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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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아드리아 해와 접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일한 항구 도시이다.
네움 북서쪽에는 크로아티아 본토, 네움 남동쪽에는 크로아티아의 월경지인 두브로브니크가 있다. 즉 네움은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를 갈라놓는 역할을 한다. 이 곳의 주민들 역시 크로아티아 본토나 두브로브니크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인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이 곳만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인데 그 이유는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달마티아 지역의 대부분을 얻게 되자 달마티아 쪽 육상 국경을 통해 베네치아랑 접하게 된 라구사 공화국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는데 라구사는 애초에 시작부터 베네치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생긴 소국이었고 전 지배국인 베네치아와는 아드리아 해의 무역 주도권을 두고 수세기 동안 다투던 라이벌이었으며 독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라구사의 수복을 천명하며 라구사의 안보를 위협하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라구사는 주변의 강국(독립 직후부터는 헝가리, 오스만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오스만)에게 조공을 바치며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아 왔는데 카를로비츠 조약 직전 벌어진 대 튀르크 전쟁 당시 신성 동맹에게 한창 두들겨 맞고있던 사이 신성 동맹에 가담한 베네치아가 라구사의 영토 일부를 점령해 오스만령 발칸 반도와의 내륙 무역로를 차단하는 상황까지 터지면서 자국의 안보가 실제로 위협받는 상황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라구사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은 달마티아를 잃었지만 라구사의 배후지역인 보스니아는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이에 라구사는 베네치아가 육로를 통해 라구사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라구사가 가지고 있던 해안 도시 두 곳을 오스만에게 양도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네움이었다.[1] 네움을 양도받은 오스만은 네움을 자국 행정구역인 보스니아에 편입시켰고 이것이 현재까지 내려오게 된다. 이후 1878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통치하게 되면서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는 다시 육로로 연결되었으며 그리고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수립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네움을 보스니아의 영토로 확정지으면서 최종적으로 네움은 보스니아의 일부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시절까지는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나 서로 다른 행정구역일 뿐이었기에 네움이 보스니아 영토라고 하더라도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면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서로 다른 나라가 되어버리자 크로아티아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이 두브로브니크를 가려면 국경을 두 번 넘어야 하거나 여객선을 타고 가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 크로아티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네움 지역이 보스니아보다 크로아티아와 더 가깝다[2] 며 네움의 반환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스니아는 네움의 반환을 거부하는데, 크로아티아에게 돌려주면 보스니아도 바다로 통하는 길이 막혀 내륙국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내륙국이 얼마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는가를 생각하면[3] 보스니아가 기를 쓰고 네움을 지키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보스니아는 네움이 아닌 크로아티아의 플로체 항구(10 ㎞ 정도 북쪽에 있다.)를 무역항으로 쓰고 있다. 네움에서 보스니아 쪽으로 붙은 땅이 좁아터졌는데 하필 코앞이 산악 지형이라 길을 내기가 힘들고, 앞바다도 길쭉한 반도와 섬들이 가로 막고 있어서 항구로 도저히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 사수한 항구라고 있는 게 동네 나루터 수준인 것이다. 오히려 플로체는 크로아티아 쪽으로도 없는 철도가 사라예보 방면으로 친절하게 나 있을 정도이다. 뭐가 뒤바뀐 느낌이 난다면 착각이 아니다.
그래서 네움의 산업은 무역업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다른 해안 지방처럼 아드리아 해의 절경을 살린 관광업이다. 스플릿과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버스 대부분이 네움의 휴게소에 정차하는데, 이게 네움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4] 한국인 관광객이면 여권만 2번 확인하지 도장은 안 찍는다. 열차로 지날 때도 꼭 도장 찍던 크로아티아의 다른 국경 지대와는 다르다. 크로아티아가 EU에 가입한 2013년 이후로는 여권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한편 네움으로 인해 국토 단절의 답답함을 못 견딘 크로아티아는 두브로브니크 지역과 인접한 크로아티아 본토 남부 연안 지역에 네움을 지나지 않는 다리인 펠레샤츠 대교를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는 중이다. 이 것은 보스니아도 반대하지 않았는데, 이 다리를 건설한다는 건 크로아티아가 네움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이를 통해 통행의 편리함을 꾀하면서, 네움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플로체 항구 이용료를 제대로 받아내는 이점을 얻게 될 수 있어 양국간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아드리아 해와 접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일한 항구 도시이다.
네움 북서쪽에는 크로아티아 본토, 네움 남동쪽에는 크로아티아의 월경지인 두브로브니크가 있다. 즉 네움은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를 갈라놓는 역할을 한다. 이 곳의 주민들 역시 크로아티아 본토나 두브로브니크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인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이 곳만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인데 그 이유는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2. 역사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달마티아 지역의 대부분을 얻게 되자 달마티아 쪽 육상 국경을 통해 베네치아랑 접하게 된 라구사 공화국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는데 라구사는 애초에 시작부터 베네치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생긴 소국이었고 전 지배국인 베네치아와는 아드리아 해의 무역 주도권을 두고 수세기 동안 다투던 라이벌이었으며 독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라구사의 수복을 천명하며 라구사의 안보를 위협하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라구사는 주변의 강국(독립 직후부터는 헝가리, 오스만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오스만)에게 조공을 바치며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아 왔는데 카를로비츠 조약 직전 벌어진 대 튀르크 전쟁 당시 신성 동맹에게 한창 두들겨 맞고있던 사이 신성 동맹에 가담한 베네치아가 라구사의 영토 일부를 점령해 오스만령 발칸 반도와의 내륙 무역로를 차단하는 상황까지 터지면서 자국의 안보가 실제로 위협받는 상황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라구사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은 달마티아를 잃었지만 라구사의 배후지역인 보스니아는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이에 라구사는 베네치아가 육로를 통해 라구사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라구사가 가지고 있던 해안 도시 두 곳을 오스만에게 양도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네움이었다.[1] 네움을 양도받은 오스만은 네움을 자국 행정구역인 보스니아에 편입시켰고 이것이 현재까지 내려오게 된다. 이후 1878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통치하게 되면서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는 다시 육로로 연결되었으며 그리고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수립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네움을 보스니아의 영토로 확정지으면서 최종적으로 네움은 보스니아의 일부가 되었다.
2.1. 유고슬라비아 분열 이후
유고슬라비아 시절까지는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나 서로 다른 행정구역일 뿐이었기에 네움이 보스니아 영토라고 하더라도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면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서로 다른 나라가 되어버리자 크로아티아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이 두브로브니크를 가려면 국경을 두 번 넘어야 하거나 여객선을 타고 가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 크로아티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네움 지역이 보스니아보다 크로아티아와 더 가깝다[2] 며 네움의 반환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스니아는 네움의 반환을 거부하는데, 크로아티아에게 돌려주면 보스니아도 바다로 통하는 길이 막혀 내륙국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내륙국이 얼마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는가를 생각하면[3] 보스니아가 기를 쓰고 네움을 지키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보스니아는 네움이 아닌 크로아티아의 플로체 항구(10 ㎞ 정도 북쪽에 있다.)를 무역항으로 쓰고 있다. 네움에서 보스니아 쪽으로 붙은 땅이 좁아터졌는데 하필 코앞이 산악 지형이라 길을 내기가 힘들고, 앞바다도 길쭉한 반도와 섬들이 가로 막고 있어서 항구로 도저히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 사수한 항구라고 있는 게 동네 나루터 수준인 것이다. 오히려 플로체는 크로아티아 쪽으로도 없는 철도가 사라예보 방면으로 친절하게 나 있을 정도이다. 뭐가 뒤바뀐 느낌이 난다면 착각이 아니다.
그래서 네움의 산업은 무역업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다른 해안 지방처럼 아드리아 해의 절경을 살린 관광업이다. 스플릿과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버스 대부분이 네움의 휴게소에 정차하는데, 이게 네움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4] 한국인 관광객이면 여권만 2번 확인하지 도장은 안 찍는다. 열차로 지날 때도 꼭 도장 찍던 크로아티아의 다른 국경 지대와는 다르다. 크로아티아가 EU에 가입한 2013년 이후로는 여권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한편 네움으로 인해 국토 단절의 답답함을 못 견딘 크로아티아는 두브로브니크 지역과 인접한 크로아티아 본토 남부 연안 지역에 네움을 지나지 않는 다리인 펠레샤츠 대교를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는 중이다. 이 것은 보스니아도 반대하지 않았는데, 이 다리를 건설한다는 건 크로아티아가 네움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이를 통해 통행의 편리함을 꾀하면서, 네움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플로체 항구 이용료를 제대로 받아내는 이점을 얻게 될 수 있어 양국간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참고로 다른 한 곳은 수토리나(Sutorina)로 라구사 남쪽에 위치한 베네치아령 코토르 만과 접해있다. 수토리나의 경우 여러가지 일을 거쳐 지금은 몬테네그로령이 되었다.[2] 1991년 통계 기준으로 네움 인구의 약 88%가 크로아티아 인이었고, 보스니아 인은 4%였다.[3] 당장 스페인 식민지배 독립 초에 해안국이었던 남미의 볼리비아가 해안선을 칠레와의 전쟁에서 잃고 내륙국이 되면서 남미의 최빈국으로 떨어진 것을 생각해보자.[4] 보스니아의 소득 수준이 크로아티아보다 낮은 편이라 물가도 비교적 싼 편이기 때문. 이 점에 착안해서, 크로아티아 여행을 하면서 숙박을 네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