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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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容雲
1927년 9월 6일 ~ 2020년 5월 30일

1. 개요


대한민국수학자로 1927년 일본 도쿄 출생. 본적지는 전라남도 나주시 금천면이다. 수학 관련 대중 서적 집필로 1980년대 - 2000년대까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자로 여겨졌으며, 이후에는 역사와 철학 분야와 관련한 여러 저술을 남겼다.

2. 상세


재일 조선인의 자손으로 태어난 그는 일본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일본 와세다대학 광산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광복으로 부모를 따라 귀국하여 학사 학위를 광주광역시에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받았다. 이후 교원 시험에 합격하여 광주일고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30세에 유학을 떠나, 미국 어번대에서 석사, 캐나다 앨버타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위상수학이었다. 그 후에는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 조교수, 일본 도쿄대학과 고베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1969년에 귀국하여 한양대학교 수학과 교수 및 명예교수로서 동 대학의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으며, 1970~1990년대까지 수학 관련 대중서[1]를 많이 써서, 기성세대에서는 조경철 박사[2]와 함께 꽤 유명한 이공계인이다. 심지어 본인이 감수한 웅진 씽크빅 수학의 원래 이름은 '''웅진용운수학'''이었으며, 2000년대까지 학습지 첫장에 '김용운 선생님의 수학이야기'가 실렸다. 1990년 7월 9일부터 10월 18일까지 한겨레신문에 '즐거운 산수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했다.
일본에서 출생하고 수학하였기 때문에 일본통으로도 유명하다. 9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인기있었던 노구치 유키오[3]의 '초학습법' 시리즈는 김용운이 도쿄 키노쿠니야서점에 들렀다가 선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후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 문화를 소개하거나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를 비교하며 비평하는 여러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전체 세대를 통틀어 대중적인 인지도는 다른 동명이인보다 훨씬 높으나, 서브컬처 특화적인 엔하위키 시절에 동명이인 두 명(김용운(야구), 김용운(도사랜드))보다 나중에 문서가 만들어졌다.
2020년 5월 30일 오전 5시에 향년 93세를 일기로 숙환이었던 폐암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망 얼마 전까지도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여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었다.

3. 저서


  • <문화 속의 수학> (1976)
  • <한국수학사> (1977)
  • <카타스트로피 이론 입문> (1980)
  • <동양의 과학과 사상> (1984)
  • <수학사대전> (數學史大全; 1986) : 한국에서 출판된 수학사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이다.
  • <수학 클리닉> (동생 김용국과 공저)
  •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2020)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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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요, 그 천재 소년은 미적분을 계산하는 척만 했지 그 뜻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 9월 2일자 한겨레신문에 천재소년 김웅용의 실체를 파악한 칼럼을 썼는데 2012년 MBC에 의해 뜬금없이 IQ 210의 천재 김웅용을 공격한 장안의 호사가로 디스당했다(...) 물론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김용운 교수는 김웅용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많은 업적을 수학계에 남겼다.


[1] 대표적으로 김영사에서 출판한 '재미있는 수학여행' 등[2] 이 분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 한국 방송에서 해설을 맡아 대중적으로 알려진 천문학자. 소행성에 이름도 붙여져 있다![3] 도쿄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 고시에 합격해 대장성 관료로 근무하다가 돌연 미국에 유학, 경제학과 교수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종(縱)적 사회인 일본에서 횡(橫)으로 걸어온 사람'이라고 하여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