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유골호
[image]
1. 개요
綠釉骨壺(附石製外函). 녹유골호(부석제외함)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도자기의 세트로, 시신을 화장하고 나온 뼛가루를 담는 뼈단지 항아리와 뼈단지를 담는 돌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이라는 이름을 풀이해 보면, 녹유(綠釉)를 발라 만든 뼈항아리와 이와 함께 딸린 돌로 된 바깥 함이라는 뜻이다. 녹유란 구리 성분을 포함시킨 유약으로 이를 도자기 등에 입히면 그 표면이 녹색을 띄게 된다.[1] 뼈항아리는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장례 방식이 매장 대신 화장으로 바뀌면서 생긴 장례 문화인데, 화장하여 나온 뼛가루를 담아 매장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대체로 뼈단지는 하나였으리라 추정하나, 본 유물처럼 뼈단지를 담는 외함까지도 갖추어 매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던 것으로 보인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고 출토지가 경주라는 것만이 전해지는데, 이는 본 유물이 일제시대에 불법으로 도굴되고 일본으로 불법적으로 유출되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들이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2] 본 뼈항아리 세트가 일본으로 유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가 패망했다고 전하는데, 전후의 혼란 상황에서 어찌저찌하다가 도쿄박물관으로 흘러들어갔고 그곳에 몇 년간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한일국교정상화를 꾀하던 박정희 정권이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여,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채결한 한일협정의 부속협정 가운데 하나인 문화재 협정에 따라 고향으로 반환된 극소수의 유물 중 하나가 바로 녹유골호(부석제외함)이다.[3]
녹유골호(부석제외함)는 일본으로부터 반환 받은 뒤 1967년에 국보 제12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image]
녹유골호는 높이 16cm, 입지름 15.3cm의 작은 뼈항아리고, 이에 딸린 석제외함(돌함)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43cm, 지름 45cm의 크기이다. 뼈항아리와 돌함의 형태는 둘 다 뚜껑과 몸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뼈항아리는 표면에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돌함은 화강암을 깎아 다듬어 만든지라 화려한 장식이 없지만 뚜껑은 연꽃[4] 모양으로 단정하게 만들어졌다.
[image]
[image]
뼈항아리의 표면에 새겨진 장식은 정교하고 화려하여 그 수준이 높다고 평가 받는데, 뚜껑이나 몸체에 모두 다양한 기하학적인 문양과 꽃무늬로 가득 장식을 해놨다. 뚜껑의 꼭대기는 평평하게 처리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큰 꽃무늬가 있고 이 둘레로 작은 꽃무늬와 자잘한 선을 번갈아가며 배치하였다. 몸체도 마찬가지로 꽃무늬와 선이 교대로 이어지는데 빽빽한 선과 꽃무늬가 잘 어울리게 배치됐다. 뚜껑과 몸체에 입힌 녹유는 약간 탁한 녹색빛을 띄는데, 만들어진지 천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음에 따라 여기저기 녹유가 벗겨진 부분도 많지만 여전히 그 색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구형의 돌함에는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표면을 잘 다듬어서 전체적으로 둥그런 꽃 모양을 연상시킨다. 돌함 뚜껑의 꼭대기에는 꼭지가 달려 있고 꼭지로부터 선이 아래로 내려오는데, 이는 선이 생기도록 선의 양 옆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뚜껑의 꼭지로부터 내려오는 선은 몸체에도 이어져서 몸체 아래로 쭉 연결되게 만들어놨다.
녹유골호와 돌함에 대해서 더 전해지는 자료가 없어 출토지나 제작시기와 같은 정보를 알 수 없기에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본 유물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뼈항아리들 가운데 조형 수준이 가장 높고, 뼈항아리를 담는 돌함까지 모두 온전하게 보존되어서 신라시대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은 뼈항아리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를 담는 외함까지 같이 세트로 전해져서 보존상태가 아주 우수하고, 신라시대의 장례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 받아 1967년 6월 21일 국보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125호
골호란 불교에서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매장하는데 사용된 뼈 항아리로, 삼국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까지 성행하였다.
뚜껑에 둥근 꼭지가 달리고 꽃잎모양으로 각이진 화강암으로 된 외함속에서 발견된 이 골호는 몸체와 뚜껑에 녹색유약을 입힌 높이 16㎝, 입지름 15.3㎝의 통일신라시대 뼈 항아리이다.
몸체에는 도장을 찍듯 점선과, 꽃무늬로 가득 장식하였다. 골호 중에는 이처럼 무늬를 찍어서 장식한 뒤 유약을 바른 시유골호(施釉骨壺)가 몇 점 전해지는데, 이 골호는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1]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 녹유2 綠釉[2] 혹은 도굴품을 장물로서 용이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관련 정보를 누락시켰을 가능성도 있다.[3] 이 문화재 협정은 대단히 문제가 많은데, 협정 문구 상 반환이 아니라 인도의 성격으로 문화재 반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그나마도 당시 일본인 소유주의 자발적인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사실상 별다른 효력이 없는 엉터리 속 빈 깡통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본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반환된 문화재는, 일제시대에 마구잡이로 반출된 막대한 유물들의 양을 생각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4] 또는 국화#s-1꽃으로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