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양궁)

 

'''WA 세계선수권 여자 개인전 우승자'''
[image]

[image] 루안 라이언
(1977)

[image] '''김진호
(1979)'''

[image] 나탈리아 부투소바
(1981)
[image] 나탈리아 부투소바
(1981)

[image] '''김진호
(1983)'''

[image] 이리나 솔다토바
(1985)




[image]
'''이름'''
김진호(金珍浩, Kim Jinho)[1]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61년 12월 1일, 경상북도 예천군
'''학력'''
예천여자중학교
예천여자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종목'''
양궁
'''별명'''
'''양궁 여왕'''[2]
'''은퇴'''
1986년
1. 소개
2. 선수 경력
3. 수상 기록
4.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양궁 선수이자 現 한국체육대학교의 교수 겸 대한양궁협회 이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로서, 여자 양궁이 세계 최강이 되는데 그 주춧돌을 놓고, 가장 먼저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양궁 선수다. 대한민국 양궁에 미친 영향력 하나만큼은 절대적이었던 선수로, 가히 '''대한민국 양궁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현역 시절 별명은 '''양궁 여왕'''이다.

2. 선수 경력


예천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양궁부에 가입하면서 양궁 선수로서의 길에 접어들었다. 실력이 없었으면, 그냥 고교 시절 취미로 하는 정도로 끝났을 텐데, 막상 해보니 실력이 넘사벽이였다. '''손가락이 부러진 상황에서''' 대표 선발전에 나가 1위를 했을 정도면 말 다 했다.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개인전 금메달과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전무후무한 5관왕에 등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3] 그래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급부상했다.
이 무렵 터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했고, 대한민국도 모스크바 대회 보이콧에 동참함에 따라 선수 생활의 최절정기에 타의에 의해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면서 올림픽 메달의 기회는 어이없이 날아갔다.
그래도 포스는 여전해서, 1983 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등극했다. 마침 이듬해 올림픽이 열리는 곳이 로스앤젤레스라서 금메달 후보로 유력했는데, 정작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컨디션 난조와 긴장감 때문에 흔들리면서 0점을 두 번이나 쏘는 등 전반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바람에 동메달을 받았다.[4] 그 결과 금메달을 차지한 서향순이 신궁의 계보를 이어받았고, 김진호 자신은 결국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단체전이 없던 시절이라 그걸로 올림픽 경력이 끝났다.
선수 생활의 절정기에 실패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결국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것 대신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진학을 선언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양궁 3관왕을 차지하는 것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거쳐 1995년 한국체육대학교에 정식 임용되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 수상 기록


올림픽
동메달
1984 로스앤젤레스
개인전
세계선수권
금메달
1979 베를린
단체전
금메달
1979 베를린
개인전
금메달
1979 베를린
30m
금메달
1979 베를린
50m
금메달
1979 베를린
60m
금메달
1983 로스앤젤레스
단체전
금메달
1983 로스앤젤레스
개인전
금메달
1983 로스앤젤레스
30m
금메달
1983 로스앤젤레스
50m
금메달
1983 로스앤젤레스
60m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8 방콕
개인전
금메달
1982 뉴델리
단체전
금메달
1986 서울
30m
금메달
1986 서울
60m
금메달
1986 서울
단체전
은메달
1978 방콕
단체전
은메달
1982 뉴델리
개인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81 싱가포르
단체전
금메달
1983 홍콩
개인전
금메달
1985 자카르타
단체전
은메달
1985 자카르타
개인전
동메달
1981 싱가포르
개인전

4. 기타


  • 여러 모로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선수였지만, 올림픽과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다. 그래도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전설의 첫 장을 장식한 선수이기 때문에, 매번 신궁의 계보를 논할때 반드시 그 첫머리에 등장하는 선수다.
  • 고향인 예천군에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김진호 국제 양궁장'이 건립되었으며, 현재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2017년 5월 11일 네이버 칼럼에 양궁 레전드 부문으로 기사가 올라왔다.
[1] 위의 사진은 현재 교수로 재직중인 모습이고,밑의 사진은 1980년 대학교 1학년(선수시절)때 타임지에서 찍어준 사진이다.[2] 김진호 소개글[3] 5관왕은 지금 제도 아래서는 불가능한데, 당시에는 거리별 궁사 성적에 따라 메달을 수여했기 때문이다.[4] 화살을 두개 날리고 메달을 받아온 건 김진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