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그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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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anor Nell Gwyn
1650 ~ 1687
1. 소개
잉글랜드 국왕 찰스 2세의 정부. 천민 출신으로 왕의 정부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재기 넘치는 입담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2. 상세
넬 그윈의 태생은 불우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채무자 감옥에서 사망했고[1] 어머니는 포주였으며 그나마도 일찍 죽었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극장 근처에서 오렌지를 팔며 생활한다. 그나마 이모가 배우라 오렌지 장사를 한 지 1년쯤 후에는 배우로 취직할 수 있었다. 당시는 여성 역할도 남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녀는 미모와 명석한 머리, 뛰어난 대사암기력으로 배우로서 이름을 날렸다. 원래는 정극 연기를 했었는데,[2] 별로 평이 좋지 않아서 코메디로 전향했고 천성에 맞았는지 그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녀에게 운이 트이게 되는데, 윌리엄 빌리어스 경이 그녀를 눈여겨보고 왕의 정부로 밀기로 한 것이다. 그의 후원 하에 넬은 화이트홀 궁에 초대받고 당시 왕이던 찰스 2세 앞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넬의 저속한 익살과 공연을 보고 대단히 즐거워한 찰스 2세는 그녀와 눈이 맞기에 이른다.[3] 귀족도 아니고 길에서 오렌지 장사를 하던 뒷골목 출신의 여성이 왕의 정부가 된 것이다. 찰스 2세와의 나이차이는 무려 스무 살.
3. 천한 신분
그러나 넬 그윈의 신분은 평생 동안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역사상 귀족이 아닌 신분낮은 왕의 정부는 꽤 있었지만 이런 정부들도 뒤바리 부인처럼 귀족 남성과 결혼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하지만 넬 그윈은 그런 신분세탁용 결혼을 한 것도 아니였기에 죽을 때까지 천민 신분으로 남았다.
귀족이 아니었던 넬은 다른 정부들과 달리 나라에서 나오는 공식적인 연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3년이나 은퇴하지 못하고 공연을 해야만 했는데 급기야 왕의 아들을 낳은 후에도 무대에 섰다(!) 왕이 정부를 부양하지 못한다는 건 개망신이었기에 결국 찰스 2세는 넬에게 저택을 하사하고 생활비를 내렸으며 그제서야 그녀는 은퇴한다.
게다가 워낙 여자를 밝혔던 찰스 2세는 정부들이 많았다. 넬 입장에서는 라이벌이 많았던 셈. 왕에게 가장 총애받던 것은 프랑스 출신의 루이즈 드 케루알이었다.[4] 프랑스 귀족 출신이던 케루알은 포츠머스 공작부인 작위도 받고 잘나갔으나 정작 같은 시기 넬은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재정이 궁핍하단 핑계로 보상을 스킵당한다(...)[5] 찰스 2세의 다른 정부들도 다 귀족 출신이었기에 천민이었던 넬 그윈을 공공연하게 무시했다.
이후로도 다른 정부들은 집을 받거나 직위를 얻고 그 아들들까지 높은 작위를 받고 귀족 신분을 얻는데 넬만 보상을 못 받거나 그녀의 아들들만 작위를 스킵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출신이 문제.
4. 재치
이렇게만 보면 천대만 받고 산 것 같지만 그녀는 패기와 재치를 발휘해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낸다.
가톨릭 신자였던 케루알은 반 가톨릭 정서가 팽배했던 당시 잉글랜드 서민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한번은 폭도들이 궁을 나오는 넬의 마차를 보고 케루알의 마차로 착각해 공격한 일이 있었다. 폭도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거나 '가톨릭 창녀는 꺼져라!' 라고 욕하자 넬은 '''"시민 여러분! 잘못 아셨네요. 저는 개신교 창녀랍니다!"''' 라고 외친다. 이 드립에 사람들이 모두 빵 터져 축복과 함께 길을 비켜줬다고 한다.[6]
또다른 일화로는 찰스 2세의 다른 정부의 아들들(즉, 찰스 2세의 사생아들)은 다 작위를 받는데 자기 아들인 찰스는 여섯 살이 되도록 작위를 받지 못하자, 울분이 터진 넬은 찰스 2세가 듣는 앞에서 아들에게 '''"찰스, 이 사생아 새끼. 이리 오지 못해!"'''라고 외친다. 왜 애를 그 따위로 부르냐며 왕이 질색하자 '''"이거 말고 따로 부를 이름을 안 주셨잖아요?"'''[7] 라고 응수한다. 당연히 그날 바로 넬의 아들은 버포드 백작으로 임명된다.[8]
찰스 2세의 정부이자 프랑스인이였던 루이즈 드 케루알을 자주 놀리기도 했다. 루이즈 드 케루알은 자주 울상을 짓고 징징거리는 성격이었는데 그녀를 수양버들[9] 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으며 왕 앞에서 루이즈의 프랑스식 혀짧은 발음을 따라해 왕을 즐겁게 해준 적도 있다. 한번은 프랑스 왕자가 죽었을 때 프랑스 왕족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케루알이 검은 상복을 입고 나타나는데, 이걸 본 넬도 다음날 검은 상복을 입고 나타나 타타르 왕족이 죽었다며 슬퍼한다. 사람들이 어이없어하며 '아니 타타르 왕족과 무슨 관계가 있으신데요?' 하고 묻자 '루이즈 양과 프랑스 왕자님의 관계와 똑같은 관계요!' 라고 드립치기도 한다.[10][11]
워낙 거침없는 성격이던 그녀는 고귀한 척하는 다른 정부들이 그래봤자 다 같은 왕의 창녀라고 놀려대기도 했고, 스스로를 국가의 잠자리 동업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른 정부 레이디 캐슬마인이 그녀를 공공연하게 무시하며 상대도 하지 않자 캐슬마인의 어깨를 탁 치며 '''"아 하긴 원래 같은 장사하는 사람들끼린 싫어하는 법이죠!"''' 라고 대답한다. 캐슬마인이 이 진상을 돌려보내기 위해 자기 소유의 화려한 육두마차를 타고 그녀를 바래다 줬는데, 이것의 절반도 왕에게서 못 받아보고 산 넬은 캐슬마인의 집 앞에서 여섯 마리의 소가 이끄는 다 부서진 차를 타고 '''"창녀 팔아요 창녀!"'''라고 외친다(...)[12] 또 한번은 외출 중 마부가 갑자기 멈추어서 보니 다른 마부와 싸우고 있어 이유를 물었더니 마부가 '아니 글쎄 저 사람이 마님을 창녀라고 욕하잖아요!' 라고 씩씩 거리자 ''''응. 나 창녀 맞아. 싸울 거면 좀 그럴싸한 걸로 싸워.''''라는 대인의 경지에 달한 대답을 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벙찌게 만들기도 했다(..)
왕에게도 이 익살맞음과 패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왕 이전에 연인이 둘 있었던 그녀는 찰스 2세를 '''내 세번째 남자'''라고 불렀다. 함께 낚시 갔을 때 찰스 2세가 한 마리도 못 잡고 낙심할까봐, 왕이 한눈파는 사이에 도시락 바구니에 담겨 있던 구운 빙어들을 왕의 낚싯줄에 엮어 물에 던져놓고 그걸 건져보라고 하기도 한다. 왕이 국민들은 너무 바라는 게 많다며 뭘해야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자 '''"여자 작작 만나고 일이나 좀 하면 국민들이 좋아할 텐데 이렇게 말해도 안 들으실 거잖아요"''' 라고 대답. 이 정도면 찰스 2세의 정부 겸 광대라고 해도 될 듯하다.[13]
이런 거침없는 성격과 말빨, 천민 출신이라는 공감대 때문에 일반 서민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그녀의 재치와 유머감각에 굉장히 즐거워했다.
5. 최후
찰스 2세는 죽기 전 동생 제임스 2세에게 "가여운 넬리가 굶주리지 않게 해 주게"라고 유언하고 죽었다.[14] 그러나 왕이 죽자마자 채권자들이 넬을 찾아와 볶아대는데 제임스는 이를 무시하다 3개월이나 지나서야 돈을 보내줬다고 한다.[15]
찰스 2세가 죽은 후 많은 남성들이 넬을 원했으나 그녀는 '사슴을 눕힌 자리에 개를 눕힐 수는 없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넬 그윈은 찰스 2세가 죽고 2년 후 37살의 나이에 발작으로 사망한다.
[1] 공식적으로는 왕당파 대위 출신으로 되어 있으나, 왕실의 체면을 위한 족보조작이라는 의혹이 있다.[2] 연극 제목은 The Indian Emperour인데, 제목과 다르게 아즈텍 제국의 몬테수마 2세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고, 여기서 가상의 인물인 공주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3] 야사에 의하면 찰스 2세가 넬과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실수로 식사값을 안 가져왔는데, 넬이 이걸 보고 '이렇게 가난한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라고 드립을 쳤고(!) 이 재치에 넘어갔다고도 한다.[4] 그러나 대놓고 가톨릭 신자인데다 프랑스 출신이라 일반 서민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프랑스에 간첩질하는 거 아냐?'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고.[5] 참고로 이 말을 왕에게 들은 넬은 개빡쳐서 이렇게 소리친다. "그럼 앞으론 아무하고도 즐길 수 없겠네요. 저 프랑스 여자는 프랑스로 돌려보내세요. 난 다시 무대에 오르고 폐하의 물건은 아주 잠가버리면 되겠네요!"[6] 이 내용만 보면 단순한 개그물 같아 보이지만 당시 잉글랜드는 "Popish Plot"라고 불리는 위기(교황이 찰스 2세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진 사태)로 신교 구교 양측간의 고발이 만발하고 귀족들까지도 여러명 처형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결과적으로 볼 때 넬 그윈이 목숨 여럿을 구한 상황. 당시의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냐면 찰스 2세 항목에 나오는 것처럼 요크 공작이었던 제임스 2세마저도 이때에는 스코틀랜드로 도망가 있었다.[7] 유럽에서 사생아에게는 이름을 안주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춘희를 쓴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있다. 아버지인 알렉상드르 뒤마가 이름을 안주어서 동명이인이 되어버렸다.[8] 8년 후인 1684년에 '''세인트앨번스 공작'''(Duke of St Albans)으로 승작했고, 그의 후손이 2020년 기준 14대 공작까지 이어져오고 있다.[9] weeping willow. 영어로 '흐느끼다'는 weep이다.[10] 이렇게 적어놓으면 케루알이 진상인 것 같지만 의외로 처신은 잘하는 편이었다. 찰스 2세의 다른 정부들은 왕비를 무시했는데 케루알은 언제나 왕비에게 숙이고 들어가 왕비와의 관계가 좋았다. 이때문인지 반 가톨릭 여론으로 영국 내 가톨릭 신자들이 공격받을 때도 왕비가 그녀의 신변을 보호해주기도 한다.[11] 덧붙여 넬이 케루알을 많이 놀려먹었지만 사이가 좋을 때는 또 좋았다. 카드놀이 친구기도 했으며 왕이 다른 정부 호르텐스 마치니에게 빠졌을 때 실의에 빠진 케루알을 위로해주기도 했다. 라이벌 겸 친구였던 듯.[12] 사실 찰스 2세의 정부들 중 진짜 진상으로 유명했던 사람은 이 레이디 캐슬마인이다. 찰스 2세의 정부들 중에서 왕비를 제일 무시하고 다녔고, 후반부에는 함부로 정치에 관여하고 국고를 탕진하거나 다른 남자들과의 염문으로 말이 많았다. 결국 찰스 2세가 죽기 몇년 전에 궁궐을 떠났다.[13] 본래 유럽 궁정에서 높으신 분들 휘하의 광대는 단순히 웃기는 엔터테이너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신하들이라면 목 내놓고 해야 할 직언과 풍자를 거침없이 해 주인의 잘못을 깨우쳐주는 역할이기도 했다. [14] 정확한 유언은 동생보고 포츠머스 공작부인(= 루이즈 드 케루알)과 잘 지내고, 가여운 넬리가 굶주리지 않게 해달라는(be well to Portsmouth, and let not poor Nelly starve.) 내용이었다.[15] 참고로 라이벌이자 찰스 2세의 임종을 같이 지켜본 루이즈 드 케루알도 고국인 프랑스로 낙향한다. 이것도 제임스 2세의 푸대접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