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모스크바 올림픽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제22회 올림픽 경기대회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대회
И́гры XXII Олимпиа́ды
Games of the XXIII Olympiad Moscow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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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기간 '''
1980년 7월 19일 ~ 1980년 8월 3일
''' 개최국 '''
소련 모스크바[1]
''' 마스코트 '''
미샤
''' 주제가 '''
Стадион моей мечты
(Stadium of my dreams)
''' 참가국 '''
80개국
''' 참가선수 '''
5,179명
(남자: 4,064명, 여자: 1,115명)
''' 경기종목 '''
21개 종목, 203개 세부 종목
''' 개회선언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최고회의 상임위원회 주석
''' 선수 선서 '''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
''' 심판 선서 '''
알렉산드르 메드베트
''' 성화 점화 '''
세르게이 벨로프
''' 개·폐회식장'''
레닌 중앙 스타디움
(현 루즈니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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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글자막
올림픽 공식 주제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개최지로 확정되어[2] 공산국가 특유의 중앙집권 체제와 '''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풍토를 '''잘 반영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 참고로 올림픽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의 반절 가량은 복권 발행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로또가 발행되기 이전에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1993 대전 엑스포, 2002 한일 월드컵 재원의 상당부분을 복권 발행으로 충당했으니[3] 딱히 이상할 것이 없기는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했다고 하니까 이상할 것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소련은 당대 복권판매로 세계 순위권을 달리던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자 인권 외교를 표방하던 미국지미 카터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동조해 많은 국가들, 특히 서방 세계라 불리는 국가들에서 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4] 그러나 그리스[5]아이슬란드, 스웨덴처럼 보이콧하지 않고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서방 국가들도 있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미국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 싫고, 그렇다고 항의해야 할 것같은 나라들은 국기 대신 올림픽기 또는 자국 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입장하여 이 대회 참가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시해 버렸다. 덤으로 소련과 사이가 1960년대 이후 좋지 않았던 중국도 이 때 그냥 불참해 버렸다. 원래 이 대회를 통해 하계 올림픽 무대에 처음 데뷔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4년 뒤인 1984 LA 올림픽으로 연기됐다. 이외에 일본대만 등도 불참했다.
대한민국도 보이콧했다. 미국의 보이콧 선언에 서방국가들이 동조하는 분위기인지라 그 영향이 당연히 한국에도 미쳤는데 '보이콧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일각에서는 '그러면 참가를 원하는 선수에 한해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 쥐어주고 개인 자격으로라도 참가시키자'는 절충안도 나왔는데, 정서적으로는 북한의 우방국 이미지인 공산국가 소련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반감도 있고,[6]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최종 엔트리 마감 1주일 전인 1980년 5월 17일이 되어서야 KOC 긴급총회를 통해 결국 불참하기로 확정했다. 그런데 긴급총회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국내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참가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긴급총회가 개최된 당일 신군부군사내란이 일어났으며, 이후 5.18 민주화운동과 신군부의 정권참탈 과정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 참가가 불가능했을 것.
이 때문에 불운을 맛본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가 당시 여자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였던 김진호. 그녀는 최전성기에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의 영광과는 아쉽게 멀어졌고, 4년 후 1984 LA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예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항상 여자 양궁 신궁 계보에 반드시 김진호의 이름부터 출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1970년대 초반 펩시소련에 진출하여 짭짤하게 수익을 내자, 이에 맞서 코카콜라도 소련에 진출하려 했다. 소련 당국에 지속적인 로비를 한 결과 올림픽 때 코카콜라를 팔 수 있게 허가권까지 받아 냈고, 이를 계기로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그놈의 아프간 침공이 터지면서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1987년이 되어서야 코카콜라는 본격적으로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미국 패스트푸드점들이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개방을 주장한 고르비 정권이 되어서야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역사상 다섯 번 일어난 집단 보이콧의 하나이며, 그 규모가 그 다음 대회인 LA 올림픽과 함께 가장 커서, 파행으로 치러진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언급된다. 한 마디로 '''반쪽 대회.''' 올림픽 주 경기장인 루즈니키 스타디움(당시는 레닌 스타디움)은 보수를 거쳐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홈 구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신축한 다른 경기장으로 홈을 이전했다.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곳이자,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이기도 하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없던 자리는 소련(금메달 80, 메달 195개)을 위시로 동독(금메달 47, 메달 126개), 불가리아(금메달 8, 메달 41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공산권 국가들이 순위를 차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전체 메달의 약 40%를 소련과 동독 두 나라가 차지했으며, 금메달만 따진다면 60% 정도다. 이탈리아가 5위, 헝가리, 루마니아에 이어 프랑스영국이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 북한은 26위였다. 메달수로 따지면 순위는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폴란드, 루마니아, 영국, 쿠바 순서가 된다고.
공교롭게도 차기 개최국이 바로 미국이었는데[7]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게 됨에 따라 결국 차기 개최국가의 국기 게양식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대신하여 로스앤젤레스의 시기(市旗)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 대신 로스앤젤레스의 시가(市歌)가 연주되어 올림픽 사상 최초로 특정 국가의 도시 시기와 시가가 연주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8]
이 때의 보복을 잊지 않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칼을 갈면서, 4년 후 반쪽 대회 시즌 2가 열리게 된다. 보이콧만 한 게 아니라 공산권은 딱 LA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프렌드쉽 게임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해서 흥행을 깎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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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마스코트인 미샤(Миша/Misha). 불곰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1위로 꼽히고 있다.
33년 6개월 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렸으며, 이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 출범 이후로는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이다.

2. 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


■ 1980년 22회 모스크바 올림픽 (1980 Summer Moscow Olympics)
  • 기간 : 7월 19일~8월 3일
  • 규모 : 81개국 5217(여)명 참가. 
  •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구, 복싱,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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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타


만화 근육맨에서 초인올림픽이라는 전개가 나온 것도 이 때였다고 한다.
그리고, 모스크바 올림픽을 1년 앞두고 기념으로 독일 밴드 징기스칸의 노래 'Moskau(모스크바)'가 나왔다. 다만, 이 영상은 모스크바 올림픽 때 나온 영상이 아니라 2013년 새해 축제 방송에서 나왔던 영상이다. 붉은 군대 합창단까지 초청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래 초반에는 '모스카우' 라면서 독일어로 노래를 하지만, 노래 중반부터는 러시아어로 번안해 노래를 부른다.

에스토니아 가수인 터니스 매기(Tõnis Mägi)[9]가 부른 '올림피아다'(Олимпиада)는 비공식 주제가처럼 취급되었다. 공식 주제가보다는 이 쪽이 더 듣기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을 정도. 그리고 이 노래는 2014년 소치 올림픽 때에도 에도 다른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려졌다.

공식 주제가는 '나의 꿈의 경기장'. 소련 음악치고는 소련이나 공산주의를 찬양, 미화하는 가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여담으로 IOC가 도핑테스트를 수행하기로 한 1967년부터 현재까지 열린 올림픽[10] 중 단 한명도 금지약물에 의해 메달 박탈이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올림픽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서방세계에서는 동구권에서 약물복용이 워낙 일반화되다 보니 제대로 약물검사를 하지 않은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Chemists' games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소련시절부터 체육계의 약물문제가 거론되었었다.
미국이 예상을 깨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티켓을 받지 못하고 탈락하면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이어서 2018년 월드컵에서 불참했다는 농담이 미국 인터넷 상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진지하게 보자면 1980년에는 스스로 떨어져나간 것이고 2018년에는 예선에서 나가떨어진 것이니 경우가 다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일본이 당시 이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했던 사실이 소설의 내용 전개에 사용되었다.
로쿠데나시 블루스에서 콘도 마사히코 선생이 과거 프로 레슬링 선수로 국가대표였다는 과거가 나온다. 그런데, 1972 뮌헨 올림픽과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두고 연이어 병이 나서 수술받느냐 나가지 못했다. 드디어 1980년 이 올림픽 국대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일본도 불참해서 이렇게 해서 올림픽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줄때...다들 신나게 웃어서 콘도 선생은 화냈지만 주인공인 마에다 타이슨은 엉엉 울면서 "불쌍하다, 선생님. 그렇게도 나가고 싶어했을 꿈인데 그렇게 다 이루지 못했으니 너무나도 불쌍해...."라고 슬퍼하는 통에 다들 아연실색하고 콘도 선생조차도 어...응....이렇게 대했다...

[1] 모스크바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종목이 개최되었다. 물론 개최 당시는 소련 한 나라에서 열린 거지만 소련이 깨진 지금 국가 기준으로 한다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공동개최다.[2] 39대 20,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3] 참고로 서울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주택복권의 발행을 일시중지하고 올림픽복권을 발행했고, 대전 엑스포를 개최했을 당시에 엑스포복권이라는 명칭으로 즉석복권을 발행했으며,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주택복권이나 신용카드 복권, 복지복권, 자치복권 등 이미 존재한 여러복권들과 별도의 복권인 월드컵 복권을 발행했다.[4] 그러나 같은 나라면서 선수단을 따로 보내는 푸에르토리코는 참가했다. 푸에르토리코 올림픽 위원회는 권투 선수 세 명을 출전시켰고, 이 세 선수만이 미국 여권을 들고 와서 참가한 선수가 되었다. 단, 푸에르토리코 깃발이 아닌 올림픽기를 앞세워 개인 자격으로 입장하였다.[5] 그리스의 경우 올림픽 대회에서 입장할 때 가장 먼저 입장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참가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980년 올림픽은 친 그리스 국가인 키프로스의 첫 올림픽 무대였다.[6]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1973 모스크바 하계 유니버시아드민스크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공산권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란 원칙은 없어서 여건이 되면 다 참가했다. 대통령이 바뀌진 않았지만 1962년 월드컵 지역예선 때와는 입장이 상당히 달라진 듯. 다만 반대로 1980년대 초까지는 공산권 국가들은 '남조선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존재했다. 지금 보기는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과 인지도도 낮고 대부분이 아마추어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유니버시아드가 크게 차이가 나게 보이지만, 1973년 당시에는 올림픽 메달도 따기 힘든 시절이라(그 이전에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은 한 대회에서 많아야 메달 3개 따던 수준이었다) 당시 유니버시아드에 관심이 높았고, 이 대회 참가는 큰 이슈가 되었다. 메달을 따자 '적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올렸다'는 기사들도 올라왔다.[7] 같은 해 열렸던 동계 올림픽 개최지도 미국 뉴욕 주 레이크플레시드. 주로 동계올림픽이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1992년까지) 동계 대회가 먼저 열리게 된다. 그 대회 당시 서방 국가들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이 예측되었지만, 이 때는 동구권 선수들이 그냥 참가하고 다음 하계 올림픽 때 보복했다. 중국도 참가했다.[8] 미국 측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거부했다. 미국은 선수는 참가시키지 않았지만, 일부 임원과 심판은 파견했다.[9] 참고로 아이러니하게도 터니스 메가는 후일 에스토니아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동참했다. 노래혁명 영상에서도 나올 정도.[10] 1968년 멕시코시티부터 2016년 리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