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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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노먼 베쑨 Henry Norman Bethune
중국어: 亨利·诺尔曼·白求恩
1890년 3월 3일 ~ 1939년 11월 12일
1. 개요
캐나다 태생의 흉부외과 의사이자 의료 개혁가.
2. 일생
1890년에 태어났으며 어릴적 이름은 헨리 베쑨, (또는 베순이라고도 한다. 사회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로 스페인 내전과 중국혁명에 투신하였다. 중국에서 수술 중 칼에 베어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인해 사망했다. 전쟁에서 일명 '백구은' 으로 불렸으며 백구은이 있다! 라고만 해도 군사들의 사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만든 수술 기구로는 늑골 절단기,늑골 견인기가 있다.
2.1. 어릴적
태어난 곳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 그레이븐 허스트에 있다. 생가가 있으며 기념관으로 쓰인다.
아버지는 말콤 베순,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앤 굿윈이다. 할아버지 이름도 노먼 베순인데 할아버지 또한 유명한 외과 의사로, 나중에 토론토 대학 의대로 흡수되는 어퍼 캐나다 의학 학교를 세운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장로교 목사인데 아들인 노먼은 엄청난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일부러 길을 잃어버려서 경찰에게 도움을 받는일도 있었고 또 강에 빠져 죽을뻔한것도 여러번이다. 또 집안에 있는 물건들 위치를 막 바꾼 장난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그리 엄하게 탓하지 않았는데, 아버진 빈민층을 많이 생각하고 부유층을 비난했으며 부유층 눈치를 보던 교단을 비난하며 복지정책을 더 강력히 지원하길 요구하며 사회 개혁가로서 활동도 했다.
2.2. 의사로서
이런 아버지 영향을 노먼이 크게 받았다. 학비를 스스로 벌며 의과대학에 들어가 연구하던 그는 의학박사 학위를 1년 남은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에 캐나다군이 참전하며 그도 참전해 전쟁터에서 종군의사로 활약하다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캐나다로 돌아온다. 그때 많은 깨달음을 얻고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된다. 1916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의사로 일하던 그는 1923년 프란시스 캠벨 페니 에딘버러와 결혼했다. 에딘버러 집안은 부유층이었기에 경제적으로 큰 지원을 해줬고 그는 이때, 돈없는 사람들에겐 무상으로 치료를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과로한 끝에 폐결핵에 걸리고 만다. (그당시 폐결핵은 암 말기와 같다.)
1926년 36살에 의학 서적을 뒤지다가 인공 기흉술 (결핵이 발생한 한쪽 폐를 허탈시키기 위해서 흉부에 공기를 투입하는 수술) 을 하겠다고 한다. 주치의에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이 일로 그는 일반 외과 의사가 아닌 흉부외과로 전직을 바꾸고 2년동안 새롭게 공부하여 흉부외과 의사가 된다. 돈없는 사람들을 여전히 무상으로 치료해줬으며 부유층만을 위한 사회정책에 반발하여 공산당에 가입하며 사회주의 활동도 했다. 이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빨갱이라고 하여 오랫동안 묻혀졌었다.
1936년에 내전 중이던 스페인으로 가서 이동 수혈대를 만들고 사망률을 75%까지 줄이게된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라고 스스로 밝히며 활동하던 점으로 반공 독재자인 프랑코는 그에게 지원을 거부하여 그는 스페인을 떠나 1938년 1월, 중국에 가서 의료활동을 한다. 하지만 국공내전에 중일전쟁까지 벌어진 터라 외국인인 그를 중국 정치인들은 외면했다.
이대로 안되겠다고 하던 베쑨은 중국군 팔로군 장군이던 녜룽전(1899~1992)과 만나 의료물품 및 인력 지원을 부탁하지만 즉시 거절당했다. 녜룽전은 부하들을 병자들에게 보내 내 군대를 전염시켜 다 죽일 셈이냐며 거부했는데 분노한 베쑨이 마구 비난했는데 고맙게도 통역자가 중국어로 녜룽전에게 순화하여 통역한 게 도움이 되었다. 베쑨은 비겁한 장군이라며 마구 모욕했지만 통역자는 "이 의사는 당신은 훌륭한 장군이라며 칭송하지만 모르는 게 많다고 하고 있습니다. 병이라는 게 전염되는 건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군대가 안 걸린다고 좋아라 할 게 아니라고 하네요. 그 군대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전염되어 다 같이 죽어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차라리 사전에 전염을 막는게 군대에게도 좋고 나아가 중국 인민들에게도 당신은 존경받고 군대가 전염을 막는데 이바지하면 군대에 대한 칭송도 받는데 왜 그걸 모르냐고 안타깝다고 하는군요." 녜룽전도 이 말에 생각을 고쳐 팔로군을 동원해 그를 돕게한다.이런 지원에 대하여 베쑨은 고마워하며 팔로군 부상병 치료에 열심히 나섰고 중국인 의무병들에게 의료기술 전파에도 힘썼다. 그러나,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군은 베쑨을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지원금과 의약품원조를 차단하면서 베쑨도 큰 곤란을 겪고 나아가 이게 그의 죽음에 원인이 되게 하고 말았다.
3. 죽음
1939년, 수술 도중 환자의 부러진 뼈에 왼손 중지를 찔렸고, 사흘 뒤 경부에 단독 및 봉소염이 생긴 부상자를 맨손으로 수술하다가 상처 부위가 감염되어 패혈증에 걸리고 만다. 이 병으로 인하여 11월 12일 새벽 5시 20분에 사망했다. (사망 전날인 11월 11일 오후 4시 20분, 베쑨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일어나 앉아 네룽전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향년 49세.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도 패혈증은 불치병이 아니었지만 의료품 부족으로 고치질 못했던 거였다. 중국이 아니었다면 캐나다나 미국이었다면 그는 얼마든지 살 수 있었으나, 당시 중국 공산군도 의료품 부족에 시달리던 터에 결국 베쑨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만 셈이다.
4. 평가
중국에서 그의 입지는 매우 높은데 중국에 병원을 20곳을 건설하여 많은 사람들 목숨을 살리고 중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하게 해준 인물이라고 볼수 있다. 모택동만 해도 그를 칭송했고 아예 그 스스로가 〈베순을 기념하며...(紀念白求恩)〉라는 수필을 써 그를 기렸고 그의 유해는 허베이 성 스좌장 혁명열사능에 묻혔다. 지린 성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의과대학이 세워졌고 스좌장에는 그의 이름을 딴 3개의 병원이 있다.당연히 전신 동상에서부터 기념비와 여러 상도 세워져 그를 기리고 있다. 욕대학은 그가 한 업적을 칭송하고자 칼리지중 하나를 그의 이름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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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는 그의 흉상.
5.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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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중국, 캐나다, 프랑스 합작으로 영화 Bethune: The Making of a Hero가 만들어졌다. 바늘구멍에서 스파이를 인상깊게 연기한 배우 도널드 서덜랜드가 노먼 베쑨을 연기했다.
2000년대 후반에 중국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을 등용해 영화로도 만들어 국내에 개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