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버그

 



Nicholas "Nick" Evan Berg
(1978년 4월 2일 ~ 2004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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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납치와 참수
3.1. 음모론
4. 기타


1. 개요


이라크 무장테러세력 유일신과 성전에 의한 미디어 테러의 첫 희생자.
김선일 살해 전 참살되는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공개되어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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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버그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닉의 고향은 펜실베니아 주이며 유대계 미국인이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코넬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 안 가 자퇴했다. 이후 여러 대학교를 전전했으나 학위는 따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닉의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색소폰 연주를 굉장히 좋아했으며 학교의 마칭 밴드에 가입해 활동했다.
대학교 중퇴 이후 닉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통신 회사의 관리자로 일하면서 우간다케냐에 출장을 갔으며 그곳의 빈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라디오 탑을 수리하고 식량과 돈을 제공하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3. 납치와 참수


닉은 2003년 12월, 아버지가 대표인 통신 시설 회사의 관리자로 이라크에 처음으로 입국했으며 이라크 인과 결혼한 이모의 집을 찾기도 했다. 이때는 별 문제없었고 2004년 2월에 이라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2004년 3월 업무상의 이유로 다시 이라크를 찾았다. 이후 원래 일찍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유로 이라크 경찰에 잡혀서 13일간 구금되는 바람에 귀국이 늦어졌다. 이후 FBI에게 비무장한 미국인에게 이라크는 너무 위험하니 떠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바그다드를 여행하다가 유일신과 성전에게 납치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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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당하기 직전의 닉'''
그를 납치한 유일신과 성전은 닉을 무참히 살해하여 그의 목없는 시신을 고속도로에 유기했고 그 해 5월 8일 미군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후 5월 11일, 유일신과 성전은 테러단체의 성명과 잔혹한 참수 장면이 담긴 5분 가량의 비디오를 그대로 공개하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주었다.
영상에서 그들은 성명을 통해 미군에게 닉 버그를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이라크군 포로와 교환을 제시했으나 미군이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했으며 부시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미군의 포로 학대 행위에 의해 모욕을 당한 이라크 포로들을 언급하며 무슬림 전사들의 더럽혀진 명예는 인명(人命)을 거두어야만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참수살인을 정당화하며 그 책임이 미국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아랍 언론들은 알 자르카위가 그를 직접 참수했다고 보도했고 참수 동영상의 제목도 "알 자르카위가 미국인의 목을 벤다"였다.
닉의 죽음으로 미국 전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으며 부시는 이를 "야만적인 테러행위"라며 비판했다. 이에 반해 닉의 아버지인 마이클 버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럼즈펠드에게 잘못이 있다고 인터뷰했으며 "이라크인을 돕기 위해 이라크에 간 닉이 부시와 럼즈펠드의 죄로 죽었다."며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3.1. 음모론


다만 석방일과 납치에 이르기까지 2주 이상 시간 공백이 있는데다 그 사이의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음모론의 좋은 떡밥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유대계 미국인인데다 이라크 입국 직전에 이스라엘을 경유했다는 점,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1]에서 일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
또한 테러범들의 억양이 이라크인이 아니고 체격이 이라크인 치고는 매우 크다는 등,[2]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 있던 의자와 주황색 죄수복이 참수 비디오에 등장했다는 등의 근거로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단체에 의해 김선일 사건이 터지면서 사실상 음모론은 묻혔다.

4. 기타


닉의 생전 사진을 보면 그는 항상 수염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는데 참수 직전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 해진 것을 보면 꽤 오랜 기간 동안 피랍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선일과 비슷하게 참수 직전 유언을 남겼다. 겁에 질린 기색이나 절규는 없었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 가족 그리고 살던 곳에 대해 이야기했다. [3] 이후 테러범들이 공문을 읽을 때까지도 침착하게 있었으나, 막상 머리채가 잡혀 참수 당할 때는 몸부림을 치며 처절하게 비명을 지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자신이 참수당할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김선일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단순 무장단체에 억류되었다가 유일신과 성전에 넘겨져 참수당했다.
공개된 영상 길이가 김선일 영상보다는 긴 편인데, 김선일 영상과 차이점을 말하자면 김선일은 빨간색 안대를 쓰고 희생 당했지만 닉 버그는 안대를 안 쓴 상태로 당했다. 그 이후로 희생된 영국인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로 안대를 쓰고 사망했다.
평화주의자라 보이스카웃 시절 총 쏘는 법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보이스카웃을 관뒀다고 한다. 다만 이라크 전에는 찬성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그의 아버지는 대표적인 반전 주의자로 극우 세력의 비난의 표적이었고 아들의 죽음 이후 부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서한을 썼고 반전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에 참수당했던 김선일의 부모를 만나 위로했다.
그의 시신은 그의 고향인 펜실베니아의 몬테피오레 묘지에 안장되었다.
닉 버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만든 추모 사이트이다. 2004년에 만들어진 사이트인데 2021년인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nickberg.org
[1] 미군에 의한 이라크 포로에 대한 성추행 및 학대사건인,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사건'이 2003년에 터졌다.[2] 다에쉬 대원들은 아랍인들만 구성되어지 않았고 서양의 네오나치 회원, 백인 무슬림도 종종 있었다.[3] "My name is Nick Berg, my father's name is Michael, my mother's name is Suzanne. I have a brother and sister, David and Sarah. I live in West Chester, Pennsylvania, near Philadelph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