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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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하며 적도상에 있는 국가. 수도는 캄팔라. 제법 경치도 좋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이 돋보이는 나라이다. 별명은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라는 국명은 간다 민족(Baganda)의 나라라는 의미로, 반투계의 간다인은 우간다 최대의 민족이다.
2. 역사
우간다 최초의 거주민은 반투계 종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7세기말 나일-햄어계 종족이 우간다 북부로 이동해왔으며, 18세기에는 남부까지 이주해왔으며 이들은 부간다 왕국을 세웠다. 1840년대 아랍인은 상아와 노예무역을 위해 이 지역에 들어왔고 1862년 영국의 존 해닝 스피크(John Hanning Speke, 1827~1864)와 제임스 오거스터스 그랜트(James Augustus Grant, 1827~1892)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부간다 왕국을 횡단했다. 카바카(Kabaka, 통치자) 무테사(Mutesa Walugembe Mukaabya, 1838~1884) 1세는 1877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부간다 왕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했다.
1884년 무테사가 죽자 왕위를 계승한 음왕가(Mwanga, 1866~1901)는 선왕과는 달리 기독교도들을 박해했다. 그 후 아랍인들이 카바카 음왕가와 기독교 선교사들을 제거하고 왕국을 지배했다. 기독교도인 간다족의 도움으로 복귀한 음왕가의 왕국은 다시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89년 독일인 카를 페터스(Karl Peters, 1856~1918)는 음왕가와 보호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1890년 영국과 독일이 남위 1°선 이북 지역은 영국의 영향권하에 둔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되면서 무효화되었다. 같은 해 영국 동아프리카회사는 영국 정부를 대신해서 이 지역의 관리를 맡았다. F.D. 루가드(Frederick John Dealtry Lugard Baron Lugard, 1858~1945)는 부간다와 음왕가를 동아프리카회사의 관리하에 둔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서부의 은콜레 왕국, 토로 왕국과도 보호조약을 맺었다. 1884년 부간다는 공식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896년에는 부뇨로 왕국과 부소가 왕국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890년대 후반 영국의 보호령은 빅토리아나일 강 북쪽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914년에 남서부 국경에서 몇 차례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기간중 우간다는 거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우간다는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1945년 최초로 아프리카인이 입법위원회에 진출하였다.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정치참여가 증가하면서 1955년에는 각료체제가 도입되었으나 부간다 왕국의 간다족 통치자는 정부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1950년대 후반 자치를 원했던 부간다 왕국은 우간다로부터의 독립을 원했다. 1962년 완전한 자치가 이루어져 간다족 출신 베네딕토 키와누카(Benedicto Kiwanuka, 1922~1972)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그해 4월 실시된 선거에서는 랑고족의 밀턴 오보테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종족과 지역에 따라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우간다는 1962년 10월 드디어 독립하고, 1963년 부간다의 통치자 무테사 2세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 다양한 종족 대표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1966년 무테사를 축출한 오보테는 1967년 새 헌법을 공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차지한 뒤 모든 왕국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쫒겨났고 그 후 이디 아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사실 1962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아프리카에서 꽤 안정적인 나라[3] 였으나, '''아프리카의 검은 히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희대의 막장 독재자 이디 아민(1971년~1978년)이 집권하면서 한때 세계적인 막장 나라로 유명해졌다.
학살도 학살이지만 인도계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한 것도 피해가 컸다. 우간다에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건너온 인도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 라스트 킹에 보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은 흑인이 하고 주인은 인도인이다. 세 얼간이의 등장인물 차투르도 우간다 출신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바로 경제적 주역이던 인도계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면서 자기 친척이나 부하들에게 금융관련 요직을 맡겨 버린 것. 금융 지식도 없는 낙하산들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이 나라 금융 및 경제를 박살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21세기가 되어도 내전이나 빈부격차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도계의 경우 아프리카에 오래전부터 이민을 많이가서 여러나라의 금융권을 꽉 쥐고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동아프리카 국가들 경우 은행처럼 돈 되는 곳이면 인도인들이 오너이거나 직접 앉아있다.
여하튼 이렇게 이디 아민이 개막장 독재를 하다가 정신이 나갔는지 탄자니아를 침공하는 짓을 저지르자 탄자니아는 이디 아민을 축출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이디 아민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선거를 통해 이디 아민에게 쫒겨났던 밀턴 오보테가 선거를 통해 다시 대통령이 되지만 문제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점이다. 이에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밀턴 오보테는 다시 무자비한 학살을 저질러 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약 10만명 반군 주장으로는 약 2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요웨리 무세베니가 쿠데타를 일으켜 밀턴 오보테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현재까지도 요웨리 무세베니가 통치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한때 이디 아민에 저항군을 이끌었던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Kaguta Museveni) 대통령이 역시 저항군 출신이던 밀턴 오보테, 오켈로등과 여러 권력투쟁을 거쳐 집권한 1986년 이래 30년 가까이 독재 중이다. 정치를 잘하면 모르겠는데 무세베니도 이디 아민 못지않게 실정을 저지르고 점점 나라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어 그에 대한 국내외적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한편 요웨리 무세베니가 집권한 1986년 이후 내전이 더 심해졌는데, 무세베니가 우간다 내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뒤 이에 반대하는 반군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우간다는 서로 죽고 죽이며 기아와 에이즈가 판치는 아수라장이 됐다.
현재 우간다에서는 이른바 우간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우간다 내전이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우간다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우간다 인민 해방군(정부군)"과 "신의 저항군the Lord's Resistance Army(LRA)" 이라는 "기독교계 반정부군"과의 내전으로 현재까지도 여전히 치열한 전투와 학살이 반복되어, 아프리카에서 진행중인 최장기간의 내전이라 불린다. 그리고 신의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 조지프 코니는 인터폴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정도의 강력 전범이다.
여담으로 시오니즘 운동이 한창 불 때 영국은 이곳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것을 고려했지만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인 하임 바이츠만이 거부했다고 한다. 사실 바이츠만이나 고위층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도 꽤 있었는데, 솔직히 땅 자체로 따지자면 우간다는 척박한 이스라엘에 견줄 수 없는 엄청나게 풍요로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 풍요로운 곳의 상태를 보면 좀 거시기하지만(…) 이스라엘 자체도 평화로운 나라는 절대 아니니까 피장파장.
우간다에서 29살의 오토바이 택시 운전기사가 경찰서 안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고 BBC가 보도했다.#
우간다에서 고릴라 라피키를 죽인 밀렵꾼이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9월 16일에 우간다 북동부에서 200여명의 죄수가 알몸(!)으로 탈옥한 사건이 발생했다.#
12월 25일에 앨버트 호에서 선박이 침몰해 최소 26명이 사망했다.#
2021년 2월 18일에 우간다에서 수류탄을 주워 가지고 놀던 어린이 6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3. 사회
우간다는 부부 강간을 포함해 강간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지만 실제 법집행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강간 범죄가 전국적으로 만연한 상태다. 우간다에서 2010년 한해동안 불과 '''709건'''의 강간사건이 보고됐고, 이 중 재판을 받은 것은 252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2013년에 우간다에서 미니스커트 등 선정적인 옷의 착용을 금지하는 반(反) 포르노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 법안은 가슴, 허벅지, 엉덩이 등 은밀한 신체 부위를 노출하거나 성적 흥분을 야기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또 풍속 문란을 유발하는 외설적인 행위도 금지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여담으로, 1970년대 우간다에서는 독재자 이디 아민의 시절에 미니스커트 착용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우간다는 국내외 언론에 대해서 엄청난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일간지와 정기 간행물들이 발행될 뿐 언론의 자유가 완전히 없는 나라다. 우간다의 주요 방송사인 라디오 우간다와 우간다 텔레비전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1970년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어 많은 일간지와 주간지가 발행되기도 했으나, 1973년 신문 발행을 금지하는 정부 포고령이 발표되면서 많은 언론인들이 처형되거나 구금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우간다 정부는 소셜미디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
금융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다는 정보가 있으나 사실은 통계상의 함정이다. 조세회피처 항목 참고.
4. 자연
화려한 자원은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천혜의 자연 자원이 인상적이다. 초원 지대가 광범위하고 사바나(숲)가 울창하게 자리잡았다. 빅토리아 호수 북서쪽과 서쪽 연안의 흙이 수분이 많은 점토질로 되어 있기에 꽤 기름진 곳이다. 커피 수출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모두 7,252㎢에 달하는 자연공원이 있으며, 사자·코뿔소·표범·코끼리·하마·물소 같은 야생동물들도 많기에 관광지로도 적격인 곳이다.
5. 인종
우간다에는 현재 34개 정도의 종족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반투어족이나 나일사하라어족,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쿠시어파 등에 속하는 여러 언어들을 사용한다.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반투어계 종족들은 주로 남부지역에 살고 있으며 반투어계 종족은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간다족을 비롯하여, 소가족, 은콜레족, 키가족, 기수족, 르완다족, 니오로족 우간다에 살고 있다. 나일사하라계나 쿠시계 종족들은 주로 북부지역에 분포하며, 이들 가운데 규모가 큰 종족은 아촐리족, 랑고족, 테소족, 카라모족 등이다. 또한 소수지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아시아인 사회가 존재한다. 우간다는 1995년 헌법에 영어를 공용어로 규정했으며, 2005년의 개정헌법에는 스와힐리어를 제2의 공식어로 규정하였다. 실제로 우간다는 영연방의 회원국이다.
6. 문화
6.1. 스포츠
6.1.1. 축구
축구를 나름대로 좀 하는 나라. 우간다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6.1.2. 야구
1989년 UPI (Unlimited Potential Inc.)라는 미국인에 의한 기독교 선교 단체가 야구를 소개 한 것이 우간다 야구의 시작이다. UPI의 목적은 야구의 보급을 통해 타인을 존중하는 등 기독교 정신을 보고 익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Baseball for God (하나님을 위한 야구)"이 표어였다.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UPI에 의한 야구의 프로그램이 전개되었는데 해마다 대상 지역은 확대 해 나가고 수도 캄팔라를 중심으로 서쪽은 무바라라 (수도에서 290km), 동쪽은 진자 (수도 90km)까지의 거리에서 활동이 전개되어 갔다.
UPI가 야구가 소개 된 지 약 10년 이상 경과한 2003년에 아프리카 대회에 출전해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이나 해외에서의 플레이를 꿈꾸는 선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UPI는 기독교 정신의 선교가 목적 이었기 때문에, 미경험자 초보자 대한 야구의 보급에는 열심 이었지만, 아프리카 대회의 출전과 같은 국제 대회 참가나 해외에서의 플레이 등 실력 향상에 연관된 것들은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UPI의 지원으로 야구를 시작한 선수들은 UPI의 지원에 한계를 느끼고 야구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2006 년, UPI의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우간다 지원에 주력하고 있던 인물이 급사. 그것을 계기로 UPI에 의한 우간다 야구 지원은 종료된다. UPI에 의한 지원이 중단되면서 야구 협회도 해체되었는데 당시 회장이 UPI의 철수를 계기로 자신도 야구에서 떠날 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야구를 계속하려고 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UPI에 의한 장비의 공급이 멈춰 떨어져 나가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2011년 쇠퇴기 동안에도 열정적으로 야구를 계속하려고 한 스탭들의 노력에 의해, 우간다 야구 협회가 새롭게 조직되었으며 우간다 야구대표팀이 2011년부터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출전해 아프리카의 야구 강국으로 꼽힌다. 일본 독립리그에도 몇몇 선수들을 파견하기도 했다고 한다.
6.1.3. 마라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이나라 선수인 스티븐 키프로티치가 깜짝 우승했다. 우간다로선 40년만에 두 번째로 받은 금메달. 1년전 대구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9위에 그쳤던 이 89년생 선수는 마라톤 부동의 양강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또한 이것은 그만큼 마라톤계 세대교체가 빠르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6.1.4. 배구
국내에서 뛰고있는 선수로 다우디 오켈로가 있다.
6.2. 요리
전통음식과 영국 요리, 인도 요리, 아랍 요리가 혼재되어 있다. 땅콩을 많이 먹으면서, 특히 마투케라고 불리는 주식용 바나나를 많이 재배해서 우간다는 세계적인 바나나 생산국 중 하나이다. 또한 기후가 잎채소를 재배하기 좋기 때문에 잎채소도 많은 편이다.
6.3. 종교
2014년 우간다 공식 인구조사에 따르면,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85%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가톨릭이 40%, 성공회가 32% 복음주의/오순절파 교회가 11%. 기타 개신교 종파들이 3% 가량. 이슬람 신자는 인구의 13% 가량을 차지하는데, 대부분이 수니파이고, 또 상당수의 아흐마디야 무슬림들도 같이 있다.
2014년 들어 동성애자는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는 법안이 통과될 뻔 했으나 부결되었다. 물론 법안 통과 이전에도 동성애에 부정적인 건 마찬가지라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이 화형을 당하고 겨우 한국으로 망명한 여성이 있었을 정도다. 미국 유학생 출신이자 가톨릭 신자인 데이빗 바하티(David Bahati) 의원이 발의하고 성공회 신자인 독재자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지지했다.
이렇게 나라가 여러 주요 기독교 종파와, 이슬람 및 소수의 토속 신앙으로 나뉘어졌고, 21세기 들어 조지프 코니라는 반군 지도자가 이끄는 사이비 기독교 광신도 반군인 '신의 저항군'이 극성을 떨어 미군 파병의 원인이 되었다. 아래 참조.
총포를 신앙하는 화물신앙도 있는 듯 하다.
2020년 5월 27일에 우간다에서 딸이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화상까지 입은 사건이 발생되었다.#
6.4. 에이즈
우간다는 대표적인 에이즈 창궐국이었다. 그러나 우간다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80년대 말부터 90년대 들어 해외지원을 바탕으로 첫 경험을 늦추고(Abstinence), 배우자에 충실하며(Be Faithful), '''콘돔을 쓰라는'''(Use a Condom) 소위 ABC 전략을 널리 홍보하여 배포했다. 그 결과 1990년 성인인구 약 15% 추정치에서 2007년 성인 인구의 5% 가량으로 크게 줄었다. 그래프 bbc 기사 이후에는 그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는 중. 물론 이런 개발도상국의 통계가 그렇듯 통계마다 구체적 수치가 크게 변동하기는 하지만 감소폭이 90년대에 분명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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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금지법이 수십년 전에 시행되어 에이즈 감염률을 낮추었다는 선동이 있으나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나 적용된 법이 있으며, 강력한 금지법은 2014년 발의되었으며 결국 부결되어 발효도 못했다. 그와 비슷한 법이 우간다에서 통과되거나 의논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일이다. # 반면 에이즈 감염률의 큰 폭 감소는 90년대의 일이다.
한편 경제상황의 진전이 늦어 오랫동안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아나 농촌 등 취약계층의 경우 정보파악도 힘들다고 한다.
7. 외교
8. 신의 저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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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저항군 대원들
2011년, 미군이 1993년 소말리아에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널리 알려진 모가디슈 전투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한 이래,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인 우간다에 최초로 지상군을 포함한 100여 명의 군대를 파병하였다. 대다수가 미 육군 특수전 부대(통칭 그린베레)인 것으로 밝혀졌다. 파병의 목적은 LRA(Lord's Resistance Army) 신의 저항군이라는 우간다 반군 단체의 지도자인 조지프 코니를 제거하기 위해서임이 밝혀졌다. 이 조직은 소년소녀들을 납치하여 소년병과 성노예로 만드는 인간말종들이다. 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귀나 입술, 코를 자르게 시켰다.
월드비전에서 소년병들을 구출하고 교화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조직의 지도자 조지프 코니는 아내가 60여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권 이름을 봐도 알겠지만 이슬람교과 일절 무관하며 되려 성서를 받드는 기독교 광신도로 알려져 있다. 이 작자가 이끄는 반군 단체 이름은 바로 '''Lord''''s Resistance Army(신의 저항군). 오죽하면 미국 <크리스천 투데이> 같은 곳에서 그를 기독교를 망신시키는 살인마라고 비난까지 했을 정도. 이 조지프 코니 제거를 위한 파병에 대해 미국 측에서는 '단지 군사 고문으로 파병한 것이며, 제거 작전은 우간다군이 전부 처리할 것'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코니는 수천 명 규모의 반군을 거느리며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하는 등 우간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안보에 매우 위협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쟁비용을 감당하느라 허덕이며 해외파병을 꺼리던 미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판단된다. 2014년에는 남수단으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 신의 저항군의 첫 목적은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차별받아온 아촐리족의 저항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그냥 살인마 집단으로 전락하였다. 오히려 신의 저항군의 만행으로 인해 아촐리 족 거주지역인 우간다 북부 지방이 초토화되었다. 더군다나 이런 사태가 일어나자 우간다 정부는 아촐리족 200만 명을 수용소로 보내는 등의 극히 막장스러운 대응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우간다에 사는 아이들은 밤이 되면 담요를 한 장씩 들고 시내로 모여든다, 시내에 도착하기까지는 한두 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지만 마다하지 않고 한데 시내로 가서 잠을 잔다. 그 이유는 만약 아이들이 집에 있다가는 언제 반군에 잡혀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군들은 밤이면 마을에 찾아와 아이들을 납치하고 사람들을 죽이며, 납치된 소년은 군사훈련을 받아 총알받이로 거듭나고 소녀는 반군들에게 강간당하곤 한다. 현재 우간다에서는 반군에 납치됐다가 아이를 낳고 돌아온 소녀를 차일드 마더(child mother)라고 부른다.
8.1. 샘 칠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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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생인 미국인 목사 샘 칠더스는 조지프 코니가 이끄는 신의 저항군에 맞서 스스로 총을 들고 우간다군과 손잡고 나선 바 있다. 그는 실제로 1000여명의 아이들을 구조했으며 실전을 여럿 치뤘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2014년 9월 21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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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로 국내에서도 개봉한 <머신건 프리처>가 바로 그에 대하여 다룬 영화이다.
9. 교통
9.1. 항공
1960년대 우간다에 있는 엔테베 공항에서 엔테베 작전이 일어났고,2013년 양국 정상의 합의의 따라 2015년 2월 $27,000,000를 대한민국 정부가 우간다 정부에 보조금으로 지불하였고 2015년 12월 31일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시스템 개선 사업 최종 사업자로 대한민국의 한국공항공사가 선정되어 관리하게 되었다.
10. 기타
국기와 국장에 나오는 새는 관머리두루미(관학).
Vim을 실행할 때 "우간다에 사는 가난한 아이를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나오는데, charityware 라이선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6]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서 주인공 란초의 라이벌인 차투르가 우간다 출신.[7]
해리 포터 세계관에서 가장 큰 마법학교가 있는 곳이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르 시프에게 조직 자금을 맡겼다가 홀라당 날려먹고 몬테네그로에 빚독촉하러 쫓아왔다가 영국 첩보원에게 수장과 조직원이 살해당해 변사체로 발견된 LRA 조직의 본거지가 우간다 음발레에 있는 걸로 나온다.
2010년에는 우간다 라몬 필름 프로덕션의 저예산 액션영화[8] 인 Who Killed Captain Alex?가 공개되었는데 워낙 낮은 퀄리티로 인해 한동안 인터넷에서 컬트적 인기를 얻기도 했다.공식 트레일러 풀버전
우간다의 호전적인 원주민들의 스테레오타입을 담은 밈도 있다. 우간다 너클즈 참고. 밈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나 많이 시들해졌다.
이 나라도 10월 9일이 공휴일이다. 1962. 10. 9일이 우간다 독립기념일이다.
가난하지만 난민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2006년에는 아프리카 최초의 난민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1. 둘러보기
[혼합된체제] 4.94점[1] 2014년 우간다 국가 센서스 통계.[2] #[3] 지금도 동아프리카에서 잠재력 있는 국가 중 한 곳이다.[4]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고 한다.[5] 이 사람은 한때 범죄자였지만 회개하면서 선교사로서 봉사를 갔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아이들을 위해 세운 고아원을 신의 저항군이 자꾸 습격하자 결국 총을 들고 지키고자 나서면서 구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6] . (공)저: 백창우. 출판사 한빛미디어(주). 2016년 2월 28일에 확인됨.[7] 우간다에 많은 인도인들이 넘어갔다. 그들은 우간다에서 재벌 혹은 상류층이다.[8] 대략 '''200 USD'''의 예산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