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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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国立博物館
1. 개요
일본 도쿄도 다이토구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우에노 공원 북쪽 끝에 있다. 케이세이, 지하철, JR 등의 우에노역, 우에노히로코지역에서 도보로 약 15분쯤 걸린다. 입장료는 성인 620엔, 대학생은 410엔이고 18세 이하와 70세 이상은 공짜다. 물론 특별전은 별도. 본인이 학생이라면 반드시 학생증을 제시하자. 특별전은 요금이 꽤 차이난다. 휴관일은 월요일
교토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과 함께 메이지 시대에 개관한 3대 국립박물관이며 이후 규슈국립박물관이 추가되었다.
건물 자체도 역사가 꽤 깊다. 20세기 초에 건축된 건물이다. 원래 우에노 공원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묘지를 관리하는 칸에이지(寛永寺, 관영사)가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무렵 막부군과 유신 세력이 전투하는 과정에서 칸에이지가 불타버리자, 그 자리에 공원과 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 건물 중 본관과 표경관이 각각 중요문화재로 지정받았다.
2. 구성과 전시품
소장유물 약 11만 7천 점, 이중 일본의 국보 89점과 중요문화재 640점이 있으며, 별도로 국보 55점, 중요문화재 258점을 기탁받아 보관하는 등,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일본 최고, 최대의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또한 매년 가을에는 그해에 지정된 국보와 중요문화재(미술공예품 한정)을 모아 전시하는 신지정 국보 · 중요문화재 특별전을 열기도 한다. 국립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들을 묶어 법인화한 독립행정법인 국립문화재기구의 수장기구이며, 산하에 교토, 나라, 규슈 3곳의 지방 박물관과 도쿄, 나라 두 곳의 문화재연구소를 거느린다.
본관을 비롯하여 건물 총 6개와 정원이 있다. 꼼꼼히 본다면 사나흘은 꼬박 걸리고 본관만 보려고 해도 하루는 꼬박 필요하다. 매 시즌에 별도로 열리는 특별전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므로 아침 일찍 들어가거나 금, 토요일의 야간개장 시간을 활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또한 상설전의 전시유물도 매 기간 바뀌며 작은 테마전도 수시로 열리는데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유물의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대부분 일본 박물관과 달리 제한적으로 허가한다. 기탁받거나 빌려온 유물은 대부분 촬영금지인데, 그런 유물 근처에는 항상 직원이 있어서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다만 본관 외에는 감시가 그렇게 심하진 않다고 한다.
소장품 중 국보와 중요문화재는 도쿄국립박물관/중요문화재 참조
2.1. 본관
박물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일본의 미술품을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한다. 첫 건축 이래로 몇 차례 개축하였으나 1923년에 관동대지진으로 박물관 건물 전체가 대파되어 1937년에 현 건물을 다시 세웠다. 이 건물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층부터 관람하는데, 2층에는 일본 미술의 흐름이라는 제목으로 선사시대의 미술부터, 불교미술, 궁정미술, 다도미술, 우키요에 등을 전시한다. 1층에는 주제별로 전시하는데 조각, 칠기, 도자, 금속공예, 무기와 갑주, 역사자료, 아이누, 류큐, 근대미술 등이다. 보통 2층만 봐도 피곤하다. 특히 2층의 2실은 국보실이라 하여 보기 힘든 국보(주로 회화나 서적)을 기간한정으로 공개한다. 1층에 위치한 뮤지엄샵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박물관 도록을 다 판매하므로 다른 지역의 전시도록을 구하기 편하다. 책장만 무려 2층에 걸쳐 있다.
2.2. 표경관(효케이관)
1909년 훗날 다이쇼 덴노가 되는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여 건설한 2층 건물로, 관동대지진 때 피해를 입지 않은 덕분에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중요문화재로 지정받았다. 현재는 어쩌다 소규모 특별전을 하려고 개방할 뿐 거의 열지 않는다.
2.3. 동양관
본관 옆에 위치한 지상5층, 지하1층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중국 유물이 절반, 나머지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그 크기가 본관 못지 않다.
가장 위층인 5층에 한반도 유물을 전시하는데, 대부분이 오구라 컬렉션이라 문제가 있다. 다만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모든 한국 문화재가 오구라 컬렉션인 것은 아니며, 양산 부부총 출토 유물 일괄처럼 다른 경로로 반출된 문화재도 있다. 가야 지역의 금관이나 조선 왕실의 익선관 등을 전시한다. 중국 유물도 수준이 높다. 지하에는 동남아시아 유물들이 있는데, 특히 캄보디아 크메르 문명의 유물들은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에서 받은 것이다. 그 밖에 페르시아, 실크로드, 심지어 이집트의 미라도 상설전시한다.
1층에는 가장 대중적인 레스토랑이 있는데 얄굿게도 오구라 컬렉션을 기증한 오구라 타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창립한 오구라 호텔이 운영한다. 여기 외에는 근처에 딱히 식사할 곳이 없기도 하고 해서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이 많이 몰린다.
2.4. 평성관(헤이세이관)
본관 뒤편에 있는 건물로 1999년 황태자 나루히토의 결혼을 기념하여 개관하였다. 본관의 역할을 분담하고 대규모 특별전을 개최한다.
1층은 일본의 고고학 전시실로 하니와에서 시작해 에도시대에 이르기까지 고고학 발굴 유물을 전시한다. 보통 본관의 전시에 치여서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국보나 중요문화재가 널려있다. 2층은 특별전시실로 대규모 특별전이 개최되며 사진촬영은 금지이다.
2.5. 호류지 보물관
도쿄박물관 구석에 박힌 작은 건물이다. 메이지 시대에 호류지(法隆寺)에서 천황가에 헌납한 보물을 전시하고자, 유명한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하여 건축하였다. 건물은 2층인데, 1층에는 주로 불상을, 2층에는 불상 외 금속공예품을 전시한다. 그 외에 봄 가을에는 가면, 목조공예품, 서적, 회화 등을 공개하기도 한다. 여기에 레스토랑이 하나 더 있는데 이곳은 양식만 팔고 가격이 다소 비싸다.
건물로 가는 길에는 과거 돗토리 지역이었던 이나바 번의 다이묘 이케다 가문의 에도 저택 정문을 옮겨놓았다. 이 또한 중요문화재.
2.6. 쿠로다기념관
박물관 정물 바깥에 있는 건물. 일본 근대의 서양화가인 쿠로다 세이키를 기념하기 위해 1928년에 지었지만, 1년에 3회만 개방하므로 거의 갈 일이 없다.
2.7. 정원 및 야외전시
본관 뒤편에는 옛 칸에이지의 정원을 복원한 정원이 있다. 정원에는 다실 등 교토, 나라 등지에서 옮겨온 고건축물 5동이 있는데 봄, 가을에만 공개한다. 정문에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동양관 앞에는 한국의 문인석 등이 서 있어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3. 법인화
일본은 대처리즘을 받아들여 박물관, 미술관이나 연구소 등을 법인화한다. 국립박물관을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직접 공공기관으로 관할하는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1] 일본 내에서도 순수 인문, 예술 분야를 준 민영화라 할 수 있는 독립 법인화가 과연 옳은지 논쟁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각종 박물관, 미술관은 다음과 같이 묶여 법인화된다.
이렇다보니 국가와 관계가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유 문화재의 전시 문제. 기존 소장품은 소유자는 국가요, 관리자는 국립박물관으로 정리하였으나 문제는 문화청 소장 문화재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문화청에서 적극적으로 지정문화재 혹은 가치 있는 문화재를 구매하는데, 문화청은 별도 전시시설이 없다. 법인화 이전에는 문화청 소유 문화재를 자연스럽게 국립박물관에 전시했으나 이제는 법인화되었으니 이런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2]
어쨌든 이런 문제 때문에 도쿄국립박물관에는 문화청 출장소를 따로 만들어 별도의 수장고에서 문화청 문화재를 관리하는 이상한 구조를 이루었다.
4. 오구라 컬렉션
도쿄국립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유물들도 전시하는데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 전시실을 채우는 유물 상당수는 일명 '오구라 컬렉션'인데, 1908년 대구에서 제연합자회사를 창립하여 재산을 축적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가 오랜 세월 수집한 문화재들이다. 오구라는 1920년대 대구, 경주 일대에 도굴이 성행했을 때 물건만 좋다면 종류나 값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쿠라 컬렉션은 토기, 고고품, 석조품, 조각, 칠공예, 회화, 서예 등 종류가 다양하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오구라의 수집품 수백여 점을 회수하여 대구시와 경주시로 옮겼지만[3]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이미 일본으로 반출한 뒤였다.[4] 1982년 오구라가 사망하자 아들이 소장품 1040점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일본 정부는 이들 유물 중 8점은 국보, 39점은 중요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오구라 컬렉션은 1960년대 일본에서 한국문화재 귀환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반환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개인이 수집한 유물이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인 조선왕실 유물 9점, 금관총 유물 8점, 부산 연산동 고분 유물 4점, 창녕 출토 유물 13점 등 총 4건 34점이 도굴품이라는 사실이다. 유네스코 협약에서는 불법취득한 문화재는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하는데[5] 이 유물들이 도굴품이라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거는 수집자 오구라 본인이 작성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이다. 여기에 유물들의 출토지역과 원소장처가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도굴의 확실한 정황증거다. 또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도굴품인 줄 아는데도 유물들을 기증받아 박물관 윤리강령을 위반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여기에 전시된 한국 문화재 목록에 대해서는 오구라 컬렉션 문서 참조. 다만 양산 부부총 출토 유물 일괄처럼 오구라 외 다른 경로로 반출해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한국 문화재도 있다.
5. 관련 문서
[1] 요즘 한국도 일부 국립 박물관 등을 법인화하는 추세이다.[2] 한국에서도 서울대학교의 법인화 과정 당시 박물관과 규장각, 도서관 소장 문화재와 서적을 어느 것을 국유로, 어느 것을 서울대 소유 및 관리로 할지 논쟁이 된 적이 있다.[3] 이 유물들은 훗날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964년 대구 503방첩대가 오구라가 살던 집 지하에서 유물 2백여 점을 추가로 발견하여 그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보내었다.[4] 송산리 고분군 6호분을 도굴한 가루베 지온과 같이 유출했다고 알려졌다.[5]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식민지 경영과정에서 불법유출한 유물들로 박물관을 채운 국가들 대부분이 무시하는 탓에 사실상 사문화된 협약이다. 일본 역시 다른 나라들과 발맞추어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의 주장을 무시로 일관한다. 당장 독일의 페르가몬 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은 이 협약대로 실행하면 폐건물이 돼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