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1853)

 

성명
김용호(金容鎬)
이명
김용우(金容又)

일암(一菴)
본관
김해 김씨
생몰
1853년 8월 28일 ~ 1924년 12월 30일
출생지
경상도 대구도호부 하남면 매곡동
(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1]
추서
건국포장
김용호(金容鎬)는 1853년 8월 28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하남면 매곡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송병선·송병순 등과 학문적으로 교유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곽종석·장석영 등이 작성한 파리장서에 영남유림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하였다. 장서의 요지는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고종황제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줒아하는 내용이었다.
그해 4월 12일 서명자의 한 사람이 경상북도 성주군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검거되면서 파리장서의 실체가 발각되었고, 김용호 또한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영남유림 137명의 한 사람이었기에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1924년 12월 30일 별세하였다.
200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일암문집(一菴文集)』이 있다.


[1]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