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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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우 르망살롱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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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모습(2009년)
이름
조경철(趙慶哲)
생몰년도
1929년 4월 4일 ~ 2010년 3월 6일
출신지
평안북도 선천군
가족
배우자 김상경 소생 2남,
배우자 전계현 소생 1남 1녀
직업
천문학자
종교
무종교개신교(순복음교회)[1]
1. 개요
2. 생애
3. 정치 경력
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천문학자. 호는 고성(孤星)으로 혼자 별을 개척한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미국아폴로 계획에서 따 온 '아폴로 박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생애


1929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김일성종합대학 광산공학과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 '''김일성을 암살하려다'''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이후 월남하여 연희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였다. 장교로 임관하여 6.25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금화지구 전투에서 공을 세워 금성무공훈장을 받았으나, 이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후방으로 전출되어 육군사관학교 교수[2]를 거쳐 육군 대위로 제대하였다. 제대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터스큘럼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천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친 후 미국에서 6년간 해군천문대 천체물리연구원,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과학부 주임연구원''', 메릴랜드대학교 교수, 지오노틱스사 우주과학 부장 등에 재직하였다.
1968년에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 교수로 부임하였고, 1969년 KBS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생중계 당시 패널로 나와 유명해졌다. 당연히 미국 현지중계가 아니라 국내 스튜디오에서 미국 방송의 화면을 받아서 보며 해설하는 것. 1960년대 당시는 대부분의 중계가 이런 식이었다. 사실 패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중계를 번역하는 동시통역 역할까지 도맡았다고 한다.
1971년 영화배우 전계현과 결혼하였고, 과학기술정보센터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연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과대학 학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역임하였다.
경희대학교 부총장 직에 있던 1984년, 미국의 여러 기관과 재단[3]에서 천문관측기기의 사용 협의와 자료수집 협조 등을 약속받는 등 적극적으로 천문학과 신설에 앞장섰다. 이런 부단한 노력의 결과 다음해인 1985년 2월 '''우주과학과'''[4]를 설치하여 초대 학과장으로 재임했다. 趙慶哲(조경철)교수 渡美(도미)
1990년대부터 텔레비전 예능광고에 적극적으로 출연해 "재미있는 교수님"으로 인기를 끌었다.[5] 자동차 애호가로서 자동차생활 등의 잡지에도 칼럼을 많이 썼다. 대표적인 작품이 '''백만인의 자동차생활'''(범우사, 1991)이라는 작품. 가장 좋아했던 차량은 '''티코'''라고 한다.[6] 아폴로 박사의 티코 리포트
말년에는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고향인 북녘 땅을 밟았고 동생 조경두를 만났다. 이 당시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SBS를 통해 방영되었는데, 어머니의 묘소에 남한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7]의 영정사진을 갖다 놓고 울면서 성묘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때 북측 안내인이 옆에서 위로하며 "오늘은 기쁜 날인데 웃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거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엉뚱하게도 만화가 최지룡은 이 장면을 보고 빡쳐서 북한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8][9]
과학대중서를 중심으로 170권의 저술을 남겨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자신을 딴따라로 보는 학계의 시각 때문에라도 연구 및 저술활동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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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인 심장 질환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심장마비로 혼수 상태에 빠져 2010년 3월 6일 오전 10시에 향년 81세의 연세로 별세하여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3. 정치 경력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10]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민주공화당 후보로 MIT 박사 출신인 이태섭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두 박사의 대결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신민당 정운갑 후보와 민주공화당 이태섭 후보에 밀려[11] 낙선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종로구-중구 선거구에 신정당[12]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민주정의당 이종찬 후보, 민주한국당 김판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 새천년민주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4. 여담


소행성에 이름이 붙어 있는 몇 안 되는 한국 사람이다. 2001년 일본 도쿄대학은 1991년 8월 9일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가 와타나베 가즈오가 JCPM 삿포로 관측소에서 발견한 소행성에 조경철 박사의 이름을 따 4976 Choukyongchol이라고 지었다. 이 소행성 이름은 국제천문연맹(IAU)에 공식등록되어 있다.
강원도 화천군 광덕산에 있는 조경철 천문대가 바로 조경철 박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천문대이다.
생전에 애니메이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를 감수하기도 했다.
[1] 출처.[2] 당시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용 등이 육군사관학교 생도였다.[3] 미항공우주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카네기 재단[4]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천문학과와 함께 천문학과 TOP3 지망학과로 꼽히고 있다.[5] 대표적으로 이경규몰래카메라에서 가짜 UFO외계인에 낚이는 장면이 잘 알려져있다. 단, 이경규가 뒤집어 썼던 뽀뽀뽀 수준의 외계인 탈과 의상, 그리고 UFO는 대놓고 가짜 티가 났기 때문에 진짜로 낚였다기 보다는 알고서도 적절히 리액션을 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후에 이경규의 주례를 서기도 했다.[6] 카 비젼 이라는 잡지에 티코 할인쿠폰을 싣기도 했다. [7] 조경철이 월남한 후에 그의 아버지도 따로 월남해 부자상봉했다.[8] 뉘앙스에 따라 애매하게 갈리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의 묘소에 성묘를 온 건 매우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뵌 거나 마찬가지니까) 오늘은 기쁜 날이니 웃으셔야죠라고 위로하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최지룡은 같은 장면을 두고 (슬픈 감정을 자아내는 국면에서 억지로 웃을 것을 강요하는) '공산주의의 반인륜적인 면'을 본 것으로 해석했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9] 사실 이장면 보다 마지막에 헤어지기 직전 슬피울던 동생이 안내원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갑자기 냉정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형을 보내는 모습이 더 소름끼쳤다.'[10] 당시는 서초구(방배동 제외. 방배동은 1980년 4월 관악구에서 강남구로 편입됨.), 송파구, 강동구까지 포함하는 권역이었다.[11] 당시는 중선거구제였다.[12] 1992년 박찬종이 창당한 신정치개혁당이 아닌 별개의 군소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