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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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생으로 무려 205cm의 역대 최장신 여자 농구 선수. 한국인 여성 중 최장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국내 거주 여성으로서는 공동 1위인데, 키 205cm의 몽골인 유학생 여성이 있기 때문. 거인증을 앓고 있는 김영희 선수와 달리 이 여성은 건강한데 그냥 키만 큰 거다.[1] 또한 북한의 농구선수 박진아가 205cm라고 하는데 박진아는 2018년 현재 15세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더 자랄 것을 감안하면 곧 한민족 최장신 여성 타이틀은 뺏길 것 같다.
1979년 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에 입단하여 활약한 선수로 1983년 겨울 스포츠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점보 시리즈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당시 박찬숙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나름 한국화장품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형숙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이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1984 LA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여자대표팀 조승연(前 삼성생명 여자농구단 감독[2] 감독, 前 서울 삼성 썬더스 단장 및 고문, 前 한국여자농구연맹 전무이사)의 회고에 의하면 상대 팀들이 김영희 선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상대 감독들은 장신에 대한 전략 구상,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장신과 겨루는 개인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점보시리즈-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에 52점을 기록하여 여자농구 한 경기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고, 75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다운드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전성기는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고, 은퇴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말았다. 여기에 1998년엔 어머니가, 2000년엔 아버지가 3차례의 암 수술을 받았음에도 세상을 떠났고 2002년에 거인병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으며 투병 중이며 이로 인해 한때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술에 빠져 비참한 세월을 보냈으나 많은 농구인들의 도움을 받고 이를 어느정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3] 농구인들 뿐만 아니라 농구 스폰서 기업에서도 김영희를 평생 도와주기로 했는데 모 스포츠 용품 기업에서 김영희의 운동화를 평생 공짜로 지원해주기로 했다.
데뷔 과정과 플레이스타일이 한기범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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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생으로 무려 205cm의 역대 최장신 여자 농구 선수. 한국인 여성 중 최장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국내 거주 여성으로서는 공동 1위인데, 키 205cm의 몽골인 유학생 여성이 있기 때문. 거인증을 앓고 있는 김영희 선수와 달리 이 여성은 건강한데 그냥 키만 큰 거다.[1] 또한 북한의 농구선수 박진아가 205cm라고 하는데 박진아는 2018년 현재 15세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더 자랄 것을 감안하면 곧 한민족 최장신 여성 타이틀은 뺏길 것 같다.
1979년 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에 입단하여 활약한 선수로 1983년 겨울 스포츠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점보 시리즈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당시 박찬숙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나름 한국화장품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형숙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이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1984 LA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여자대표팀 조승연(前 삼성생명 여자농구단 감독[2] 감독, 前 서울 삼성 썬더스 단장 및 고문, 前 한국여자농구연맹 전무이사)의 회고에 의하면 상대 팀들이 김영희 선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상대 감독들은 장신에 대한 전략 구상,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장신과 겨루는 개인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점보시리즈-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에 52점을 기록하여 여자농구 한 경기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고, 75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다운드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전성기는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고, 은퇴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말았다. 여기에 1998년엔 어머니가, 2000년엔 아버지가 3차례의 암 수술을 받았음에도 세상을 떠났고 2002년에 거인병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으며 투병 중이며 이로 인해 한때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술에 빠져 비참한 세월을 보냈으나 많은 농구인들의 도움을 받고 이를 어느정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3] 농구인들 뿐만 아니라 농구 스폰서 기업에서도 김영희를 평생 도와주기로 했는데 모 스포츠 용품 기업에서 김영희의 운동화를 평생 공짜로 지원해주기로 했다.
데뷔 과정과 플레이스타일이 한기범과 유사하다.
[1] 한때 이 분을 캡처한 사진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나돌며 키가 226cm라고 알려진 적이 있으나 당연히 뻥이다. 사진을 보면 힐을 자주 신는 것 같긴 하지만 226cm까지는 되지 않는다.[2] 現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3] 특히 서장훈이 소리소문 없이 김영희의 계좌에 거액의 돈을 송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