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메시마 히로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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鮫島博一 (さめしま ひろいち)
1918년 10월 26일 ~ 2010년 8월 14일
일본의 군인, 자위관. 10대 해상막료장, 9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1918년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1938년에 일본해군병학교 66기로 졸업했다. 해군 항공대에서 근무했고 구 일본군 출신 중에선 유일하게 해군 항공대 파일럿으로 해상막료장에 올랐다.[1] 1945년 일본의 패전 당시 계급은 소좌였다.
1952년에 해상경비대에 입대했고 제3항공군[2] 사령, 자위함대 사령부 막료장, 교육항공집단 사령관, 항공집단 사령관 등을 거쳐 1973년에 이시다 스테오에 이어 해상막료장이 되었다. 1976년에 나카무라 데이지에게 이임했다. 대신 시라카와 모토하루(공자대)에 이어 통막장으로 영전했다. 1977년에 구리스 히로오미(육자대)에게 이임하고 퇴임했다. 퇴임 후에 수교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10년에 자위대병원에서 용혈성 빈혈로 사망했다.
鮫島博一 (さめしま ひろいち)
1918년 10월 26일 ~ 2010년 8월 14일
1. 개요
일본의 군인, 자위관. 10대 해상막료장, 9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2. 생애
1918년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1938년에 일본해군병학교 66기로 졸업했다. 해군 항공대에서 근무했고 구 일본군 출신 중에선 유일하게 해군 항공대 파일럿으로 해상막료장에 올랐다.[1] 1945년 일본의 패전 당시 계급은 소좌였다.
1952년에 해상경비대에 입대했고 제3항공군[2] 사령, 자위함대 사령부 막료장, 교육항공집단 사령관, 항공집단 사령관 등을 거쳐 1973년에 이시다 스테오에 이어 해상막료장이 되었다. 1976년에 나카무라 데이지에게 이임했다. 대신 시라카와 모토하루(공자대)에 이어 통막장으로 영전했다. 1977년에 구리스 히로오미(육자대)에게 이임하고 퇴임했다. 퇴임 후에 수교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10년에 자위대병원에서 용혈성 빈혈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