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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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특징과 한계
4. 바깥고리


1. 개요


. 조선 성종 6년인 1475년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저술한 여성용 수신 교양서. 한글로 만들어진 최초의 여성 교육서이다. 총 3권 3책.[1]

2. 내용


1475년에 인수대비가 여성의 덕목과 훈육에 대해 저술한 책. 여성과 관련된 40여 종의 경전 내용과 50여 명의 여인들의 행장의 내용을 모아 그 특질에 따라 7장으로 나누어 서술한 후, 여성의 행실과 주의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1장은 말과 행동에서 주의할 점, 2장은 효도에 대한 내용, 3장은 혼인 시 신랑에게 지켜야 할 예절, 4장은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 5장은 어머니로서 아이에게 지켜야 할 예절, 6장은 친척들에게 지켜야 할 예절, 7장은 청렴하고 검소하게 가정을 꾸려나가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성종 때 발간된 후 영조 때까지 중요한 책으로 취급받았으며, 특히 영조는 내훈을 읽고 크게 감동해 1736년에 어제내훈언해(御製內訓諺解)라는 책으로 새로 발간하고 직접 어제내훈소지(御製內訓小識)라는 서문을 썼다.
140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한글 궁중 어휘와 여성용 언어 등이 다수 담겨 있어 언어사적 연구에 있어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당시 여성들의 생활 규범 또한 알아볼 수 있다.

3. 특징과 한계


이 항목은 네이버 지식백과 :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내훈 항목을 참조하였습니다.
내훈이 과연 여성들의 생활 규범만을 요구하는 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 의심스러운 점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내훈에 서술된 각 장의 구체적 사례들은 오히려 대부분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였고, 그 중에서도 언행, 효친, 화목, 청렴은 남성의 덕목에 가까운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총 7장 중 2장과 5장에 해당되는 효도에 대한 두 장은 주로 여성이 행해야 되는 효도 내용인데, 원론적인 차원에서 간단히 제기되고 끝난다. 반면 아들이 어머니에게 행해야 하는 내용들은 구체적 인물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매우 많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아들로서 이 책을 읽을 성종에게 어머니인 자신과 아내를 잘 대하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 외의 장들도 이것저것 분류해 보면, 총 내용의 2/3가 실제로는 여성이 아닌 남성들에게 훈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겉으로는 여성들이 보고 익혀야 할 정숙한 예절 책이라고 하고서는, 실제로는 아내 곁에서, 아님 몰래 이 책을 읽을 신료나 기타 남성들에게 "이거 보고 제발 여성 생태계 좀 제대로 알아놔라, 이 답답한 것들아"라는 식으로 제작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네이버 지식 백과 내훈편을 담당한 이숙인 한국학 중앙 연구원 고전학 연구소 연구 교수는, 이를 이해하고 보아야 답답한 훈계서에서 생동하는 현실의 언어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동시에 한계점 또한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혼례 편에서는 여자가 권력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으며[2], 부부 관계에서도 남편아내의 하늘이라 강조하는 등 1400년대의 전통적인 유교적 여성관이 투영된 관점에서 지어진 책임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아래와 같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실려 있다.

아들이 아내를 꽤 마음에 들어하더라도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면 내보내야 한다. 그러나 아들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모가 "나를 잘 섬기는구나" 라고 하신다면 아들은 부부의 예를 실천하며 죽을때까지 허술히 하지 말아야한다. (...) 비록 남편이 아낀다고 해도 시부모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이는 의가 스스로 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굽히고 따르는 것 이상이 없다. (...) 며느리가 잘못하면 이를 가르칠 것이고, '''가르쳐도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릴 것이고, 때려도 고치지 않으면 쫓아내야한다.'''

<<내훈>>


4. 바깥고리



[1] 선조 6년, 1573년에 중간된 내사본은 3권 4책이다.[2] 이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이 대세이던 조선시대에 지어진 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문제였다. 이러한 여성관은 조선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보편적이었다. 오히려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내훈의 저자인 인수대비 본인은 성종이 되는 자을산군을 한명회의 딸과 결혼시키고, 왕실 최고어른이었던 정희왕후와의 친분을 두텁게 하는 등 끊임없이 권력에 중심과 밀접하게 붙어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