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image]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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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a i Hercegovina /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Bosnia and Herzegovina
'''
[image]
[image]
'''국기'''
'''국장'''
'''국호'''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Bosna i Hercegovina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역사'''
1992년 4월 5일: 독립 선언
1995년 12월 14일: 헌법 제정
'''수도'''
사라예보 (Sarajevo / Сарајево)[1]
'''국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가
Državna himna Bosne i Hercegovine
Државна химна Босне и Херцеговине
'''국가 코드'''
BA
'''면적(영토''')
51,197km²[2]
'''인문환경'''
'''인구'''
3,263,466명(2021년) | 세계 135위
'''공용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위 셋은 '''완전히 똑같은 언어'''이다.
그래서 사실 공용어는 1개.
'''종교'''
이슬람교(50.7%), 세르비아 정교회(30.7%) 가톨릭(15.2%), 기타(3%)
'''정치'''
'''정치 체제'''
연방제, 의원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01위'''(2020년)[혼합된체제]
'''대통령 위원회 위원장'''[3]
셰피크 자페로비치
(Šefik Džaferović, 보슈냐크인)
'''대통령 위원회 위원'''
젤코 콤시치
(Željko Komšić, 크로아티아인)
밀로라드 도디크
(Милорад Додик, 세르비아인)
'''장관 위원회 위원장
(총리)'''

조란 테겔티야 (Zoran Tegeltija)
'''고위대표'''[4]
발렌틴 인츠코 (Valentin Inzko)[5]
'''경제'''
'''GDP'''
$189억(2020), PPP $488억(2020)
'''1인당 GDP'''
$5,762(2020), PPP $14,895(2020)
'''국부'''
$780억 / 세계 89위(2019년)
'''공식 화폐'''
태환 마르카 (KM)
'''ccTLD'''
.ba
'''시간대'''
중앙유럽 표준시 (UTC+ 01:00)
'''남북수교현황'''
1995년
'''국제연합(UN) 가입'''
1992년 5월 22일
'''특별여행주의보'''
'''전 지역'''[코로나19]
'''위치'''
[image]


1. 개요
2. 상징
2.1. 국호
2.2. 국기
2.3. 국가
3. 역사
5.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6]
5.3. 브르치코 행정구
6. 정치
6.1. 분리 독립
7. 문화
7.1. 종교
7.2. 스포츠
8. 외교
9. 여담
10.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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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남유럽 발칸 반도에 위치한 국가이다. 내륙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네움 시를 통해 아주 짧은 거리지만 해안과 맞닿아 있다. 북부의 '보스니아(Bosnia)'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Hercegovina)'라는 두 지역의 지명을 합쳐서 국명이 되는 셈인데, 우리식으로 경주상주를 따와 경상도라 하는 식이며,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방식의 국호이다. 그러나 나라 자체는 이 두 지역에 걸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또다시 나뉜다.[7]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부터 수도는 사라예보(Sarajevo / Сарајево)였으며, 무엇보다도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사라예보 사건'(1914.6.28)으로 아마도 영원히 기록에 남을 것이다.[8] 국토 면적은 약 51,000㎢,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332만 명, 1인당 국민 소득은 2015년 기준 4,307$이다.
인구 구성은 슬라브계 무슬림보슈냐크인(혹은 보스니아인) 48% + 세르비아인 37% + 크로아티아인 14%[9]으로 구성된다. 화폐는 예전에 디나르 계열이나 크로아티아 쿠나가 혼용되다가 지금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태환 마르카(약칭 KM)라는 독일 마르크 계열의 통화로 쓰인다.
특이한 국토 모양 때문에 EEZ가 존재하는 나라들 중 가장 면적이 작다. 다시 말해서 가장 내륙국에 근접한 국가이다.

2. 상징



2.1. 국호


<colcolor=#ffffff>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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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보크로아트어
Bosna i Hercegovina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한국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어
Bosnia and Herzegovina
슬로베니아어
Bosna in Hercegovina
알바니아어
Bosnja dhe Hercegovina
루마니아어
Bosnia și Herțegovina
헝가리어
Bosznia-Hercegovina
불가리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마케도니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러시아어
Босния и Герцеговина
터키어
Bosna-Hersek
그리스어
Βοσνία και Ερζεγοβίνη
독일어
Bosnien und Herzegowina
프랑스어
Bosnie-Herzégovine
이탈리아어
Bosnia ed Erzegovina
네덜란드어
Bosnië en Herzegovina
스페인어
Bosnia y Herzegovina
일본어
ボスニア・ヘルツェゴビナ
중국어
波斯尼亚和黑塞哥维那
아랍어
لبوسنة والهرسك
포르투갈어
Bósnia e Herzegovina
히브리어
בוסניה והרצגובינה
아제르바이잔어
Bosniya-Herseqovina
에스페란토
Bosnio kaj Hercegovino

국호인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Bosna i Hercegovina /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라는 의미이다. 현지에서는 '베이하(BiH / БиХ)'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관련 글.
보스니아라는 이름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북부를 전통적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10세기 중반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가 저술한 정치외교 지침서인 '제국의 행정에 관하여(De Administrando Imperio)'에서 이 지방을 Βοσώνα(Bosona)라고 일컫는 데서 처음 등장한다. 이 이름은 보스니아 일대를 흐르는 강 중 하나인 보스나(Bosna) 강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원시인구어로 '흐르는 물' 정도의 뜻이 있다고 한다. 보스니아는 이 Bosna를 라틴어화한 것이다.
헤르체고비나라는 이름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남부를 전통적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슬라브어로 '헤르체그(Herceg / Херцег)의 땅'이라는 뜻이며, 헤르체그의 어원은 독일어의 '헤르초크(Herzog)'이다. 헤르초크는 독일 봉건제에서 공국의 지배자이거나 법 또는 전통에 의하여 그러한 권리를 가진 자에게 부여된 칭호이다.[10] 이 칭호는 보스니아 왕국의 봉신인 스체판 북치치 코사차(Stjepan Vukčić Kosača)의 칭호이기도 하였는데 그가 오늘날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봉토로 하사받으면서 아예 그의 칭호가 지역 이름이 되었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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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5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했을 때부터 1998년 4월 5일까지 쓴 국기이다. 당연히 보스니아 내전 당시 스릅스카 공화국군에 맞서 보스니아 정부가 사용한 깃발로 이후 국기 변경 문제를 두고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현재의 국기는 모티브로 한 파란색 바탕에 7개의 완전한 별과 2개의 반만 표시된 별, 그리고 노란색 삼각형[11]으로 구성된 국기로 국기의 파랑, 하양, 노랑은 중세 보스니아의 정체성을 확립한 보스니아 왕국을 상징하는 색이다.

2.3. 국가





3. 역사





4. 경제




5. 구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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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가족' - 분홍색은 '''스릅스카 공화국'''(Република Српскa / Republika Srpska: 세르비아계), 하늘색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Федерација Босне и Херцеговине / Federacija Bosne i Hercegovine: 보스니아계 무슬림+크로아티아계)[12] , 연두색은 양측의 공동 통치 구역인 '''브르치코 행정구'''(Брчко Дистрикт / Brčko Distrikt).[1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은 정치 체제와 산하 행정구역 구성 방식도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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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릅스카 공화국 행정 구역은 세르비아인 거주 구역과 겹친다.

5.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14]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canton)의 모임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중앙정부를 대신해서 세르비아계를 제외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정부이다. 정치 체제는 의원 내각제, 연방(지방분권)제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선거 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의회 의원과 주 의회 의원을 같이 선출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대표하는 국가원수는 없다.
현재는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주만이 참가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세르비아계도 참가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이 지금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대체하는 것이 목표이나, 세르비아계는 따로 스릅스카 공화국을 결성하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만의 국기국장도 있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국기와 국장은 1997-1999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고위대표(데이턴 협정에 따라 국정 운영을 감시하는 사람)였던 스페인의 외교관 카를로스 베스텐도르프가 고안한 것으로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상징을 집어 넣어 만들었다. 하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헌법재판소에서 세르비아계를 반영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서 2007년부터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만의 공식 국기와 국장이 없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만의 국가는 원래부터 없었다.

5.2. 스릅스카 공화국


스릅스카(Српска, Srpska)라는 명칭은 세르비아인을 가리키는 어근 'Срб(Srb)'에 접사 '-ска(-ska)'가 덧붙은 것으로, '세르비아인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치 체제는 대통령 중심제에 중앙집권제이고, 지방은 과거부터 있던 주(canton)를 해체하고 자치권이 없는 행정구역으로만 구성되어있어서 지방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선거 때는 대통령과 단원제 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따라서 세르비아계는 대통령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통령과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 두 명을 뽑는 셈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대표할 뿐 세르비아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스릅스카 공화국 안에도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고, 대통령 선거에선 보스니아계 후보 가운데 최다 득표자와 크로아티아계 후보자 가운데 최대 득표자가 각각 보스니아계 부통령, 크로아티아계 부통령이 된다.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워낙 소수라 보스니아계 부통령은 3%, 크로아티아계 부통령은 1% 득표로 당선되는 상황이다. 유고슬라비아 붕괴 전에는 스릅스카 공화국 내에도 보슈냐크인이 25%, 크로아티아인이 10% 정도 거주하였으나 라도반 카라지치가 스릅스카 공화국 내에 있는 무슬림(보슈냐크)과 가톨릭(크로아티아)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무슬림과 가톨릭 거주민의 90%를 학살했으니, 카라지치는 치를 떨게 만들 정도로 확실하게 타 민족을 학살했다. 카라지치는 독립 선언 이전부터 1991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 국회[15]에서 무슬림 일파의 거두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를 상대로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할 생각하지 마라. 만약 독립을 선언하면 무슬림들은 '''전면적으로 제거당할 것'''"이라며 국회에서 대놓고 협박했다. 결국 저 연설 6개월 후 진짜 보스니아 전쟁이 터진다.
자체 국기, 국장, 국가(Моја Република: 나의 공화국)도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스릅스카 공화국에 관련된 사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는 별개로 작성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 관한 사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항목 밑에 작성되는 편이다.

5.3. 브르치코 행정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의 공동 통치구역. 사실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일부로 취급받고 있고 스릅스카 공화국 측에서는 도로, 철도 통행권을 가진 정도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점이 브르치코 행정구역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태환 마르카 중 보스니아 연방 측의 마르카가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의 95% 이상이 알파벳이 적힌 태환 마르카다.

6. 정치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국이었던 1990년의 정치 체제를 이어받아 세르비아계,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가 각각 대통령 1명과 상원의원 5명을 뽑으며, 이들이 대통령 위원회(3명)와 상원(15명)을 구성해 국가를 대표한다. 하원은 인구 비례에 따라 의원 42명을 선출[16]하여 이들이 각료이사회라는 이름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각료이사회 의장이 총리, 부의장이 외교장관을 맡는다.#
그러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중앙 정부의 입법권 및 인사해임권은 대통령과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스니아 평화협정이행 국제사회 고위 대표부'(OHR)에 있다. 즉, 온전한 주권 국가로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각 자치정부에 과도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통합된 국가로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쉽지 않은 상태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각 자치정부에 부여한 권한을 통합된 연방정부 형태로 이양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2010년에 열린 총선에서도 또 독자주의를 추구하는 쪽이 되면서 통합으로 가는 길은 멀다. 특히 이슬람 쪽보다는 오히려 세르비아계 쪽에서 결사반대하는 양상이다. 이들이 주가 된 스릅스카 공화국은 분리독립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2014년 2월에는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에 높은 실업률이 겹쳐 대규모 시위가 터져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2014년 5월, 지역 기상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폭우가 쏟아져 수재(水災)가 발생했다. '''3개월 동안 내릴 비가 단 사흘 만에 쏟아져''' 사상 초유의 물난리가 난 것. 이 폭우로 보스니아와 인근 세르비아에서 최소 20명이 숨졌고, 보스니아의 경우 '''인구의 25%'''인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지방 자치권까지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그들끼리 행정권을 두고 싸우고 있으며, 그 이유 때문에 국민들이 자연 재해를 당하고 있으며 국민의 통합이 우선시 되어야할 의회가 결국 갈라져서 국민들을 나몰라라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가 크다. 그래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총리를 두어 내각에서 그들의 행정적인 분리를 막고 있다.
2016년에 EU가입을 신청했고 2016년 7월 31일에 EU와의 협정도 통과되면서 EU가입가능성도 커지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길도 커졌다.# NATO 가입은 세르비아계들이 가입 대신 군사적 중립을 주장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찬성상태이다. 북마케도니아의 NATO 가입 다음으로 공식 가입 후보국에 오른 상황이라 유력시되는 국가이다.
2020년 5월 16일에 사라예보에서 나치 부역 군인들을 위한 극우파들의 미사가 열리는데 반대하는 시민 수천 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6.1. 분리 독립


코소보의 독립선언 이후,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코소보도 했는데, 왜 우리라고 못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스릅스카 공화국의 총리 역시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독립선언을 하면 또 다시 내전이 터질까봐 감히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크로아티아는 스릅스카 공화국이 독립하면 군대를 파견해서 저지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고,[17] 세르비아도 크로아티아가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유사 시 스릅스카 공화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미국은 데이턴 협정의 개정을 통해 통합 연방국가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는 입장이나, 그러면 내전이 재발할까봐 협정의 개정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일단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차피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당사자였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프라뇨 투지만,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등도 죽었고[18] 이 나라와 크로아티아도 우스타샤한트샤르 등에서도 보듯 마냥 그렇게 선량한 피해자는 아니라서[19] 세르비아를 무작정 악역으로 몰아치기 힘들며, 국민들의 피해가 크고 그로 인한 지방 자치권까지도 독립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각 연방의 대통령을 3명으로 두어서 분리 독립에 대한 주장만 할 뿐 따로 쪼개진 국민들은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7. 문화



7.1. 종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슈냐크인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 세르비아인들을 중심으로 세르비아 정교회, 크로아티아인들을 중심으로 천주교를 믿는 비중이 거의 비슷한 편이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시절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비중이 많고 그외 정교회와 천주교를 믿는 경우도 많다.
90년대 이전에는 대체로 세속적이었지만, 내전이 일어난 이후와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의 선교 자금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력을 키우자, 보스니아 정부에서 법원이나 공공 기관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순례지로 유명하다.[20]

7.2. 스포츠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이다. 그러나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관련 시설은 모조리 보스니아 내전 때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스키 리조트 등 몇몇 시설들은 복구가 되어 다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축구가 인기가 많다. 2010 월드컵 예선에서 터키벨기에를 제치고 스페인에 이어 조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나가기도 했다. 비록 포르투갈에게 2패로 밀려 월드컵엔 나가지 못했지만... 박지성의 유럽 입성 이후 기준으로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분데스리가 득점왕 에딘 제코가 있지만,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기만 해도 제코 이상 가는 선수를 찾아볼 수 있다.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롱런했던 하산 살리하미지치가 있고, 더 과거로 돌아가면 유고슬라비아가 분리되기 전 1980년대 유고를 대표했던 천재 미드필더 사페트 수시치가 있다. 또 스웨덴 국적으로 알려져있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사실 아버지가 보스니아계 스웨덴 이민자이다.
그러나 유로 2012 대회 참가 박탈 및 FIFA와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내쫓기게 생겼다. 이슬람계,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가 각자 축구협회 인맥을 갖추면서 3국 체제로 축구협회장까지도 3명을 두고 있을 지경이기에 1명으로 통일하지 않으면 모든 국제 축구대회 참가불가에 유럽축구연맹에서 쫓겨나면 선수들의 유럽무대 활동(여러 유럽 리그에서 유럽축구연맹 소속 나라가 아닌 선수들을 제한하기 때문)도 제약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구수가 서로 비슷해서 과반수가 이뤄지지도 못하는 게 문제라 자칫하면 에딘 제코나 여러 선수들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유로 2012 예선에는 나가서 프랑스와 각축 끝에 승점 1점 차이로 아쉬운 2위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포르투갈과 2년 만에 국제대회 플레이오프에서 또 만났다. 에딘 제코가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는데 일단 안방에서 0:0으로 비기면서 희망을 가지는가 했더니 원정에선 2:6 대패를 당하면서 결국 또 포르투갈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하지만 이 성장세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결과, 2년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에서는 그리스, 슬로바키아 등을 제치고 G조 1위를 거머쥐며 당당하게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출전의 영광을 거머쥐었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도 조기에 2연패를 하면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마지막 이란전에서는 에딘 제코가 월드컵 데뷔 첫 골을 넣었고, 더불어서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까지 기록해서 다행.
이 나라의 축구 국대에 관한 사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8. 외교




9. 여담


[image]
2008년 9월 조사 결과에 따른 지뢰 매설 현황(적색의 작은 점들이 지뢰들을 나타낸다).
모잠비크,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처럼 지뢰로 인한 인명 피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전쟁 때 매설되어 폭발하지 않은 지뢰들이 지금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하던 1992년부터 전쟁이 끝난지(1995년 12월 14일) 12년이 흐른 2008년까지 5,005명이 불발 지뢰를 밟고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는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때에 이게 지뢰인지도 모르고 산이나 들에서 주운 것으로 추측되는 불발 지뢰를 갖고 노는 보스니아 어린이들의 모습이 서방의 한 사진 작가에 의해 찍혔을 정도였다. 여행와서 며칠 지내다 보면 다리의 일부가 없는 장애인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여행자는 현지인의 발길이 뜸한 장소를 가급적 가지 않는 게 좋다.
ISIL(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추종 세력이 오슈베(Ošve)에서 19,830㎡(약 6,000평)의 땅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땅의 용도는 테러범 육성 전초 기지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테러범 육성 전초 기지를 설치한 이유는 치안도 약하고, 유럽에 있고, 무슬림이 대다수여서다.
사실 따지고보면 보스니아 내에서도 ISIL을 반대하는 여론이 절대 다수이기는 하나 청년실업률이 매우 높은 데다가(60%) 내전이 끝난 이후에도 경제력도 변변치 않다 보니[21] 그쪽으로 빠져드는 인원이 꽤 있어서 테러범 양성에는 나름대로 적합한 환경이기는 하다(...). 기사 유럽 테러의 전초기지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곳인 셈.
이미 보스니아에서 ISIL을 막기에는 늦었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ISIL이 보스니아에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고,[22] 2015년 파리 테러 직후 이슬람 지도자급 인사 37명이 “모든 증오와 폭력에 반대한다”며 ISIL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으나... 오히려 이들이 ISIL의 협박을 받으며 숨어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세속적였지만, 내전 이후에는 이슬람으로 귀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거기에다 사우디 자본이 들어오면서 사우디의 영향으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퍼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ISIL가 이라크와 시리아 영내의 점령지역들이 모두 함락당하고 몰락했으므로 보스니아 내 추종세력도 자츰 약화될 전망이다.
평균 신장이 매우 큰 나라다. 현지 여행을 하다 보면 험악하게 생긴 거인들을 보며 위축될 수 있지만, 실제 성격은 순둥이인 경우가 많아 당황하기도 한다. 사라예보의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은 183cm, 성인 여성 평균 신장은 171cm. 다만 지역별 차이가 좀 있다. 디나르 알프스 지역은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이 185~188cm에 육박하지만 그 외 지역의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은 180cm 전후이다. 참조 의외로 비만율도 독일이나 영국 못지 않게 높은 편이다.
전쟁이 종료된지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복구가 더뎌 아직도 총알이나 포탄자국을 도시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옆나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등에 비하면 관광지 개발상태가 천지차이. 마치 한국의 60~70년대같은 느낌도 난다. 다만, 치안은 좋은 편이라 여행구역은 밤 늦게 다녀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유럽에서는 드물게 3가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국가다. 아직도 모스타르사라예보 같은 대도시에서는 크로아티아계의 가톨릭 교회, 세르비아계의 정교회, 보스니아계의 모스크가 공존한다. 거의 이슬람 식당에서 케밥을 먹고 찻길 건너서 맥도날드에서 디저트 먹을 수 있는 수준.
이슬람 교도들이 많은데도 이슬람에서 금기하는 개고기돼지고기를 먹는 나라이기도 하다. 90년대 보스니아 내전 시기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 공화국에서는 보스니아인들이 무슬림들인 주제에 이슬람에서 금지하는 개와 돼지를 잡아먹는다며 폄하하는 악선전을 하기도 했었다. 이슬람 문화권인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기 이전 로마 제국, 세르비아 등 기독교 문명권에 속해 있었고, 자연환경이나 기후도 건조하고 사막밖에 없는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과 달리 돼지를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이어서 이슬람이 전래되기 전 전통적으로 돼지고기를 즐기는 식문화가 있었던지라 이슬람화된 뒤에도 돼지고기를 금기시하지는 않았다. 개고기의 경우 내전이 발발하면서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수도 사라예보 등 무슬림 밀집 지역들을 포위, 공격하여 식량이 고갈되자 어쩔 수 없이 개를 잡아먹게 된 것이다. 반면 유고내전 당시 보스니아와 똑같이 전쟁을 겪었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에서는 내전 중에 개고기를 섭취하는 일은 없었는데, 지리적으로 구유고 연방 소속 국가들에 둘러쌓여 있었고 영토면적이 작은데다 주요 도시와 거점지들 곳곳이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던 보스니아와 달리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영토면적이 넓은데다 전쟁통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식량 공급과 생산이 가능했기에 보스니아처럼 전시 상황에서도 개를 잡아 먹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전이 끝나고 정세가 안정되면서 개를 잡아먹는 식문화는 거의 사라진 편. 돼지고기의 경우 이슬람의 영향으로 구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돼지에 대한 금기가 여타 이슬람 지역들보다 약하다 보니 돼지고기를 구입할 수도 있다.

10. 창작물에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서 GDI측이 공략하는 Nod 최후의 사원이 사라예보에 위치해 있었다. 템플 프라임 참조.

[1] 정확히는 '''서'''사라예보만 해당된다. 사라예보보슈냐크인(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서사라예보와 세르비아인(정교회)이 살고 있는 동사라예보로 나눠져 있다. 그리고 서사라예보와 동사라예보 사이에는 민통선거대한 장벽으로 갈려 있다. 세르비아인들이 살고 있는 동사라예보는 명목상으로는 스릅스카 공화국의 수도이지만 스릅스카 공화국은 사실상 수도가 바냐루카이고 동사라예보를 쓰지 않는다.[2] 남한 면적의 1/2[혼합된체제] 4.84점[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세 명으로 구성된 대통령 위원회(Predsjedništvo Bosne i Hercegovine / Предсједништво Босне и Херцеговине)가 사실상의 국가원수 역할을 대변한다. 위원장은 위원들이 두 번씩 번갈아 가면서 맡는다.[4] 데이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를 감시하는 국제기구이다.[5] 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인이다.[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6]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구분하기 위해 연방을 강조 처리함. [7]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지방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은 민족 구성으로 구분된다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내에서도 민족 구분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보스니아 지역은 보슈냐크인이,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크로아티아인이 주로 모여 산다.[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 부인이 세르비아 출신 "검은 손" 소속의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9] 크로아티아인은 주로 스릅스카 공화국에 속하지 않은 헤르체고비나 지역에 몰려있다.[10] 거의 비슷한 유래를 가진 곳이 근처에 있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이다.[11] 당연히 국토 모양을 본뜬 것이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은 공화국의 세 민족을 상징한다.[12] 즉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연방 국가 안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이라는 연방 국가가 또 존재하는 셈이다. 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밑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있던 것과 유사하다.[13] 이 곳은 다민족 지역이라 공동 통치 구역이 됐다. 이 일대의 중심 도시가 브르치코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명목상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의 공동 통치 구역이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의 일반 행정구역과 비슷한 형태로 지방정부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행정구의 자체 깃발, 문장, 찬가는 없다.[14]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구분하기 위해 '''연방'''을 강조 처리함. [15] 유고슬라비아티토 사후 구성국들에 의회를 따로 설치하는 등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각 구성국마다 의회가 생겼다. 그리고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인해 민주화 조치 중 하나로 각 국가별 의회를 세우게 했는데 그게 바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 국회. 말은 사회주의 공화국이지만 1990년 자유 총선에 의해 민주화됐고, '''1990년 총선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산당은 무려 제5당으로 굴러떨어지며(...) 여당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1990년부터 1992년에는 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보스니아에는 여당이 없었는데, 무슬림,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일부 소수정당 등이 자기네들이 정권을 찾아야 한다며 타협을 거부하여 대통령, 총리를 찾지 못했다. 1990년 선거를 해놓고도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를 대통령으로 간주하고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92년 4월 1일까지 가서나 가능했다.[16]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서 28명, 스릅스카 공화국에서 14명 [17] 크로아티아는 이미 1995년 8월 미국의 용병업체인 MPRI의 조언하에 '플래시' 작전과 '폭풍' 작전을 통해서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계 자치공화국을 싹 쓸어버리고 자국에서 세르비아계를 축출한 경력이 있다.[18] 밀로셰비치는 2006년 3월 향년 64세로 전범 재판을 받던 도중 네덜란드 헤이그 감옥에서 사망했으며 투지만, 이제트베고비치도 밀로셰비치가 사망하기 전인 1999년과 2003년에 각각 말기암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19] 우스타샤와 한트샤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의 유고슬라비아 점령기 동안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영내에서 살던 세르비아인들 70만명을 대량학살한 이력이 있다.[20] 다만, 교황청은 이곳을 순례하는 것 자체는 허용했지만, '''"메주고리예에서는 성모 발현이 없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관련 기사[21] 사실 그렇기 때문에 보스니아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 대한 향수가 구 유고슬라비아 구성국 가운데서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그나마 그 시절에는 꽤 잘 나갔던 시절이니까.[22] 그 예로 북부 국경지역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창궐하고 살라피스트들이 보스니아 일부 지역에 진지구축을 하고 있고 일부 가구가 샤리아를 따르고 있는 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