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소설)
1. 개요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나온 김훈의 저서로 남한산성 포위 기간 동안 성 내에서 벌어진 모습들을 잘 묘사했다. 특히 남한산성 내에서 왕의 끝없는 질문, 살기 위해서 길을 열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장과 차라리 죽음을 택해야 한다는 김상헌의 주장이 압권이다. 그리고 영의정 김류는 최명길의 주화론과 김상헌의 척화론 사이에서, 싸움의 형식 속에 투항의 내용을 키워 가려 하지만 양립 불가능한 두 길을 끝내 합치지는 못한다. 해서 늘 하나 마나 한 양시양비론 내지는 당면한 현실 상황만을 읊을 뿐이다.[1] 항복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선택된 인원들은 심장마비에 걸려 죽거나, 채택될 리 없는 글을 쓰거나 하여 위기를 넘길 뿐이고, 최명길의 글은 너무 에둘러져 쓰여 있어 칸이 그 글을 보고 격노하는 장면도 볼 만하다.
2. 상세
작품은 역사소설이면서도 말[言語]에 대해 기술한 소설인데, 소설 서두 여섯 문장의 주어가 모두 '말'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다.[2] 칼의 노래 첫 문장만큼이나 인상깊은 서두.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맞는지 틀리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말이 어떻게 실현되고 좌절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청나라 군대의 침입이라는 일종의 재해에서 각자의 뜻과 말만을 되풀이하며 섞이지 못하는 관료들과 왕, 이들의 허무한 담론이 백성들이 원하는 생의 의지 앞에서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결국 나라의 굴복이나 사대부의 충정과 배신과는 상관없이 민중들은 본인들의 삶을 꿋꿋이 살아나간다는 의식이 작품 내내 보여진다.
3. 고증
다만 실제 역사와는 다른 점이 많다. 김훈 작가 스스로 서두에서 실제 역사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설의 내용으로 역사 인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명시해 놓았다.
소설속에서 조선군은 성벽 위에서 경계만 서거나, 소규모 기습부대만 등장하고 청군은 식량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포위만 하고 있는걸로 그려지는데 실제론 공방전 초기부터 점령을 위해 지속적인 공격을 했고, 조선군은 이를 훌륭히 방어하면서 성 밖에서도 여러 전과를 올렸다. 또한 수비군 주력이 조선에서 첫째, 셋째가는 정예인 훈련도감과 수어청 병력이었기에 악조건 속에서도 출성 직전까지 사기가 유지되었다. 청군은 남한산성 점령에 실패했지만 포위망을 유지했고, 조선군은 군량이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실 비빈들이 포로로 잡히자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속에선 남한산성 내의 화포가 모두 녹슬어 사용하지 못하는 걸로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론 전 군기시 주부 공대신이 성내에 배치되어 있던 구형/고장 화포를 모두 모아 수리하여 농성 후반까지 청 포병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또한 정명수의 일가족이 비극적으로 몰살당한 것으로 묘사했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정명수의 어머니 및 일가 친척들은 정명수가 출세하여 돌아올 때까지 조선에 살아있었고 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는 작가 김훈이 소설의 주제를 고증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이다.[3] 즉 실제 역사가 이랬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서도 안 되며 전술했듯 작가 스스로 이 점을 명확히했다.
4. 기타
- 소현세자가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아들들이나 봉림대군이 나의 뒤를 이을 수 있으니 자신을 출성시켜 오랑캐 진영으로 보내달라고 청한 일화 등은 빠져 있지만, 김상헌, 정온, 윤집, 오달제 등 척화파 신하들이 서로 죽음을 자청한 일화, 장수들이 행궁을 포위하고 척화파 신하들을 내보낼 것을 강요하며 왕과 신하들을 위협한 일화는 잘 묘사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 성을 나가지 말자는 대간의 목소리와 출성을 풀고 나가자는 장수들의 목소리가 교차되어 대위법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사뭇 비장하다. 박진감 넘치는 활극이나 전쟁소설이라기보다는, 뭔가 묵직하면서도 선이 굵은 느낌의 소설.
- 2007년 대산 문학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 2009학년도와 2017학년도 연세대학교 논술 시험에서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하였다.
- 소설이 100쇄를 넘겨 나온 특별판에 작가의 후기가 새로 실려 나왔다. 이 소설을 읽은 김대중 前 대통령과 작가와의 대담을 실었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나는 최명길을 긍정하오. 이건 김상헌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오”라면서 최명길이 조선시대의 가장 훌륭한 정치가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4]
[1] "칸이 왔다면 어쨌거나 성이 열릴 날이 가까이 온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날짜가 다가옴을 아뢴 것이옵니다."
임금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2] 한 번 '말'이 아니라 '혀'로서 언급되지만, 문학적으로 충분히 말로서 이해할 수 있다.[3] 대개 역사를 소재로 한 김훈의 소설에는 들어가기 전에 '이 소설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쓰여있곤 하다. 또한 김훈의 사극 소설은 대체로 높으신 분들의 명분 논리와 무능에 고통받으면서 질박하게 살아가는 민초와 소수파의 삶, 그래도 역사는 흘러간다가 단골 테마다. 이 때문에 소설 남한산성의 조선군 너프(?)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4] 여기에 대해 김훈은 정의의 이념을 간직하더라도 현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날짜가 다가옴을 아뢴 것이옵니다."
임금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2] 한 번 '말'이 아니라 '혀'로서 언급되지만, 문학적으로 충분히 말로서 이해할 수 있다.[3] 대개 역사를 소재로 한 김훈의 소설에는 들어가기 전에 '이 소설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쓰여있곤 하다. 또한 김훈의 사극 소설은 대체로 높으신 분들의 명분 논리와 무능에 고통받으면서 질박하게 살아가는 민초와 소수파의 삶, 그래도 역사는 흘러간다가 단골 테마다. 이 때문에 소설 남한산성의 조선군 너프(?)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4] 여기에 대해 김훈은 정의의 이념을 간직하더라도 현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