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향순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여자 양궁 선수이다. '''신궁 계보'''의 계승자이자, 대한민국 역사상 첫 올림픽 여자 금메달리스트이자, 양궁 첫 금메달리스트이다.
2. 선수 경력
동명여자중학교 1학년 때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활을 잡게 된 서향순은 중학교 2학년 때 실력 부족을 이유로 양궁부에서 나왔지만, 당시 자신을 지도하던 교생 선생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다시 양궁부에 들어가 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광주여고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고 1때 처음 대표로 뽑혔지만, 처음 대표 생활에서 그야말로 엉망인 실력을 보여주면서 선수촌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실력의 기복이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향순은 비록 양궁부에 들어갔지만, '''정식으로 양궁에 입문하지 않았다.''' 정식 코치에게서 지도를 받은 것은 지방 순회 코치에게 4개월, 대표로 뽑혀서 4개월 교육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막상 최고 선수들만 모아 놓은 자리에서는 한계를 보였던 것. 좌절하고 거의 양궁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던 서향순은 광주시의 추천으로 고3 때 다시 대표 선발전에 지원했다. 원래는 대회 출전 경력이 없어서 참가가 안 되는 것인데, 시의 추천이 있어 참가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2등을 차지하면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서향순 본인의 회고로는 만일 자신이 3등이었다면, 1년 넘게 별다른 대회에 나가지 않은 자신은 뽑아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2등이었기 때문에 배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3]
당연히 올림픽이 생애 첫 국제 대회였는데, 여기서 '''대성공'''을 거둔다. 생애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이 당시 경기 방식은 30M, 50M, 60M, 70M에서 활을 두 번씩, 총 288개를 쏴서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가리는 것이었는데, 첫 라운드에서는 3위를 기록했지만, 두 번째 라운드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면서 역전, 최종 합계에서도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해 버렸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김진호를 동메달로 밀어낸 결과였다. 우승하면서 부모님과 한 통화에서 단팥죽이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4]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대학 자체도 원하는 곳을 골라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타입이 아니라서, 활 쏘는 자세가 당시에도 특이했다고 한다. 당시 규정으로 2분 30초 동안에 3발을 쏴야 하는 것인데, 서향순은 1분 30초 동안 가만히 땅을 보다가 마지막 1분에 세 발을 몰아서 쏘는 습관이 있었다. 대표 선수가 되면서 정식으로 양궁을 배워 많은 부분을 교정하고, 탄탄한 체격인 170cm에 70kg의 체중을 가지고 힘으로 승부하는 타입으로 성장했지만, 보는 사람을 피말리게 하는 이 버릇만은 선수 시절 내내 바뀌지 않았다.
기대 밖의 우승을 차지한 탓인지, 애당초 탄탄한 기초부터 양궁을 시작한 케이스가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뒤의 경력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진학해서 공부를 계속하지만, 그 뒤 양궁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것이 전부다. 서향순에게 밀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김진호는 이 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5]
결국 양궁에 대한 흥미를 잃은 서향순은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박경호와 결혼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참고로 김진호도 같은 해에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한 때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햄버거 장사도 하는 등, 선수 은퇴 후에는 양궁과 완전히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가, 조선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남편과 함께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미국에서 양궁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딸인 박성민은 골프 유망주였다고 은퇴 후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고, 아들은 야구 선수, 막내 딸은 골프 선수다.
김진호나 김수녕이 그랬던 것처럼, 서향순도 광주에 자신을 기려 만든 서향순 양궁장이 있다. 염주체육관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짚봉산 인근에 만들어지는 양궁 경기장에는 후배 기보배의 이름과 같이 쓰인 서향순·기보배 양궁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서 개최된 2번의 올림픽 개막식에 모두 참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올림픽기, 30년 후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수단 6명에 포함되었는데, 한국의 간판 종목인 양궁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한 선수라는 상징성을 반영한 덕분인 듯하다.
4. 수상 기록
[1] 현재는 동명중학교로 바뀌었다.[2] 선수시절[3] 확실히 서향순은 여러 모로 시운이 좋았는데, 이때 당시까지는 그래도 추천 선수라는 이름으로 대회 출전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1980년대 후반 양궁협회가 개혁을 추진하면서 아예 추천으로 대회 출전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4] 정확히는 오빠가 한국에 돌아오면 단팥죽을 사 준다고 했고, 서향순은 단팥죽? 좋지! 라고 답했다. 언론에서는 전세계가 쳐다보는 가족과의 전화 통화에서 단팥죽을 운운한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부적절한 평을 하기도 했다.[5]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의 양궁은 거리별로 메달을 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