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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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ᠮᠣᠩᠭᠣᠯᠴᠤᠳ / [mongγolčud] / Монголчууд [Mongolchuud] / Mongols / 蒙古人
몽골 국적을 가졌거나, 몽골을 모국으로 인식하거나, 혈통적으로 몽골계인 민족을 일컫는 말. 몽골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기준으로 보면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사는 내몽골인도 몽골인에 포함되며, 혈통적으로 몽골과 같은 러시아의 부랴트인, 칼미크인, 투바인[2] 들도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몽골계 민족이다.
2. 몽골족인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몽골족을 하나의 종족(Ethnic Group)으로 여기고 있으나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일 영웅'''으로 불리는 칭기즈 칸이 통합한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등은 실제로는 몽골족이 아니라 몽골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일 뿐이었고, 이후에 몽골로 편입된 위구르족, 캉글리, 킵차크, 거란족[3] , 탕구트 등도 이 당시 정(正) 몽골인으로 분류된 니룬(귀족), 두릴리킨(평민) 몽골과 달리 한문 사료에 언급되는 '색목인(色目人)'에 가까웠다.
14세기 후반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 색목인으로 분류된 각 부족들은 물론 정(正) 몽골인으로 구성된 부족들까지 부족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각지로 흩어졌고, 부하라 칸국, 카자흐 칸국, 크림 칸국, 티무르 제국, 북원, 오이라트 등의 구성 부족이 되었다.[4] 한편 16세기 몽골 고원에서는 다얀 칸이 일시적으로 몽골 고원의 각 종족을 정복하고 6투멘 체제를 정립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종족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몽골 즉, 내외몽골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17세기에 발흥한 청나라였다. 홍타이지는 여진 제부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릭단 칸의 팽창을 피해 투항한 동몽골의 각 부족을 복속했고, 이후에는 릭단 칸 사후 와해된 차하르를 복속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강희제는 1691년을 전후로 외몽골 지역의 할하 부족들을 복속시켜 나갔고, 옹정제는 칭하이 성 일대의 몽골계 부족과 오이라트계 호쇼트 부족 등을 정복했으며, 건륭제는 마침내 준가르와 러시아 제국에서 남하한 토르구트 등의 오이라트계 부족들을 모두 정복하기에 이른다.
이후 청 정부는 이들을 '몽골'로 묶어 분류하기 시작했고,[5] 기존의 울루스와 오톡 제도를 파괴한 뒤 팔기제에 준하여 몽골 제부를 181기(旗: 호슌)와 13맹(盟: 출간)으로 재편하고 유목지를 지정했으며,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몽골인의 문화를 규정하고 투메드의 사간 세첸이 1662년에 저술한 어르더니 톱치(Erdeni-yin tobči)를 번역한 《흠정몽고원류(欽定蒙古源流, Hesei toktobuha enetkek tubet monggo han sai da sekiyen)》 및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伝, Hesei toktobuha tulergi monggo hoise aiman-i wang gung sai iletun ulabun)》을 편찬하여 하나의 역사를 정립함으로써 이들의 문화적 균질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이 결코 통합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몽골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 맹' 혹은 '~ 기' 출신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청이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세속주의 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화되기 시작하자, 많은 한족들이 투셰투 칸부 등으로 유입돼 개간을 시도하였고 이에 따라 유목 사회는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몽골로 유입된 한족은 유목민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위협적인 타자와 접촉하게 된 유목민들은 '동족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12년 청의 멸망 이후 북몽골의 탄누 우량카이에 속했던 튀르크어계 투바어가 모어인 투바인들은 몽골계임은 인정했지만 스스로를 국적상 몽골인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북몽골의 할하인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몽골국을 건국했다. 진정한 몽골인으로 분류되지 못했던 오이라트계 부족들 중 중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몽골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6] 그리고 팔기몽고의 후손들은 만주족으로 편입되었다. 결국 몽골인들은 현재까지도 하나의 종족적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몽골족이라는 명칭만 보고 처음부터 있던 하나의 종족이라고 간주하면 큰일난다. 실제로 내몽골의 차하르인과 몽골의 할하인의 사이는 매우 나쁘다. 20세기에 청나라가 멸망한 틈을 타서 내몽골이 독립해서 몽강국이 되었을 때도 외몽골 쪽에서 몽강국을 합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아예 할힌골 전투 때는 각자 일본과 소련의 동맹국으로서 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2.1. 몽골계 민족
몽골인을 포함한 몽골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몽골계에 해당되는 민족들을 가리킨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몽골계에 해당되어도 정체성이 다르기에 민족의 정체성으로 본다면 몽골인과는 다르다. 언어는 몽골어족에 속한다.
만주 지역과 몽골 사이의 내몽골 동부에 거주하는 다우르족, 신장위구르 자치구 북부 준가리아의 오이라트계와 극소수의 준가르족들, 그리고 오이라트인 중 러시아 카스피 해 북서부로 이주한 칼미크인, 티베트 북부 칭하이 성의 투족, 간쑤 성에 거주하는 무슬림 민족들인 둥샹족, 아프가니스탄 북서부에 거주하는 모골인들 역시 대표적인 몽골계 민족들이다.
3. 특징
3.1. 한국인과의 유전적 거리
막연히 한국인과 가장 가까우리라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막연한 추측은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만주족(정확히는 여진족),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한다.[7][8]
100%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은 만주족(정확히는 여진족)과 일본인이고, 그 다음이 사모예드족 > 시버족 > 코랴크인 > 다우르족[9] > '''몽골인''' > 한족(북중국인) > 이텔멘족 > 한족(남중국인) 순으로 나타난다.[10]
다만 몽골인과 중국 한족도 유전적으로 한국인과 매우 가까운 민족들이다. 실제로 한국인과 일본인과 중국 한족의 유전적 차이는 전체 유전적 다양성의 1% 미만으로, 이는 다른 집단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작은 차이이다.[11]
또한 만주족, 사모예드족, 시버족, 코랴크인, 디우르족 등은 현재 주류 민족으로서 존재하는 국가가 없는 소수 민족들이다. 그렇기에 현대에 존재하는 국가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본인, 몽골인, 중국 한족만이 남는다.
한국인은 남중국인(남방 한족)보다 북중국인(북방 한족)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사실 북과 남으로 나누기는 했어도 절반으로 딱 나눈 게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로 보면 남중국인(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은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없던 지역이었고(역사적인 중국의 주요 도시는 전부 이북에 있다), 이북 지역에서 북중국인이 매우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명확히 분류하고 비교하는 건 어렵다고 한다.
3.2. 신체적 특징
한반도보다 훨씬 북쪽에, 그것도 '''러시아보다도 더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추위에 강하다. 한국에 오면 한국인들 다 추운데 혼자서 덥다고 할 정도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밤이 추운 가을에도 에어콘 바람을 직접 쐬면서 팬티만 입고 이불도 없이 창문을 열어 찬 밤 공기 속에서 잔다.
유목 생활을 주로 하는 환경적인 요인 덕분에 시력이 매우 좋기로도 유명하다. 재산과도 같은 양과 같은 가축은 늑대와 같은 맹수의 먹이로 희생되는 일이 많기에 이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하므로 시력이 좋아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몽골에 방문했던 한 교수는 갑자기 저 멀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어어이~" 하며 목청을 울리는 몽골인을 보고 토속적인 관습인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몽골인들의 절반가량이 수도인 울란바토르 주변에 살고 있고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보통의 대도시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또 석탄으로 난방을 해서 공기가 매우 나쁘다. 그 때문에 요즘은 몽골인들 중에도 안경 쓰고 렌즈 끼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예시로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이 안경 착용자다. 아직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몰라도 울란바토르에 사는 사람들은 시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자신들이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믿는 몽골인이 많다. 실제로 과거 몽골 제국의 영토에 사는 현세대 민족 중 칭기즈 칸의 후예로 추정되는 사람은 약 8%에 달하며 이는 1,600만 명이라는 대인구다. 실제 칭기즈 칸의 유전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은 전부 동일 Y염색체를 가졌으며 약 1천 년 전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정확히 얘기하자면 칭기즈 칸 본인 하나의 유전자라기보다는 칭기즈칸 가문의 유전자. 그리고 칭기즈칸 유전자라 불리는 유전자는 만주, 중국 북부, 고비 사막, 바이칼, 투르키스탄, 파키스탄 북부 등지에 폭넓게 분포해 있다.
3.3. 국민성
국민성의 경우 척박한 지역에서 유목을 하는 특성상 대체적으로 터프하지만 순수한 편으로 돌려말하기식 같은 건 전혀 없고 빈말이란 개념도 없어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하는 일본과는 정반대. 유목민들의 공통적인 특성인 여행자 같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편. 한 사례로 몽골로 교환학생을 간 대학생의 경험에 따르면 홀로 버스를 타고 몽골시내 곳곳을 여행하였는데 탑승하는 승객들이 모일 때마다 항상 시끌벅적했다고. 보이는 사람마다 대화와 관심을 비춰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 교환학생도 뜨거운 관심과 대화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때에 따라 버스 안에서 술판, 춤판, '''합창'''판이 되기도 한다고.
더불어 신세를 지거나 하면 반드시 갚는다. 매우 터프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가이드와 친해지면 몽골에서 겪는 위험한 상황 대부분은 넘길 수 있다. 다만 거꾸로 원수를 지면 잊지 않고 두고두고 보복한다는 말도 있다. 몽골인에게 모욕을 주거나 해코지를 한다면 뒷일은 책임 못 진다.[12]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몽골인들을 떠올리면 쉬울 듯. 다만 터프한 게 지나치다 보니, 몽골인 근로자들이 외국에서 문제 일으켜 국가 이미지에 먹칠하는 경우가 많다.[13]
그러나 최근엔 몽골의 경제 사정이나 도시화에 따른 여러 문제들이 겹친 데다, 몽골의 치안은 좋지 않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몽관계를 참조 바람.
요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초식남 스타일의 여리여리한 남자를 좋아하는 데 비해,[14] 몽골에선 '''덩치가 크고 남자다운 스타일이 인기가 좋다.''' 이를테면 원빈 같은 타입보다는 마동석 같은 타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15] 몽골뿐만 아니라 튀르크계의 터키나 중앙아시아 역시 유목민이라서 남자다운 스타일을 좋아한다.[16]
술을 매우 잘 마시는 나라로, 소비량, 음용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폭음 문화는 역시 오래된 유목생활에서 나타나는데, 유목민족들은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초면이더라도 반드시 서로를 지켜줘야 했고, 아무리 바빠도 상대가 술을 건네면 마셔야 했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스텝지역, 사막지역에서 인간은 동물이나 자연환경등과 싸워야 했고 인간끼리는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낮에 인적 없는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돕고 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밤에 잠 들 때, 한 명이 몰래 상대의 말이나 양 들을 몰고 도망가 버리면, 남은 한 명은 죽게 된다. 그러자니 서로 못 믿고 잠 안 자고 버티면, 둘 다 피곤하다, 그러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모두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함께 잠 드는 것이었다. 술이 주는 특유의 고양효과로 어색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 이 문화는 제국을 설립한 이후 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국 성립 이후에도 몽골인은 중국인, 고려인[17] , 페르시아인 등 타민족과의 공식석상에서도 상식을 초월한 폭음을 즐겨 피지배 민족을 경악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드넓은 초원에서는 가족 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술을 마셔도, 그렇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숙취와 함께 깨어나도, 이곳은 초원이어서 공기도 좋았고, 어차피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이런 기후에서 양 떼를 이동하는 것이, 꼭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에 꾸준한 승마와 육체노동을 해서 건강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 설립 이후에는 이들은 점령한 대도시의 궁에서 살았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자기들끼리 거의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고, 다음 날에는 또 숙취 때문에 지도자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안 했다. 그러니 제국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피지배민들이 불만이 쌓였는데... 또 그렇게 술은 마시고, 귀족이라고 따로 운동은 하지 않았으니 체력도, 전투력도 엉망이 되었다. 이러니 제국이 유지될 리가... 거대한 원 제국의 몰락 원인을 주둔 병사들의 알콜 중독으로 보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술 좀 마신다 하는 한국인들도 몽골에 가선 그냥 발리는 편. 러시아와 가까워서 '''40도 이상가는 보드카를 주로 많이 마시기 때문에 20도짜리 소주 마시던 한국인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아예 알콜 도수가 낮은 맥주의 경우 술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냥 비유가 아닌 게, 몽골에 여행 간 한국인들이 마지막 날 뒷풀이를 하려고 맥주를 잔뜩 쌓아놓고서는 몽골 현지인 가이드에게 같이 술 먹자고 하자, 몽골 현지인 가이드가 하는 말이 술이 어디 있어요?라고 했다. 다른 예로는 술을 전혀 못 한다는 한 몽골인이 맥주를 물처럼 마시자, 의아한 한국인이 술 못 하신다면서 맥주는 어떻게 드시나요??라고 물으니까 '''"맥주는 술 아니에요."'''라고 했다고 했다나. 다만 요즘은 알콜중독이나 폭음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18]
그러나 몽골 자체가 급속한 변화를 겪으면서 국민성이라는 개념에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물론 몽골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4. 몽골 국외 거주 몽골인
몽골 국민들은 중국과 대립하는 감정이 있으며, 아울러 내몽골인이나 자국 내 튀르크계 카자흐인은 더욱이 혐오한다. 중국 정부는 내몽골 자치구와 내몽골인부터 칭기즈 칸을 더욱이 외몽골인들도, 중화민족이라는 식으로 하나로 통합하는 명분으로 삼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떡밥이지만, 중국 정부의 통합 노력과는 별개로 내몽골의 몽골인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한족과는 절대 다른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몽골계 중국인이다. 대만에도 소수의 몽골계 주민들이 사는데 이들은 대부분 내몽골인 혈통이며, 공산화된 중국의 몽골족 탄압을 피해 대만으로 망명해온 경우가 많다.
일단 이 문서는 독립국 몽골국의 국민 90%를 차지하는 할하 몽골인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몽골국에는 몽골인 말고 소련 시대에 이주한 러시아인도 있는데, 인종부터 백인인 데다 정교회를 믿는다. 또다른 이웃 국가인 중국의 한족에 비하면 러시아인의 이미지가 그나마 좋은 편이다.
이슬람을 믿는 5%의 튀르크계 카자흐인 및 키르기즈인도 있으며, 외몽골 서부 호브드 아이막에 산다. 튀르크인들 역시 몽골인과 사이가 나쁘며 그래서 몽골과 카자흐스탄 간 은근한 신경전이 있다.
최근 터키도 몽골에 관심을 가지면서 터키인도 늘어났다. 울란바토르에 대규모 터키 공동체가 있으며 이들은 그나마 몽골인이 우호적으로 대한다. 터키가 중앙아시아 튀르크 종족들의 큰형님을 자처하여 카자흐나 키르기즈, 위구르 등 외몽골 내 튀르크인들을 비호하긴 하지만 딱히 몽골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고, 몽골인 스스로가 "중국인이나 러시아인보단 터키인이 낫다"고 할 정도이다.
4.1. 재한 외국인
몽골인들의 국외 거주 인구는 주변국인 러시아와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많다. 약 4~5만명 정도 된다.[19] 적어보이지만 몽골 인구가 300만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의 1%가 넘으니 적은 게 아니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이 중국조선족을 제외한 수가 약 40만 명이니 비율상 이보다 많다고 보면 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 해외에 노동자로 일하러 가는 경우 아무래도 한국보다 경제규모도 크며 심지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력난도 겪는 일본으로 가는 인구가 더 많다. 게다가 일본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일자리도 남아돌고 있으니... 예를 들면 일본 거주 필리핀인 21만 명, 한국 거주 필리핀인 5~6만 명이고[20] 일본 거주 네팔인 10만 명, 한국 거주 네팔인 4만 명. 그런데 몽골의 경우 일본 거주 인구는 겨우 5,000명으로 특이하게 한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재한 외국인 순위 8위다.
하지만, 이와 함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저지르는 범죄도 늘었다. 불법체류자도 상당하며, 강력범죄율은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에 2위다(2016년 조사. 러시아가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건수로 4837명으로 1위, 몽골은 4678명으로 2위#). 몽골인들이 순수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유목 생활을 하는 시골 초원 사람들의 이야기고 도시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게다가 순수한 사람이라고 해도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말보다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것도 범죄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몽골인에 대한 반감도 늘어날 듯하다. 하지만 언론에선 동남아 사건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직까진 반감은 덜한 편.[21]외국인 노동자 범죄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5. 유명 몽골인
5.1. 실존 인물
- 구유크 칸
- 계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다나시리
- 다니엘라 왕: 중국의 배우. 몽골족이지만 내몽골 자치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몽골 자치현 출신이 아니라 허난성 출신이다.
- 다르카이
- 달라이 라마 4세
- 담딘 수흐바타르
- 덕녕공주
- 데므치그돈로브: 내몽골의 칸으로 몽강국을 세웠다. 몽강국 또는 몽골군사정부는 일제의 괴뢰국으로 형제 국가인 만주국과 같은 처지였다. 이후 장제스에 투항.
- 멍크 바터: 중국의 농구선수, 뜻은 몽골어로 '영원한 영웅'이다.
- 몽케 칸
- 무나시리
- 무칼리
- 바얀
- 바얀 후투그
- 바투
- 베이르 테무르
- 보로클
- 보르테 우진
- 보오르추
- 복국장공주
- 부다시리
- 살리타이
- 수부타이
- 아리크부카
- 아바카 칸
- 아무칸
- 아오르꺼러: 내몽골인인 중국의 격투기 선수로 몽골씨름인 부흐 선수 출신이다. 중국식 이름이 아니라 원래 이름이 차하르어로 아오르거러이다.
- 아운가
- 왕리쥔[22]
- 야쿠
- 오고타이 칸
- 욤자깅 체뎅발
- 엘 테무르
- 예수게이
- 원혜종 토곤 테무르
- 자랄타이
- 자무카
- 제국대장공주
- 제베
- 젤메
- 조리그투 칸
- 주치
- 차가타이
- 차칸 테무르
- 칭기즈 칸
- 쿠빌라이
- 쿠빌라이 칸
- 탕우타이
- 텡기스
- 토오릴 칸(옹 칸)
- 톡토 테무르
- 툴루이
- 티라운
- [23]
- 푸타우
- 허를러깅 처이발상
- 호엘룬
- 훌라구
- 함보 라마 이르길로프(Hambo Lama Itigelov): 러시아 부랴트 공화국의 티베트 불교 대승려로 사망 직후 시신이 썩지 않아서 유명하다. 저절로 미라화된 사례로 뽑히는데 소련 당시 과학 아카데미에선 춥고 건조한 기후와 부랴트 사원 특유의 수련 분위기 등이 실제로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 주어 시신을 미라화/비누화시킨다고 결론을 내렸다.
- The HU#4
- 난딘에르덴
5.2. 가상 인물
※ 해당 국가 작품 제외
- 라리 펠드난드 - 대운동회
- 황아일족 - 마기(만화)
- 몽골인[24] - 무인시대
- 라찌 - 푸른 늑대와 흰 사슴
- 레키 - 비탄의 아리아[25]
- 바트뭉흐 바트바야르 - 히노마루 스모
- 보돈차르, 치베 - 치우천왕기
- 북갑국 사람들 - 환상게임
- 사라 외 - 십시일반 中 <코리아판타지>
- 솔롱고 - 빨래(뮤지컬)
- 아인 - 팬텀 오브 인페르노, 레퀴엠 포 더 팬텀
- 우란푸 - 은하영웅전설
- 위글 옥장 - 북두의 권
- 지그짓 바톨 - 파이팅 레이어
- 킬 한 - 기동무투전 G건담
- 테무진 - 용호의 권 2
- 화쟁 - 사조영웅전
- 조민 - 의천도룡기
- 아이글 - 럼블 로즈
[1] 과거 몽골을 다스렸던 법왕(젭춘담바 후툭투)으로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환생으로 제위를 계승하는 특징이 있다. 복드 칸은 8대 젭춘담바였는데, 참고로 역대 젭춘담바들은 1대와 2대를 제외하곤 모두 티베트 출신이다. 복드 한도 사실 티벳인 출신이다.[2] 투바인에 경우 정확히는 "튀르크-몽골계" 민족이지만, 자신들을 몽골 혈통으로 인정하는 이들도 일부 존재한다.[3]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자는 한인으로 분류되었다.[4] 17세기에 히바 한국에서 활약한 나이만 부족과 병자호란에 동원됐던 나이만 부족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5] 오이라트는 청 황실이 분류하는 진정한 '몽골'으로 분류되지는 못했다.[6]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연방 칼미키야 공화국, 몽골 서부의 홉드(Ховд)와 웁스(Увс) 아이막에 거주하는 오이라트인들은 몽골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재자 윰자깅 체뎅발이 웁스 아이막에서 출생한 토르구트인이다.[7] ##[8] 일본인(야마토 민족)은 일본 열도 선주민이라 할 수 있는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인보다 한국인과 훨씬 가까웠고, 일본인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러스터에 속한다고 한다.[9] 거란족(요나라를 새운 그 민족)의 후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0] ##[11] #[12] 일부 개념 없는 사람들처럼 경제력만 믿고 거들먹거리다간 큰일나는 경우가 많다.[13] 그 예로 국내에서 외국인 범죄자들 중에서 몽골인들의 비율이 높다. 그 이유가 몽골에서 말보다 싸움으로 해결하는 문화 때문에 외국에 와서도 그걸 못 버려서 싸움질 하거나 범죄를 저질러 괜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 몽골 정부도 이런 범죄자들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14] 나라별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하다. 대체적으로 일본이 가장 극단적인 꽃미남 스타일이고, 중국은 좀 더 남자다운 스타일을 선호. 한국은 예쁘지만서도 살짝 남자다운 면을 갖춘 중간 정도를 선호.[15] 이는 북방계 민족이라 뼈가 굵고 덩치 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16] 한 예로 에네스 카야가 고향 친구들에게서 "너 요즘 한국에서 굶고 다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17] 고대 삼국시대 한족들부터 근대 서양인들까지 한결같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평한 민족이 이런 평가를 내릴 정도면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인 것.[18] 몽골에선 매달 1일에는 술을 사고 팔지 못하게 법으로 되어있다.[19] 한국 체류 경험이 있는 몽골인은 약 30만명,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한다.[20] 그런데 일본 인구 약 1억 3천만 명, 한국 인구 약 5천만 명이므로 인구 대비 필리핀인 비중은 좀 다르게 봐야한다.[21] 사실 몽골인들 범죄 양상을 보면 한국인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성범죄나 한국인 대상의 묻지마 살인 같은 것보다, 자기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몽골인들끼리의 문제다 보니 한국인이 관심 가질 이유가 적은 것.[22] 보시라이를 몰락시킨 결정적인 인물. 항목 참조.[23] 티무르는 모계가 칭기즈 칸 일족, 부계가 페르시아인으로 용모는 페르시아계 백인 내지는 혼혈인으로 추정된다. 그의 6대손이 무굴 제국을 건국한 바부르이다. 물론 둘 다 몽골어는커녕 튀르크어도 몰라 페르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했다. 그래서 티무르는 몽골인 위인이 아닌 튀르크 위인으로 봐야 타당하다.[24] 고려에서 사신으로 등장한다.[25] 칭기즈 칸의 후예이자 몽골의 공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