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하마시
1. 개요
일본 에히메현 중북부에 있는 시. 현 내에서는 인구가 3번째로 많다. 1690년의 벳시 구리 광산(銅山) 개갱으로 인해 번영했고, 연안지대는 공장들이 띠 모양으로 형성되어 시코쿠 굴지의 임해 공업도시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동의 마을, 미소가 빛나는 산업・환경공생도시」'''를 목표로 하여, 매력 있는 도시 만들기에 힘쓴다.
시의 북부는 니하마 평야(新浜平野)가 펼쳐져 평평하지만, 남부로 내려가면 죄다 산이다.
2. 역사
중세 당시에는 가네코 씨(金子氏)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다. 이후 가네코 씨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병력들에게 멸망당한다. 시간이 흘러 근세 시대로 접어들자, 벳시 구리 광산(別子銅山)과 같이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오늘날 니하마의 경제 기반은 이 당시 길러 놓은 산업 기술에 터를 두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역사이다.
- 1921년 6월 21일 - 산요선[2] 이요도이역~이요사이죠역 구간이 개업하였다.
- 1937년 11월 3일 - 니이군(新居郡) 니이하마정(新居浜町)・가네코촌(金子村)・다카쓰촌(高津村)이 합병하여 인구 32,254명의 니이하마시(新居浜市)로써 시제를 시행하였다.
- 1951년 9월 22일 - 니이하마항(新居浜港)이 중요 항만으로 지정되었다.
- 1953년 5월 3일 - 니이군 하부촌(垣生村)・오시마촌(大島村)・다키하마촌(多喜浜村)・고자토촌(神郷村)과 합병하였다.
- 1955년 3월 31일 - 니이군 이즈미가와정(泉川町)・나카하기정(中萩町)・후나키촌(船木村)・오조인촌(大生院村)을 편입하였다.
- 1956년 9월 28일 - 시내의 오조인(大生院) 서부 지역이 사이조시에 편입되었다.
- 1959년 4월 1일 - 니이군 스미노정(角野町)을 편입하였고, 동시에 니이군은 소멸되었다.
- 1973년 3월 - 벳시 구리 광산이 폐산하였다.
- 2003년 4월 1일 - 우마군(宇摩郡) 벳시야마촌(別子山村)을 편입하였다. 참고로 당시 벳시야마촌의 인구는 277명[3] 으로 이는 현재 육지에 존재하는 촌 중 가장 인구가 적은 오카와촌(大川村, 인구 373명)보다도 적은 수치인 것이다.
3. 교통
'''철도'''
'''도로'''
- 마츠야마 자동차도 : 니이하마IC
- 국도 11호선
- 국도 192호선 (국도 11호선과 중복)
4. 기타
유명한 축제로는 '니이하마 다이코마쓰리(新居浜太鼓祭り)'를 들 수 있다. 상당히 박력이 넘치는 축제로, 매년 10월 16일에서 18일까지 3일 동안 열린다. 금과 은으로 된 천으로 색을 입힌 50대 이상의 북을 얹은 대를 150여 명의 남성들이 들고 행진하는데, 이렇게 드는 시간을 경쟁하는 '가키쿠라베'는 명물이다. 방문한다면 꼭 한 번 봐 보자.
최근 니이하마역을 포함한 주변을 재개발하여 굉장히 깔끔한 역사가 되었다. 문제는 너무 깔끔하게 밀어버려서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의 유명인으로는 성우 미즈키 나나가 있다.
[clearf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