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유도)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남자 유도 선수이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 유도 역사상 2번째이자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2000년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 최고의 유도선수이다.'''죽기살기로 했어요. 그러나 졌어요. 그때는, 지금은 죽기로 했어요. 이겼어요. 그게 답입니다.'''
ㅡ2012 런던 올림픽 유도 -81kg 결승전 직후 인터뷰
2. 선수 경력
2.1. 2003년
청소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유망주로 떠올랐다.
2.2. 2004년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선 당시 전년도 세계선수권 우승자 이원희와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패했고, 서로 파트너로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했다. 올림픽 이후 열린 청소년 세계선수권 -73kg 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기량이 급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2.3. 2005년
이원희가 부상에 시달리면서 2005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냈다. 2005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초반에 탈락하고 나서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2.4. 2006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는 1, 2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모두 이원희를 이기고 우승했지만 3차 준우승+국제대회 성적 점수로 이원희에게 밀려 선발되지 못했다. 그 이후엔 기량이 급상승하던 왕기춘에게[2] 밀렸다. 지속적인 감량으로 제실력을 내기 힘들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며 73kg에서 81kg로 올리는 모험을 선택했다.
2.5. 2008년
국내 선발전에서, 당시 국내 -81kg급에서 국제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며 최강으로 평가받던 송대남 선수를 상대로 접전끝에 승리하면서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체급을 올린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작은 기술로 점수를 따거나 상대의 지도를 유도하여 경기시간을 다 소진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그 결과, 각 경기마다 접전을 펼쳤고, 연장접전을 2번이나 벌이며 체력이 고갈되었다. 가까스로 결승까지는 올라가긴 했지만 독일의 올레 비쇼프에게 힘을 쓰지 못하고 유효 하나를 내줘 패해 은메달을 따냈다.[3]
2.6. 2009년
체급에 슬슬 적응하기 시작했고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2.7. 2010년, 2011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81kg급 우승, 2010, 2011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하며 -81kg급 최강자로 우뚝 서는데 성공했다.
2.8. 2012년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유도의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고, 예상대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결승까지 올라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저번 올림픽때 결승에서 패배를 안겼던 올레 비쇼프를 시종일관 밀어붙이며 유효 2개를 얻어내 우승에 성공했다.
2.9. 2014년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복귀하여 -81kg급 금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을 차지했다.
2.10. 2016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도 도전했지만, 부상이 악화되었고 이를 끝으로 은퇴했다.
3. 수상 기록
4. 플레이 스타일
선수생활 초기엔 빠른 스피드로 다리 기술을 걸어 점수를 얻어내고 경기시간 5분을 버티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해서 '미스터 파이브 미닛'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업어치기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체력을 보강하여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하는 등 좋은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주며 상대를 압도했다.
5. 신앙
2012년 런던 올림픽 결승 우승 후 기도하는 세리모니를 하였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물론 세속국가 인 대한민국의 특성 상 네티즌들은 앞다투어 개독이라며 악플테러를 하고 언론은 이러한 까임의 현장을 보도하였으며, 김재범은 직접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종교 떡밥에 대한 태도는 어느 정도 침착해진 편이다. 출석 중인 교회는 프로필에 적혀 있듯이 세습을 비롯한 논란이 많은 명성교회다.
6. 논란
7. 기타
- 국제 대회 커리어로만 보면 전기영 교수 다음으로 꼽힌다.
[1] 명성교회의 교인이다.[2] 지금이야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지만, 당시 왕기춘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첫 출전한 2007년 세계선수권을 우승한 신성이었다. 이 우승 기록은 현재까지도 한국 유도선수중 최연소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남아있다.[3] 은퇴 관련 기사에서는 체력의 부하도 있었지만 메달을 확보했다는 마음에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후회는 있을 수 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