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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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군
Canadian Armed Forces (CAF)
Les Forces armées canadiennes (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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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비군
71,500 명[1] (2020년)
예비군
30,000 명 (2020년)
전차
80 대 (2020년)
장갑차(APCs/IFVs)
1973 대 (2020년)
견인포
133 문 (2020년)
박격포
124 문 (2019년)
자주포
0 문 (2019년)
MLRS
0 문 (2019년)
수송 차량
10,727 대
헬리콥터
123 기 (2019년)
전투기
77 기 (2019년)
공군기 총합
334 기 (2018년)
항공모함
0 척
GFP 기준 구축함[2]
0 척 (2018년)
GFP 기준 호위함(프리깃)[3]
12 척 (2019년)
초계함(고속정)
12 척[4] (2019년)
잠수함
4 척 (2019년)
전투함 총합
38 척
1. 개요
2. 역사
3. 수뇌부
4. 계급
5.1. 역사
5.2. 편제
8. 장비
9. 군복
10. 캐나다군의 기지
10.1. 캐나다 육군
10.4. 통합군 시설
10.5. 폐쇄된 군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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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의 군대. 줄여서 "Canadian Forces / Forces canadiennes"라고 이렇게 표현한다.

2. 역사


지금이야 캐나다가 깨끗하고 잘 사는 선진국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수의 캐나다인들은 끝없이 광활하고 혹독한 북아메리카의 자연에서 살아 가면서 사냥과 야외 생존 능력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로 캐나다군이 맹활약을 한 분야도 저격, 강습, 게릴라전 등의 소수의 병사들의 악과 깡으로 버텨야 하는 분야들이 많다.
엄청나게 넓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예전부터 육군의 막강한 전투력이 자랑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1910년대까지만 해도 사실상 캐나다 해군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1차대전 발발 이후 퇴역한 영국 순양함을 2척 들여오긴 했지만 모함 용도로만 쓰여 사실상 장식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1930년까지 해군력을 키우는 것을 경시했다. 어차피 유럽과 더럽게 멀어서 원정 올 일도 없을거고 온다고 해도 당시 캐나다는 영국 식민지라 유럽에서 캐나다를 치려 하면 대영제국이 그전에 박살을 내줄거고 그게 안되면 우방인 미국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그만이므로 확실히 2차대전 이전까지는 캐나다의 해군력을 늘린다는것은 돈낭비였다.
미군 때문에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과거 자치령 선포 전에도 캐나다 주둔 영국군은 미영전쟁때 미군의 침입에 단독으로 반격하여 수도인 워싱턴 D.C(!)를 공략, 백악관을 불태운(!) 전적이 있다. 미국 건국 이래 현재까지 미국 수도를 점령한 유일한 군대다. 미국인들은 영국군에게 진 거라고 반발하지만, 당시 식민지군은 대부분 캐나다 출신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나 둘 다 주력군 출신이 따지고 보면 이전에 영국인들이[5] 건너와 식민지로 시작했으니[6] 영국 혈통(영국인)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아무튼 당시의 그 인적자원이 이후 캐나다군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은근히 전투종족 기질이 있는 군대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전과가 미군급으로 대단하다. 캐나다인들 다수는 2차대전 전후로 캐나다 경제, 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산업화되기 전까지 냉혹하기 짝이 없는 혹한의 캐나다 대자연과 싸우며 먹고 살아온 농부, 수렵꾼, 벌목꾼 같은 강인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1차산업 종사자가 많았으니 캐나다 병사들이 강병 취급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가스가 처음으로 쓰인 2차 이프르(Ypres) 전투에서 영국군의 지원이 올 때까지 오줌 적신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7] 전선을 사수했다. 1차 대전에선 위의 2차 이프르 전투와 비미 전투를 비롯한 다양한 활약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스톰 트루퍼"라는 이명을 얻었다.
비미 리지(Vimy Ridge) 전투는 처음으로 작전 입안에서 실제 동원병력까지 거의 95% 이상이 캐나다군이었던, 캐나다가 주도한 첫 전투이다. 부활절 다음날인 월요일, 따뜻한 음식과 럼주로 배를 채우고 전투를 시작했다.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1만 5천 명이 제1진을 향해 공격하여, 진흙 구덩이, 철조망, 지뢰를 넘어 노도같이 밀고 나갔다. 반격하는 독일군의 기관총과 포탄은 살인적이였으나, 캐나다 군인을 막기엔 어려웠다. 그들은 너무나 저돌적으로 공격한 나머지, 최전방 방어선을 넘었는지도 모른 채(...) 제2차 방어선으로 진격하여 무너뜨린다. 이 전투에서 거둔 전과는 '온타리오 주 파병 군단', '매니토바 주 파병 군단'인 식으로 구분되던 캐나다군이 처음으로 '우리는 캐나다군'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캐나다 국민들에게도 실질적으로 '캐나다인'이란 정체성을 확립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전투 이후 1차대전 당시 캐나다군이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 "Who won at the Vimy?"였을 정도로 이 전투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당시 자부심은 대단했다. 영국군이고 프랑스군이고 왕창 깨졌던 곳인데 캐나다군은 그에 비교도 안 되게 적은 희생으로 요충지를 점령한 것이다.
당시 캐나다군의 보급과 장비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총이 저절로 분해되지 않나, 특히 군화의 내구성이 너무 형편없던 나머지 밑창이 종이짝처럼 순식간에 떨어지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때문에 농담으로 캐나다군은 독일군들의 부츠를 뺏으려고 그렇게 용맹하게 싸웠다는 말이 있을 지경이었다.
당시 캐나다군이 제식으로 사용한 로스 소총(Ross Rifle)은 적절한 성능에 스트레이트 풀 방식이라 연사 속도가 빨랐던 볼트 액션 소총이었지만, 볼트를 분해했다가 재조립할 때 조립을 잘못하기가 너무나도 쉬워서 볼트를 다시 끼웠는데 약실 폐쇄가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잘못 조립한 볼트가 든 소총을 발사하면 볼트가 분해되어 사수 얼굴을 향해 튀어나가면서 시밤쾅! 총이 분해되는 것은 둘째치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사용 영상 참조[8].
수렵(사냥)을 본업으로 삼던 출신들이 많았던 탓인지 캐나다군에는 뛰어난 저격수(엽병)들도 많았는데, 그 중 전공이 가장 화려한 저격수로는 '프랜시스 페가마가보'라는 원주민계 부사관이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살수인 378명에 더해 300여명의 적병을 포로로 잡는 기록까지 세웠는데, 이는 1차대전 당시 모든 나라의 저격수들이 세운 기록들 중 가장 많은 사살기록이며, 덕분에 당시에는 아직 법적으로 캐나다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원주민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개 병사에서 부사관까지 진급하고 높은 급의 여러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후 그는 출신 부족의 추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고아 출신으로서는 엄청난 신분 상승이다. 자세한 것은 영상 참조.
지상군만 활약한게 아니다. 캐나다 공군의 조종사들은 명 파일럿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캐나다 출신 전투기 조종사 빌리 비숍(Billy Bishop)[9]은 다른 전투기의 후방을 먼저 잡아 격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총 72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그 외에 레이먼드 콜리셔(Raymond Collishaw)라는 조종사는 60기를 격추. 전후 조지 5세 영국 국왕으로부터 최우수 전쟁영웅에게 수여하는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왕립항공비행단 소속 10명의 공군조종사가 있었는데, 그중 3명이 캐나다 조종사였을 정도로 캐나다 출신 에이스 파일럿들이 많았다.
이는 연합군 내부의 차별이 만들어낸 결과인데, 처음에는 '캐나다 파일럿들이 뭐 싸울줄이나 알겠냐'고 놀리면서 전투에 보내지 않고 벨기에 근방 영국 방어만 맡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따금씩 날아오는 적기들을 잡으면서 조종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기 때문에 캐나다 파일럿들은 엄청난 실력을 겸비한 에이스들이 되었지만, 본격적인 전선에는 투입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에이스 파일럿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거나 끝나던 해까지 살아남은 경우가 많지만, 처음 투입되는 신병들이 엄청 죽어나간 덕분에 당시 파일럿의 평균 생존기간은 1주일이었다. 이 엄청난 수의 피해를 매꾸기 위하여 연합군은 캐나다 공군의 전선 투입을 허가했는데... 덕분에 캐나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재미는 톡톡히 봤다.
2차대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943년 12월, 이탈리아 전선의 오르토나라는 마을에서 독일 공수부대를 상대로 큰 고전을 했는데, 마을의 구조가 좁은 골목과 길거리로 구성되어 있었고 독일군이 사방에서 매복했기 때문이다. 즉, 길거리만 나오면 저격수와 기관총 사수가 버티고 있었단 소리. 그래서 새로운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름하야 쥐구멍(mousholing) 전술이다. 적이 안보이는곳에 폭탄으로 구멍을 뚫어 진입로를 만들고, 그걸 건물 건물 마다 적용해서 모든 건물의 안전한 통로를 잇는것이 바로 그 전술이다. 이는 상당히 효과적으로 쓰여서 현대 시가전에서도 쓰일정도. 대테러전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주요 진입로인 문과 창문에만 적들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 벽을 폭파하고 진입하면 기습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의 터닝포인트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 미군이 담당했고 몇시간만에 전사자만 3000명 이상이 나와 유명해진 오마하 해변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주노 해변에 상륙한 캐나다군은 상륙한지 불과 15분(!)만에 독일군의 저항을 분쇄하여 해변을 점령하고 더 나아가 우회기동하여 영국군이 고전하고 있던 골드 해변의 후방을 차단하고 조여들어가 독일군을 포위 섬멸하였다.(...) 이 덕분에 영국군은 1시간이나 먼저 상륙을 시작한 미군보다 더 빨리 해변을 장악할 수 있었다. 당시 사상자 수를 보면 골드 해변의 영국군 사상자가 약 400여명, 주노 해변의 캐나다군 전사자가 359명에 부상자가 574명이였고, 소드 해변의 영국군 및 자유 프랑스군은 683명의 사상자를 기록하였으며, 유타 해변에서는 200여명의 사상자만을 기록했다. 즉 캐나다군이 상륙한 주노 해변의 방어가 허술해서 15분만에 해변을 장악한게 아니라 오히려 사상자 수로는 오마하 해변 바로 다음이었을 정도로 저항이 거센 해안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15분의 기적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악과 깡으로 해냈다는것. 대전 기간에 윈스턴 처칠은 "나에게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 주어졌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10]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만큼 캐나다 병사들의 전투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2차대전때 알루산 섬에서도 싸우기도 했었고, 미군과 캐나다군이랑 함께 특수부대를 창설해서 남부 프랑스에 자유를 얻어주는 작전을 많이 실행했다. 참고로 이 부대는 악마의 여단(Devil's Brigade)라고 불렸는데, 이 부대가 그 유명한 그린베레의 조상뻘이 된다.

6.25 전쟁 시기 캐나다가 한반도에 파병시킨 병력은 UN군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인 세번째로 그 수가 많을 정도로 한국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1950년 당시 캐나다군 전체 병력의 절반을 모두 한국에 보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단순히 병력만 많이 보낸 것이 아니라 큰 활약도 했으니,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가평 전투.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13배가 넘는 중공군을 상대로 버티는 등 병력 규모에 비해 그 파워는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을 정도였다.[11] 가평전투 당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호까지 밀고 들어오며 고전하게 되자, 뉴질랜드군 포병대대에게 자신들의 위치로 포격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패기까지 보여줬다.[12] 참호 안에서 싸우는 자신들보다 엄폐물 없이 노출된 중공군의 피해가 더 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브로큰 애로우 무전을 받은 뉴질랜드군도 처음엔 놀라 선뜻 포격하지 못하다가 결국 해줬고 캐나다군의 의도대로 방어에 성공하게 된다. 4월 25일 전투 후에 미군과 한 대화는 가히 압박이다. 미군은 아예 가평 전투에서 UN군이 패배했다고 가정하고는 들어온 통신이 적군의 것인 줄 알았다는데, 미군이 캐나다군과 ANZAC군(호주군+뉴질랜드군)이 패배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이유는 캐나다군과 함께 가평을 사수하던 호주군이 병력의 40%를 잃은 뒤 이미 후퇴를 해 실질적으로 전선을 지키던 보병 병력은 캐나다군 1개 대대의 450명[13]이 전부였던 반해 중공군은 1개 사단 6,000명이 밀고 내려오던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군은 방어에 성공했고, 47명 전사자에 99명 부상자를 낸 반면 중공군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4,000명 이하가 사상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14] 가평 전투에서 큰 좌절을 겪은 중공군은 이후 더 이상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지 못 하고 38선까지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어 한국전쟁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영문 위키백과의 가평 전투 참조. 이 인연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캐나다를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했고 1963년에 수교를 맺었다. 이후에도 캐나다군은 UN군의 일원으로 많은 Peacekeeping/Peacemaking 미션에 참가했다. 주로 Peacekeeping(전투억제) 쪽으로 말이다.
2017년 JTF-2 소속의 한 저격수[15]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IS 대원을 3,450m 밖에서 사살하여 8년만에 저격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저격에는 맥밀란 Tac-50 저격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총알이 목표에 맞기까지 10초를 비행했다고 한다. 이번 신기록은 이전 영국군 저격수인 크레이그 해리슨이 세운 기록과 비교해 거의 1km나 늘어난 거리로, 한동안 기록이 깨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저격수 기록 탑5인데, 5명 중 3명이 캐나다군 소속이다.
  1. Canadian sniper in Iraq(2017): 3,450m
2. British sniper Craig Harrison in Afghanistan(2009): 2,475m
3. Canadian sniper Rob Furlong in Afghanistan(2002): 2,430m
4. Canadian sniper Arron Perry in Afghanistan(2002): 2,310m
5. U.S. sniper Brian Kemer in Iraq(2004): 2,300m
이외에도 세계 최초로 픽셀형 위장 무늬(CADPAT)를 채택하였으며, AR-15를 개량한 디마코(Diemaco) 사의 C7C8 같은 총기를 채택했다. 게다가 이 소총은 미국보다도 위버 레일을 먼저 도입했고[16] 엘칸 C79 조준경과 디마코에서 자체 제작한 탄창을 사용한다. 탄창의 내구성은 요즘에 나온 PMAG만큼은 아니더라도 신뢰성이 상당이 높다.
미국과 인접한 데다가 최우방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군과는 합동훈련 등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미군을 직접적으로 도운 대외적 활동으로는 ISAF의 일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력을 파병하여 일선에서 활약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가 전혀 없자 결국 2011년 7월 7일부로 파병된 캐나다군이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전병력이 철군하였다. 이 전쟁에서 158명이 전사하고 635명이 부상 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얻은 것이 없는 쓰라린 경험이 되고야 말았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캐나다 입장에서 현명한 결정이었는데, 2016년인 지금도 미군과 RS(Resolute Support Mission)에 소속된 다국적 연합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오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으로 출혈을 강요받고 있다. 특히 경제가 휘청거리는 현재 미국으로서는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다.
캐나다 해군은 1980년대 말에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하는 방안을 공식 추진하기도 했다. 관련 문서 만약 성사되었다면 비(非)핵무장 국가로는 처음으로 원자력 잠수함을 확보하는 사례가 되었겠지만[17], 당시에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로 인해 원자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된 상황이었고, 동맹국인 미국도 부정적 반응을 보인 탓에 얼마 안 되어 철회해야 했다.

3. 수뇌부


명목상 통수권자
통수권자 대리
실질적 통수권자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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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총독 (공석)[18]
쥐스탱 트뤼도 총리
할짓 사잔[19]
국방참모총장
해군사령관
육군사령관
공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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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반스 대장(육)
론 로이드 중장
폴 위니크 중장
알 메인징거 중장
국방주임원사
해군주임원사
육군주임원사
공군주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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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인 과이몬드 준위(육)
미셸 비게너트 준위
스튜어트 하트넬 준위
게랄 포이트라 준위

4. 계급




5.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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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역사


캐나다 육군은 캐나다 통합군으로 통합되어 공식적으로 캐나다 지상군 사령부(Land Force Command, LFC)라고 한다. 2013년 9월 현재 정규군 21,600명, 예비군 24,000명, 민병대(주로 북부지역의 원주민으로 구성) 5,000명, 민간인 군무원 5,600명 등 총 50,6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캐나다대영제국식민지인 관계로 공식적으로 캐나다군이라는 명칭 대신에 '캐나다 민병대(Canadian Militia)'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40년대 초반에 '캐나다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캐나다 육군(Canadian Army)'이라는 명칭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66 년 4월 1일에 통합군 개편이 추진되면서 한시적으로 '기동군(Mobile Command)'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68년 법적으로 캐나다 왕실 해군(Royal Canadian Navy: RCN), 캐나다 왕실 공군(Royal Canadian Air Force: RCAF)과 함께 캐나다 지상군(Land Force Command)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캐나다 통합군(Canadian Armed Forces)으로 통합되었다. '기동군'이라는 명칭은 1993년까지 존재하다가 그후 지상군으로 완전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 변경이 역사 단절, 정체성 모호 등 군내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고 여전히 군인들과 언론에서는 '캐나다 육군'이라는 명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2011년 8월, 해, 공군과 함께 1968년 이전 명칭인 '캐나다 육군'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그러나 통합군 체제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1867년 캐나다가 자치령이 되기전까지는 영국 육군의 일원이었다. 그 후로도 현재까지 꾸준하게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 병력을 파병하고 있다. 1889년 남아프리카전쟁(2차 보어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걸프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참전했으며 유엔 평화유지군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5.2.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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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단들의 배치상황
캐나다 육군은 총 5개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반적인 사단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로 치면 '육군본부'에 해당한다. 캐나다 통합군 체제 내에서 본부역할을 맡고 있다. 국내 방어 외에도 해외 파병에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캐나다 육군의 특성상 지상군 파병에 따른 여러 행정 지원 업무 또한 1사단의 몫이다. 사령부는 온타리오 주 킹스턴(CFB Kingston)에 위치해 있다.
  • 캐나다 제2사단(2nd Canadian Division: 前 퀘벡지역 지상군)
퀘벡지역을 수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령부는 퀘벡 주 몬트리올(CFB Valcartier)에 위치해 있으며, 예하에 5기계화 보병여단, 34여단(예), 35여단(예)을 두고 있다.
  • 캐나다 제3사단(3rd Canadian Division: 前 서부지역 지상군)
캐나다 서부지역을 수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령부는 앨버타 주 에드먼턴(CFB Edmonton)에 위치해 있으며, 예하에 1기계화 보병여단, 38여단(예), 39여단(예), 41여단(예)을 두고 있다.
  • 캐나다 제4사단(4th Canadian Division: 前 중부지역 지상군)
캐나다 중부지역을 수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령부는 온타리오 주 토론토에 위치해 있지만 예하 대부분의 부대들은 온타리오 주 전역에 흩어져 있다. 예하에 2기계화 보병여단, 31여단(예), 32여단(예), 33여단(예)을 두고 있다.
  • 캐나다 제5사단(5th Canadian Division: 前 대서양지역 지상군)
캐나다 대서양 연안지역을 수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역 특성상 기계화 보병사단은 없고 1개 방공연대와 2개 예비군 여단을 두고 있다. 사령부는 노바스코샤 주 핼리팩스에 위치해 있지만 예하 대부분의 부대들은 노바스코샤 주 전역에 흩어져 있다.

6. 해군




7. 공군


Royal Canadian Air Force(RCAF)
L'Aviation royale canadienne(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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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당시 러시아의 핵 폭격기를 최일선에서 막아내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지만, 냉전 종식 이후로는 현존하는 전투기 전력이 영 보잘것 없다. 130대의 F/A-18 A/B 을 구입해서 CF-188 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해 운영하고 있었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숫자는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다.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걸쳐 소수의 기체를 대당 3,0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해 AIM-9X, AIM-120 등을 운영 가능하고 APG-73 레이더와 JHMCS 를 탑재하는 등 현대화해서 운영하는 중. 본래 2018년까지 운영 후 F-35 로 교체할 예정이었지만 F-35가 계속 미루어지며 CF-188의 퇴역도 자꾸만 늦춰지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CF-188 전투기 전부는 퀘벡주 배거빌과 앨버타주 콜드레이크에 나뉘어져 있으며 수송기는 온타리오주 트렌튼과 마니토바주 위니펙에 주로 배치되어 있다. 이들 기지들은 한겨울에는 영하 50도를 종종 찍어주며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냉전 시기 러시아와 중국이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캐나다 영공을 거쳐야 한다는 지리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NORAD 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제 2 사령부가 캐나다에 있어 미 공군의 강력한 정보전 능력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 아울러 세계 2위, 남한의 100배에 달하는 광대한 국토의 영향으로 다수의 수송기 및 A310 MRTT 공중 급유기를 운영하고 있다.
NDP를 비롯한 진보 세력은 캐나다의 군사비 확충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 경제의 회복과 남오세티야 전쟁, 우크라이나 사태 등등을 거치며 크게 늘어난 러시아 공군의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이상의 공군력을 꼭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
다만 국토가 넓어 대형 장거리 전투기를 도입할 것 같은 추측과는 반대로 F-104, F-5, F-18 등의 항속거리가 짧은 항공기를 운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형 장거리 전투기라도 어차피 북극해 상공에서는 요격이 어렵고 자국 영공에서 요격해야 하기 때문. 그나마 가까운 CFB 쿨드레이크의 경우 가장 가까운 북극해 해안선까지 2,400km, 캐나다 영토의 최북단까지는 3,600km를 날아가야 한다. 서울에서 홍콩~방콕까지 요격하러 날아가야 하는 셈. 때문에 초계 역시 전투기보다는 E-3 조기경보기 및 지상 레이더에 의존하고 있다.
타국 항공기를 들여올 때 제식명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 아래가 그 예시들.

8. 장비





9. 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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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육군전투복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캐나다군 모두가 동일한 형태의 디자인에 CADPAT 디저털 위장무늬를 2002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에서 첫 번째로 제작된 디지털 무늬 전투복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CADPAT는 사용 장소에 따라 구사할 수 있도록 Temperate Woodland(TW, 산림용), Arid Regions(AR, 사막용), Winter/Arctic(W/A, 한랭지용)의 3가지가 있고 캐나다 국방과학연구소(Defence Research and Development Canada)에서 개발 중인 Urban(도시용)이 있다.

10. 캐나다군의 기지


캐나다군의 기지는 통상 'CFB(Canadian Forces Base) 지명‘으로 표시된다. 과거 삼군(三軍) 통합 이전에는 각 군 별로 명칭이 달랐으나 통합 이후에는 군종에 상관없이 CFB라는 명칭으로 표기하고 있다. CFB라는 명칭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령급 이상 지휘관이 상주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군기지 통폐합으로 인해 대령급 이하 지휘관이 상주하는 부대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CFS(Canadian Forces Station)라고 하는 작은 군기지도 존재하는데 소대급 기지부터 대대급 기지까지 크기와 형태도 다양하다. 이러한 CFS는 최근에 예산 절감 및 행정상의 편의를 위한 군기지 통폐합으로 인해 CFB 내로 이전하는 추세다.

10.1. 캐나다 육군


  • 지상군 대서양 지역 훈련소(Land Force Atlantic Area Training: LFAATC) 앨더샷(Aldershot), 노바스코샤(Nova Scotia)
  • 지상군 대서양 지역 훈련소(Land Force Atlantic Area Training: LFAATC) 미포드(Meaford), 온타리오(Ontario)

10.2. 캐나다 해군



10.3. 캐나다 공군


캐나다 공군 CF-188 전투기의 1/3이 주둔중인 공군 기지.
캐나다 공군 CF-188 전투기의 2/3가 배치되어 있는 주력기지. 겨울에 영하 50도를 가뿐하게 찍는 곳이다. 주요 공군 기지 중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위니펙과 함께 캐나드 공군 수송기의 주력 기지.
트렌튼과 함께 수송기의 주력 기지이자, 해외 파병 특수부대 사령부가 위치해 있다.

10.4. 통합군 시설


  • 코넛 민병대 훈련소(Connaught Range and Primary Training Centre: CRPTC), 오타와(Ottawa), 온타리오(Ontario)
  • 캐나다군 북부지역 사령부(Canadian Forces Northern Area Headquarters: CFNA HQ) 화이트 호스(Whitehorse), 유콘(Yukon)

10.5. 폐쇄된 군부대


일명 ‘가평 기지’로 대부분의 육군병력은 'CFB 샤일로(Shilo)'로, 나머지는 같은 이름의 17 Wing CFB 위니펙(Winnipeg) 기지로 통합되었다.
  • CFS Chibougamau, 퀘벡(Quebec)
  • CFS Mont Apica, 퀘벡(Quebec)
  • CFS Lac St. Denis, 퀘벡(Quebec)
  • CFS Senneterre, 퀘벡(Quebec)
  • RCAF Station Parent, 퀘벡(Quebec)

[1] 캐나다군의 전체 병력.[2] GFP는 한국이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기준으로 삼는다.[3] GFP는 호위함과 프리깃이란 단어를 한국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부를 때 사용한다. 한국은 이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는 1000~2000 톤급의 배도 호위함으로 부른다.[4] GFP는 초계함이나 고속정을 모두 초계함으로 처리했다.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대규모 함대전에서 유효한 전력이 아니다. 이것들은 특작부대를 막을 때 한정적으로 유효하다.[5] 그 전에 프랑스인들도 넘어와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들은 자기 식민지를 누벨프랑스(새로운 프랑스)라고 불렀고, 지금의 퀘벡 주 지역이다.[6] 영국계가 아닌 원주민계나 다른 나라, 민족 계열이었다면 아니겠지만.[7] 화재시 유독가스가 발생할 경우에도 비상조치로 사용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여기에서 오줌의 역할은 단순히 가스를 들이키지 않도록 막는 것이기 때문에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다면 가급적 물을 쓰는 것이 좋다. [8] 다른 영상에 따르면, 실제로 로스 소총은 사냥용으로는 좋지만, 군용으로는 꽝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휴즈씨에 방산비리 때문에 캐나다군들은 당시 영국군 제식소총이었던 리-엔필드를 더 원했다고.[9] 본명은 윌리엄 에이버리 비숍. 스트라이크 위치스 세계에도 그를 모티브로 하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또한 에이스 컴뱃 어설트 호라이즌의 주인공 윌리엄 비숍 역시 그가 모티브. 다만 이쪽은 미 공군 소속이다.[10] 원문은 If I had Canadian soldiers, American technology, and British officers I could rule the world.[11] 옆 고지를 지키던 호주군은 이미 큰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철수하고 캐나다군만이 뉴질랜드 포병대대의 지원을 받으며 667고지를 지키는 상황이였다.[12] 출처: Heroes of the Forgotten War: The Battle of Kapyong.[13] 이상 JTBC 특집 다큐 6.25의 이방인 - 영연방 참전 병사의 회고에 따름. 영연방 연합군의 전체 병력은 2,500명 정도였으나, 전술했듯 호주군 대대가 큰 손실을 입고 빠져나가고 영국군은 규모가 작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뉴질랜드군의 병력은 포병대대라 백병전이 벌어지던 당시 상황에서는 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캐나다군이 깡 좋게 자신들의 위치로 쏴달라고 요청해서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긴 했다.[14] 추정인 이유는 중공군이 자세한 피해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전투가 끝난 후 UN군이 적들의 시신으로 대충 확인했을 뿐이기 때문이다.[15] 특수부대 소속인데다가 현재 이라크에서 실전을 치르고 있는 대원이라 정확한 신원이 발표되지는 않았다. 군사 기밀이기 때문.[16] 현재는 C7A2로 개량되며 피카티니 레일로 변경되었다.[17] 지금은 브라질 해군이 이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후에 한국군도 추진 중.[18] 다른 영연방 왕국의 경우들 처럼, 캐나다의 국왕으로서 엘리자베스 2세가 법적인 통수권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캐나다 총독이 대리한다. 그래서 만일 캐나다군이 모종의 이유로 영국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자메이카군 등 타 영연방 왕국군을 공격하게 되면 이론상 반역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 다만 실질 통수권은 캐나다 총리에게 있다.[19] 육군 중령 출신이며 터번에서 알 수 있듯이 시크교도다. 실제 전쟁에 참여해서 활약까지 한 참전 영웅 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