, 이천시내버스)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천시를 연고로 하는 버스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천시 버스 목록 참조. 이천 시내를 통과하는 타 지자체 소속 시내버스 노선은 3번, 37번과 103번이 있으며, 이 중 37번과 103번 두 노선은 저상버스가 운행 중에 있다. 그리고 계속 1113-1번이 이천으로 연장될거라는 기사가 난 후 약 1년간 잠잠하다가 이번에 시계외거리 제한이 50km까지로 변경됨에 따라 2018년 하반기 중 연장될 예정이었으나, 연장이 무산되었다. 자세한건 경기광주 버스 1113-1 문서 참고.
그러다가 '''잠실행 G2100번'''이 신설되어 최초로 직행좌석버스 노선이 생기게 되었다! 서울로 갈 때 시외버스보다 20분이 더 걸리지만, 싸게 갈 수 있게 됐으며, 환승할인도 받을 수 있게 됐다.[13] 그리고 2021년 상반기에는 이천터미널-강남역 버스가 개통할 예정으로 이천시내에서 강남역이랑 신논현역을 한번에 갈수있는 몰론 마장 택지지구를 경유해서 마장택지지구 주민들에겐 해당 노선의 빛과 소금이 되어줄 노선이 될 예정이다.
2013년 2월 1일에 시내버스 개편을 했'''었'''다. 현재 20번대 노선들을 전부 200번대로 변경하고, 일부 노선이 변경될 예정이었으나개편 노선/시간표 개편 후 더욱더 불편해졌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결국 시행 5일뒤인 2월 6일에 개편 전으로 환원되었다.취소 공지취소 후 기사 이천시 개편 전에 여주군도 버스 개편을 진행했다. 여주군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천시와는 다르게 환원되지 않고 개편된대로 운행중이다.
여담으로 이천시청 홈페이지 시내버스 시간표가 엑셀 파일인데 컴퓨터용 홈페이지에서 받는 것과 모바일용 홈페이지에서 받는 게 파일 용량, 이름이 다르다. 모바일용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는 파일은 용량(2.92MB)이 더 크고, 컴퓨터용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는 파일은 용량(479KB)이 더 적다. 아무래도 직원의 실수 같다. 참고로 여기서는 다운로드해서 파일을 여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급한사람들은여기로 가서 참고할것.
시외버스, 고속버스의 경우 시내의 중리동에 이천종합버스터미널이 있고 이외에도 도예촌, 한국관광대학교, 아미리(SK하이닉스), 이황리(상승대), 장호원에 시외버스정류장이 있다. 운행 노선 중 가장 인기있는 노선은 동서울행 시외버스로,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길이 막히지 않을 경우 동서울터미널에 1시간 정도에 도착한다. 이외에도 다음 노선이 운행 중이다.
- 서울 : 서울(고속터미널), 동서울
- 강원 : 강릉, 문막, 원주, 영월, 춘천
- 경인 ; 고양화정, 동두천, 부천, 성남, 수원, 안산, 안성, 안양역, 양평, 여주, 의정부, 인천, 일죽
- 영남 : 경주, 대구북부, 부산, 울산, 문경점촌
- 충청 : 대전, 아산, 제천, 유성, 음성
- 호남 : 광주, 익산, 전주
여담으로 장호원정류소를 이용할 때 정류소 아저씨가 매우 불친절하니 다혈질끼가 있는 사람의 경우 이용할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자.
중소 택배사들이 이천시에 대부분 허브를 두고 있다. 로젠택배와 KG로지스가 대표적이다. 사실 허브 역할을 할 물류센터가 꽤 많은 곳도 이천시다. 이천시의 물류센터에서 전국으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다만 그 서비스의 질이 영 좋지 않은것이 문제. 그리고 이 물류창고의 안전 문제로 인해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등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현재 대한민국 물류체계의 문제점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다.
음성군 감곡면과 인접한 장호원읍이나 옆 동네인 여주시를 통해 충북 및 영남권으로도 바로 뺄 수 있다.
5. 생활문화
5.1. 언어
대부분 지역이 경기 방언과 표준어를 사용하지만, 장호원읍과 감곡면의 경우엔 충청 방언 권역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충청도의 접경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일부 지역이 충청 방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평택시, 안성시, 화성시[14] , 여주시[15] 의 경우에도 충청 방언 권역에 해당하는 지역들이다.
자세한 사항은 경기 방언과 충청 방언 문서 참조.
6. 관광 및 특산물
도자기 축제를 매해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광주, 여주 등과 함께 비엔날레를 개최한다. 레퍼토리가 바뀐다 해도 이천 시민들의 입장에선 지겨운 감도 있어 호응도는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이라 꾸준히 수입을 내는 모양. 도자기 축제는 4-5월경, 비엔날레의 경우 9-10월경에 개최하는 편이다. 2014년부터는 4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도자기 축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허나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9월 경으로 미루어졌다. 또한 이천시에 위치한 대학교인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 도자기디자인과가 있었으나 사라졌다.
특산물로는 쌀이 유명하다. 한국 사람들 중 1%만 먹는 귀한 쌀이라고 광고하고 있으나, 뒤집어 생각해서 한국에 시군구가 226개 있는데 그 중에서 쌀농사 점유율 1퍼센트 언저리를 차지하는 동네가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해보면 별로 의미는 없는 말.(...) 하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천시의 2010년 미곡 수확량은 41,090톤으로, 전국 총 수확량의 0.95%이다. 하지만 생산량으로 따지면 저 호남 쪽의 시군은 물론, 안성시의 생산량에도 못 미친다.
그래도 이천쌀이 가장 인지도가 있는 편이긴 하다. 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 적용 대상 제12호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 심지어 일부 악덕업자들은 다른 지역의 쌀을 포장지 바꿔치기하여 이천쌀로 둔갑[16] 해 팔기도 한다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시 차원에서 집중 단속을 하고 있다. '임금님표 이천쌀'이라는 브랜드화 전략을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자 이웃 여주시에서는 '대왕님표 여주쌀'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브랜드쌀 시장에 편승했다.[17] 뭐 사실 여주나 이천이나 기후가 같고 고시히카리 품종을 재배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원래 이천은 쌀, 도자기, 온천으로 유명했지만 언젠가부터 복숭아가 추가되어 쌀, 도자기, 온천, (그리고) 복숭아의 고장으로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복숭아의 경우 충청북도 음성군과 인접한 장호원읍의 과수원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백사면에서는 매년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산수유 막걸리가 주 품목에 있다.
7. 경제
7.1. 산업
물론 쌀농사도 쌀농사지만, 이천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전자 제품의 쌀 반도체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도 있고, 3조 5천억원을 들여 증설도 했었다. SK하이닉스, 3조5000억원 들여 이천에 반도체 공장 증설. 뉴스에도 워낙 자주나와서 쌀, 도자기, 복숭아, 온천 외에도 이천 경제 먹여살리는 물건 중 하나로 취급되고, 실제로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도 이천의 특산품이라는 취지의 광고도 냈다. 위의 특산품 항목에 있는것과 비교했을 때 실제 세수면에서는 당연히 반도체가 압도적이다. 2019년 한 해 예산의 30% 이상이 SK하이닉스 한 기업에서 나왔다.#
로젠택배 허브 터미널이 이천에 있다.
의외로 술이 이천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이트진로와 OB맥주의 생산 사업장이 이천에 있고, 그 외에도 술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이천에 꽤 있다. 어느 정도냐면 술에 부과하는 주세가 이천 세무서의 세수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쿠팡의 주요 물류센터 중 하나인 덕평물류센터가 마장면에 위치하여 관리직 및 아르바이트생을 수천명씩 고용하고 있으나, 임직원들의 99%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타 도시에서 출퇴근하기에 이천시에서 돈 한푼 안쓰고 돌아가며, 쿠팡 본사가 서울에 위치하여 법인지방소득세 수입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에 지역경제에 끼치는 이익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7.2. 상권
오랜 기간 경기 남동권, 즉 이천-여주권의 상업 중심지였기 때문에 과거 이천군 시절부터 읍내만큼은 각종 상점과 시장 등이 알차게 모여 있었다. 당시 여타 읍에는 없는 매장도 이천읍에는 있었다[18] 1990년대 시 승격 이전의 용인읍, 여주읍, 안성읍과 비교해봐도 이천읍의 밀집도는 군 전체 인구에 비해 눈에 띄었다.[19] 현재도 이천시내는 이천시 전체에서 독보적인 상업 중심지로서의 위치에 있다. 이천시 창전동에 위치한 중앙로(소위 중앙통), 일명 문화의 거리가 이천의 중심상권지이다. 이천의 각종 의류, 스포츠, 아웃도어 매장과 식당, 패스트푸드점, 오락시설 등은 모두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중앙로는 서쪽의 설봉공원 입구부터 동쪽의 터미널 근처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데, 서쪽구역(관고동)은 주로 재래시장 위주, 동쪽구역(창전동, 중리동)은 신식매장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천의 갈 곳 없는 10대들의 영원한 안식처로서 방과후 혹은 주말이면 중앙로에 개미떼처럼 모여있는 중•고등학생들의 물결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볼 게 없는 여주사람들도 이 거리에 놀러오기에 여주사람들로도 꽤 붐빈다. 2013년 마장면 일대에 엄청난 규모의 롯데 아울렛이 문을 열면서 시내상권이 소비자들을 뺏기고 있는 상황이다.[20]
도시 규모에 비해 패스트푸드점이 상당히 많다. 롯데리아가 400m 간격으로 본점, 중앙점 2곳이 있다. 이들 사이에 위치해 있던 KFC와 맥도날드, 파파이스는 이들에 밀려 2000년대 중반 폐점. 다른 패스트푸드는 중앙로 근처의 맘스터치, [21] 그리고 농협 하나로마트에 딸린(!) 전국에 그리 많지 않은 파파이스[22] 가 있고 2012년 11월경 터미널 옆블록에 KFC가 개장 하였다. 장호원읍에는 2003년 망했던 롯데리아가 2012년 부활했다. 2013년에는 중부고속도로 마장휴게소에 맥도날드가 개장 했다. 2014년 8월, 이마트 인근에 롯데리아가 개장했다. 2015년 1월 5일에는 새로 생긴 CGV 1층에 버거킹도 들어오게 되었다. 2015년 9월엔 중리동쪽에 건물 자체로 맥도날드가 들어섰는데,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까지 포함하여 건축되었다. 2016년 5월 즈음 하이닉스 주변에 롯데리아가 또 생겼다. 2019년 현재, 마장면에 롯데리아가 하나 더 생긴다. 5월 10일 현재까진 아직 오픈은 안하고 매장만 그대로 이지만. 이로서 이천에는 총 14개의 패스트푸드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커피전문점의 경우 전국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이 이천도 과포화 상태지만 특이점은 스타벅스 매장이 무려 4곳이나 있다. 2010년대 이전만 해도 이천사람들에게 스타벅스는 서울 갔을때 한 번 맛이나 보고 오는 커피매장이었지만 2012년 시내 터미널점을 시작으로, 하이닉스점, 마장휴게소점과 신둔점이 잇따라 오픈해서 중소도시치고는 적지 않은 스타벅스 매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2019년 2월 28일에는 증포동에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를 포함한 매장이 입점하였다. 이제 이천엔 스타벅스가 하이닉스, 터미널, 마장휴게소, 신둔, 증포 총 5곳이다.
대형마트의 경우에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온 이마트가 이천 대형마트계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천시의 인구를 고려하면 2개의 대형마트가 생길 경우 출혈경쟁이 야기되기 때문에, 이천시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이상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의 후발주자가 들어오기 어려워 보인다.[23] 물론 마장휴게소에 롯데마트가 입점해 있기는 하다. 직접 방문해보면 알겠지만, 보통 마트와는 다르게 휴가를 떠나는 고객들을 위한 식품과 편의용품을 주로 이룬다. 크기는 일반적인 롯데마트 크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주거 지역과는 떨어져 있고,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가야돼서 가는 사람은 보기 매우 드물다.[24]
2019년 1월 17일, 안흥동에 롯데캐슬이 들어서면서 롯데마트가 같이 입점했다! 내부엔 토이저러스, 룸바이홈, 감탄떡볶이, 맘스터치등이 입점해있다. 층수는 5층이나, 지하 1층~1층에는 매장, 2~3층에는 편의시설이, 2~5층은 주차장으로 이뤄져있다. 주차장으로 올라가거나 내려올 때 경사가 많이 져있으며 차단기가 있어 내려올 때는 조심해야한다.[25] 롯데마트도 여느 대형마트처럼 2,4째주 일요일에 쉰다.
2017년 9월, 안흥동 에이스경로회관[26] 맞은편에 노브랜드가 이천에 처음으로 개점했다.
2018년 11월 25일, 이마트 옆에 지하 1층~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다이소가 입점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이천시 창전동 알짜배기땅에 있던 백화점 건물에 NC백화점이 들어섰다. 이천시의 첫 백화점. 1990년대 이미 준공 완료한 건물이지만 법적인 문제로 줄곧 빈 상태였다(물론 관리는 계속 하고 있었지만). 주말이 되면 그곳으로 분산되는 중•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다. NC백화점은 규모가 작긴 하지만, 그래도 백화점이고 이천사람들 대다수도 백화점이라고 인식은 하고있다. 옷 뿐만 아니라 식기, 아이용품 등 다양하게 팔기 때문에 일단 백화점 취급은 받는다.[27] 그리고 2018년 10월, 지하 1층에 노브랜드가 이천에 2번째로 개점했다.[28] 그러나 2020년 현재 NC백화점의 노브랜드는 사라졌다.
주민들 중 몇몇 사람들은 원래 이건물에 대우백화점이 입점하려고 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대우에서 '2000코아'라는 백화점을 짓기 위해 투자유치와 공개입찰을 벌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계획이 취소, 또는 뒤엎어져 버렸고, 그 이후 대우그룹도 해체되면서 빈 건물만 시내 한가운데 남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관은 [29] 2015년 2월부터 CGV가 개장하였다. 그동안 이천시의 영화관은 이천극장과 시네세븐이 존재했으며 이천극장은 2006년에 문을 닫았다. 이후 씨네세븐이 창전동의 한 건물에 입점하였으나 내부나 극장이 많이 뒤떨어져 영화를 제대로 보고자 할 사람들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서울로 가야했는데, CGV가 생겨 이제 서울까지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현재 씨네세븐의 기존 직원들은 인근 CGV로 욺겨졌고, 그 자리엔 씨네호텔이라는 숙박업소가 들어섰다.
PC방은 1시간 기준 대다수가 1000원, 어쩌다 가끔 500원을 받는 PC방이 있었지만 2013년쯤부터 일제히 1200원이 되었다. 시내에 여러 곳이 있으며 중학교, 고등학교, 초등학교가 다 있는 증포동~창전동 일대의 PC방은 주말이던 평일이던 학생들의 천국이다. 증포동에 2개가 있지만 방학식이나 시험 끝나는 날이면 포화 상태가 된다. 2015년 8월쯤에 하나 더 생겨서 인근 2개 초등학교와 1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의 물량을 3개 PC방이 분담하는 중. 최근엔 CGV 지하 1층에 거대 PC방이 들어서서 어느정도 포화상태는 해소된 모양. 다만 이천시 남쪽 장호원 지역은 충청북도 감곡면과 함께 회원 1500원, 비회원 1700원이라는 살인적인 가격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좀 보기 드문 현대자동차 영업소 중 현대 모터 플라자(현대자동차 이천지점)가 중리동에 들어서있다.
7.3. 금융
8. 교육
이천에 있는 고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 동 지역
- 읍면 지역[34]
4년제 대학이 없어서 이를 유치하려 노력은 했지만 별 성과는 없는 듯.[35] 그나마 마장면에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있는데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과가 유명한 곳인지라 오타쿠들의 집합소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캠퍼스가 지산리조트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스키를 타러 가거나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을 보러 갈때 들려보자. 산속에 위치한 캠퍼스는 붉은 벽돌로 통일성 있게 지어져서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편이다. 애니메이션 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만화영상도서관이 캠퍼스 내에 존재한다. 당연히 공짜로 수많은 만화책을 볼 수 있다.
신둔면 고척리에 위치한 전문대학인 한국관광대학교는 외국어, 호텔, 조리 등 관광관련 학과가 대부분이다. 서이천IC 인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타 시군에서 이천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버스기사에게 이천시내로 진입하기 전 고속도로 근처에서 내려줄 수 없냐고 부탁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36]
4년제 종합대학은 없지만 개신교 계열 대학원대학이 2개나 있다. 정통 침례회 군소교단인 성서침례친교회 소속 목사를 양성하는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와 개신교 실천신학 전문가를 양성하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이다.
용인에 있는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가 원래 이천에 조성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얼추 들어 맞는게 용인은 최근 30여년간 급성장한 도시이고 글로벌캠퍼스가 지어질 70년대에는 그냥 시골이었던 반면, 이천은 조선시대 장호원이 설치되고 농업이 발달한 오래 된 나름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천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캠퍼스를 이천에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부지를 구입하기 위해 이천 지역 땅 주인들과 가격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땅 주인들이 가격을 워낙 높여 불러서 협상이 무산되어 이천에 설립하는 것을 포기, 옆 동네 용인으로 가버렸다고 한다.[37]
9. 스포츠
프로야구 구단 두산 베어스의 2군 구장인 이천 베어스 파크가 백사면 경사리에 위치해 있다. 서울특별시 외 다른 지역을 연고로 한 풍부한 유망주들을 받아들여 이천 2군 구장에서 몇 년만 훈련시키면 곧 팀을 이끄는 슈퍼스타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 라이온즈의 경산볼파크와 함께 대한민국 야구의 대표적인 화수분이다.[38] 어느 구단의 서울에서 몇걸음만 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던 2군 구장과 비교하면 두산 베어스의 2군 구장 위치는 버스도 잘 안 오고 서울에서 거리도 멀어서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혹 고생해서 이천 시내로 놀러나와도 별다른 유흥시설이 없는 환경상 다시 구장으로 돌아가 훈련에 매진할 듯.
한편 의정부지방법원의 판결로 인해 LG 트윈스도 이천시 대월면 부필리로 2군 구장을 이전했다. 새로 지어지는 LG 2군 구장에는 야구장뿐만 아니라 농구장까지 지어져 2014년에는 창원 LG 세이커스가 기존의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숙소에서 여기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두산과 LG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이뤄지는 잠실 덕아웃 시리즈에 이어 퓨처스 리그에서 역시 이천 시리즈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또한 이천시에서 30분 거리에 이웃한 여주시에는 kt wiz가 2군 경기장을 건설할 예정이기 때문에 위 3팀간의 경기시 이동에 따른 체력적 부담 및 숙박의 부담 등을 덜게 될 줄 알았으나 무산된 상태.
축구팀으로는 이천시민축구단이 대한민국 4부 축구리그인 K4리그에서 2020년까지 활동하였으며, 부발읍에 위치한 이천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홈 경기가 있을 때마다 플래카드 등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홍보도 하고있었지만 자금 문제로 인해 2020년 시즌 종료 후 해체되었다.[39] 그리고 이천 대교 여자축구단도 2015시즌 부터 2017시즌까지 있었다.
이천종합운동장에 가 보면 공사가 중단된 넓은 공터를 볼 수 있었는데,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꿈의 구장 건설이 예정됐던 자리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종영 크리를 맞으면서 꿈의 구장 건설도 흐지부지되고 야구장 부지를 제공한 이천시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 몇 년째 방치되고 있었으나, 2013년 7월 이천시는 ㈜LG스포츠와 협약식을 맺고 '꿈의 구장(야구장) 건립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LG 트윈스가 이천에 2군 구장이 들어오며 이천시와 예산지원 협약을 맺어 공사가 재개되었다.관련 기사 2014년쯤에 완공되었다.
모가면 진가리에 있는 모가중학교에서 중등야구부 우승을 차지해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헌데 지금은... <박동희의 야구탐사> 시골학교 야구부의 기적과 비극 2014년 7월 25일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이 상황을 다뤘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해당 학교가 등재되었다. 여담으로 이때 이천에서 성장하고 모가중 1학년이었던 김지찬은 202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축구 평가전 대한민국 VS 호주가 부발운동장에서 열렸는데, 2만석을 거의 다 채웠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은 지역이지만, 여러 가지 스포츠환경을 즐길 수 있는 도시는 아니다.
10. 정치
이천시 자체가 이천평야로 대표되는 농촌 지역이 대부분이라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계열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외 계열의 당선 사례는 1996년 황규선 의원과 2000년 이희규 의원이 유일하다. 다만 황규선 의원은 당선 직후 신한국당으로 입당했으며, 이희규 의원도 2008년 2월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가 낙선되자 2010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지원하고 2012년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하는 등 결국에는 새누리당 쪽에서 돌고 도는 사람이다.
반면, 이천시장의 경우에는 기초자치단체장선거가 그렇듯 사람보고 뽑는 경우가 꽤 된다. 민선 1~3대 연속으로 이천군→시를 이끈 유승우 전 시장은 1995년에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1998년과 2002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모두 과반 득표로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2년 선거 때는 정권 말기인데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 문제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대한 민심 자체가 안좋았던걸 감안하면 이천시민들의 투표는 정당보다는 유승우 개인을 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후 2006년과 2010년에는 한나라당 조병돈 시장이 당선되면서 딱히 인물론이 부각된 적은 없었는데, 2014년에 새누리당이 '''여성 전략 공천'''을 감행하면서 조병돈 시장이 탈당해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면서 정국이 요동친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철새 논란이 일어난 끝에 결국 컷오프시켰지만 '조병돈 시장이 아니면 새누리당을 이길 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40] 컷오프를 철회하고 모든 새정치민주연합 공천 신청자가 조병돈 시장을 후보로 추대하는데 동의하였다. 결국 시장선거는 조병돈 시장이 당선되면서 정당 간판만 놓고 보면 2002년 이후 12년만에 새누리당 이외 정당에서 당선자를 낸 셈이 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승우 의원이 사실상 당선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새누리당 내부적으로 공천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었는데, 2015년 11월까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청장을 지낸 송석준이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았다. 선거 결과 새누리당 송석준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엄태준 후보를 9,456표 차[41] 로 누르고 초선에 성공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8.62프로 차이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택지개발이 된 증포동, 하이닉스 노동자가 많은 부발읍과 대월면에서 40%를 넘겼고, 도심지의 관고동에서는 4%의 격차로 이겼으나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는 홍준표에게 패배했다. 특히 절반 이상의 지역에서 30% 이하의 득표율을 얻은데다 모가면, 설성면에서는 25% 미만을 얻으면서 대구경북과 큰 차이 없는 득표율을 얻었다. 이처럼 도농간의 민심 격차가 극심하게 드러났고, 이 때문에 경기도에서는 홍준표가 앞선 다섯 개 지역을 제외하면 동두천시 다음으로 가장 낮은 득표율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가 각각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이천시 : 문재인 44,109 (36.39%) > 홍준표 33,301 (27.47%) > 안철수 26,695 (22.02%)
- 1위 - 문재인 : 증포동(42.2%), 부발읍(41.6%), 대월면(40.6%), 관고동(33.9%), 창전동(32.0%), 거소/선상투표(34.2%), 관외사전투표(42.8%), 재외투표(61.4%) (3개동 + 1개읍 + 1개면 + 관외투표) / 홍준표 : 설성면(42.8%), 호법면(41.2%), 모가면(41.0%), 장호원읍(38.7%), 율면(37.5%), 마장면(34.5%), 백사면(34.0%), 중리동(33.2%), 신둔면(32.7%) (1개동 + 1개읍 + 7개면) / 안철수 : 없음
- 2위 - 문재인 : 중리동, 장호원읍, 신둔면, 백사면, 호법면, 마장면, 모가면, 설성면, 율면 (1개동 + 1개읍 + 7개면) / 홍준표 : 창전동, 관고동, 부발읍, 대월면 (2개동 + 1개읍 + 1개면) / 안철수 : 증포동, 거소/선상투표,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 (1개동 + 관외투표)
10.1. 관련 문서
11. 군사
이 동네도 나름대로 군사도시. 전쟁나면 포격 1순위 지역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육군 소속의 모든 항공기를 관할하고 항공 작전을 지휘하는 육군항공작전사령부의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이천시에 가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를 많이 볼 수 있다. 항작사가 존재해서 전쟁 발발시 북한의 포격 1순위 지점으로 지명받는 상황. 그 외 제7기동군단 본부(상승대)와 육군정보학교, 국군교도소도 이천시 장호원읍 이황리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동서울터미널에 가 보면 제7기동군단 소속 군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2007년 5월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 부대가 이천시 관내로 오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 때 주민들이 살아 있는 돼지를 거열형에 처하는 퍼포먼스(...)를 벌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다소 잔혹한 장면일 수 있으니 주의#) 돼지가 죽지 않자 칼을 사용해서 일부러 죽였으니 우발적인 행위라고 불러주기도 글렀다. 그야말로 흑역사. 당연히 시청 홈페이지와 민원실에는 잔혹함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글과 전화, 욕설이 난무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우습게도 당시 이 퍼포먼스에 안보우익을 떠드는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참여하면서 더 논란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일부 네티즌들은 제주 해군기지 이전과 연관시켜 한나라당을 비웃기도 했다. 여튼 거열형 퍼포먼스를 펼친 해당 당사자들은 돼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후회한다고 뒷북을 쳤는데, 이때 죽은 돼지를 위한답시고 굿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해 봤자 이미 돼지는 끔찍한 고통 속에 죽은 후였으니 그야말로 뒷북 퍼포먼스. 이후 이전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부대 시설 자체는 2015년에 거의 완공 단계까지 왔으나, 주변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또다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6년 1월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2016년 8월 2일, 특전사 부대 이전행사를 진행했다. 이전은 2016년 7월 29일에 완료했다고 한다. #
12. 하위 행정구역
13. 사건사고
14. 여담
고려시대 만들어져 이천향교에 세워져 있던 5층 석탑이 일제에 의해 약탈[42] 되어 2015년 현재 도쿄(東京) 오쿠라슈코칸(大倉集古館)에 가있다. 이를 반환하기 위해 이천시 차원에서 직접 일본의 오쿠라 호텔쪽과 협상하는 등 시 자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반환해 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일본 문화재청 등의 부정적 입장으로 반환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도호쿠 대지진으로 '''석탑 일부가 파손크리'''. 지못미. 일본 현지로 가서 조사결과 '''이전부터 관리가 개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 한층 어그로를 끌고 있다.[43] 관리도 제대로 안하면서 줄 수 없다고 뻗대는 게 가관. 그리고 2015년 4월 10일 석탑이 해체당했다. 현재 해체 후 오쿠라 호텔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되며, 약탈당한 후 4번이나 해체당하게 되었다.#
이천(利川)과 이천(二千)이 발음이 같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 2000년도에 시 모토가 '2000은 이천시의 해' 였다. 메가쑈킹 고필헌도 영화 관련 웹툰을 그릴 당시 개봉하던 고지라 2000(고지라 2000 밀레니엄)을 그리면서 고지라가 이천을 초토화했다. 극중 설명으로 왜 이천이냐, 고지라 2000이니까~!라고 고지라가 말하고 이천 사람들이 이런 씹숑! 이라고 화냈다....실제 이천에서는 간판이나 전화번호에서 2000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의 식수문제로 개발이 묶여있는 부분이 있어 이것 때문에 일부 피해의식을 가진 이천 사람들도 있다.
옛날 소각장이 들어서는 문제로 몇 년을 걸친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는데 스포츠센터건립과 딜을 해서 결국은 소각지를 세웠다. 덕분에 이천 지역사람들에 상당히 시설이 좋은 스포츠센터를 매우 싸게 이용하고 소각장 근처에 주민들은 보일러세를 면제받아서 지금은 오히려 신의 한수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2년까지 밸리 록 페스티벌이 열렸었다. 그 뒤 2015년까지 안산시 대부도에서 열렸다가 2016년에 다시 개최되었다.
통일이 되면 북한 강원도의 이천군 때문에 은근히 이 두 곳또는 이 지역들 비슷한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어상으로는 이천시는 '리천시'로 발음이 되어 강원도 이천군과 구별이 되지만, 표준어상으로는 발음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곳으로 전라남도 영광군과 함경남도 영광군이 있다.
15.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이천현
16. 출신 인물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이천시의 특산물인 쌀, 도자기, 온천, 복숭아를 형상화 한 것이다.[3] 심지어는 이천 시내에서는 종로나 명동, 남대문, 서울역 등의 도심으로 진입하는 데도 60km가 조금 못 미치는데 이정도면 경기도 외곽 치고는 서울과 꽤나 가까운 위치이다. 진짜로 경기도 외곽지역 치고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이만큼의 근거리도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로 평택, 안성, 여주, 연천에 비해서 시내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데 거리상으로 짧은 편이다. 최단 거리 기준으로 이천 시내에서 서울역이 오산시에서 서울역간의 거리보다 5km 정도 더 나온다.[4] 이때 왕건을 도운 현지인이 강동6주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의 당숙인 서목이라고도 한다 .[5] 고려사 지리지 기록으론 공양왕의 할머니 마한국 명예비(馬韓國 明睿妃) 신씨(申氏)가 이천시 출신이라 군(郡)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6] 이전의 이천 관아는 현재의 마장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7] 현 장호원읍, 설성면, 율면 일대.[8] 같은 부지에 SK하이닉스는 현대전자시절 1983년에 들어서고 현대엘리베이터는 1년뒤 1984년에 들어섰다.[9] 양돈농가가 많아서 2011년 구제역 파동 때 엄청난 수의 돼지가 매몰되었다.[10] 코원D2, 아이리버 B20등... B20의 안테나로도 무리[11] 당시 이천역이 있던 곳은 현재의 분수대오거리다. 서희청소년회관쪽에서 도보로 진입하면 신호등 옆에 조그맣게 이천역이 있었다는것을 알리는 비석을 볼 수 있다. 폐선 당시에 이 열차가 지나가는 지역의 주민들이 폐선을 반대했다고 할 정도로 지역 주민들에게는 유일한 교통 수단으로 여겨졌었던 듯. 그도 그럴 것이 이천시 시가지 빼곤 모두 버스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12] 하지만 시내에 롯데캐슬이 들어오며 롯데마트도 같이 입점하였다.[13] 경기도 공공버스 시범 노선이다.[14] 우정읍, 장안면[15] 강천면, 점동면[16] 복제 잘하기로 유명한(...) 중국은 물론, 미국의 쌀 판매업체까지 이천 쌀을 특허까지 내고 20년 넘게 팔아오다가 2010년에서야 소송 끝에 '이천은 특정 지명이라 특허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이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었을 정도다.[17] 하긴 여주엔 세종대왕의 영릉이 있고 이천엔 왕릉이 없다.[18] 대표적으로 바디샵, 리바이스 등등...[19] 시가지 형태를 봐도 남북으로 산이 답답하게 놓여 시가지가 옆으로 퍼진 형태로 짜임새 없게 발달한 용인읍과 달리 이천은 구획이나 도로망 등이 잘 정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20] 그래도 아직 사람들로 많이 붐빈다. 마장면과 비교해서 대중교통이 훨씬 많이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롯데 아울렛으로 가려면, 보통 이천 터미널에서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한다. 따라서 환승저항이 생기기 쉽다.[21] 2018년 3월 31일에 폐점했다.[22] 기존 지점의 이전은 아니고 농협과 새로 계약. 폐점 시간에 가까워서 갈 경우 품절 메뉴가 존재 하는 것을 보면 나름 준수한 실적인듯.[23] 이마트 도로, 주차 등의 상황으로 봐선 다른 대형마트가 들어오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마트 이용객을 봐서 다른 대형마트들이 들어서기 쉽지 않은듯.[24] 고속도로 상이기는 하나, 나들목으로 들어가 휴게소로 들어가지 않고도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지만 접근하기 어렵다.[25] 내려온 후 바로 차단기가 있다. 심지어는 신호등도 있다.[26] 안흥초교사거리 부근에 위치해 있다.[27] 덕분에 근처 옷 관련 가게들은 매출 직격탄 맞았다...라고는 적혀있지만, 사실 그렇게 크게 차이는 나지 않는다고 한다. 가게 매출에 진짜 직격탄을 준 것은 같은 이천시에 있는 롯데 아울렛. 오히려 NC백화점도 롯데 아울렛에 의해 매출에 큰 지장이 생겼다.[28] 편의점보다 규모가 약간 더 크다.[29] 이 경향은 어째선지 이천의 주요 떡밥이다. 전철도 그렇고, 뭐만 건설한다 하면 완공까지 적어도 10년은 걸린다.(...) [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30] 우편취급국 4곳 제외[31] 출장소 1곳 포함[32] 출장소 1곳 포함[33] 효양고는 농어촌특별전형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에 꾸준히 보내고 있으며, 점점 경기도나 충청북도 북부 내 타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34] 수원 인근지 문제3학교의 이천시 버전인 BYC 학교가 이 지역에 있다.[35] 이는 과거 1~3기 민선시장 유승우 씨의 병크가 크다. 게다가 근처 지역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횡포도 한 몫 거들고 있다고. 이 때문에 증포중학교, 이현고등학교 등 최근 신설된 중고등학교들도 부지를 더 늘리려다가 벽에 부딫혀 현재의 크기가 되어버렸다.[36] 이 경우 사음동 부근 정류장에서 하차가 가능하다. 이천터미널에서 내릴 경우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30분 넘게 되돌아 서이천IC 인근의 캠퍼스로 가야한다.[37] 사실 이런류의, "원래 A시설은 B시에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지주들이 땅 값을 너무 높여서 포기하고 이웃한 C시로 간거라더다." 라는 식의 이야기는 전국 어디에든 한 두개씩 있다.[38] 그래서 1군에서 뛰는 두산 선수들을 보고 팬들은 '''이천쌀 좀 먹고 오라'''고 비유하면서 농담으로 말하기도 한다.[39] 이후 이천 유나이티드 U-12라는 유소년 전문 구단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40] 실제로 조병돈 시장이 당적을 떠나서 시정 수행을 나름대로 잘했다는 평이 시민들 사이에서 많았던지라 무소속으로 나가더라도 판세가 박빙이었다.[41] 송석준 43,154표, 엄태준 33,698표.[42] 조선총독부가 1915년 만국박람회인 공진회 전시를 위해 서울 경복궁으로 옮긴 것을 오쿠라호텔 창업자인 오쿠라 기하치로가 일본으로 반출해버렸다.[43] 게다가 오쿠라 호텔은 경복궁 자선당을 약탈해서 가져갔더니 관동대지진 당시 화재로 소실시킨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