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림(1968)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2. 출생 및 성장
김혜림의 어머니는 가수 겸 배우인 나애심(본명 전봉선)이다.[1] 혜림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지만, 정작 혜림은 단 한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집안에서는 불문율처럼 아버지 이야기를 거론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으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봤다고 한다. 2007년 5월 18일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해 힘든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고 고백했다.
3. 활동기
조용필이 나애심의 팬이라 혜림의 집에 자주 놀러왔었는데 혜림의 재능을 알아보곤 가수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애심은 결사반대했는데, 후에 김혜림은 결국 조용필 밑에서 '필기획' 소속으로 데뷔하게 된다.#
1988년 KBS의 예능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각기 다른 소속사의 신인과 연습생들을 모아 《젊음의 행진》 전속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통크나이'를 조직했고, 김혜림도 여기에 포함되어 데뷔하게 되었다. 통크나이에는 김혜림 외에도 소방차의 멤버인 이상원과 최근 SBS 《불타는 청춘》에 출연했던 안혜지, 이규석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룹 전체가 노래 뿐만 아니라, MC도 보는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이듬해인 1989년엔 솔로로 데뷔했고,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받는 등 흥행에 성공한다. 대표곡으로 신인상을 안겨준 'DDD'(당시에는 장거리 전화를 DDD로 표현했다), '이젠 떠나가 볼까'가 있다.
1994년 김혜림은 4집 앨범 《Kim Hyelim4》를 직접 제작했다. 타이틀곡 '날 위한 이별'[2] 은 오랜 기간 여성들의 대표적인 노래방 애창곡이었다.[3]
김혜림은 명실공히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가수 중 한 명이다.
1998년 정규 7집, 1999년 베스트 음반을 낸 이후 라디오 DJ와 연기자로 활동했다.
2007년 디지털 싱글 《어쩌면 좋아》를 발매하며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세미 트로트 장르로 중독성이 강한 '어쩌면 좋아'[4] , 슬픈 발라드 '이사람', 기존 김혜림 스타일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남자는 다 마찬가지' 등이 수록됐다.#
김혜림은 2017년 12월 별세한 어머니를 10년 넘게 병간호 하느라 간간이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도 방송과는 거리를 뒀다.#
4. 여담
- 밝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쾌활한 웃음을 주는 김혜림은 '연예계의 마당발' 또는 '여의도의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김혜림은 "'여의도 마당발’의 계보는 '이성미-김혜림-박경림, 이렇게 된다"라 언급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