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가요대제전

 


''' 가요대제전'''
<colbgcolor=#334555><colcolor=#ffffff> '''국가'''

'''주최'''
예능본부
'''첫 개최 연도'''
1966년(58주년)
1. 개요
2. 상세
4. 역대 10대가수 가요제 / 가요대제전 대상 수상자
4.1. MBC 10대가수 청백전 (1966 ~ 1973)
4.2. MBC 10대가수 가요제 (1974~1992)
4.3. MBC 한국가요제전 (1993 ~ 1997)
4.4. MBC 가요제전 (1998) / MBC 10대가수 가요제 (1999 ~ 2004)
4.5. MBC 가요대제전 (2005)
4.6. 역대 남성,여성 진행자/역대 진행 장소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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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BC에서 주관하는 연말 가요 프로그램.

2. 상세


지금의 이름으로 시작한 건 2006년부터지만 1966년 12월 2일 문화방송 창사 5주년 기념 10대 가수[1] 청백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두 방송사와는 달리 라디오에서 시작한 것이 특징.[2] 이후 1970년부터 TV로도 방영되기 시작한다.
그후 1974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한해 가요계 10대 가수를 들여다 놓고 이중에 최고의 가수를 뽑는 시상식 형태로 진행되었다. 2005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사이에 열리다 안열리다가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1987년은 대상 수상자로 예정 되었던 조용필의 수상 거부로 지금과 같이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었고[3], 1988년에 시상식 형태로 다시 부활되었으나, 이름은 '88 MBC 가요대제전'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상식에서 흑역사가 있는데, 당시 민해경이 베스트드레서상을 수상했는데, 가수가 받을 상이 아니라며, 수상을 거부하자, MBC에서 출연 제재를 먹은 일이 있다. 당시 기사
이후 1989년 '10대 가수 가요제'[4]란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여 진행하다가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조용필과 마찬가지로 수상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자[5] 냉큼 10대가수란 이름을 폐지하고 가요대제전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것이 1997년까지 지속되었는데, 1994년, 1995년에는 최고 인기가요만 선정했다. 1996년에는 MBC 창사 35주년을 맞이하여 원로가수부터 그 당시 신세대 가수까지 출연하여 35년의 가요사를 연도별로 그 해 일어났던 사건과 함께 돌아보는 순서로 꾸며졌다.[6] 그래서 1996년에 한해서 96년 이전 예전 가요를 노래하는 무대의 비중이 많았고 96년 한해 동안 히트한 노래를 부르는 비중은 적었다. 97년도 세대 화합 차원에서 10-40대가 좋아하는 가수를 나눠서 소개했고 예전 가수들의 무대가 꾸며졌는데 96년에 비해선 적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해체한 이후 더 이상 축제 형식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1998년에는 '10대 가수 가요제'란 이름이 부활했으나 이 때는 10대 가수상 없이 세대별로 최고 가수를 선정했다. 2001년까지는 이런 형식으로 진행된 뒤, 2002년부터 다시 10대 가수 상이 다시 부활, 200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당시 10대 가수들의 잇따른 보이콧[7]으로, 2006년부터는 시상식은 열리지 않고 'MBC 가요대제전'으로 개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02년 시상식에서는 HD 시험 방송을 실시했다. 로고 세트를 그대로 두었던 KBS 가요대상과 달리[8] 로고도 다 바꾸고 수상 제도도 바꾸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는 반응이 안 좋았는지 2003년~ 2004년 시상식까지는 다시 이전 세트와 SD 방송으로 전환하여 방송하다 2005년 시상식부터 본격적인 HD 방송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93년 한국가요제전 행사 때부터 방송 중 보신각 현장을 연결해 제야의 종 타종식을 2005년까지 중계했고,[9] 2006년에는 경기도 임진각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한 이후, 경기도와 계약을 맺었는지 행사가 경기도에서 열리고[10], 제야의 종 타종을 보신각에서 임진각 평화의 종으로 옮겨서 중계하고 있다.[11]
대구MBC부산MBC는 서울에서 송출하는 방송을 '''잠시 중단하고''', 해당 지자체 주관 타종 행사를 중계한다.[12] 즉, 11시 58분부터 12시 08분까지 출연하는 가수들은 그냥 서울에만 방송이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2008, 2009년 광주MBC는 2년 연속으로 광주시내 타종행사를 중계한답시고 '''가요대제전 2부 전체를 로컬방송으로 때웠다가'''[13] 해당지역 시청자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 광주MBC는 본사 릴레이를 끊지 않고 있다.
1978년까지 10월 마지막주 토요일[14]에 치러지다가 1979년 행사부터 12월 31일로 방송일이 고정되었다.[15] 1989년에는 전두환의 국회증언 중계로 1990년 1월 1일에 녹화방송되었다.
1970년대 ~ 1992년까지 문화방송 사가를 어레인지 한 10대 가수 가요제 노래가 따로 존재했었다. 1990년까지 OP/ED 시그널, 시상식 음악으로 쓰였고 1991년에는 ED 시그널로 쓰였으며 1992년에는 시상식 음악으로 나왔었다.
그동안은 여의도 MBC 본사와 일산신도시의 MBC 드림센터에 각각 스테이지를 설치하고 이원 생방송을 했고, 따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 쪽으로 입맛대로 가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가수들은 본사의 메인 무대에만 나오기 때문에 드림센터 쪽은 항상 관객이 안습.[16] 예의상 한두 팀 정도는 드림센터 쪽으로 보내긴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임진각에서 공연하는 가수팀은 엄청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데, 대개 신인들이 희생양(?)으로 임진각으로 보내진다. 팬들 사이에선 '''임진각 유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수가 얇은 무대의상만 갖추고 힘들게 공연을 하는 것은 티비로 보는 시청자들마저 괴로울 지경. 대신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소속사 상관없이 보내기 때문에 임진각 공연조차 못가는 가수팀보다는 낫다. 빅뱅, 에프엑스, 포미닛, 티아라, 엑소, 에이핑크 등이 다녀온 경험이 있으며 2013년에는 야외무대가 없었고[17] 2014년에는 상암 MBC 신사옥 앞 광장으로 옮겼다. 물론 임진각보단 덜 춥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더군다나 무대를 아이스링크장에 설치하면서 오히려 체감온도는 임진각과 맞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2015년 공포의 임진각 야외무대가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몇몇 신인급 아이돌 팬덤들이 술렁거리고 있다가 다행히도 방송 당일에 무대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
위에 언급한 대로 10대 가수 청백전에 뿌리를 둔 만큼 같은 날에 치러지는 일본 NHK홍백가합전과 유사하게 매년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한 라운드씩 대결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승리팀은 시청자들의 문자투표로 결정된다. 과거 1993년 한국가요제전은 홍백가합전과 아주 유사했는데 청백으로 나눠서 노래부르는 구성도 그렇고 우승팀 발표하는 장면은 MBC 로고가 찍힌 우승 깃발을 우승팀에게 전달했는데 홍백가합전이 연상될 정도였다.
대체로 방송 3사 연말 가요제 중에선 가장 구성이 좋고 볼만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단, 2011년은 예외였다.
해외에서도 사전녹화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 인원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MBC와 협력관계인 후지TV의 준키국인 간사이TV의 스기모토 나츠미 아나운서도 사전녹화 입장을 위해 새벽부터 일반 관객들과 똑같이 대기했다고. 그리고 2018년에도 동방신기 사전녹화로 왔다 가셨다. #[18]
사내입장권 등을 가장해서 올라오는 가요대제전 초대권 양도 글은 MBC 권해봄 PD에 의하면 모두 사기라고 한다. 사기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2006년 이후로는 시상식을 하고 있지 않는데, 2017년 현재 이런저런 시상식이 많이 자리잡았고 10년 이상 선정하지 않은 점을 보면 가요제에서 시상식을 하는 문화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
2017년은 MBC 파업이 종료되면서 예년에 비해 훨씬 풍부해진 볼거리를 내놓았다. 'The FAN'이란 주제로 특별무대를 꾸미고 3원방송[19], 사전녹화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는데, 일례로 아스트로는 팬덤(아로하)이 무대 뒤에서 직접 카드섹션을 꾸미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역사 문서의 2017년 항목 참조.
일본에서도 KNTV로 생방송해주는데, KNTV는 웬만한 일본의 케이블사업자에서도 다 서비스해서 전국에서 다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MBC 10대 가수 가요제 필름녹화분은 1976년부터 보관되어 있는 상황이다.1976년도 전에는 필름값이 워낙 비쌌고 필름을 재사용하던 시대라 1966~1975년도 녹화분은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다고 봐야한다.[20]

3. 역사




4. 역대 10대가수 가요제 / 가요대제전 대상 수상자



4.1. MBC 10대가수 청백전 (1966 ~ 1973)


<rowcolor=#ffffff> '''연도'''
'''최고 인기 가수상'''
'''수상곡'''
'''10대 가수 명단'''
1966년
최희준
《하숙생》
남일해, 문주란, 위키리, 유주용, 이금희, 이미자, 정원, 최양숙, 최희준, 현미
1967년
이미자
《엘레지의 여왕》
김상희, 최희철, 현미, 문주란, 남진, 배호, 이금희, 남일해, 이미자, 유주용
1968년
이미자
《여자의 일생》
강소희, 김상희, 문주란, 박재란, 배호, 유주용, 이미자, 이상열, 최희준, 한상일
1969년
펄 시스터즈
《님아》
김상희, 김세레나, 나훈아, 배호, 이미자, 이상열, 조영남, 최희준, 펄시스터즈, 패티김
1970년
이미자
《그리움은 가슴마다》
배호, 이미자, 최희준, 이상열, 김부자, 정훈희, 한상일, 최정자, 나훈아, 펄시스터즈
1971년
남진
《마음이 고와야지》
김상진, 김상희, 남진, 나훈아, 이미자, 이상열, 조미미, 최희준, 펄시스터즈, 하춘화
1972년
남진
님과 함께
김상진, 김상희, 남진, 나훈아, 문주란, 이상열, 정훈희, 조미미, 이용복, 하춘화
1973년
남진
《그대여 변치마오》
김상진, 김상희, 김세레나, 남진, 문주란, 이미자, 이상열, 이용복, 이현, 하춘화

4.2. MBC 10대가수 가요제 (1974~1992)


<rowcolor=#ffffff> '''연도'''
'''최고 인기 가수상'''
'''최고 인기 가요상'''
'''10대 가수 (남 / 여)'''
1974년
하춘화 《난생 처음》
이수미 《내 곁에 있어주》
김세환, 남진, 송창식, 윤향기, 이현 / 김상희, 김세레나, 문주란, 이미자, 하춘화
1975년
송창식 《왜 불러》
송창식 《왜 불러》
김세환, 남진, 박상규, 송창식, 윤항기 / 옥희, 이미자, 이수미, 정미조, 하춘화
1976년
송대관해뜰날
송대관해뜰날
금과은, 김훈 , 박상규, 송대관, 송창식 / 김인순, 김상희, 정미조, 조미미, 하춘화
1977년
혜은이 《당신만을 사랑해》
혜은이 《당신만을 사랑해》
금과은, 김만수, 김훈, 송대관, 이수만 / 김인순, 이미자, 이은하, 하춘화, 혜은이
1978년
최헌 《앵두》
윤수일 《사랑만은 않겠어요》
송대관, 윤수일, 조경수, 최병걸, 최헌 / 이미자, 이은하, 전영, 정종숙, 혜은이
1979년
혜은이 《제3한강교
-
송창식, 윤수일, 전영록, 조경수, 최헌 / 심수봉, 양희은, 이은하, 정종숙, 혜은이
1980년
조용필창 밖의 여자
조용필창 밖의 여자
송창식, 윤수일, 전영록, 조용필, 최헌 / 박경애, 윤시내, 이은하, 혜은이, 현숙
1981년
조용필 《고추잠자리
조용필 《고추잠자리
김만수, 윤수일, 전영록, 조용필, 함중아 / 윤시내, 이은하, 이정희, 현숙, 혜은이
1982년
이용잊혀진 계절
이용잊혀진 계절
나훈아, 송골매, 이용, 전영록, 조용필 / 남궁옥분, 민혜경, 윤시내, 이은하, 현숙
1983년
조용필 《나는 너 좋아
조용필 《나는 너 좋아
송골매, 전영록, 조용필, 이용, 최백호 / 김연자, 방미, 윤시내, 이은하, 혜은이
1984년
조용필 《친구여
이선희J에게
김수철, 송골매, 전영록, 조용필, 이용 / 김연자, 윤시내, 이선희, 이은하, 정수라
1985년
조용필 《그대여
김범룡 《바람 바람 바람》
구창모, 김수철, 송골매, 전영록, 조용필 / 김수희, 나미, 이선희, 이은하, 정수라
1986년
조용필 《허공
조용필 《허공
구창모, 김범룡, 전영록, 조용필, 윤수일 / 나미, 이선희, 정수라, 주현미, 최진희
1987년[21]
전영록 《하얀 밤에》
이선희 《알고 싶어요》
-
1988년[22]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김종찬, 이문세, 전영록, 조용필, 최성수, 현철 / 이상은, 이선희, 정수라, 주현미
1989년
주현미 《짝사랑》
주현미 《짝사랑》
김흥국, 박남정, 변진섭, 이문세, 전영록, 현철 / 양수경, 이선희, 이지연, 주현미
1990년
변진섭 《희망사항》
주현미 《잠깐만》
변진섭, 설운도, 신해철, 태진아, 현철 / 김지애, 민해경, 이선희, 주현미, 최진희
1991년
노사연 《만남》
노사연 《만남》
신승훈, 심신, 윤상, 이상우, 태진아, 현철 / 강수지, 김완선, 노사연, 주현미
1992년
-
서태지와 아이들난 알아요
김국환, 박정운, 설운도, 신승훈, 이상우, 현철 / 강수지, 노사연, 양수경, 주현미
1980년대가 그야말로 조용필의 최고 전성기였음을 증명하는 대목. 1982년 이용에 밀려 최고인기가수상 수상을 못했고 1987년 스스로 수상을 거부했다고 해도 1980년대 가요계의 절반 이상, 특히 1980년대 초반의 가요계는 조용필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 MBC 한국가요제전 (1993 ~ 1997)


<rowcolor=#ffffff> '''연도'''
'''최고 인기 가요상'''
1993년
김수희애모
1994년
김건모핑계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Come Back Home
1996년
김건모스피드
1997년
H.O.T.행복

4.4. MBC 가요제전 (1998) / MBC 10대가수 가요제 (1999 ~ 2004)


<rowcolor=#ffffff> '''연도'''
'''30세 미만 최고 인기 가요상'''
'''30세 이상 최고 인기 가요상'''
1998년
H.O.T.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
1999년
조성모 《For Your Soul》
송대관네박자
2000년
조성모아시나요
태진아사랑은 아무나 하나
2001년
god
태진아잘났어 정말
<rowcolor=#ffffff> '''연도'''
'''최고 인기 가수상'''
2002년
장나라Sweet Dream
2003년
이수영 《덩그러니》
2004년[23]
이수영 《휠릴리》

4.5. MBC 가요대제전 (2005)


<rowcolor=#ffffff> '''연도'''
'''최고 인기 가수상'''
2005년[24]
김종국사랑스러워

4.6. 역대 남성,여성 진행자/역대 진행 장소


<rowcolor=#ffffff> '''연도'''
'''남성 MC'''
'''여성 MC'''
'''진행 장소'''
'''MBC 10대가수가요제'''
1976년
곽규석, 차인태
-
문화체육관
1977년
변웅전, 차인태
1978년
차인태, 정경수
오영제
1979년
변웅전, 정경수
-
1980년
김혜현
1981년
최경미
여의도 구 본사 공개홀
1982년
문화체육관
1983년
이덕화
홍광은
1984년
박영희
1985년
김보경
여의도 구 본사 공개홀
1986년
송옥숙
문화체육관
'''한국가요대제전/MBC 가요대제전'''
1987년
이덕화
이혜숙
장충체육관
1988년
조용원
'''MBC 10대가수가요제'''
1989년
이덕화
김희애
장충체육관
1990년
잠실실내체육관
1991년
차인태
이영현
1992년
변웅전
김희애
'''MBC 한국가요제전'''
1993년
이덕화[25]
김희애
88체육관
1994년
최수종
김혜수
1995년
주병진
이승연
1996년
한선교
김희애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1997년
김승현(1부)
신동호(2부)
김국진, 김용만(3부)
이승연(1부)
신애라(2부)
장충체육관
1998년
이문세
김혜수
'''MBC 10대가수가요제'''
1999년
주병진
이소라
잠실학생체육관
2000년
류시원
-
장충체육관
2001년
신동호
소유진
2002년
김용만, 강호동
장서희
2003년
김용만
하지원
2004년
한예슬, 한지혜
'''MBC 가요대제전'''
2005년
김용만, 유재석
-
장충체육관
2006년
김성주, 김제동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07년
무한도전[26](일산)
김인석(임진각)
윤은혜(일산)
서현진(임진각)
일산 드림센터 ST6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08년
김구라, 유세윤, 윤종신(일산)
오상진, (임진각)
김민정(일산)
2009년
김구라, 신정환(일산)
오상진(임진각)
이보영(일산)
정가은(임진각)
2010년
류시원
티파니, 유리
일산 드림센터 ST6
2011년
조권, 이특, 닉쿤, 이장우
가인, 강소라, 빅토리아, 함은정
광명 스피돔
일산 드림센터 ST6
2012년
이휘재, 붐, 이준(일산)
정성호(임진각)
서현(일산)
김나영(임진각)
일산 드림센터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13년
김성주, 박형식, 노홍철, 정준하(일산)
김대호(임진각)
클라라
일산 드림센터 ST 5,6
임진각 평화누리
2014년
김성주, 전현무
혜리, 소유, 이유리[27]
일산 드림센터 ST 6
상암 신사옥 야외광장
2015년
김성주
임윤아
일산 드림센터 ST 6
상암 미디어센터 공개홀
2016년
임윤아(일산)
이진(코엑스)
일산 드림센터 ST 6
상암 방송센터 A 스튜디오
영동대로
2017년
수호, 차은우(일산)
박창현(보신각)
임윤아
일산 드림센터 ST 6
보신각
2018년
노홍철, 민호, 차은우(일산)
김정현(임진각)
임윤아(일산)
이영은(임진각)
일산 드림센터 ST 6
상암 방송센터 A 스튜디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19년
장성규, 차은우
임윤아
일산 드림센터 ST 5,6
상암 방송센터 A 스튜디오
롯데월드타워
2020년
장성규, 김선호
일산 드림센터 ST 6
상암 방송센터 A 스튜디오

5. 관련 문서


[1] 10~19세를 뜻하는 10대(代)가 절대 아니다. 10명의 대(大)가수(10大 歌手)를 모셔놓고 치르는 행사다.[2] 이 점 외에도 청백전 형식으로 팀을 나눠서 승자를 가리는 방식 등이 옆 나라 일본의 NHK 홍백가합전과 방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홍백가합전도 라디오가 첫 방송이었고 반응이 좋아 TV로 방송되었기 때문.,[3] 최고인기가수로 전영록, 최고인기가요로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가 선정되긴 했지만 공식 시상은 하지 않았다.[4] 김흥국은 자신이 1989년 10대 가수 수상자였다는 사실을 예능에서 써먹고 있다. 심지어 모 프로그램에서는 딸에게 자신이 10대 가수였다는 사실을 말해줬더니 딸이 비웃었다고...[5] 당시 서태지는 방송사에서 나오라면 나오고 들어가면 들어가는 세태에 상당히 반감을 품고 있었던데다 본인도 조용필 키드(혹은 들국화)였기 때문에 '축제 형식 무대라면 나가겠지만 시상식에는 가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지금 아이돌이나 대중가수가 활동 휴식기-컴백 사이클을 최초로 만든 게 서태지이고, 그 초반 역풍도 서태지가 대부분 탱킹했다.[6] 그 해 히트곡을 부를 때 오른쪽에 해당 해에 일어난 사건이 표시되었다.[7] 당시 큰 영향을 끼친 보이콧이 SG워너비.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그리고 이 당시에는 동방신기도 일본 프로모션 스케줄과 겹치게 되어 불참을 선언하였다.[8] 그 로고는 1998년 시상식부터 쓰이고 있었다.[9] 그 이전에는 가요제가 끝나고 '가는 해 오는 해' 생방송을 통해 새해를 맞이했다. 지금도 일본 NHK가 쓰이고 있는 편성이다. 시상식 도중 타종 현장을 연결해 중계를 한 건 MBC가 가장 먼저 했다.[10] 10대가수 가요제 시절에는 정동 사옥 옆에 있던 문화체육관(2007년 철거됨)에서 줄곧 행사를 치렀고 여의도 사옥이 준공된 1981년에는 여의도 MBC 공개홀에서 행사를 치렀다. 이후부터 2005년까지는 서울 여의도 공개홀, 장충체육관, 잠실체육관 등지에서 열렸었다. 2006년 이후엔 일산 MBC 드림센터, 광명스피돔 같은 경기도 지역에서 열린다.[11] 예외로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등 남북관계 경색, 구제역 등의 여파로 행사가 취소되어 중계하지 않았다.[12]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 달구벌대종, 부산은 용두산공원 시민의 종.[13] 타종행사 이후 남는 시간은 다큐멘터리 재방송을 틀어줬다.[14] 1975년에 한해 11월 1일에 치러졌다. 당시 한지붕 두가족 체제로 합병됐던 문화방송경향신문의 합병을 기념해 합병 기념일인 11월 1일에 개최됐다.[15] 1979년에는 10월 27일에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가 10.26 사건으로 인해 취소되고 이 때부터 해당날짜로 진행되었다. 당시 행사가 연기된 것은 당연했다. 나라가 초상집인데 잔치를 치를 수가 만무하므로.[16] 예외로 2012년에 인피니트가 임진각으로 갔다. 하지만 3곡이나 부르게 되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였다.[17] 대신 걸스데이가 드림센터 옥상에서 무대 앞부분을 녹화했다. 뒷부분은 1층 로비에서 라이브.[18] 2018년 가요대제전 사전녹화는 방청객 대기가 실내에서 이뤄졌다.[19] 단, 일산드림센터 내부에서만 진행했다.(공개홀 스튜디오와 로비)[20] 그나마 녹음본은 남아 있으나 1968년 이전은 녹음마저 남아있지 않다.[21]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용필이 수상을 거부하면서 MBC 가요대제전으로 개최되었으며 최고인기가수상 수상자와 최고인기가요상 수상자는 선정됐지만 공식 시상은 생략됐다.[22] MBC 가요대제전으로 2년 연속 개최[23] 10대가수 가요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마지막 행사.[24] 이 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시상식이 열리지 않고있다.[25] SBS 쇼 서울서울을 마지막으로 정규 프로 MC를 은퇴하고 간간이 특집 프로를 진행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마지막으로 MC를 보지 않고 연기 활동을 많이 했다.[26]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동년 방송연예대상 수상 팀이다.[27] 이유리의 경우 왔다! 장보리로 전날 MBC 연기대상 대상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