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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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村悌次 (なかむら ていじ)
1919년 9월 24일 ~ 2010년 7월 23일
일본의 군인, 자위관. 11대 해상막료장을 지냈다.
1919년 9월 24일 교토부에서 태어났다. 1939년에 일본해군병학교 67기로 수석으로 졸업했고 대위로 종전을 맞았다.
1952년에 해상경비대에 입대했고 제1잠수대군[1] , 해상막료감부 방위부, 통합막료회의 사무국 제5막료실장 등에서 근무했다. 해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호위함대 사령관, 구레지방대 총감, 자위함대 사령관 등을 지냈고 1976년에 사메시마 히로이치에 이어 해상막료장에 올랐다. 1977년에 퇴직했고 후임자는 오가 료헤이였다. 퇴임 후에 후배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며 낙하산 인사를 거부했다.
워커홀릭 기질이 있어 부하들이 모시기 힘든 상사였다. 해상막료장 취임 직후에 주요 기지를 방문할 때 부관 한 명만 데리고 다녔고 이키 섬에 주둔한 이키경비소[2] 를 방문할 때 헬기가 착륙하지 못 하자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中村悌次 (なかむら ていじ)
1919년 9월 24일 ~ 2010년 7월 23일
1. 개요
일본의 군인, 자위관. 11대 해상막료장을 지냈다.
2. 생애
1919년 9월 24일 교토부에서 태어났다. 1939년에 일본해군병학교 67기로 수석으로 졸업했고 대위로 종전을 맞았다.
1952년에 해상경비대에 입대했고 제1잠수대군[1] , 해상막료감부 방위부, 통합막료회의 사무국 제5막료실장 등에서 근무했다. 해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호위함대 사령관, 구레지방대 총감, 자위함대 사령관 등을 지냈고 1976년에 사메시마 히로이치에 이어 해상막료장에 올랐다. 1977년에 퇴직했고 후임자는 오가 료헤이였다. 퇴임 후에 후배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며 낙하산 인사를 거부했다.
워커홀릭 기질이 있어 부하들이 모시기 힘든 상사였다. 해상막료장 취임 직후에 주요 기지를 방문할 때 부관 한 명만 데리고 다녔고 이키 섬에 주둔한 이키경비소[2] 를 방문할 때 헬기가 착륙하지 못 하자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